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꽃은 필 거고, 날은 따뜻해질 거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가운데에서도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용기는 어디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을 테니까요. 대개의 사람들이 들떠 서로를 바라보며 즐거울거로 생각하지만, 한쪽에 풀죽어 있을 적지 않은 사람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의와 원칙, 풀뿌리 민주주의의 승리가 가져온 사필귀정의 길에 함께 하지 못했던 이들도 마음을 다잡고 다같이 포근한 봄날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의견과 환경이 서로에게 적대가 되지 않고 작은 아쉬움과 다양성의 희망으로 모아지기를 기원합니다.
악이 물러가고 악당들 가려낸 자리에 선 우리 모두는 자랑스런 민주시민입니다.
오늘, 다음 주, 내달... 그리고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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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은..
당신을 물었던 뱀이
두번 다시 해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 피로 싸워 얻은
이 귀한 민주주의가
또 위협받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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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 ‘절망’은 난해한 텍스트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첫 줄에서부터 독자는 난감해진다. 너무나 자명한 듯하지만, 그 태연자약한 자명함이 오히려 읽는 이에게 당혹과 혼돈을 안겨주는 탓이다.
대체 ‘풍경’이란 시각 이미지와 ‘곰팡’ 같은 하등 균류에게서 어떻게 고도의 정신작용인 ‘반성’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수사학적 개연성에선 차라리 ‘윤석열이 윤석열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이 시절과 세태에 더 들어맞아 보인다.
윤석열이 가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석열과 내란 세력이 봉인을 풀어버린 ‘파시즘’의 기운 때문이다. 파면 뒤 이어질 형사재판에서 윤석열이 내란 우두머리 죄의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아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번 풀려난 극우 파쇼라는 ‘악의 기운’은 사회 곳곳을 배회하며 증오와 절멸의 언어로 공화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악이 창궐하는 데는 열정적 추종자도 환호하는 구경꾼도 필요 없다. 방관과 무관심이면 된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건 12·3 내란 국면에 군과 정부기관 안팎에서 목격한 소수의 용기 있는 행동 덕분이다. 최근 보도된, 내란 당일 국회 진입 명령을 거부하다 작전에서 배제된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 하급 간부의 사례는 우리의 관료사회가 ‘제2의 내란’이나 ‘극우화’의 공격을 이겨낼 면역체계(반성적 사유 능력)도 함께 갖췄음을 보여준다. 계엄 당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사령관 지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재고를 요청하고 후속 부대에는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고 지시한 수방사 제1경비단장의 경우는 또 어떤가.
그러니 악은 전능하지 않다. 지레 포기하고 절망의 늪에 빠져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에 저항하고 공화국을 지켜낼 수 있다.
앞에 인용한 ‘절망’의 후반부에서 김수영 시인이 말하고자 했던 바도 그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44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