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미결이야 그렇다치고, 5시 넘어 쏟아지는 회사 카톡 문자, 초과근무가 당연한 직장들, 조찬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대통령 역시 예외가 되지 못합니다. 언제가 되야 우리는 여유있는 일상에서 살 수 있을까요. 관혼상제 대부분을 외주 주는 지금이니 밤늦은 청첩과 부고는 삼가면 됩니다. 종일 마주했던 직원들은 5시 이후에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아울러 사적으로 줄일 수 있는 미결을 덜어나가면 번 아웃 없는 세상이 다가오지않을까요. 다같이 미결 하나씩 줄여주기에 나서면, 꽃마중 봄나들이가 조금은 여유로워지지 않을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 모두가 복을 많이 받게 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우선 가족 간에 나누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고, 못뵈었던 친척 어른들, 형님 동생 조카들, 친구들도 만나 웃고 즐기며, 가보고 싶던 여행도 떠나게 되겠지요. 이렇게 사는 데 필요한 비용이야 봉급과 연금, 그리고 제반 수익을 절약하여 쓰면 될 터입니다.
그러고보니, 복받는 기초는, 제대로된 일자리와 업무 후 여유시간, 그리고 생활을 지탱할 적절한 수입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것이 왜 불가능할까요? 이런 소박한 복이 올 해 세상 모두에게 찾아오면 안될까요?
“... 문명의 본질은 여가시간에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야만이, 이 여가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바꾼 것(잉여가치)이다.
(자본론)
... 피로사회, 경제적 절망, 양극화는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노동시간이 길수록 경제적 절망도 깊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연간 노동시간 1790시간 대 독일의 1371시간은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의 절망이,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에서는 보이지 않는 까닭을 확연히 알려준다.
(강신준, 문명과 야망)”
참고로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2071시간으로 독일의 두배를 넘보는 지경이다. 게다가 평균의 의미가 시사하듯 이런 평균을 넘어서 일주일 내내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직장이 적지 않을 것을 예상하면, 가히 살인적인 노동왕국이다. 고급직장이란 병원조차도 양심적인 의사에게는 예외가 될 수 없었듯이.
추가 참고 자료: http://slownews.kr/60820
몸이 부서져라 ‘응급진료’…세상을 돌본 의사
윤한덕 등록 :2019-02-07
평생 응급의학 외길 삶 살아온 의사
“윤한덕 없이는 일이 돌아가지 않았다”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1993년 25살 윤한덕은 전남대 응급의학과를 졸업했다. 응급의학과가 막 생길 때였다. 때마침이라고 해야 할까.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붕괴했다. 1994년 성수대교가
내려앉았고,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고가 났다.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 현장이
폭발했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응급실을 지키던 레지던트 윤한덕은 절망했다. ‘평생의 동료’인 허탁(현 전남대 응급의학실 교수)과 함께 술만 마시면 “어떻게 응급실에서 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느냐”, “응급의료체계가 한군데 모여 있다면 전부 불 지르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등 격한 말이 오갔다고 한다.
20대의 열정은 줄곧 윤한덕을 사로잡았다. 윤한덕은 평소 “응급실에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를 다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로 실려 오는 중환자들은 경험 많은 교수들이 진료해야 한다는 소신이었다. “왜 교수들이 외래에서 차분히 앉아 별로 중하지도 않은 환자를 보고 있냐”고 했다. 윤한덕이 평생을 바친 응급진료 시스템 구축은 이 말로 압축된다.
그는 늘
한자리에서 일했다. <한겨레>가 연락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윤한덕 없이는 일이 돌아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와 병원 경영진, 의사와 환자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곳에서 중심을 잡아야 했다. 보건복지부 관료들은 1~2년 단위로 바뀌었지만, 윤한덕은 상수였다. 응급의료 관련 지식에서 윤한덕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없었다. 한 명의 열정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과도한 책임을 윤한덕의 어깨에 지웠다. 윤한덕은 밤샘 노동으로 버텼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은 지난해 10월 펴낸 <골든아워>에서 이런 윤한덕을 두고 “자신의 일이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 외상 의료 체계에 대해서도 설립 초기부터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내가 본 윤한덕은 수많은 장애 요소에도 평정심을 잘 유지하여 나아갔고,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고 적었다.
