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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0

영화 "컨테이전 Contagion"은 허구일까?



 영화 컨테이전 Contagion.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난리인 지금, 이 영화를 대중에게 추천해야 되는지, 아니면 사태가 완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지..자못 걱정인 이유는, 너무나 현재를 핍진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창궐은, 결국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무리하게 침범한 결과이며, 대단한 줄 알았던 현대 문명의 한계도 여실합니다. 이기적인 무리들의 기회주의와 잇속 챙기기, 이에 대비되는 이타적 영웅들의 희생, 우왕좌왕하며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대중들의 불안이 남의 일같지 않습니다


영화는 비록 해피앤딩이지만, 수백만이 희생되고난 결말로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부디 이같은 바이러스 난장은 이번으로 막을 내리고, 지속가능한 지구, 편리보다는 평안한 삶을 위한 공동체 건설을 위한 범세계적 언행일치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빌어봅니다.


영화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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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
:: 자료 출처: 글: 유상훈 컬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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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전 / Contagion (2011년)





스티븐 소더버그의 바이러스 재앙 영화 ‘컨테이젼’입니다. 사이언스 픽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라 놓칠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극적인 드라마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상황을 연출한 점이더군요. 
 사이언스 픽션 보다는 사이언스 영화에 가깝게 보였습니다. 소더버그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CDC(질병 통제 센터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와 관련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만큼 최대한 현실에 가까운 재앙 상황을 그리려고 노력을 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그 결과 섬뜩하기만 한 재앙의 진행 과정을 목격하게 되었고, 마치 세미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영화는 초호화 스타 군단이 출연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영화를 끌어가기 보다는, 현실적인 재앙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마치 디스커버리 채널 등에서 보이는 미래를 예견한 다큐멘터리의 인물들을 유명 배우들로 채운 듯한 느낌도 받게 되더군요. 배우들은 튀지 않고 최대한 절제를 하며 바이러스 때문인 재앙 상황에서 사회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들을 현실적으로 연기하였다고 봅니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스타일의 드라마로 극을 전개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그려냄으로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고 할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될 때 직면하게 되는 공포를 간접 체험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영화의 주요 골격은 원인 모를 질병이 창궐하여 전 세계로 급속도로 퍼지자 미 정부 소속의 과학자들에 의해 극복이 되는 것이 영화의 큰 틀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다른 인간 군상들을 그려지게 됩니다. 처음 질병에 걸린 베스와 그녀의 남편 토마스, 질병 통제 센터 소속의 치버 박사와 에린 박사, 그리고 앨리 박사, WTO 소속의 오란테스 박사, 프랜랜서 기자이자 블로그를 운영하는 앨런 등이 중심인물이 됩니다.



 한편, 영화에서는 이기적인 야망을 품은 블로거와 그를 맹목적으로 맹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장면도 보여주고 있는데요, 아마도 작가가 특정 블로거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할 정도로 다루고 있습니다. 
 저도 이 설정에 대해 마냥 반감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득을 위한 이기적인 블로거 때문에 고생을 한 적이 있어, 공감하게 되더군요. 제 생각이지만 누리꾼들이 블로그를 대하는 방법도, 특정 블로그의 의견을 맹신하는 것 보다는 한 개인의 의견 정도로 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컨테이젼’은 바이러스로 말미암은 재앙 상황에서의 여러 부류의 인간을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나 특정 부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시각으로 영화를 풀기보다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상황을 담담하게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풀고 있다고 봅니다.



과학자들이 홍콩 출장을 다녀온 후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리던 베스 앰호프(기네스 펠트로)가 갑자기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이와 유사한 증상으로 사람들이 차례로 사망하게 됩니다. 문제는 학계에 보고되지 않는 바이러스, 다르게 말하면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은 신종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칫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 앞에 정부와 질병 통제 센터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지게 됩니다

 정부는 테러를 의심하게 되고, 질병 통제 센터는 바이러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역학 조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WTO에서도 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홍콩으로 리어노어 오량테스(마리옹 꼬띠아르)박사를 파견하고 첫 감염자로 알려진 베스의 홍콩 행보를 역추적하게 됩니다. 


