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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3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 최영준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정신을 돌아보는 날이다.

2025년에 예수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분은 또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오실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찾아온 예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소명이라는 이름으로 적자생존에 앞장서는 교인들, 소수 대형 교회들의 세습, 민주주의를 탄압하려는 계엄에 대한 옹호, 강자를 위한 축복의 기도 등과 같은 시기들을 보내며 우리 사회에서는 언젠가부터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훌륭한 크리스천들, 교회들, 그리고 기독교 비영리기관들이 예수의 정신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사랑의 시간이다. 보편적인 그리고 더 약한 이들에 대한 사랑, 그것이 예수의 마음이 아닐지 감히 생각해본다. 혹시 예수를, 열심히 기도하면 물질과 성공을 주는 미신 정도로 여기고 있지 않은지 돌아 볼 일이다.



원 자료: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35795.html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세상읽기]   2025-12-21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연말이라 모임이 잦다. 요즘 헤어질 때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따듯하고, 아늑하다. 무언가 그립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지게 만드는 말이다. 삶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살짝 덜어내는 그런 인사다.

나는 전형적인 속물이고, 또 시답지 않은 인간이다. 그래도 나름 노력형 크리스천으로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항상 즐겁고 분주했다. 인생의 한참 동안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을 기대로 즐거웠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선물을 받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왔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면 교회에서 밤을 새우며 놀고, 새벽에 지인들 집을 방문하며 캐럴을 불렀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최근 성탄을 맞이하는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 크리스천의 모습 때문이다. 아기 예수는 왕의 모습으로 오지 않고, 가난한 부부의 아이로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축하한 이들 역시 당대 대단한 이들은 없었다. 평범한 목동들이었고, 이방인들이었다.

그는 여성, 아이들, 장애인 등 당시의 약자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었고, 반대로 당대 스스로를 완전하다 여기며, 율법으로 약자를 재단했던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었다. 결국 자신의 위선을 비판당하던 지도자들은 약자와 함께했던 예수를 죽임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려 했다. 하지만 신이 스스로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임을 보여준 그 이야기가 아름다운 소식이 되어 지금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함은 예수의 정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가 말하길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2025년에 예수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분은 또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오실 것이다. 한국 그 어딘가 혹은 팔레스타인 어딘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고, 부담스러워하며, 죄인이라고 하는 이들 사이에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천들은 찾아온 예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혹시 우리 크리스천들은 예수를 열심히 기도하면 물질과 성공을 주는 미신 정도로 여기고 있지 않은지.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세계가 기후위기를 겪으며 종말로 향해 가는 것과 거대한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성소수자에게는 가혹한 채찍을 들고 율법적으로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결국, 그들과 함께 있는 작은 예수들을 또 다른 십자가에 못 박고 있지는 않은지.

소명이라는 이름으로 적자생존에 앞장서는 교인들, 소수 대형 교회들의 세습, 민주주의를 탄압하려는 계엄에 대한 옹호, 강자를 위한 축복의 기도 등과 같은 시기들을 보내며 우리 사회에서는 언젠가부터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기 시작했다.

억울하다. 내 주변에 너무나 많은 훌륭한 크리스천들, 교회들, 그리고 기독교 비영리기관들이 예수의 정신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두웠던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그리고 독재의 시기와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많은 크리스천들은 소금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기를 보내는 지금, 우리는 내리막길 직전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심각하게 신음한다. 부는 계속 축적되지만, 약자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은 계속 늘어난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며 성공을 향한 경주는 더욱 치열해진다. 다만 나의 가족과 자녀가 경주의 탈락자가 되지 않도록 소심한 기도를 할 뿐이다. 누군가는 주말에 배달과 서빙으로 교회에 가는 것도 쉽지 않다. 교회는 이제 주말에 쉴 수 있는 자들의 특권이 되어간다.

그렇기에 크리스천들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재단하기 전에 나의 이기심을 돌아보자. 물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 너무 크기 때문에 누군가 결핍되고, 지구가 망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예수의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보여주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크리스마스는 사랑의 시간이다. 보편적인 그리고 더 약한 이들에 대한 사랑, 그것이 예수의 마음이 아닐지 감히 생각해본다. 속물이 품기엔 한없이 부끄러운 생각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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