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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3

2016 11월 12일 "열어라 열어라" 가지 못한 시민들, 경복궁역은 아직 뜨겁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2260058&dable=10.1.4

16.11.12 14:48l최종 업데이트 16.11.13 05:04l
 
[특별취재팀]
취재 : 오연호, 최경준, 장윤선, 김경년, 이민선, 김은혜, 안홍기, 선대식, 소중한, 곽우신, 유지영
사진 : 권우성, 남소연, 유성호, 이정민
편집 : 김지현, 최은경, 장지혜
SNS : 유창재
방송팀 : 김윤상, 박정호, 황지희박소영, 윤수현, 홍성민, 조민웅

[최종신 보강 : 13일 오전 247]
축제의 장으로 변한 경복궁역 대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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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00pixel, 세로 677pixel'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민중총궐기와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2일 오후부터 시작해 자정을 넘겨 청와대 부근 경복궁역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한 시민이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풍자한 잡지표지 사진을 들고 있다.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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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새벽, 경복궁역 인근 차벽 앞 사람들이 자리에 앉고 있다.선대식
13일 오전 220분 현재 청와대에서 1km 떨어진 경복궁역(내자동 사거리)에서는 경찰과 시민의 대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앞서 수천 명의 시민들은 경찰 차벽을 두드리며 '일곱시간', '근혜구속'이라 적힌 팻말을 들고 "박근혜는 퇴진하라", "(차벽을) 열어라", "비켜라" 등의 구호를 끊임없이 외쳤다. 하지만 차벽은 꿈쩍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차벽 앞에서 "대통령의 7시간을 밝혀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차벽을 넘으려고 했지만, 경찰이 막아섰다. 이후 차벽 앞 시민들은 바닥에 앉아 집회를 이어갔고, 한쪽에서는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새벽까지 이어진 집회에 피곤해하는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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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민중총궐기와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2일 오후부터 시작해 자정을 넘겨 청와대 부근 경복궁역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곳에 노동당 트럭을 탄 아티스트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등장해 시민들과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고 있다.권우성
하지만 차벽 앞에 노동당 유세 차량을 탄 음악인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나타나자, 차벽 앞은 난장 분위기로 바뀌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흥겨운 클럽 음악에 맞춰 "하야", "하야"를 외치자, 시민들도 몸을 흔들며 "하야", "하야"를 따라 외쳤다.

오전 240분께 경찰은 경복궁역 인근의 시민들을 인도 쪽으로 밀치는 해산 작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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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자정을 넘긴 시각, 경복궁역 6번출구 앞. 농민단체가 만들어온 박근혜 퇴진 상여 앞에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 놓았다.최경준
한편, 이날 촛불집회는 1987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인 100만 명(주최 쪽 추산)이 참여했지만, 경찰과 시민이 대치한 경복궁역을 제외하면 평화롭게 진행됐다. 경복궁역 대치 현장에서도 시민들은 차벽으로 오르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와", "비폭력"을 외치기도 했다.

또한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집회가 끝난 후 직접 쓰레기를 치우거나 한쪽에 모아뒀다. 집회 참가자들이 떠난 광화문광장, 세종대로, 서울광장 등은 비교적 깨끗한 모습이었다.

[9: 12일 오후 1136]
경복궁역 앞 시민-경찰 긴장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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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청와대 행진이 저지되자, 경찰 차벽을 두드리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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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청와대 행진이 막히자,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경찰차벽에 오르고 있다.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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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고 있다.유성호
오후 1110분을 넘어서면서 경복궁역 앞 경찰 저지선 일부가 무너지고 시민들 다수가 차벽을 넘어섰다.

차벽 앞 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은 경찰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경찰은 차벽 뒤로 밀려났다. 일부 시민들이 차단벽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경찰도 병력을 차벽 위로 보강해 대응하고 있다.

차벽 밖에 있는 경찰버스 위로는 시민들이 올라간 지 오래다. 차벽 위에 올라간 시민들은 대형 태극기를 흔들었고 시민들은 차벽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시민들은 애국가를 제창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이곳 저곳에서 경찰 저지선을 돌파할 것이냐, 돌파하지 않고 평화시위를 벌일 것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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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경복궁역 인근에서 자신을 박사모라고 밝힌 한 여성이 차벽 옆 난간에 올라가 "박근혜 대통령이 뭘 잘 못했냐, 싸우지 말라"고 얘기 해서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했다.최경준
경찰의 저지선이 펼쳐진 경복궁역 앞의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자신을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 소속이라고 밝힌 한 여성이 차벽 옆 난간에 올라 박 대통령을 적극 변호했다. 이 여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뭘 잘못했느냐. 싸우지 말라"는 등의 발언을 계속해 시위대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한차례 난간에서 끌어내려진 이 여성은 다시 난간에 올라 "박 대통령이 뭘 잘못했는지 하나라도 증명할 수 있느냐. 그래서 당신들이 직접 피해본 게 뭐냐", "주민세는 잘 내고 있느냐"는 등의 발언으로 시위대의 화를 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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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경복궁역 인근 경찰과 시민이 차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중이다.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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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경복궁역 인근에서 경찰과 시민이 대치 중인 가운데 416 가족협의회가 경찰 차벽을 향해 차량을 운행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최경준
경복궁역 앞의 긴장은 더욱 고조된 반면, 광화문광장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모이자! 분노하자! #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은 가수 이승환의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노래로 마무리 됐고, 인파는 상당수 귀가길에 올랐다. 시민들은 돌아가는 길에도 "박근혜는 퇴진하라", "책임총리 말도 안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상당수 시민들은 1시간여 자유발언을 이어가다 해산했고,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광장 곳곳에 남아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사물놀이를 벌이는 등 문화난장을 이어가고 있다.