바이러스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이안(엘리어트 굴드)박사에게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아내라는 의뢰가 들어가게 되나, 곧 정부 정책에 의해 연구 중지 명령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이안 박사는 명령을 무시하고 연구를 계속해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내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원숭이의 희생 끝에 백신이 발견되고, 앨리 핵스톰(제니퍼 엘)박사는 자신에게 백신을 투여함으로써 임상 시험을 대신해 백신 효능을 증명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백신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가 남아 있고 더 지체를 할 시간이 없게 되고 정부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결국, 영화는 제비뽑기를 통하여 해당 생일의 사람들부터 백신을 투여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에 희생되었지만, 대다수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구원된 것인데요, 영화는 이를 통해서 과학자들에게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 주게 됩니다.



이들은 사지에 파견되어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에린 미어스(캐이트 윈슬렛)박사와 홍콩에서 파견되어 바이러스의 기원을 쫏던 오란테스 박사가 시골로 납치되었지만 오히려 이들을 돕게 되는 것으로 그려지며 희생적인 사람들과 권력의 중심에서 체제의 유지를 중요시하는 사람들로 구분됨을 보게 됩니다

 로렌스 피시번이 연기한 치버 박사는 후자 쪽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연인을 살리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백신을 센터의 청소부 아들에게 투약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의 행동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거짓 정보 제공자로 그려진 블로그는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 그려져, 열심히 자신의 글을 쓰고 있는 많은 선의의 블로거들까지 부정적으로 인식될까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영화 블로그와 같이 취미 생활 블로거가 아니라 생업을 유지하려는 전업 블로거라면, 그 파장은 더 크리라 생각을 합니다. 블로거는 광고가 아니면 고수익 창출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광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 글을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블로그에 광고 글을 게재할 때 스폰서(후원자)라는 빨간 알림을 표시해 광고성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알려줍니다. 광고를 위한 글에는 아무래도 과장되고 주관적인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많지요. 심지어는 거짓말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나쁜 글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주드 로’가 연기한 ‘앨런’이 바로 그런 부정적 블로거입니다. 그러나 선악의 강약 없이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는 이 영화 속에서 블로거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했다는 점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네요. 제 의견을 이야기하면 이 영화에는 앨런 외에, 앨런 같지 않은 정직한 블로거도 있다는 사실이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언급이 돼야 했다고 봅니다.


