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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5

가장 가난했던 대통령 호세 무이카

호세 무이카. 나라와 민중을 위해 살겠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신념의 실천, 사랑의 증거를 끝까지 밀어 붙였던 진정한 한 인간이 멀리 떠났다.


사람이 이리 대단할 수도 있구나. 초심이 이처럼 마지막까지 갈 수도 있구나.
같잖은 대중 타령에 입발린 소리만 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영달과 잇속을 챙기는 무리는 감히 쳐다보지 못할 영웅이었다.


그대 영원히 인류의 등불이 되리라

이성으로는 비관해도 감성으로는 낙관하게 해준 그대를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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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는 쉴 권리가 있다”...게릴라·탈옥수·농부·가장 가난했던 대통령 무히카 별세

향년 89남미 좌파 거목·게릴라 출신 생태주의자.. 

우린 행복이 아니라 부에만 집중”                     최우리기자  2025-05-1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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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궁을 노숙자에게 내주고 자신은 원래 살았던 허름한 농가에서 출퇴근했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우루과이 전 대통령이 13일 별세했다. 항년 89.

야만두 오르시 현 우루과이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 별세 소식을 알렸다. 오르시 대통령은 저의 동지, 페페 무히카가 정말 그리울 것이라며 그는 대통령, 활동가, 사회의 모범, 사랑받는 어른이었다 추모사를 남겼다. ‘페페’(할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은 우루과이 정치계 거목이자 국내·외에서 존경받는 좌파 지도자였다. 2015퇴임 당시 지지율이 5년 전 당선(52%) 시절보다 높은 65%였다.

 

201074살의 나이로 대통령이 된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은 실용주의에 기반한 대중적 정치인이었다고 평가된다. 2010~2015년 재임 동안 마리화나 경작과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법으로 제정하는 등 자유주의에 기반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대신 마약중독자는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법을 바꾸기도 했다. 우루과이 경제는 연평균 5.4%의 속도로 성장했고 실업률도 낮은 상태로 유지했다. 정치·사회적 혼란이 많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소고기 수출과 축구팀으로 유명한 우루과이를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나라로 평가받도록 변모시켰다.

 

특히 대통령궁을 떠나 작은 농가에 살면서 월급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해 전세계적으로 큰 지지를 받았다.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도 편안한 옷을 주로 입고 화초 재배 일을 계속한 농부이자 생태주의자였다. 1987년식 폴크스바겐 차량을 몰고 다닐 정도로 검소했다. 5년 단임의 대통령직을 마친 이후 상원의원으로 선출됐지만 세계를 여행하며 시간을 보냈다그는 퇴임 전 소박한 집 한 채에 살면서 낡은 차를 몰고 다닌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갖고 놀라워하다니, 그렇다면 세상은 미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911월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몬테비데오/로이터 연합뉴스

 

노년기의 온화한 이미지와 달리 그는 젊은 시절 무장 투쟁을 벌이던 투사였다. 1960년대 마르크스·레닌주의 도시 게릴라 운동인 투파마로스 민족 해방운동(MLN-T)을 공동 설립했다. 쿠바 혁명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은 이 단체는 군사 정부 등에 대한 무장 투쟁을 펼쳤다. 그도 도시 하수구를 누비며 활동했고 여섯발의 총상을 입었다 살아남았으며, 두 번의 탈옥을 했다. 105명의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터널을 통해 탈출한 일은 우루과이 역사상 가장 큰 탈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13년 동안 독방 생활을 한 장기수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985년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의 도움 등으로 석방됐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석방된 날이 가장 행복했다면서 그 날과 비교하면 대통령이 된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1994
년 좌파 정치조직 민중참여운동(MPP)을 대표해 게릴라 출신 최초의 하원의원이 됐다. 1999년 상원의원, 2005년 좌파연합인 광역전선(Frente Amplio)이 정권을 잡았을 때 농축 수산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이런 삶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인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가난한 대통령 무히카등의 책도 출간된 바 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은 지난해 봄부터 식도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치료 중인 지난해 가을에도 총선에서 좌파 연합 승리를 위해 선거운동에 나섰으며 그 결과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오르시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그러나 올해 1월 암이 재발해 간으로 전이되면서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있었다. 유족으로는 전직 무장 대원 출신의 아내 루시아 토플란스키가 있다.