[8: 12일 오후 1013]
시민-경찰 한때 대치... 시민들 "평화시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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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역 2번출구 쪽에서 난간을 밟고 경찰차벽으로 오르던 시민들과 차벽 위에 있던 경찰이 아찔한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 과격한 시민들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내려와 "평화시위" 하라고 요구하며 자제시켰다. 최경준
오후 10시경 경복궁역 앞 대치 현장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복궁역 2번출구 쪽에서 난간을 밟고 경찰차벽으로 오르던 시민들과 차벽 위에 있던 경찰이 아찔한 몸싸움을 벌였다. 일부 과격한 시민들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내려와서 평화시위로 복귀하라고 요구하며 자제시켰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부상을 입고 구급차에서 응급조치를 받았다.

이보다 앞선 오후 845분 경 경복궁역 앞 저지선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50, 60대 시민 한 명이 쓰러졌다. "저혈압이 있다"는 시민 본인의 말을 고려하면 경찰의 구타로 인한 것은 아닌 듯하다바닥에 누운 시민을 의료진이 보살피는 모습을 경찰들도 관심있게 바라봤다.

혹여 인명 사고시 시민들이 격해질 것을 우려했는지, 경찰은 병력들에 헬멧을 쓰게 하고 차벽 뒤에 대기시키는 모습이었다. 한편으론 급히 119 응급차를 불렀고, 경복궁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은 구급차가 갈 길을 재빨리 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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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길 터주는 촛불시민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퇴진' 요구 민중총궐기와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2일 오후 청와대 포위 행진에 나선 시민들이 구급차 통행을 위해 길을 터주고 있다.권우성
[7: 12일 오후 853]
100만 시민의 배려, '박근혜 하야' 초대형 집회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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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외침 외면, 어둠에 묻힌 청와대 비선실세 국정농단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명 국민들의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불꺼진 청와대 본관이 어둠에 묻히고 있다. 일부 행정동 건물에는 불이 켜져 있다.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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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민중총궐기와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2일 오후 청와대 부근 경복궁역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권우성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민들이 광화문과 서울시청, 남대문 일대를 가득 메우고 '박근혜는 하야하라'를 외치고 있다. 경복궁 앞은 인파의 물결에 포위됐고 광화문광장과 서울시청 일대는 발디딜 틈이 없다.

경복궁 앞쪽을 시민들의 행렬이 포위했고, 광화문광장에서부터 서울광장, 남대문 일대까지 대로에 시민들이 가득차 통행이 어려울 정도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2호선 시청역은 안전을 위해 무정차 통과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집회에 참가하고 있고,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대로 옆 이면도로에도 인파가 가득하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지만 불빛이 듬성듬성하다. 모인 인파에 비해 준비된 초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아리랑 목동을 개사한 '하야가'를 부르고, 무대에 선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박수를 치며 열광하고 있다. 극도의 흥분 상태가 아니라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인파가 야간에 큰 사고 없이 집회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기적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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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향한 분노의 촛불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세종로에서 태평로로 까지 가득메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통행도 쉽지 않은 상항에서 시민들은 배려심을 발휘하고 있다. 한 시민은 동십자각 부근 경찰 저지선 앞에 텐트를 세워 수유실로 이용하도록 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여러 가족들이 수유를 하거나 기저귀를 가는 모습이었다.

집회 주최 측도 긴급 환자가 발생하자 현장 안내를 통해 의사를 찾아 구호를 요청했고, 누누이 안전사고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경복궁역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시민들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여 경찰 15명 가량을 뒤로 밀어내기도 했다. 이어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로 밀고 가자는 시민들의 외침이 커졌다. 하지만 권영국 변호사 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 등이 법원이 허가한 선을 지켜 평화롭게 진행하자고 자제를 요청해 양측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경찰 저지선에 발을 동동 구른 이는 시위대 말고 또 있었다. 오후 820분 경 경복궁역 앞에 한 패스트푸드 배달 오토바이가 등장했는데, 햄버거 100개와 콜라 4박스를 갖고 온 이 배달원은 "경복궁 쪽으로 배달해달라고 했다"며 배달지로 가지 못해 발을 구르다 돌아갔다.

[6: 12일 오후 744]
"박근혜 하야 물결 100만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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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촛불 막은 차벽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시민들의 행진이 시작된 가운데 서울 경복궁 인근 청와대로 향하는 길이 경찰차벽에 막혀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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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일대 뒤덮은 '박근혜 퇴진' 촛불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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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은 박근혜의 방패가 아니다' 12일 오후 박근혜 퇴진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청와대 부근 경복궁역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가운데, 군인권센터가 의무경찰 집회시위 투입 위헌을 주장하며 의경은 박근혜의 방패가 아니다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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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하라! 3차 범국민행동 촛불문화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유성호
'박근혜 하야' 촉구 집회 동참 인원 '100만 돌파'가 선언됐다. 오후 730분 광화문광장에서 시작된 '모이자! 분노하자! #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에서 주최 측은 "이곳에 박근혜를 퇴진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 모두 100만명이라고 합니다"라고 발표했다.

광화문광장과 주변 큰길 작은 길엔 시민들의 촛불이 물결쳤다. 경복궁역 앞에선 시민들의 '하야가'가 울려퍼졌다. 주변 카페에 자리잡은 시민들도 창문을 열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집회에 동참하고 있다.

[5: 12일 오후 706]
85만의 외침 "너희들은 포위됐다 박근혜는 항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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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지나 청와대로 촛불행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광화문 앞을 지나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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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향한 '박근혜 퇴진' 상여 12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형 상여를 메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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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앞에서 "박근혜 퇴진" 외치는 시민들 12일 오후 박근혜 퇴진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청와대 부근 경복궁역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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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관련 민중총궐기와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12일 오후 청와대 부근 경복궁역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권우성
오후 640분경 경복궁역 앞. 경찰차벽에 막혀 청와대로의 행진이 막힌 시민들이 힘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박근혜는 항복하라!". 이들과 경찰차벽 사이에는 600여 명의 경찰이 방패와 보호장구로 무장한 채 저지선을 지키고 섰다.