사실 제대로 된 블로거들을 구분하는 법은 불가능하다고 만은 보지 않습니다. 일반 블로거들은 확인된 정보를 주로 다루고 소문이라면 소문이라는 말을 명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기를 통해 부정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블로그는 대중이 원하는 소식만을 특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사실인 양 위장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마치 거짓 선지자가 사람들이 원하는 달콤한 거짓 진실로 대중을 속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영화에서 앨런은 정부가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공격하여 사람들을 믿게 한 후 효능도 입증되지 않은 개나리꽃 액을 홍보하여 대중을 속여 부당 이득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데, 대부분의 정직한 블로거들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재앙에서 제외된 사람
 다른 부류를 대표하는 캐릭터로는 처음 바이러스에 감염된 베스의 남편 토마스입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신종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토마스가 특별한 면역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도 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가게 됩니다. 특별한 사람이지만 현재의 기술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진실성에 더 접근하게 됨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새로 개발된 백신이 죽은 신종 바이러스를 투입해 면역력을 높이는 설정이기에 ‘면역’이란 주제가 이어지게 됩니다. 이 특별한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한발 뒤를 물러나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도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로 이 재앙과 무관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일반 대중
 영화에서 대중은 바이러스로부터 노출되어 무방비 상태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특정 인물을 내세우기보다는 다수로 그려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바이러스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정부 대책을 기다리는 데, 이 와중에 거짓 정보 제공자들에 잘못된 사실을 듣게 되고 혼란을 겪게 됩니다. 
글을 쓰는 저와 같이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하게 되는데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만, 대책이나 해결에는 아무런 영향력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로 그려지게 됩니다. 바이러스 정체도 알지 못하며 막연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잘못된 정보에 흔들리기까지 합니다.   현실에서는 우리는 바른 정치인을 뽑아야 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재난 상황에서도 우리의 선택은 중요한 것으로 그려진 듯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바이러스의 기원을 다루게 되고. 인간들의 무분별한 난 개발 때문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며 일종의 경고를 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다 보니 질병의 원인보다는 우리 사회가 이처럼 바이러스의 재앙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SF와 바이러스에 흥미를 느끼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고, 바이러스의 공포만은 충분히 실감하고 나온 영화였다고 말하고 싶네요. 다만, 배우들의 강하고 초인적인 연기보다는 실제 보통 사람들처럼 정제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 참작해 감상해 주셔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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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 -스티븐 소더버그
스토리 -스콧 Z. 번스
 연 -마리옹 꼬띠아르, 맷 데이먼, 로렌스 피쉬번, 주드 로,
        기네스 펠트로, 케이트 윈슬렛, 존 호키스, 황경환 외
 악 -클리프 마르티네즈
 집 -스티븐 미리온
 영 -스티븐 소더버그
제작비 -6천만 불

글_유상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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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 뉴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608736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평소 겁이 많거나 소심하다 자평하는 분들, 관람을 자제 부탁드린다. 공포영화가 아니라서 더 그렇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기침 한 번 할 때마다, 버스 손잡이를 만지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마다, 맨손으로 잡은 신용카드를 점원에게 건널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더욱이 영화 초반 등장했던 중후반부 이후 서사 안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 속 '대중'들이 갈수록 날카롭고 폭력적으로 변해갈 때, 숨이 턱턱 막혀오는 순간과 맞닥뜨릴 것이다.

그렇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의 복판에서 다시 보는 <컨테이젼>(Contasion)은 좀비 없는 좀비 영화이자 '쇼크' 효과 없는 공포영화였다. 벌써 9년 전 영화다. 우리가 메르스 사태를 겪기 전, 전 세계는 2002년 사스, 2003년 조류인플루엔자, 2009년 신종플루 사태를 경험했다.

그쪽 동네 전문가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때도,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던 걸 테다. 정체모를, 외부로부터 온 바이러스와의 (컨테이젼이란 직설적 제목이 내포한) '접촉'과 '감염', '전파'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드는 일말이다. 2020년 2월 현재 늘어나는 미국의 독감 환자 사망자 수와 중국의 '신종 코로나' 감염 사망자 숫자를 보라.
게다가 연출은 스티븐 소더버그다. <오션스> 시리즈는 애교가 맞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깜짝 데뷔, 할리우드에서 지적이고 '쿨'한, 냉정하고 냉철한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컨테이젼>은 시종일관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감염병의 계보학 혹은 감염병 지도를 대수롭지 않게 완성해낸다.
그러니까, '이 구역 1인자는 바로 나'를 선언이라도 하듯, 전염병 소재 영화는 <컨테이젼>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인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이어가고, <뉴욕타임스>가 "신종 코로나가 세계적인 유행병이 될 거"라고 경고했으며, 홍콩 시민들이 중국과의 국경 폐쇄를 요구하고 나선 2020년 2월. 다시 확인하는 영화의 이 총체적인 시선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정체불명 감염병 자체가 주인공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이 감독이 얼마나 '쿨'하냐면, '아이언맨의 그녀' 기네스 팰트로를 영화 시작 단 8분 만에 '사망'시켜버리는 식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전염병과의 135일 간의 사투다. 헌데, '무미건조'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다.
<아웃 브레이크>, <감기>, <28> 등 이 구역 영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냉철하다. 주인공의 사투를 볼거리로 전시할 생각, 전혀 없다. 사랑하는 동반자와의 이별, 슬퍼할 겨를도 없다. 진상을 조사하고 백신을 개발하려는 과학자와 의사들의 사투, 그게 그들의 일일 뿐이다.
그래서 'Day-2'란 자막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다. 최초 감염자의 증상이 발생한 곳이 홍콩이고, 출장을 마치고 돌아간 집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다. 직후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홍콩 구룡반도, 영국, 런던, 미국 미니애폴리스, 일본 도쿄로 옮겨가고, 빠른 속도로 사망자를 발생시킨다.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촉발된 대재앙의 시작이다.

