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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홍범도 장군이 눈을 감지 못하는 이유 - 국립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 63인.

 홍범도 장군이 잠드신 현충원 묘 앞에서 큰 절을 못 드려 송구해 하는 사람의 이야기. 여전한 친일파의 잔재를 지우기 전까지는 장군께서 눈을 감고 쉬지 못하실 것이기에 그 사연이 더욱 안타깝다. 반민족주의자 친일파 백선엽의 매국 행각을 덮고자 회칠을 해대는 해괴한 무리들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필귀정, 역사가 진보한다는 신념을 부여잡고 힘겹게 오욕을 견디고 계실 독립운동가 선현들이 눈에 어린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진정으로 헌신한 영웅들의 역사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결의를 더욱 다져야 할 때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홍범도 관련: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mpt_cd=LTR_TOP&CNTN_CD=A0002940432

백선엽 관련: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mpt_cd=LTR_TOP&CNTN_CD=A0002942923

 
국방부와 보훈처는 20193월 이후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장성 12명의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사람 총 12명이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 등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정부 차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해당 인사들을 규정했고, 관련 정보는 공개되어 있는 상태다.

이들 12(이응준, 백홍석, 신태영, 신응균, 이종찬, 신현준, 김석범, 김백일, 송석하, 김홍준, 백낙준, 백선엽)은 모두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부역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회의원, 장관, 군 장성 등 핵심 요직을 거친 인사들이기도 하다.

-이응준(일본군 대좌)은 광복 후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과 체신부 장관.

-백홍석(일본군 중좌)은 광복 후 육군 소장.

-신태영(일본군 중좌)은 광복 후 국방부 장관.

-신응균(일본군 소좌)은 광복 후 국방부 차관과 초대 국방과학연구소장.

-이종찬(일본군 소좌)은 국방부 장관에 이어 국회의원(9, 10).

-신현준(만주군 상위)은 광복 후 초대 해병대사령관, 국방부 차관보.

-김석범(만주군 상위)은 광복 후 제2대 해병대사령관.

-김백일(만주군 상위)은 육군 소장.

-송석하(만주군 상위)는 광복 후 육군 소장에 이어 한국국방연구원장을 했다.

-김홍준(만주군 중위)은 김백일의 동기로서, 광복 후 미군정이 창설한 국방경비대(대한민국 국군의 전신) 4연대 창설 중대장 및 총사령부 보급과장,

-백낙준은 일제 강점기 애국기헌납기성회 부회장. 광복 후 초대 연세대 총장, 문교부 장관.

-백선엽(만주군 중위)은 광복 후 첫 육군 대장. 중국, 프랑스, 및 캐나다 대사, 교통부 장관.

친일행적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12인 관련:

http://hddy.or.kr/bbs/board.php?bo_table=bodo&wr_id=2079

일제 강점기 한국인으로서 일본군과 만주군에 복무한 인사 다수는 독립군 토벌 등을 임무로 한 간도특설대 등에서 근무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만주군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만주군 중위였다. (아래 표의 연번 27번 참조)

친일행적이 확실하나‘적극적이고 악질적으로 우리 민족을 괴롭힌 현저한 증거가 없다’는 애매한 일부 반론으로 공식 기록이 미뤄지고 있는 63인 관련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0964.html

..

홍범도 독립군 장군, 그리고 백선엽 일본군 중위.

백선엽 관련 자료는 왜곡, 와전된 것이 많아 부기합니다.

백선엽을 거쳐,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못된 정치 군인들의 역사.

 

1. 백선엽이 간도특설대에 근무는 했으되 악역은 안했다는 변명.

2. 한국전쟁 영웅설 625 개전 첫날 칵테일 파티 참석으로 부대를 지휘도 못하고 쫓겨 단독으로 도피하다시피 한강을 넘었고, 한강교가 폭파 되자 한강 이북에 있던 국군 전부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실질적으로 전멸한 일.

3. 8군 소속으로 워커 준장의 휘하에 있으면서 8개 부대의 한 축으로 명령을 따랐을 뿐인 데, 본인 혼자 다부동 전투 전체를 이끈 것같은 과장.

4. 다부동 전투에서 하도 많은 장교들이 죽고 자신만 살아 남아, 소위 본인이 주장하는 '시체를 넘어 운운' 하는 대단한 발언의 진위를, 본인 말고는 증명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5. 골수 남로당으로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적이던 박정희. 백선엽 자신과 같은 일본군 출신이, 박정희의 먼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살려주자고 청원한 것이 백선엽. 그 결과 박정희가 주도한 516 숙군 앞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군인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유가 되었고, 이 때부터가 그의 출세 가도의 시작이었다는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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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군 사정: 516후 박정희가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사형도 불사하며 군을 대규모로 숙청할 때, 해외 대사 등의 보직을 주며, 박정희가 나름대로 생명의 은인으로서 대접한 후 살아남아..박정희의 18년 독재동안 승승장구, 재산을 챙겨.. 저 유명한 선인 학원 인천대학 사학 부패의 핵심이 되었다. 정말로 끈질기게 살아남은 능력. 그동안 삼성 이병철을 비롯한 대다수 재벌들이 감옥에 갔지만.. 그 질긴 박정희의 의리 덕에 최악의 사학비리에도 건재한 뚝심은 빨갱이 박정희를 살려준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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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516후 국군 역사 편찬을 주도하는 자리에 십년이상 앉아 백선엽 자신 입맛대로 한국전쟁을 각색하여 결국 자신을 최고의 영웅으로 미화한 죄. 역시 구린 것이 많았던 박정희는 저 역시 동시에 미화되는 이 소설쓰기 작업을 묵과한 공동정범.