청와대를 향한 시민들의 행렬은 서울경찰청 건물 뒷편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은 경찰이 막아서자 물리적 충돌을 자제하며 바닥에 앉아 '하야가' 등 노래를 부르며 평화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일부 시민들이 경찰을 향해 욕을 하며 시비를 걸자 앞에 있던 학생들이 "그들이 무슨 죄냐"며 자제시켰다.

시민들이 차벽에 가로막힌 경복궁역 앞은 시민들의 '박근혜 하야' 구호로 물결치고 있다. 군인권센터는 경찰을 향해 "의경은 박근혜의 방패가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펴 들었다. 경찰들 사이로 "조금만 더 버텨봐라"는 무전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후 630분 현재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촛불집회 참가인원을 85만으로 집계했다.

[4: 12일 오후 612]
65만의 물결, 청와대로 행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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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대폭락에 항의하며 상여를 메고 상경한 농민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자, 경찰이 이를 막고 대치하고 있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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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시민, 노동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을 지나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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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로 향하는 분노의 촛불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고 을지로, 종로 방향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남소연
거대한 '사람의 물결'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이날 광화문광장·서울광장 등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인원을 오후 530분 현재 65만명으로 추산했다. 이 거대한 인파는 오후 6시경 경복궁역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민중총궐기 현장에 인파가 몰리면서 지하철 2호선 시청역 5호선 광화문역 등 집회현장과 연결되는 주요 지하철역은 통행이 쉽지 않은 상태다. 하차 인원은 많은데 지상에서도 통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3호선 경복궁역에도 하차 인원이 몰리고 있지만 경찰은 6, 7번 출구를 제외한 청와대 방향 출구 모두를 봉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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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주변 경찰들.김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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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주변 경찰들.김은혜
경찰 병력은 2, 3중으로 세워진 차벽 뒤에서 버스들을 밧줄로 단단히 동여매는 등 단단히 대비하는 모습이다. 경복궁역 통의동쪽 도로를 차벽으로 봉쇄한 경찰은 행인들을 철저히 막고 있다. 경찰은 행인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 그 일대 주민인지를 확인해 통행을 시키고 있다.

행진은 크게 4갈래로 계획됐지만, 경찰의 저지선이 경복궁 주변으로 후퇴함에 따라 예정에 없던 행진루트도 생겨나고 있다. 오후 550분경부터 민중연합당 등 행진대오가 속속 경복궁역 앞에 도착 중이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4.16가족협의회 소속 참가자 1천명도 광화문 앞을 지나 경복궁역 앞에 당도했다. 이들은 '근혜구속 7시간',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구호를 외쳤고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박수로 응원했다.

서소문길과 정동길도 행진대오로 꽉 찼다. 시민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를 외치며 새문안로를 통과해 경복궁역 앞으로 행진 중이다.

행진하지 않는 시민들도 있다. 광화문광장과 그 일대 인도까지 가득 메운 수만명의 시민들은 촛불을 켜고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박근혜 하야 촉구 콘서트'를 즐기고 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이날 광화문광장·서울광장 등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인원을 오후 530분 현재 65만명으로 추산했다. 경찰은 오후 535분 현재 22만명이 참가했다고 추산했다.

[3: 오후 457]
이중삼중 골목골목 경찰 방어벽, 살수차 대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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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으로 후퇴한 경찰 차벽.권우성
경찰은 차벽을 경복궁 중심으로 두르고 '청와대 포위 행진'에 대비하고 있다. 경복궁역 주변 청와대 방향을 2, 3중의 차벽으로 차단했고 골목골목 경찰이 배치됐다. 살수차도 대기중이다.

오후 2시경 집회제한통고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인용하면서 경찰은 저지선을 경복궁 광화문 중심으로 옮겼다. 광화문 동쪽과 서쪽으로 긴 경찰버스 차벽이 세워졌고, 경복궁역 주변 북쪽도로와 삼청동 방향 도로가 차단됐다. 인도 통행도 큰 지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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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청운효자동사무소 사이 우리은행 앞으로 경찰 살수차가 대기중이다.김은혜
경복궁역에서 청운효자동사무소로 향하는 도로엔 경찰이 가득하다. 골목마다 경찰이 배치됐다. 경찰은 통의동 새마을금고 네거리 북쪽으로는 보행자 통행도 막고 있다.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에는 경찰 살수차 2대가 대기하고 있다.

청운효자동사무소에서 청와대로 가는 도로는 경찰버스와 병력이 완전히 막아섰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청와대 포위행진'을 경복궁역 앞쪽까지만 할 계획이지만, 경찰은 바짝 긴장하며 이중 삼중으로 '청와대 보호벽'을 둘러친 형국이다.

오후 440분 현재 주최 측의 추산은 나오지 않았지만 민중총궐기 참여인원은 3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오후 435분 기준 159000명이 참가했다고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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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세종대로-광화문광장까지 뒤덮은 성난 민심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세종대로 일대와 광화문광장까지 가득 메운 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남소연
[2: 오후 4]
집회 참가 20만명 넘어선 듯, 광장과 광장이 연결됐다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자동차는 사라졌고 광장과 광장이 이어졌다. 광화문에서부터 남대문까지, 또 그 옆으로 종로거리가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시민들로 들어차고 있다. 광화문광장-청계광장-서울광장은 인파로 연결돼 구분하기도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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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향해 띄운 '박근혜 퇴진' 애드벌룬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대로 일대가 성난 민심으로 뒤덮였다.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2016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대형 애드벌룬을 청와대를 향해 띄우고 있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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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시민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국민의 힘으로 박근태 대통령을 체포해야 한다는 뜻으로 퍼포먼스를 벌이며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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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가면을 쓴 시민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세월호 모형을 실은 차량에 올라타 세월호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유성호
오후 330분 현재, 경복궁 광화문에서부터 광화문광장, 광화문 사거리, 태평로, 서울시청 앞, 남대문까지 또 종로3가에서 서대문사거리까지 차량운행이 전면 통제되고 있다. 차가 없는 거리는 시민들이 채우고 있다. 서울광장 주변으로는 을지로와 한국은행 방향 길까지 인파로 꽉 찼다.

