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종평위, 연구 발표회 개최
"선교사들, 낯선 개념 설명 위해 일상어·불교 용어 차용"

[뉴스앤조이-안디도 기자] 천당, 지옥, 장로, 은총, 구원… 교회에서 흔히 쓰는 용어들의 기원은 어디일까. 개화기 선교사들이 영문 성경을 번역하며 만들어 낸 조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 유교·불교 문화권에서 쓰이던 단어들이다. '자비'처럼 기존에 널리 알려진 불교 용어뿐 아니라, 흔히 '교회 전용 용어'라고 알려진 용어들 역시 여기에서 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종평위)는 7월 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종교 용어 차별에 관한 연구 발표회'를 열었다. 발제자들은 오픈 사전인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개방형 사전 '우리말샘'과 주요 언론 등에서 종교 차별적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기독교 어휘 형성 과정을 분석했다. 

조계종 종평위 연구 발표회에서 기독교 용어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설명하는 발제가 이뤄졌다. 뉴스앤조이 안디도

'기독교 어휘를 중심으로 본 종교 어휘 차용과 의미 변화'라는 주제로 발제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기량 연구원은 국어사 말뭉치 등 역사 자료를 기반으로 기독교 전문어의 기원을 검토했다. 그는 기독교 유입 당시 선교사들이 낯선 용어들을 설명할 때 기존 문화에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다며 어휘 차용 유형을 일상 어휘, 불교 용어, 유교 또는 권위어 등 세 가지로 정리했다.

기독교 유입 당시
낯선 개념 설명하기 위해
일상어·불교 용어 차용

일상 어휘를 활용한 대표적 사례는 '구원(救援)'이다. 유교서와 의학서, 불교서, 근대 신문 등을 보면 구원은 본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서 구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하지만 현재 구원은 기독교의 고유한 용어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한다는 핵심 교리를 담은 어휘이기 때문이다. 

'은혜(恩惠)' 역시 비슷한 경우다. 일상에서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도움, 혜택, 사랑 등으로 쓰이던 은혜를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는 사랑으로 차용했다. 전 연구원은 이러한 예시를 '관계적 유사성에 따른 어휘 차용'이라고 분석했다. 은혜와 유사한 단어인 '은총(恩寵)'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대부분 임금이 신하에게 베푸는 경우에 쓰였지만 기독교에서 '권위의 유사성'을 차용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타 종교에서 널리 쓰이던 '기도(祈禱)', 신을 당시 문화적 배경에 따라 '하늘'로 번역한 '하나님' 또한 일상 어휘를 차용한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전기량 연구원은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기독교 용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분석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
전기량 연구원은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기독교 용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분석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

불교 용어를 활용한 사례도 많았다. '예배(禮拜)'는 조선 시대 불교서인 <월인석보> 등에서 부처나 불상에 공손히 절하는 행위 등 불교적 수행을 뜻했다. 이후 여러 종교에서 초월적 존재를 향한 경배 행위로 의미가 확장됐고 기독교는 종교적 공간에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집단 의례로 차용했다. 전 연구원은 본래 불교계에서 예배와 더불어 예불(禮佛)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해 왔지만, 기독교계가 예배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불교계에는 예불만이 전문 용어로 남게 됐다고 했다. 예불은 예를 다하는 대상이 부처로 한정된다. 

'장로(長老)' 역시 <월인석보>에 처음 등장하는 어휘다. 전 연구원은 장로는 원래 배움이 크고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승려를 가리켰지만 지금은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최고 직급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천당(天堂)'이나 '지옥(地獄)', '마귀(魔鬼)'도 대표적인 불교 용어다. 전 연구원은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설명하는 편이 낯선 개념을 말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았을 것"이라며 "천당, 지옥, 마귀 등은 '개념적 유사성'에 따른 차용"이라고 말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러한 용어들은 선교사들이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면서 일상어와 문화적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전기량 연구원은 이것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 어휘가 형성되는 과정은 종교 서적을 단순하게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언어 체계와 문화적 배경에 의해 재해석되고 의미가 확장되며, 어휘를 빼앗긴 종교는 다른 어휘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예배'를 내준 불교가 '예불'을 자신들의 용어로 굳힌 것처럼, 종교 언어는 지금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연구회에서는 종교 용어 차별 사례가 발표되기도 했다. 발제를 들은 불교계 인사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안디도
이날 연구회에서는 종교 용어 차별 사례가 발표되기도 했다. 발제를 들은 불교계 인사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안디도

한편 불교계에서는 이러한 용어 사용이 종교 편향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본래 불교·유교 문화권에서 사용되던 단어가 기독교계로 넘어갔지만, 이 단어들은 개신교계를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데 치중돼 있다는 것이다.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김지오 교수는 우리말샘 사전에서 신도, 예배, 기도 등 중립적 단어가 대부분 기독교적 맥락 예문에 사용되고 있고, 불교 용어는 기독교 언어에 비해 부정적으로 풀이되고 있다고 했다. '지옥'처럼 단어의 의미가 기독교와 불교 용어를 함께 설명해 놓은 표제어들은 항상 기독교 뜻이 먼저 노출되고, 그 다음이 불교라고 했다. 이는 가나다순 배열 때문으로 보이지만, 불교 유래 단어인데도 기독교 뜻이 먼저 노출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발제를 들은 종평위 위원장 향문 스님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넘는 발표였다"면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종평위 관계자들은 이러한 기술 방식이 세밀한 차별을 조장한다면서 국립국어원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초중고 교과서 종교 용어를 분석하는 등의 대응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안디도 titus12@newsnjo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