영화가 따라잡는 것은 희생자와 그 주변인뿐만이 아니다. 미 애틀란타에 위치한 CDC(질병본부센터)는 이 사태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전직 기자이자 음모론자는 일찌감치 이 21세기 역병의 존재를 눈치 채고 경고장을 날린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연구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국 제목 그대로 '감염병'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다. 시간과 공간을 따라 이동하고 확장되는 감염병의 여파를 건조하게 따라잡을 뿐이다. 그 동안 누구는 병에 걸리고, 누구는 병을 없애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또 누구는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그 뿐이다. 멧 데이먼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는 유명 배우들이 캐릭터들을 소개하면 더 명확해 진다.

다양한 캐릭터가 함의하는 인간의 조건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맷 데이먼이 연기한 미치 엠호프. 재혼 가정의 평범한 가장인 그는 짧은 시간 아내와 의붓아들을 잃고 '면역자' 판정을 받은 이후, 유일한 혈육인 딸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남자다. 아내가 왜 바이러스에 노출돼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는지를 애타게 알고 싶어 하던 이 남자가 135일 후 흘리는 눈물은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감정을 내포한다. 어쩔 수 없이 집 안에서 딸의 졸업 파티를 열어주는 마지막 장면을, 소더버그 감독이 건조하게 찍은 것은 물론이고.

로렌스 피시번이 연기한 CDC의 치버 박사는, 평점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정부 쪽 사람'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백신 개발이나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뛰어다니는 과학자들과 연구진들의 활동을 조율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허나 그런 그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 아들의 생명을 걱정하며 자의 반 타의 반 내부 정보를 흘리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미어스 박사는 사태 초반 구조원들을 진두지휘하고, 확진자들을 접촉해 격리시키거나 감염원인 등을 조사하는 인물이다. 결국 그 헌신과 책임감의 끝은 안타깝게도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지만. 제니퍼 엘이 연기한 앨리 핵스톨 박사는 전형적인 '이과'형 인간이자 끈기의 소유자다. 끝끝내 백신을 개발해낸 그도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낼 위기에 직면하게 되지만.

세계보건기구 소속으로 홍콩에서 최초 감염경로를 밝혀내는 레오노라 오란테스 박사는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했는데, 급박한 사태 속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집단과 구조 속 이기적 역학 관계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오란테스 박사는 본의 아니게 휘말린 위기를 인도주의 정신으로 극복하지만, 그 끝엔 사회에 대한 실망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 세 박사를 모두 여성 연기자가 연기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주드 로가 연기한 프리랜서 기자이자 음모론자 앨런 크럼위드. 전 세계 의학계와 미 정부, 제약 회사들이 백신 치료에 골몰하는 동안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개나리꽃이 치료제라는 민간요법을 '뉴스'로 퍼트린 그는 당연히 유명 인사로 등극한다. 역시나 당연히, 그의 신념의 바탕엔 의료 기관과 제약회사, 각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이런 대사 역시 이 음모론자의 몫이다. 왠지 씁쓸한데, 틀린 말은 분명 아니다.