일단 지난 주말 집회의 20만 인파는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오후 340분 기준으로 132000명으로 참여인원을 집계했다.

광화문 광장에 시민을 위로하는 광대, 김제동이 등장하자 광장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앉을 자리가 없어 주변에 서서 행사를 지켜보던 인파가 몰려들면서 곳곳에서 잠시 소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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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만민공동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에 시민 2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방송인 김제동씨가 발언하고 있다. 권우성
김제동은 무대 위가 아니라 시민들이 앉아 있는 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함께 호흡했다. 김제동은 마이크를 잡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헌법 강의를 시작했다. "권력자는 하나도 둘도 아니라 오천만 국민 모두"라며 "헌법을 어기며 내란과 외환을 모두 야기한 대통령" 이라고 일갈했다.

김제동은 헌법의 1조부터 읊으면서 각 조항을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이 어겼는지 설명하다가 "다 읊을 순 없으니 나머지는 저녁 때 하겠다"고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어 김제동은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넘겨 참여한 시민 개개인이 직접 목소리를 내도록 했다. 현재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청계광장에 모였다. 문재인 전 대표, 추미애 대표, 우상호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김부겸 의원 등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 선대본부에 있었던 김종인 전 대표도 파란 목도리를 두르고 더민주 집회에 참석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계광장과 광화문광장을 오가며 적극 참여하고 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학로 시민대행진에 참가 걸어서 청계광장에 합류했다.

심상정 상임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당원들은 서울광장 전국노동자대회에 적극 결합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태평로 일대, 을지로 방향 차도, 한국은행 방향 차도는 집회 참가자로 꽉 들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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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시민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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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이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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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외침 "박근혜 내려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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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시민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청년·대학생들은 먼저 대학로에 모였다. 100여 개 대학 총학 깃발 아래 모인 대학생 5000여 명은 '동학농민운동의 '제폭구민', '4.19 이승만은 하야하라', '5.18 전두환은 물러나라', '6월항쟁 호헌철폐 독재타도', '2016년 역사속에서 대학생들은 외친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었다. 이들은 혜화역에서부터 종로5가를 거쳐 서울광장으로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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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시민들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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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시민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유성호
분노한 농민들은 남대문 일대를 메웠다. 농민 1만여명은 상여를 둘러메고 '무당 박씨 사기파 장례식'을 치렀다. 상여 소리꾼은 "사기 정권 무당정부 박근혜 정권 퇴진하라! 백남기 농민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청장 구속하라! 쌀값 폭락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에게 돈을 준 재벌들을 해체하라"를 외쳤다.

농민들은 "백남기 농민, 우리는 그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분을 죽인 박근혜 정권과 살인 경찰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농민들이 백남기가 되어 살인자 처벌하자"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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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상여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6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상여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남소연
[1: 12일 오후 245]
사라진 차벽, 광화문 일대 시민들 속속 집결

12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서울 한복판으로 급속하게 결집하고 있다. 오후 230분 현재 서울 곳곳의 사전집회에 모인 인파만 11만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의 집회제한통고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을 법원이 받아들여 광화문 일대의 차벽도 사라졌다.

민중총궐기 집회와 청와대 포위 행진에 앞서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별도로 모인 인원만 10만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오후 230분 현재, 노동자대회가 열리는 서울광장 및 을지로와 종로, 태평로 5만명, 더불어민주당 집회가 열리는 청계광장 3만명, 김제동의 만민공동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 2만명, 청년학생총궐기가 열리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5000, 농민대회가 열리는 남대문 일대 7000명 등 몇 개 지점 추산 인원만 더해도 11만여 명을 넘어섰다. 이마저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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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외침 "박근혜 내려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정민
한편 오후 2시경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양 옆으로 세워졌던 경찰버스 차벽도 사라졌다. 참여연대가 경찰의 집회제한통고에 대해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 경찰은 시민들의 행진이 경복궁역 앞까지 진출하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었지만, 법원이 이를 금지시킨 것이다.

따라서 오후 5시부터 시작될 '청와대 포위 행진'은 경복궁역까지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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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일 오후 218분 차벽 사라진 광화문광장.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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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차벽이 사라진 광화문 일대. 장윤선

2016-11-04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소서" 2016년 온 국민의 기도.





 
"바쁜 벌꿀은 슬퍼할 사이도 없다"고도 했었지...

그래 그렇게 벌 꿀과  우주의 섭리를 따르느라 바쁘실테니,
그냥 그.. 벌 다 받고 꿀도 혼자 다 즐쳐 드시라 !

제발 우주로  떠나 주시라.  지구에서는 우리끼리 만 살아가게 해 주시라. 제발.

2016-09-13

재해 재난 대피용 물품을 소개합니다.





 사상 최대라는 지진이 있었습니다. 진앙지 경주에서 300Km 떨어진 서울의 아파트 벽이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이제 한반도가 안전한 곳이 아니라면, 대피와 준비가 일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엊저녁 잡다하게 벌여 놓고 불면의 밤을 지낸 어느 자일 파트너의 준비물을 공개해 드립니다.

1.배낭: 등에 메고서 몸을 보호하며, 무엇이라도 보이면 담아 놓아야 먹고 버틸 수 있습니다.
2.헬멧: 머리를 다치지 않아야 최후의 순간이 되더라도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3.안전벨트: 등산용 하니스와 하강기. 고층, 물난리에서 자력 탈출, 구조대 대기에 필수적.

