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죽고, 시인은 살게 하라" 수정 2024-10-24
지난 14일 일부 보수 단체들이 서울 중구 주한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스웨덴 한림원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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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백범 김구가 있다면 세네갈에는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1906~2001)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생전 헌신적으로 조국을 위해 일했고, 사후 많은 이들이 존경심으로 기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상고르는 정치 지도자로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게 시인이자 지식인으로서 명성도 높다. 프랑스 국립학술원 회원이었고, 서구 주류 문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도 1970년대 그의 시선집 ‘검은 영혼의 춤’(민음사)을 발간했다.
그는 흑인 문화의 정체성, 그 가치와 철학을 특화해 ‘네그리튀드’라는 흑인 문화 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해 주류 사회에 편입했지만 사회주의자였고, 사회주의자였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 전통적 방식을 배격하고 서방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고,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일찍이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천했다.
그는 시를 통해 ‘정치인은 죽게 하고, 시인은 살게 하라’고 일갈했다. 독립한 세네갈의 초대 민주 대통령이 됐고, 다양성의 가치로 개별 국가들이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질서를 만들고자 분투했다. 그럼에도 국가와 공동체의 힘은 정치가 아닌, 결국 문화에서 나옴을 역설한 셈이다.
노벨 문학상 발표 뒤 한국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아프리카 먼 나라의 수십년 전 정치인이자 시인인 상고르의 간절한 바람이 몸으로 체감된다.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은 개인 한강의 놀라움과 기쁨이다. 또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한국문학,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가 누려야 할 영광이자 위로다.
그늘과 상처, 결핍을 자양분으로 삼고 자라는 것이 문학이다. 우리의 슬프고 굴곡진 현대사는 역설적으로 문학의 토양을 넓고 비옥하게 만들었다. 1980년 5월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숨진 고등학생의 짧은 삶이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로 되살아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의 역사 속 형제와 친구는 서로 고통을 떠안기는 상황에 내몰려야 했으며, 국가의 폭력은 무고한 개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안겼다. 해방 전후 제주와 여수, 대구가 그랬으며 민주화 과정 서울, 마산, 부산 등 한반도 곳곳이 그랬다. 수십년이 흘렀건만 살아남은 이들은 병든 짐승마냥 피울음을 삼키며 깊은 상처를 핥고 불면과 고통의 나날을 지내야 했다. 그 숱한 개인들의 핍진한 사연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시와 소설의 몸을 빌려 그 하나하나의 서사가 고통스럽게 꽃피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큼이나 많은 ‘한강’들이 배출될 수밖에 없는 역사를 살아온 셈이다. 노벨 문학상은 단언컨대 우리 질곡의 역사에, 우리 공동체에 건네진 소중한 위로다.
그럼에도 현실 정치의 자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각자가 갖고 있는 좁고 비뚤어진 가치와 역사관으로 작가 한강을 재단하고, 문학을 난도질하는 모습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정치가 문화예술인을 무더기로 블랙리스트로 분류하고 예술과 예술인의 삶을 고사시키려 했던 야만적 정치 행태에 사법적 단죄가 내려진 지 몇년 지나지도 않았다. 성찰도 교훈도 없었다.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존중은커녕 진영 대결에 기반한 역사 왜곡과 일방성만 판을 치는 행태가 더 극심해지고 있다. 세계는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섰다’는 평가로 한강의 문학적 성취를 높이 치하했건만 한국 사회 한쪽에서는 ‘역사를 왜곡했다’는 둥, 상을 취소하라며 헐뜯기 바쁘다. 그들에게 동원된 논리의 배경에는 고스란히 정치가 있었다. 타협과 양보, 배려와 존중 등 정치의 순기능이 아닌, 대립과 갈등을 부채질하는 역기능으로서 정치였다.
다시 세네갈의 상고르와 한국의 백범.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활동했지만 둘의 삶은 묘하게 닮았다.
‘내가 원하는 자유는 공원의 꽃을 꺾을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을 자유’라고 말한 백범은 민주공화국에서 자유의 본질적 가치를 역설했다.
상고르 역시 자유로움 속 다양한 가치와 문화의 존중을 통한 흑백, 강대국과 약소국의 공존을 간절히 원했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던 백범이 노벨 문학상 소식을 듣는다면 지하에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으리라. 그러다가 21세기 문화 강국이라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백주 대낮에 자신이 암살된 해방 직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 앞에 입을 닫아버릴지 모를 일이다.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속에서 비로소 시인도, 예술도, 정치도 살 수 있다.
박록삼 | 언론인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642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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