"1918년 (전 세계 5천 만명이 죽은)스페인 독감 후에 부자 된 사람들 많아요. 감기약이랑 살균제를 만든 사람들. 누군 죽고 누군 돈을 버는 거죠. 닭이 몰살 당하면 다른 육류 수요가 폭증 하듯이. 완벽하지 못한 면역 체계 덕에 돈을 버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니까요. 제약사들도 떼돈을 벌잖아요."

이밖에도 앨런을 불신하다 병에 걸리는 '레거시 미디어' 편집장, 정부 측을 대변하는 미 국토안보부 요원과 CDC 간부, 고향 마을 아이들을 살리려는 홍콩 정부 관계자 등 다채로운 인물들이 이 '감염병 계보학'이자 인간 군상극의 풍부함을 더한다.

이 무미건조한 간접체험의 교훈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그리하여, 공포영화이기 앞서 생생한 간접체험을 수반하는 <컨테이젼>의 교훈을 찾자면 이런 식.

첫째, 가짜뉴스나 음모론에 빠지지 말라. 섣부른 불신과 그로부터 자가 발전하는 공포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그 공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이들에 대한 혐오로 번지기 마련이다.

둘째, 우선 전문가들을 신뢰하라. 단, 그들도 비록 본의 아니게 대응이 늦거나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신종 바이러스'는 그 누구도 대면하지 못했던 '신상'이지 않은가. 제약회사나 정부 기관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는 <컨테이젼>은 그럼에도 정식 '프로세스'를 축소하더라도 끝끝내 백신 개발에 성공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거기서 강조되는 것이 시스템의 중요성인데, 소더버그 감독은 그 중간중간 '그들도 우리처럼' 사람이라는 사실 역시 간과하지 않는다.

셋째, 사랑하는 동반자들을 돌아보라. 딸을 목숨을 지키려는 미치와 함께 <컨테이젼>이 건조하나마 긍정적으로 그리는 주인공들은 대다수 바로 지금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다. 동반자들을 걱정하고 보호하며, 그를 위해 자신들의 할 일에 매진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영화 속 세 여성 박사들처럼 '인류애'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고. 영화 말미, 음모론자의 현재가 초라해져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넷째, 손 잘 씻고, 불안감과 공포로 떨지 마라. 그 공포를 조장하지도 말고. 멧 데이먼이 소더버그 감독에게 건네 받은 시나리오에서 "읽고 나서 꼭 손 씻어"란 메모를 발견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이렇게 전염병 사태의 A부터 Z를 총체적으로 담아낸 영화이니만큼, 손 씻기를 비롯해 일반인들이 알아야 할 상식은 물론 전염병 사태에 대처하는 정부와 의료기관의 매뉴얼까지도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든다. 말 그대로, 간접체험의 영화.

CDC와 전염병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은 소더버그 감독은 개봉 당시 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문가들이 좀 더 손을 씻고, 손 세정제를 사용하라고 하더라"며 "자기 얼굴을 손으로 만지는 게 진짜 최악이고"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일 뿐, 이데올로기가 아니다"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만큼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공포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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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테이젼과 코로나19 / 서정민  등록 2020-03-09 13:44


코로나19 사태로 극장 대신 집에서 영화 보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를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달 셋째 주 온라인 이용 건수는 773031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이용 건수 381856건의 2배가 넘는다. 온라인에선 보통 최신작이 인기다. 지난 5일 기준 일간 박스오피스를 보면 1<히트맨>, 2<클로젯>, 3<남산의 부장들>이 모두 최신작이다
그런데 4위가 9년 전 영화 <컨테이젼>이다. 국내 개봉 당시 22만여 관객에 그친 이 영화가 뒤늦게 인기몰이를 하는 건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와 놀랍도록 닮아서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할 테니 줄거리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영화 먼저 보고 이 글을 읽기 바란다.