4.자일 9mm-45m : 물난리, 붕괴건물, 고층아파트 등에서 자력 탈출할 때 요긴한 품목.
5.등산 장갑: 지일이나 철 구조물을 만지게 될 때 손바닥을 보호하는 데 필수.
6.망치와 빠루: 안 열리는 창과 철문, 가로막는 방화벽을 부수고 뜯어서 탈출로를 엽니다.

7.헤드랜턴: 정전된 건물, 고립된 장소의 어둠 속에서 양 손과 한 손을 쓰는 것은 천양지차.
8.물통: 깨끗한 물 몇 모금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꼭 영화 "터널"을 보지 않아도 될 터입니다.
9.스위스 나이프: 누구나 맥가이버가 되어야하는 것이 재난 현장입니다..

혹시 더하고 뺄 것이 있으시면 도움 주시기 바라며, 모쪼록 평안과 안전을 빕니다.
(위 사진은, 파트너  두 사람을 위한 장비 모음입니다)

2016-09-02

[부패한 꼴 못 보던 매천 황현의 120년 전 망국사]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선비를 양성한 지 500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나라를 위해 죽어가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랴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세상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 매천 황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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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꼴 못 보던 매천 황현의 120년 전 망국사     등록 :2016-09-01

춘추필법의 동학농민혁명 통사.. 94년판 오하기문완전 새 번역

방대한 고사·옛지명·문헌 고증.. 원문 오류도 바로잡아 분량 2

동학농민군 도적이라 표현했지만 권력 농단과 부정부패 비판 신랄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 원문 역사비평사 제공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 원문       역사비평사 제공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황현이 본 동학농민전쟁
      황현 지음,    김종익 옮김/역사비평사·28000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선비를 양성한 지 500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나라를 위해 죽어가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랴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세상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 매천 황현 -

 

  대할 때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게 만드는 이 글들은 19108, 나라가 망하자 자결한 매천 황현(1855~1910)이 남긴 유서와 시다. 그의 대표작처럼 알려진 <매천야록>의 저본이 됐다는 <오하기문>(梧下記聞)<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라는 제목을 달고 번역 출간됐다. “조선 말기를 대표하는 재야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인 매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주요 사건에 대해 편년체와 강목체를 적절히 구사하면서 서술한 당대사춘추필법으로 기록한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통사’”(해제자 박맹수 원광대 교수).

1892년 동학교도들 봉기 현장인 전북 삼례에 조성된 역사광장 조형물 역사비평사 제공


 1892년 동학교도들 봉기 현장인 전북 삼례에 조성된 역사광장 조형물     역사비평사 제공

일반적으로 민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탐욕스러웠다. 그런 민씨들이 전국 큰 고을의 수령 자리를 대부분 독차지했다. 평안도 관찰사와 삼도수군통제사는 이미 10년 넘게 민씨가 아니면 차지할 수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저 형식(1882년 임오군란 때 민비가 충주로 피신할 때 따라간 무관 민형식)이라는 놈은 고금에 다시없는 탐관오리였다. 오죽했으면 백성들이 그를 악귀라고 불렀을까. 그것도 모자라 미친 호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난리가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1892, 고종29)

자신만의 선명한 관점을 세우고 동학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런 장면에서 춘추필법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하기문>1860년부터 동학혁명 종료 직후인 18953월까지와 18954월 이후 두 부분으로 나뉜다. 번역된 것은 18953월까지이며, 그 뒷부분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오동나무>20여년 전인 1994<번역 오하기문>이란 제목으로 출간됐지만 같은 번역자가 옮긴 이번 책은 단순한 수정·보완이 아니라 이전 번역본을 아예 무시하고 완전히 새롭게 쓴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의미나 유래를 짐작하기 어려운 수많은 고어와 고지명, 고문헌들이 등장해 해독하기 어려운 한··3국의 인용 사료들을 매우 철저하게 찾아 꼼꼼하게 확인하는 고정(考訂) 작업을 벌였다. <조선왕조실록><동경대전>,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사서삼경과 24사 등 방대한 중국 전적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등의 일본 사료들도 검토했다.

 손화중(사진 오른쪽) 역사비평사 제공
 

손화중(사진 오른쪽)        역사비평사 제공

  그리하여 이번 책에서 옮긴이는 저자 매천 황현이 잘못 적거나 빼버린 구절들까지 샅샅이 찾아내 교정했다. 필요할 경우 최근 연구성과들까지 섭렵해 보완했고, 다른 관점의 해석까지 소개한다. 예컨대 체포당해 서울로 압송된 전봉준은 대역죄인이라며 자신을 사정없이 심문하는 박영효에게 이렇게 되받아친다. “도 없는 나라에 도학을 세우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 민중에 해독되는 탐관오리를 베고 일반 인민의 평등적 정치를 잡은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사복을 채우고 음사(淫邪)에 소비하는 왕세 공곡을 거두어 의거에 쓰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조상의 뼈다귀를 우려 행악을 하고 중인의 피땀을 긁어 제 몸을 살찌는 자를 없애버리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사람으로서 사람을 매매하여 귀천이 있게 하고 공토로서 사토를 만들어 빈부가 있게 하는 것은 인도상 도리에 위반이라, 이것을 고치자 함이 무엇이 잘못이며, 악정부를 고쳐 선정부를 만들고자 함이 무엇이 잘못이냐. 자국의 백성을 쳐 없애기 위하여 외적을 불러들였나니 네 죄 중 가장 중대한지라 도리어 나를 죄인이라 이르느냐.”(배항섭 동학농민전쟁 연구고려대 박사학위 논문, 1996) 이런 내용은 <오하기문> 원문에는 없는 내용이다.

