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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0

암살자(들), 왜 이렇게까지 묻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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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무리들이 좌파 영화라는 데 그렇다치고, 이만한 영화가 소위 우파 영화로도 나서기를 바란다.
'국제시장'인가 빼놓고는 거의 기억에 남는 영화가 없는 우파들이라면, 왜 영화판이 이 지경인지 각성들 하시고. 더 멋지고 그럴사한 그래서 안 볼 수 없는 영화에 매진하기 바란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몹시도 수상하고, 역사의 뒤틀림 앞에 억울하게 당한 사람 수도 없으니 굴곡진 역사 앞에서 이런 진혼곡이라도 보내지 못하면 그건 나라가 아니란 것 새겨두자.. 새는 좌우 날개로 난나던 선지자의 일갈처럼 이제서야 나라가 나라다워지는 중이다.
이게 좌파 영화라면, 소위 우파 영화를 제대로 만들길, 걸 기대한다. 우리 이제 여유 좀 찾아보자. 바야흐로 K-문화 시대라지 않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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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들), 왜 이렇게까지 묻으려 하는가?

영화 《암살자(들)》을 두고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묻고 싶다.
도대체 영화가 무엇을 왜곡했다는 것인가?
이 영화는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대통령의 바로 곁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수사 당국은 문세광의 범행으로 결론 내렸고, 문세광은 1974년 12월 17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그리고 불과 3일 뒤인 12월 20일, 사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영화는 “진범은 누구다”라고 결론 내리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당시 사건을 따라가며 기록과 증언 속에 남아 있는 여러 의문을 추적한다.
총성은 몇 발이었는가.
발사된 총탄은 몇 발이었는가.
그리고 그 총탄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당시 문세광이 사용한 권총은 5연발 리볼버였다.
그런데 사건 당시 현장에서 들린 총성은 6발이었다.
발견된 탄두의 숫자와 발사 경로를 둘러싸고도 여러 의문이 남았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육영수 여사와 18세 합창단원 장봉화 양,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다면 6발의 총성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영화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해 당시 사건 기록과 증언을 하나씩 따라간다.
특히 초동수사 과정에서 현장이 어떻게 보존되고 조사됐는가를 들여다본다.
사건 직후 수사당국은 문세광을 범인으로 특정했고, 정식 현장검증은 다음 날 이뤄졌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감식계장 이건우는 훗날 현장검증에 앞서 청와대 경호실에서 탄두를 수거해 갔다고 증언했다.
즉, 공식 수사 결과와 이후 수사 관계자의 증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의문이 영화가 따라가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영화는 사건 하나만 들여다보지 않는다.
박정희 정권의 한일수교 이후 한국 사회의 상황을 짚고, 이어 김대중 납치사건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당시의 국제정세와 정치적 상황 속에서 다룬다.
특히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사회 각계의 반발과 반유신 움직임이 커지고 정권의 정치적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당시 정권이 국민적 관심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라는 의문을 영화는 사건의 배경으로 던진다.
경제개발 과정에서는 한일수교를 통해 들어온 자금이 일본 기업의 공사 참여를 통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일본 기업에 국내 공사를 맡기면서 일본의 실제 가격보다 약 2배 비싼 가격으로 계약하고, 그 자금이 다시 일본으로 흘러가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처럼 영화는 1970년대 한국의 정치·경제·외교적 상황을 하나의 시대적 배경으로 엮어 사건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암살자(들)》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인물과 상황을 재구성하고 여러 의문을 서사적으로 엮은 극영화다.
물론 역사적 사건을 다룬 만큼 사실관계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사건의 기본적인 사실관계와 기록까지 영화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까지는 확인할 수 있는 팩트다.]
영화적 재구성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하지 않은 채, 영화가 제기한 의문 자체를 역사왜곡으로 규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런데 지금 반복해서 나오는 주장은 이렇다.
“그러니까 영화는 육영수 여사를 박정희가 죽였다는 거냐?”
영화는 그렇게 결론 내리지 않는다.
영화는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능성과 의문을 관객 앞에 던진다.
누가 이 사건으로 이익을 얻었는가.
무엇이 감춰졌는가.
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는가.
그리고 그 판단을 관객에게 남긴다.
그렇다면 질문은 오히려 이것이어야 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역사왜곡인가?
영화가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장면의 어느 사실이 실제 기록과 다른지 반박하면 된다.
영화가 하지 않은 말을 영화의 결론처럼 만들어 공격하는 것과, 영화의 사실관계를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역사적 해석을 비판할 수도 있다.
영화적 상상력이 과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관객과 시민의 자유다.
하지만 비판과 상영중단 요구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암살자(들)》이 정말 왜곡된 영화라면 상영을 막을 것이 아니라,
영화가 제기한 각각의 의문에 기록과 자료로 답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하면 된다.
역사는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판단은
정치인도, 재단도, 누구도 대신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 각자의 몫이어야 한다.
나머지는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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