영화는 콜록거리는 소리로 시작한다. 기침의 주인공은 막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글로벌 기업 임원 베스(귀네스 팰트로). 같은 시간 홍콩과 영국 런던에서 기침, 고열 등에 시달리는 환자가 발생하더니 이내 숨진다. 베스도 얼마 못 가 숨을 거둔다. 아내에 이어 6살배기 아들마저 떠나보낸 미치(맷 데이먼)는 다행히도 항체가 있는지 무사하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번져나가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치버 박사(로런스 피시번)와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즐릿)는 병의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세계보건기구(WHO)의 오랑트 박사(마리옹 코티야르)는 홍콩에서 최초 발병 경로를 추적한다.
이 상황만 봐도 지금 현실과 많이 겹치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그렇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앨런(주드 로)은 사태를 취재하면서 개나리꽃액이 치료제라는 미확인 정보를 퍼뜨린다. 헤지펀드 매니저는 앨런에게서 미리 정보를 캐내 이익을 얻으려 하고 제약사 주가는 폭등한다. 사태 해결보다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데 열을 올리는 일부 언론과 가짜뉴스 유포자, 마스크 사재기로 한몫 챙기려는 무리를 떠올리게 한다. 약국에서 개나리꽃액을 사려고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은 마스크를 사려는 우리 모습과 판박이다.

현실과 다른 대목도 있다. 영화에선 개나리꽃액이 떨어지자 대기자들이 약국 문을 부수며 폭동을 일으킨다. 식량 배급을 받다가 물량이 떨어지자 남의 것을 빼앗으려 들고, 거리 곳곳에선 약탈, 방화 등이 벌어진다. 이와 달리 우리는 차분하게 질서를 지키며 마스크 5부제, 마스크 양보 운동 등으로 상생의 길을 찾고 있다
영화에선 간호사 노조 파업으로 병상이 더욱 부족해지는데, 우리의 경우 의료진이 부족한 대구로 오히려 다른 지역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자진해서 들어가고 있다.

보통의 재난 영화와 달리 <컨테이젼>에는 특출난 영웅이 없다. 이름값으로만 보자면 맷 데이먼, 로런스 피시번, 마리옹 코티야르 등이 중요한 구실을 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대신 현장을 누비다 자신도 전염돼 목숨을 잃는 역학조사관, 발 빠르게 바이러스를 배양하고는 제약사의 거액 제안을 뿌리치고 정부에 기증한 민간 연구자,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임상실험을 해 백신을 개발하는 정부기관 연구자 등이 저마다 힘을 보태 사태를 해결해나간다. 우리도 수많은 무명인의 희생과 연대로 이 위기를 이겨내리라 믿는다.

영화는 최초 감염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보여주면서 끝난다. 글로벌 기업이 공장을 짓느라 숲을 파괴하자 거기서 밀려난 박쥐들이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날아들고, 결국 박쥐에 서식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된다. 데이비드 콰먼의 책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번역한 의사 출신의 강병철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의 72%는 야생동물에게서 유래한다
지금처럼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면 전염병은 또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염병뿐이겠는가. 생태계 파괴에 따른 기후변화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영화와 코로나19 사태가 울리는 경종을 흘려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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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3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나의 셈은 틀렸다. -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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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자들의 드높은 기치와 같았던 작가 허지웅은 지금 암과 싸우는 중입니다.
'누구도 믿지 않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삶의 태도가...  틀렸다'는 처절한 자기 고백을
세상 모든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의 소식으로 띄웁니다.