그리고 되도록 지금의 우리말로 내용을 풀어 써 가독성을 크게 높였다. 여기에 적지 않은 분량의 인명록과 제도·기관·관직 등의 주요 용어 사전까지 붙였다. 그 결과 전작보다 분량이 거의 갑절로 늘었다. 그럼에도 전작보다 훨씬 읽기 편해졌고 내용은 더욱 풍성해졌다. 그야말로 <오하기문>과 매천, 그리고 당대사를 종합적·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해(1894) , 돈을 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과거에 합격하여 신고식까지 치른 영남의 어떤 유생이 있었다. 그런데 민영휘는 그 유생이 가난하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삭제했다. 그 유생은 밤새 죽을힘을 다한 끝에 마침내 어느 부유한 상인을 보증인으로 내세웠다. 영휘가 비로소 다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주었다.”(430)

이 유생과 달리 매천 자신은 이렇게 부패한 세도정치에 넌더리를 내고 떠나간다. 매천은 1883년 초시에 응시해 장원으로 뽑혔으나 당시 시관이 그가 뒷배 없는 시골의 힘없는 집안 출신인 걸 알고 2등으로 등수를 낮추자 낙향해버린다. 부친의 엄명으로 1888년 다시 성균관 생원시에 1등으로 뽑혀 성균관 관원인 생원이 됐으나 보장된 출세와 벗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향리로 내려가버렸다. 이후 평생 나라 녹을 먹지 않은 재야 선비로 살았으니 나라가 망한다고 그가 죽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청국군과 싸운 성환 전투에서 승리하고 서울 용산 만리창(효창동)에서 승전 행사를 여는 일본군 역사비평사 제공
 

  청국군과 싸운 성환 전투에서 승리하고 서울 용산 만리창(효창동)에서 승전 행사를 여는 일본군     역사비평사 제공

  이 책의 또 다른 장점 가운데 하나는 수없이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매우 구체적이며,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동학교도들을 시종 ’ ‘도적이라며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매천은 그 준열한 역사인식에도 불구하고 분명 봉건 군주체제라는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서술을 보면 그는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고 오히려 열려 있으며 공정했다고도 할 수 있다.

도적들은 만날 때 서로에게 매우 공손한 예를 취했다. 신분의 귀천이나 나이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똑같이 평등한 예를 행했다. 비록 나약하고 용렬한 사람이 접주 자리에 있어도 그 무리는 모두 자신을 굽히고 그를 섬겼다.”

옮긴이 김종익씨. 2008년 이명박 정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를 주요 사회적 이슈로 만든 계기가 된 케이비(KB)한마음 불법사찰의 희생자가 바로 그 회사 대표이사였던 그다. 옮긴이가 120여년 전의 기록이지만 기시감이 든다며 책에 쓴 얘기. “권력의 농단으로 부패의 극한까지 내달렸던 그 시대 몇몇 인물의 이름을, 권력을 사익 확대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오늘날 부패한 고위 관료들의 이름으로 환치하면, 120여년 전의 역사가 현실의 정치와 하등 다를 바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2016-08-31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의 작자는 누구인가?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의 원작자는,  김준엽이란 주장을 싣습니다.
작자 미상이란 의견도 있으나,  윤동주, 정용철의 시가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http://www.newswire.co.kr/newsRead.php?no=73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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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시인, “작품 저작권 강탈당했다”
솟대문학에 도움 요청…조사한 결과 ‘도용 맞다’..
방귀희 발행인, “바로잡기 위한 법적절차 밟을 것”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3-12-31 15:32:59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하겠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은 20년 전 김준엽(뇌병변장애) 시인이 쓴 작품이다.

김준엽 시인은 중증 뇌성마비로 손가락 하나조차도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펜을 입에 물고 시를 써서 2011년 첫 시집 “그늘 아래서”를 출간했고, 새해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보치아 국가대표선수로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구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으로, 운동선수로, 사회복지전문가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발행인 방귀희)에 “작품 저작권을 강탈당했다. 세상에 알려 바로잡아 줄 것을 바란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시 7편을 제출하기 위해 가장 아끼는 작품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김준엽 시인의 활동보조인이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이 인터넷상에서 좋은 글로 사랑받고 있는 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을 했더니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으로 이름을 바꾸어서 윤동주, 정용철, 작가미상으로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

솟대문학은 신속히 이 문제를 처리하기로 정한 뒤 사실 관계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준엽 시인은 20여년 전 하이텔 사이버문단을 통해 자신의 시들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하던 중 1995년 봄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시집 발간 제의를 받고 작품을 보냈다. 하지만 출판사가 문을 닫게 되어 시집 출간도 못하고, 작품도 돌려받지 못했다.

몇 개월이 지난 뒤 알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월간 ‘좋은 생각’ 1995년 9월호에 게재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제목의 시가 김준엽 시인의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과 유사한 점이 많았던 것.

솟대문학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제목의 시는 좋은 생각 발행인 정용철 시인의 작품으로 게재됐다”면서 “정 시인은 ‘인생이 끝날 때’로 제목을 수정해 발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 인생에 황혼이 오면’이란 제목의 시는 작자미상을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고 있고, 가장 많이 알려진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의 경우 윤동주, 정용철로 작가가 표기되는 등 김준엽 이란 작가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방귀희 발행인은 “김준엽 시인의 작품이 윤동주의 작품으로 둔갑한 것은 그만큼 작품이 우수하다는 증거”라면서도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이 김준엽 시인의 작품임을 밝혀 저작권을 바로잡아 주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방 발행인은 또한 “이 같은 작품 도용 사례가 적지 않기에 장애인들의 작품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준영 시인의 ‘내 인생에 환홍이 들면’, 정용철 시인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로 알려졌으나 작자 미상인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김준엽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자신 있게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나는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가족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나에게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반갑게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가족의 좋은 일원이 되도록
내 할 일을 다 하면서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나는 힘주어 대답하기 위해
지금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사회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내 마음 밭에서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정용철 (좋은 생각 발행인)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도록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나는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가족에게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반갑게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좋은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내 할 일을 다하면서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나는 힘주어 대답하기 위해
지금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사회인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로 알려졌으나 작자미상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볍게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답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 나가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사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아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출처:  
http://www.ablenews.co.kr/Blog/PostBoard/BoardContent.aspx?BlogID=park46yg&getPostCode=park46yg201005111129097&Seq=88555

2016-07-18

이방원, 시작부터 썩었던 조선 왕조의 뿌리.

