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는 현모양처인가?
●육영수가 처음부터 현모양처의 화신이었던 것은 아니다. 1967년 한 청와대 출입 기자가 낸 책에는, 육영수가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라고 돼 있다.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지 이미 6년이 지난 때였다. 육영수의 이미지가 그때부터 골격이 잡혔다고 해도 1974년 서거 때까지 7년을 넘지 않는다. 이 기간은 박정희 정권이 재선과 3선을 거치며 마침내 껍데기 민주주의마저 내던지고 세계사에 유례없는 철권통치로 귀결되던 시기와 일치했다. 육영수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쁜 권력이 의도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정희 신화를 이루는 구성 요소 중 하나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 못지않게 그 이미지에 기대려고 하거나 톡톡히 덕을 본 존재는 어머니 육영수이다. 역대 선거에서 충청권이 캐스팅 보트를 쥐었음에도 박근혜는 대선에서 충청도에 대해서는 마음을 놓았다. 세종시를 만든 건 노무현이지만, 충청도 사람들에게는 자기 지역이 박근혜 어머니의 고향이란 점이 행정도시보다 더 중요했다. 옥천의 육영수 생가터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육영수 영화도 만들어지고 있고, 대한노인회는 숭모비까지 세웠으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육영수는 국민적 위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 육영수가 탐탁잖은 사람은 없을까. 박정희한테는 학을 떼는 사람이라도 그의 아내에게만큼은 호의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진보 언론은 박 대통령에게 아버지 말고 어머니를 닮으라고 조언했을 정도다.
●육영수는 퍼스트레이디 시절 장·차관, 재벌 등 고위층 부인네들의 봉사 모임인 '양지회'를 이끌었다. 육영수를 떠받드는 사람들은 그녀가 봉사에 헌신한 모습만 되새기지만, 양지회는 어두운 시절 음지에서 권력층끼리 검은돈이 오간 창구 구실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인 모윤숙이 '목련꽃 닮은 당신' 운운 찬사를 바쳤던 육영수의 실체는 과연 한복 입은 자태만큼이나 우아했을까.
●인터넷을 뒤져보면 육영수 집안의 권력 지형도를 보여주는 가계도를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시대에 이 집안은 매부를 잘 만난 덕에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육영수 오빠를 비롯하여 장관, 방송국 이사, 신문사 회장, 은행장 등 권력의 요직을 장악했음을 보여준다. 그 위세는 박정희의 친가 쪽에 뒤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육영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가 친일 대부호로서 막강한 위세를 누린 집안 배경도 작용했을 수 있다.
●육영수 집안이 박정희 당대만 영화를 누린 것도 아니었다. 조카사위 한승수는 6공 때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또 한승수와 사돈지간인 김진재는 옛 한나라당 부총재를 지냈으며 아들은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이다. 친정 피붙이들이 대대로 출세한 것이 육영수 탓은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육영수가 청와대의 야당 노릇을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 자신이 외척의 세도도 막았어야 했다. 되레 육영수 자신이 정치에 맘대로 개입한 흔적도 있는데, 은사의 남편을 서울시 교육감에 앉혔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다.
●육영수는 자식 교육에도 극성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팬들이 전하는 일화들을 보면,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늦게라도 오면 교실 밖에서 기다렸다거나 학교 커튼을 직접 빨래해 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 부인으로서 체통을 잃거나 극성 엄마의 면모를 보인 '영부인'에게 해당 교사는 얼마나 피곤했을까.
●권력자 맘에 안들면 자기 당 의원도 잡아다 고문하고, 야당 당수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도 있었으며, 언론의 입마저 봉인됐던 시대에, 국민이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안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정보 통로는 없었다. 가부장 독재 권력의 흉포함을 자애로운 여성의 이미지로 덧칠했던 권력의 일방적인 상징 조작만 가능했던 시대였다. 실체 없어 보이고 부풀린 혐의가 짙은 육영수 신화가 아직 걷히지 않았다는 건 그녀 딸의 집권과 탄핵을 겪고도 박정희 시대가 저물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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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피격당한 육영수는 현장에서 의식을 잃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고, 결국 나흘만에 장례를 치뤘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박정희의 자작극이라는 어이없는 뒷 말까지 있었고, 피격당한 총탄이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 문세광 것이 아니라, 경호실장이 발사한 것이었다는 의혹 역시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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