[허지웅의 설거지]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던 나의 셈은 틀렸다.  2020-01-03

좋은 사람 생기면 결혼할 터..
바뀐 생각 말하자 친구들 반대 심해
스무살 이후 혼자 힘으로 살려고 발버둥..
“우리는 모두 동지가 필요”

결혼이 아니더라도,  이성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진실한 벗,
그것도 한 솥 밥을 매일 먹는 사람 하나는 옆에 있어야   세상을 무사히 견딜 수 있는 건 아닐까..   
이 복잡하고 고단하며   때로는 두렵기까지한 세상을  혼자 살기에는
우리 인간은  너무나 허약한 존재가 아닐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좋은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겠다. 그렇게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돌아온 답변들의 수위가 예상보다 높았다. 여자도 그렇고 남자도 그랬다. 좋은 변화라고 보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든 여자든 ‘결혼은 무조건 내 손해’라고 여기는 게 요즘 추세인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의 욕에 가까운 말까지 퍼부으며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대할 줄은 몰랐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대화의 질이 왜 이런가 싶어 고개를 들고 표정들을 읽어 보았다. 더 지독하게 응수해주려 했으나 흡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같은 눈빛을 보고 관두었다.
긴 머리의 여자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병원에 오는 우울증 환자들 가운데 기혼자들의 9할은 배우자 때문에 우울하다.”

나는 멀쩡하게 결혼해서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함께 대체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만 같았던 이들이 대체 왜 이런가 싶었고, 특히 벤저민 프랭클린이 자기 이야기 대신 환자들의 사정을 예시로 든 이유가 궁금했지만 캐묻지 않기로 했다. 너무 슬퍼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마음속 깊이 물음표를 남겨두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날의 대화는 두어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살면서 혼자라서 문제였던 적은 딱히 없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영원히 잊지 못할 스무살의 그 날 이후 늘 그랬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그날 만들어졌다. 서울에서 혼자 대학교에 다니면서 하루 세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너무 고되었다. 방학이 되면 스키를 타러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가정을 책임지지 못한 건 부모의 사정인데 왜 내가 등록금부터 집세며 생활비 모두를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술만 마시면 고시원 바닥을 뒹굴면서 애꿎은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도무지 분노를 주체할 방법이 없었다.

자존심을 이기고 술기운을 빌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교수로 재직 중인 학교에서 자녀의 등록금이 지원된다는 사실을, 나는 쓸데없이 잘 알고 있었다. 같이 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지만, 그래도 장남이 아니던가. 덥고 습한 여름밤, 하나로마트 앞이었다.

영겁과 같은 통화 연결음이 지나가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주절주절 사정을 빌고 거기에 더해 반드시 갚겠다며 못 지킬 약속을 산더미처럼 쏟아냈다. 강철 은행의 대출 심사관도 눈물을 흘리며 다 들고 가지도 못할 만큼의 황금을 안겨주었을 최후 진술이 끝났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명료했다. “등록금을 줄 수 없다”고 읽고 ‘네게 돈을 주고 싶지 않다’로 알아먹어야 할 말을 아버지에게 듣고 난 뒤 고시원 방으로 돌아와 기절해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맹세했다. 나는 혼자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 나는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고 선배도 없다. 혼자서 해내지 못하면 그냥 끝이다. 우습게 보여도 그냥 끝이다. 내게 두 번째 기회 같은 건 없다.

이후로는 별문제 없이 잘 살았다. 어느 이름 모를 학부 선배가 고기를 산다는 소문이 돌면 반드시 찾아가 구석에 앉아 당대의 히트 상품인 대패 삼겹살을 미친 듯이 먹고 “쟤 누구냐”라는 말이 들려오기 전에 자리를 떴다.
고시원 밥통에는 화수분처럼 늘 쌀밥이 솟아나기 마련이니 옆방 아저씨가 내어놓은 짜장면 그릇에 밥을 말아 곧잘 비벼 먹었다.
아저씨도 이름 모를 선배도 잠잠하면 편의점에서 천원에 열개들이 치즈 빵을 사 먹었다. 아르바이트 월급을 떼이면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노동청 임금체불 담당자 대신 지옥 끝까지 추적해 쫓아가 돈을 받아냈다.