 각종 비리와 실정, 폭정 끝에 분출하는 국민의 불만 속에 싸드 배치, 개헌 논의까지 겹치면서 나라가 요동치고 있다.  그런데 해괴하게도 이런 시국을 조선 초기와 빗대며, 이방원의 쾌도난마가 필요한 때라는 입론이 들려온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런 반응은 이방원의 본색을 전혀 모르는 데서 출발한 것이기에 다시 한번 태종 이방원의 전모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뒤끝 작렬, 이방원의 민낯..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정권욕에 희생된 사람은 헤아리기 힘들 지경이다. 아버지 주위의 지인이자 불사의 충신이라던 정몽주, 김종서, 조선 건국의 대들보라 할 정도전을 비롯, 배 다른 동생이자 당당한 왕세자였던 방석과 방번까지도 비참하게 그의 손에 죽었다.

 나중에는 이방원의 셋째 아들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이던 심온이 자신의 행동을 불평한다며 사사시켰다. 이런 피비린내의 중심 이방원의 족적이 당시 복잡한 정세때문이었고, 왕권을 사수하기 위해서였기에, 결론적으로 신생국 조선의 기반을 다지는 순기능이 더 켰다고 왕조실록을 참조해가며 주장할 수도 있다.
 
 어쩌면 조선 건국후 방방곡곡의 모든 "왕"씨를 찾아 고려의 뿌리를 완전 박멸하여 전국을 피로 물들게 했던 태조 이성계였으니 그의 아들 방원이  보고 배운 것이 무엇이었을까하며 동정의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원은 한 수 더 떠 충신, 심복, 형제, 심지어 자기 자식 세종의 장인인 사돈까지 처단하며,  잔학했던 애비를 넘어서 대단한  '승어부'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왕조실록이외의 다른 자료까지 종합해 재구성한 현실 속 이방원의 진실은 통설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병든 자신의 아버지를 만만히 보고 밀모를 조작하여 동생 둘을 죽였으며, 이런 패륜에 대노한 아버지를 위협해 왕권을 내려 놓게 한 후, 형 방과를 허수아비 왕 정종으로 내세웠으며, 억지로 바지저고리 왕이 되었지만 동생에게 살해당할까봐 전전긍긍하던 정종이 결국 떨리는 손으로 양보한 왕권을 챙긴 악당이었다.

 악행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왕세자의 어머니이자 서모로 이성계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조선 최초의 퍼스트 레이디 강씨는, 사후에 이루 말로 못할 망신과 수모를 겪게 된다. 이 한가지 만으로도 그는 천추의 패륜아이자 유교국가를 표방하던 조선을 뿌리채 뽑아버린 장본인이었다.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사심불구, 말은 공자 말씀이지만, 그 속은 뱀같던 언행불일치 무뢰배의 손아귀 속에서 모순 속에 지탱되었던 기이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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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계의 개국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둘째부인 강씨는 세자로 책봉되었던 자신의 아들이 방원에게 죽기 이태 전(1396)에 다행히 세상을 떴다. 강씨를 총애했던 이성계는 경복궁 발치인 지금의 중구 정동에 왕비의 정릉을 마련하고 재궁 기능을 할 절, 흥천사를 능 동쪽에 대단한 규모로 지었다. 정무 중에도 수시로 정릉과 흥천사를 둘러보러 나가는 통에 대신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전해질 정도로 이성계의 사랑은 대단했다.

 그런데 애비가 죽고나서 명색 왕비릉인 정릉 일대를 부지가 너무 넓다는 구실을 대며 농토로 허용해 욕보이더니, 결국 방원이 왕이 되고 9년 되던 해(1409), 아버지 이성계가 졸한지 채 아홉달을 넘기지 않은 때에 그마저 더 이상 못보겠다는듯이 동대문구 안암동으로, 다시 핑계를 대어 더 멀리 떨어진 지금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장한다.

 이 와중에 묘지의 석물을 들어내 청계천 광통교 다리에 재활용해 온 장안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는 일체의 제사와 관리를 중단해 버리니, 능은 피폐해져 폐허가 되었다. 폐비가 아닌 멀쩡한 왕비가 죽은 후에 이런 수모를 겪는 것은 아마 세계 역사에 유래가 없을 것이다.  얼마나 그의 의지가 대단했던지 260년 동안 역대 어느 왕도 감히 정릉의 참배, 관리에 나서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선조 때 '쑥대밭같은 그 자리가 왕비릉인 것같다'는 보고가 올라올 지경이었을까?  예의를 숭상하는 이왕조의 건국이념이라던 유교 왕국의 모든 사람이 500년 역사의 절반이 지날 동안 이런 패륜에 모르쇠하며 눈감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선왕 이성계가 경복궁 바로 옆 정동에 왕비의 정릉을 마련한 이유는 바로 그 옆에 자신이 묻히고자 함이었으되, 방원은 이를 무시하고 따로 자리를 보아 지금의 동구릉에 애비를 장례 지낸다. 뭐가 그리 보기 싫었던지 이성계의 능을 돌보던 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은 대략적 위치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명색 나라를 건국한 왕의 능을 돌봐야할 원찰이 이리 망해버린 것은 나라의 기강은 접어두고라도 바로 자식이 불효한 결과가 아니라면 또 무엇이겠는가.  방원은 서모 뿐 아니라, 그 서모를 사랑했던 자신의 애비에게마저도 뒤끝을 확실히 보여주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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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종 때(1669)에 이르러서야 예송논쟁 중이던 송시열의 주장으로 비로소 정릉은 왕비릉으로 복귀되어 제례가 가능해지고, 왕비는 종묘에 배향되었다. 무려 260년 동안 15대의 왕 어느 누구도 입도 뻥긋하지 못했던 이 부조리한 집안 내력은 오로지 이방원의 뒤끝때문이었다.
또한 자신이 내세워 허수아비 왕을 만들었던 친형, 방과는 사후에는 공정대왕이란 어설픈 칭호로 왕의 존호를 받지 못한 채 무시되다가, 이 또한 15대가 지난 숙종 때(1681)가 되어서야 "정종"이라는 존호를 받게 된다.