 

지난해 1월 그는 우루과이 주간지 부스케다와 한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죽어가고 있다전사는 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아내와 수십년간 가꿔온 몬테비데오 외곽 농장에서 꽃을 키우는 일에 생의 마지막 순간을 바치고 있다며 삶은 아름다운 여행이자 기적이라고 되풀이 말해다. “우리는 행복이 아니라 부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무언가를 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알아차리기도 전에 어느새 인생이 지나가 버린다
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4512(현지시각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호세 무히카 우르과이 전 대통령을 만나 회담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2013
61(현지시각) 로마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을 만났을 당시.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2004
1031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외곽에 있는 자신의 농장 화단에서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꽃을 다듬고 있다. 몬테비데오/로이터 연합뉴스

 

 최우리 기자ecowoori@hani.co.kr

 



2025-05-07

대법원의 이재명 공격과 쿠데타 세력의 재집권 시도

 [대법원의 이재명 공격과 쿠데타 세력의 재집권 시도]

대법원이 51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것은 우파의 새로운 반격이다. 55일 윤석열은 공원 산책 장면을 일부러 노출했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 말고는 투표 문제에 관한 한 대안이 없다. 좋든 싫든, 쿠데타 반대 진영 내 세력 관계가 그렇다.

달리 말하면, 우파의 사법 반격이 성공해 이재명이 출마하지 못하면 우파가 재집권할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윤석열은 파면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재구속되지 않고 있다. 무장 군인들을 국회의사당에 투입시켜 의회를 해산하려 했던 내란수괴의 현재 상태다.

사법부가 2013년 한 토론회에서 한 말들, 즉 행동이 아닌 말만을 문제 삼아 내란선동죄로 몰아 이석기 전 의원 등 수십 명을 수감케 하고 통합진보당을 해산해 의원직을 박탈한 것과는 천양지차다.

조희대는 공안 탄압 사건에서 공안 검찰과 유착한 의혹도 있다. 1989년 인천·부천지역노동자회(인노회) 탄압 사건 때 검찰이 처음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그러자 검찰은 조희대가 당직 판사인 날을 골라 영장을 재청구했고, 조희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인노회가 이적단체라며 인노회 회원들을 구속시켰다. 인노회에 대한 이적단체 판결은 2017년 이후 재심에서 거듭 뒤집어졌고, 현재 관련자 4명이 30여 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인노회 탄압 때 밀고자 노릇을 한 자가 바로 윤석열이 초대 경찰국장으로 임명한 김순호였다.

법원행정처장 천대엽은 박근혜의 법무부 차관 김학의의 별장 성 접대 의혹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을 위기에서 구출해 준 판결이었다. 천대엽은 신천지의 코로나 방역 방해에 대해서도 무죄를 판결했는데, 신천지는 윤석열 정권과 초기부터 유착해 탄핵 반대 운동에 신도들을 대거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법관 박영재는 자기 딸이 응시한 변호사 시험에 그 사실을 숨기고 시험 관리위원으로 참가했다. 이런 무리들이 지금 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방심해서는 안된다.

대법원의 판결 뒤 국민의힘은 이재명 범죄자라는 레퍼토리를 또 우려먹고 있다. 그를 유죄명이라고도 부른다.

대법원이 이재명의 거짓말이라고 한 발언들은 모두 대장동 수사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다. 검찰은 3년간 검사를 100명 이상 투입하고 수백 건의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집요하게 대장동 수사를 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혐의는 증거로 입증된 게 없고, 밝혀진 것이라곤 대법관이 포함된 ‘50억 클럽과 검찰의 증거 조작뿐이었다.

그래서 검찰은 그 과정에서 사건 본질과는 무관한 지엽말단적 발언들을 떼어내어 기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꼬투리만으로 이재명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해야 한다면, 아마 윤석열의 언행으로는 지금쯤 종신형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현재 민주주의 염원 대중에게 특히 중요한 과제는 쿠데타 세력 척결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쿠데타 세력의 재집권을 저지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재명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대법원은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파괴하려 했던 쿠데타 세력을 투표를 통해 심판하려는 대중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방해하려 한다. 이쯤되면 대법원은 이 나라의 사법기관이 아니라 진정한 대의민주주의 실현에 확실한 걸림돌이 된 것이다. 더 이상 엄중한 민의를 왜곡 거부하지 말고 대법원은 현실정치에서 물러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헌법기관이 아닌 범죄자 집단으로 추락할 것이고, 사태를 여기까지 이르게 한 구성원들은 그에 따른 엄중한 댓가로 탄핵을 넘는 징벌까지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14명 중 2명은 판결에 불참: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오해를 피하겠다며 기피.  (문재인 추천). 
●다른 2명은, 무죄 주장: 판단하기 애매할 때는 피의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정론 (문재인 추천).
■조희대를 비롯한 10명은 유죄: 9일 동안 6만쪽에 넘는 기록을 읽을 수 있었을까? (윤석열 추천).
  기록 6만 쪽은,  보통 단행본 책 5백권에 달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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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
'귀찮게 기록은 왜 보나? 이미 작정한 판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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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엽 대법원 판사의 말 바꾸기..
5월 2일에는 '기록을  안 본 채 판결 할 수는 없다'..고 하더니..
5월 4일에는 '기록을 모두 읽고 판결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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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의 과거 판결들...
성범죄에는 전형적인 마초 법관... 기본 자세는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참고 자료:  https://ws.or.kr/article/37228#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