써놓고 보니 궁상맞지만, 요는 더 이상 아무것도 창피할 게 없다는 거다. 모든 게 생존의 문제였다. 나는 혼자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몸을 만들자.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4학년 때 취업한 이후로 여태껏 혼자 힘으로 몸을 굴려 밥을 벌어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달콤하며 떳떳한 노릇인지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연애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내가 누군가를 몹시 좋아하면 속수무책으로 믿고 지나치게 의지해버린다는 사실을 힘겹게 깨달았다. 내심 혼자 힘으로 늘 온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연애를 통해 이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헤어질 때 너무 고되다. 흡사 아버지에게 “등록금을 줄 수 없다”는 말을 24시간 동안 듣고 있는 것 같은 심정이 된다.

그들 탓은 아니었다. 헤어질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엄정하게 돌아보면 대개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언제든지 더 이상 의지할 수 없고 더 이상 믿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매번 잊어버린 내 잘못이었다.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데 실패한 거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난 뒤 나는 너무 믿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 않았다. 물론 한두번 다짐을 까먹고 다시 주저앉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별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그랬다.

삼십대 후반의 어느 날 나는 연애를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연애를 하기 위해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너무 벌려놓았다. 끊임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무 믿지 않고, 너무 기대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그럴싸한 말장난이다. 그걸 대체 연애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지난 몇년간의 연애가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완벽한 실패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10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이 거리감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늘 전자기력을 떠올린다. 세상에는 인력과 강력, 약력 그리고 전자기력 이렇게 4가지 힘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내 손이 키보드를 그냥 통과하지 않고 누를 수 있는 건 전자기력 때문이다. 전자기력은 ‘나’를 ‘나’라는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테면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나 '에반게리온'의 ‘에이티(AT)필드’처럼 내가 나라는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인 것이다. 너무 외롭다고 해서 아예 걷어버리면 나라는 형태가 허물어진다. 반대로 타인이 너무 두려워 보호막으로 두텁게 에워싸면 속절없이 너무 멀어져 버린다. 요컨대 타인과의 거리라는 것은 바로 나의 보호막과 너의 보호막의 두께를 어림잡아 더하는 일이다.

삶에 있어 큰 사고라고 할 만한 최근의 일을 통과하면서, 나는 나의 가시와 보호막이 터무니없이 길고 두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편주: 필자는 암 투병중이다.)
그 길이와 두께는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오랫동안 비대해져 왔다. 그래서는 애초 타인과의 정확한 거리를 셈하는 게 무의미하다. 어떻게 해도 서로의 말이 닿기에는 너무 멀기 때문이다. 나의 셈은 틀렸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해야겠다는 말을 듣고 실망한 친구들의 셈도, 나는 조금씩 어긋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은 나와 너의 거리감이라는 게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친구들은 단지 ‘때가 되어서’ 결혼을 한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유와 확신을 가지고 결혼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 완벽해 보였던 셈이 이제 와서는 틀어져 버린 것이다.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매번 셈하는 건 고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익숙하고 편한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나면, 고된 셈 따위에는 흥미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혼자서 살아남기 위한 몸을 만드는 일을 포기한 건 아니다. 아마 남은 평생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다만 애초 왜 그런 맹세를 했는지 질문을 다시 해보았을 뿐이다. 그건 버티기 위해서다.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혼자서 살아남기 위한 몸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의 내 상황에선 맞는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버틴다는 것이 혼자서 영영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우리는 모두 동지가 필요하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배우 브래드 피트는 태양계 경계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절대적인 고독 앞에 혼자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비할 수 없이 가치 있다는 걸 깨닫고 지구로 귀환한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간단한 걸 우주 끝까지 가서야 알 수 있냐며 조소한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몸으로 무언가를 깨닫는 데는 늘 큰 비용이 든다.
무려 암에 걸리고서야 그걸 알았냐고. ...그러게 말이다.

허지웅(작가)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230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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