이국종은 윤
센터장을 ‘냉소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인물’로 기억했다. 2008년 겨울 그를 찾아갔을 때
“지금 이국종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에 아주대병원에 중증외상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국종은 “그가 던진 질문은 ‘환자는 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정책 사업이라도 하나 뜯어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였다. 그는 내내 냉소적이었으며 나를 조목조목 비꼬았다. 그럼에도 나는 신기하게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런 윤한덕도 지쳤던
것일까. 최근까지 여러 차례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일을 그만두겠다는 게 아니었다. 센터장으로서 보는 시각이 정형화된 것 같아서 평직원으로 응급의료를 보고, 변화를 설계해보고 싶다는 뜻이었다.”(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 “후임자를 찾을 수 없어 계속 일을 맡았고, 사무실 책상에는 위장약만 잔뜩 쌓여 있었다.”(유인술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2009년 가을, 이국종·윤한덕 두 사람은 전남대 의대에서 열린 외상센터 관련 심포지엄에서 다시 만났다고 한다. 윤한덕은 발표를 끝내고 강당을 빠져나갔고, 이국종은 그를 쫓아갔다. 윤한덕이 찾아간 곳은 모교인 전남대 의대 강의실. 오래된 책상을 손으로 쓸던 윤한덕이 웃으며 홀로 말했다. “내가 말이야, 여기서 공부했었어. 이 답답한 강의실을 벗어나 졸업만 하면 의사로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 요즘 애들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며 수업을 들으려나?”
‘꼼꼼한 완벽주의자’ 윤한덕(51)은 그렇게 세상을 돌보다 자신을 미처 돌보지 못했다. 설에 고향집에도 못 갔고, 지난 4일 자신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홀로 떠났다.
이정규 황예랑 박현정 기자 JK@hani.co.kr
빠빠라기와
시간 도둑 / 등록 :2019-01-23 이종규 디지털영상부문장
그들은 늘 시간이 없다고 울상을 짓는다. 시계에서 종이 울릴 때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고 탄식한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때면 그들은 속으로 소리친다. ‘이렇게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내게는 시간이 없지 않은가.’ 그러다 가까스로 여가를 얻게 되었을 때는 이미 일을 하느라 지쳐 더 이상 즐길 여력이
없다.
100여년 전 남태평양 작은 섬의 추장 투이아비의 눈에 비친 유럽 사람들의 모습이다. 투이아비가 유럽 사회를 둘러보고 돌아와 섬 주민들에게 전한 이야기를 묶은 책 <빠빠라기>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빠빠라기’는 섬 주민들이 유럽인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네 삶은 ‘빠빠라기의 시대’보다 나아졌을까? 불행히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늘 시간에 쫓기는 빠빠라기는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바쁘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넘친다. ‘타임 푸어’(시간 빈곤층)라는 조어가 널리 쓰인 지 오래다. 실제 지난해 한 취업정보 업체의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76%가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다른 업체의 조사에선 응답자의 71%가 자신을 ‘타임 푸어’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의 73%가 직무소진(자기개발 및 휴식 기회가 부족해 업무 효율성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경험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용노동부 ‘2014년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대한 인식조사 보고서’)
지난 100년간 나날이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시간을 절약해주는 기술이 쏟아졌는데, 사람들은 왜 여전히 시간 부족에 허덕일까? 누군가 우리의 시간을 훔쳐 가는 건
아닐까?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 나오는 ‘시간 도둑’처럼 말이다. <모모>에서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저축은행에 맡기라고 꼬드긴다. ‘쓸데없는 일’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어머니와 이야기 나누기, 사랑하는 연인에게 매일 꽃 한송이 갖다주기, 일주일에 한번 지역 합창단 나가기, 매일 밤 15분간 창가에 앉아 하루 되돌아보기…. 하나같이 당장의 ‘경제적 이득’은 없지만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일들이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회색 신사들의 꾐에 넘어가 악착같이 시간을 아끼지만 그들이 절약한 시간은 흔적없이
사라져갔다.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하루는 점점 짧아졌고, 사람들은 더욱 이를 악물고 시간을 아껴 썼다.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만이 중요해졌다.
‘시간 도둑’의 정체는 뭘까? 물론 저자가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효율과 경쟁만을 좇는 경제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모>는 ‘더 빨리, 더 많이’라는 주술에 걸려 ‘시간 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공장과 사무실에 붙어 있는 팻말(‘시간은 돈과 같다’)이나 길거리의 포스터(‘더욱 보람찬 인생을 사는 법-시간을 절약하라!’)는 1990년대를 풍미한 ‘시테크’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시테크의 본질은 ‘자본의 노동시간 통제’가 아닐까? 시간 도둑과 맞서 싸우려면 일하는 사람들이 시간 사용의 주체성을 갖는 ‘시간 주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더 나아가 ‘저녁이 있는 삶’ ‘칼퇴근법’ ‘돌발노동방지법’ 같은 선거 구호들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수십년간 ‘시기상조론’를 무한 반복해온 낡은 레코드판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놓자. jkle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9571.html#csidx12f20364614c25eb40874b157adbba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