백선엽을 등에 업은 동생 백인엽,  형 덕에 얻어 달은 장군 별을 달고, 잔혹과 갑질의 대명사로 죄상이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형 백선엽이 박정희에게 청원하여 아무런 벌도 받지 않게 만든 국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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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거짓말이 사단이 나는데.. 이명박이 나서서 원수로 추대하자는 주장을 하자, 백선엽의 동기 세대의 군인 대다수가 나서서 말도 안되는 짓. 즉 그처럼 과거가 배은망덕과 유치찬란한 공적 거짓말장이 백선엽에게 한국 최초의 원수 칭호를 줄 수는 없다는 불만과 더이상 거짓을 참을 수 없다는 군내의 불만이 고조되었고... 원수 추대는 없던 일이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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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것은 박정희 시절 자체의 대한민국 군대의 좌표 문제..

516 쿠데타의 선의를 인정하고, 주역을 자칭했던 장도영은, 웬걸 박정희의 쿠데타가 마무리되자 반란의 수괴로 몰려, 군복을 벗었다. 명색 참모총장을 별 두개의 일본군 중위 출신 박정희가 반역죄로 몰아가는 이런 명분이 사라진 살벌한 반역 쿠데타에 동조할 수 없었던 참 군인 다수는 공포 속에서 입을 닫고 그렇게 18년이 지나갔던 것.
물론 일부 장성들이 나름대로 군인의 참 본분과 박정희의 위선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쿠데타 후유증을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런 난장판 속에서 백선엽이 뜬금없이 영웅으로 등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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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군인들이 경멸하던 백선엽이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뒤안길에서 진짜 군인들은 자진해서 퇴역하거나..아니면 한직을 돌며 한국의 장래를 걱정했던 시절이 박정희 18..
박정희는 말로는 '나의 조국'을 불러댔지만, 청와대 안에서 틈만 나면 일본군 군복을 입고 일본도를 찬채 거닐던 골수 일본군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

결국 그는 1주에 몇번씩 아름아름 소개 받은 여대생과 - TV를 보다 점 찍은 - 여배우를 술자리에 불러다 놓고 소싯적에 부르던 일본군가를 애창하며, 이 나라의 장래를 비웃었던 것.

그러다가 박정희가 측근의 총알밥이 되어 사라지자, 박정희 곁에서 보고 배운 것이 쿠데타였던 전두환 노태우는 그 선배를 따라 막장을 시연한 것. (516 쿠데타 때 육군 참모총장을 구속한 것이 노태우였다는 것이 KBS 그날에서 제시된 사진으로 증명된 바 있다. 12.26 반란의 수괴 전두환 역시 상관인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잡아넣고 고문하여 옷을 벗긴 것은 어쩌면 선배에게서 보고 배운 악행이 이들에게는 대를 물려 체화되었던 듯하다.) 

 박정희의 쿠데다 직후, 그가 은밀히 부추긴 육사생들의 쿠테타 지지 시위. 육군사관학교 교장의 제지로 무산될 상황에 처하자, 이런 내용을 박정희에게 귀띔하여 육사 교장을 무릎 꿇게 하고 쿠데타 지지시위는 진행되었고, 그 공로로 승진가도를 달리게 된 전두환. 이 때부터 1대 백선엽, 2대 박정희를 잇는 제 3대 패역 정치군인 전두환이 성장하게 된 셈.

백선엽,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이런 썩은 군인들을 기억하고 제 자리를 찾아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시 쿠데타의 불안에 떨고, 입으로는 군율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반역을 꿈꾸며, 앞에서는 국방을 외치면서 뒤로는 탱크 연료를 팔아먹고, 불량 방탄복을 지급하고, 장병들 급식 횡령으로 부자가 되는 장군들을 칭송하는 세상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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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웅 백선엽은 없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42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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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은 조작된 영웅참전군인이 말한다

http://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954303.html?_fr=s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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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부대가 우리 가족 학살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9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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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와 백선엽에 의해 좌절된 선인학원 국ㆍ공립화

http://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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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참군인 청빈한 삶?강남역 수천억대 건물 아들명의 소유

http://www.hani.co.kr/arti/area/capital/9538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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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정치군인 백선엽을 압도하는 동생 백인엽: 정치군인을 넘어 부패의 본좌

https://namu.wiki/w/%EB%B0%B1%EC%9D%B8%EC%97%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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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지옥의 죄인 백선엽.
명색 전쟁 영웅이라건만,
온 몸을 감싸던 민족의 피비린내는 어찌하려오.

그대 생애를 관통하던 만행은, 치를 떨 매국 반민족 악행이었기에,
졸지에 꿰어찬 국군 총사령 이름으로도 감춰질리는 없을 터.

수 없이 저지른 과오와 비리를 덮고 미화했지만,
대못을 뽑아도 구멍을 없앨 수 없듯
역사의 원죄는 영원하리니.
부디 저승에서나마 잔혹과 거짓말로 지은 죄를 되새기며,

그대 피묻은 손과 사이비 애국심에 비명횡사한 억울한 고혼들 앞에 엎드려
업보가 다할 때까지 빌고 참회하여,
대죄가 닦이거든 승천하시라.

그것만이 정치군인의 참회와 마지막 충성의 길임을 부디 깨달아
구천 어느 막장 구덩이에서나마 한줄기 빛과 마주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