 한마디로 자신이 왕이 되는 데 걸림돌이었던 사람,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포함해, 서모였던 신덕황후 강씨, 자신의 친형인 정종 방과. 이 모두를 눈에 가시로 짓밟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오기와 패륜을 왕권강화란 명분으로 덮어서야 어찌 세상에 도의와 윤리가 서겠는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씨 왕조의 마지막 27대 순종의 왕비 순정황후 윤씨는, 가난에 찌든 채 갈 곳없는 몸을 정릉 흥천사 방 한칸에서 기숙하며 연명하다가 왕가의 최후를 마감하였다. 조선 최초의 왕비가 밀려 쫓겨갔던 정릉을 관리했던 바로 그 절에서 조선 최후의 왕비가 생을 마감하는 극적인 역사가 이뤄진 셈이다. 참으로 얄궃은 집안 내력다운 결말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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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흥천사 역사:
 1398년 정종 때 완공된 중구 정동의 흥천사는, 정동에 있던 정릉이 미아리로 이장된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170칸이 넘는 규모로 승려 140명 이상이 머무는 대찰로 유지되다가 연산군 때(1504) 큰 화재를 겪고, 중종 때(1510) 유생들의 방화로 폐사된다. 절에 있던 큰 종은 동대문을 거쳐 지금은 덕수궁에 옮겨져 있다.
 본디 미아리 정릉 근처에는 신흥암이라는 작은 절이 있었는 데, 이를 선조 때(1576)에 신흥사로 개칭하고, 현종 때(1669)에 정릉과 거리가 너무 가깝다하여 약간 옮긴 후 정릉의 원찰로 지정한다.  정조 때(1794) 다시 자리가 현재 위치로 옮겨졌고, 고종 때(1865) 이르러 대원군의 지원으로 중창하면서 비로소 "흥천사"란 휘호를 내려 원래 명칭을 회복했다. (얼마전까지 "미아리 신흥사"로 불리며 유명했던 회갑연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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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 최후의 퍼스트 레이디, 순종의 왕비, 순정황후 윤씨:
 625전쟁 피난 후 서울로 환도하면서 흥천사에 "대지월"이란 법명으로 얹혀 살게 된다."하루 양식 한 홉으로 두끼를 먹었는" 데도 그것을 아껴 향과 초를 사들고 흥천사에서 예불을 드렸다는 일화가 있다. 선영의 죄과를 받은 것인지 결국 멸문에 이르른 왕가의 마지막 회한을 윤씨는 정릉의 원귀 강씨와 나누려 했을까? 해방된 조국에서 이승만 등의 독재정권이 정당성 시비를 회피하려 그랬는지 의도적으로 왕가를 흘대하고 무시하는 가운데, 윤씨는 1966년(71세)에 창덕궁 낙선재에서 쓸쓸히 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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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 최초의 퍼스트 레이디, 태조 이성계의 왕비, 신덕황후 강씨.
 조선이 개국하기 1년 전(1391)에 방원의 모친이자 이성계의 첫째 부인으로 함경도 영흥에 머물고 있었던 한씨가 별세한다. 1년 후, 조선 개국(1392)의 중심지 개성의 권문세족 집안 출신으로 영흥의 향처에 대비되어 서울(개성)의 경처로 불리던 강씨가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되어 등극한다.
 이런 강씨를 못마땅히 여긴 한씨 소생의 아들 방원이 강씨의 정릉을 외진 곳으로 이장하고 석물을 광통교 다리에 활용한 패악을 저지른 후 자신의 만행을 합리화시키려고 입에 혀같던 신하와 벌인 수작(1416)이 역사에 기록되어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왕 (태종 이방원) : 계모란 뜻은?
   신하 (좌의정 유정현): 모친 사후에 들어온 새 모친을 말합니다. 

왕 : 그러면 강씨는 내 계모인가?
    신하: 생모께서 살아계셨을 때 들어 오셨으니, 계모라 할 수 없습니다.

왕: 그렇구나, 강씨는 내게 전혀 은의가 없다.
      나는 친모 집에서 자랐고, 장가 들어서도 따로 살았으니 어찌 은혜가 있겠는가? 
     (태종실록: 1416년 8월 21일)

 이 따위 아전인수 문답으로 이방원의 총애를 받던 유정현은 영의정까지 이르렀다. 그는 본디 정몽주의 수하로 귀양까지 갔던 고려의 중심 관리였다. 그러나 이성계의 반란이 성공하자 전향했고, 조선 초에 아들 둘을 과거에 급제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관직에 다시 등장한 후, 세종의 장인 영의정 심온을 처치하는 데도 활약하는 등의 대단한 충성심으로 이방원의 수족 노릇을 했다.

가히 그 왕에 그 신하의 문답이지만, 여기에서 유교의 근본, 충효와 인의예지신을 찾을 수는 없다.
 이방원의 진면목을 두고, 나라를 근심하는 만 백성의 어버이라기 보다는.. 불구사심, 부처의 말을 읊조리나 속에는 뱀이 들어있었다 할 지경이었다면 심한 말일까?  그렇게 시작된 조선왕조가 주기적인 왕권다툼의 피비린내로 얼룩지다가, 결국은 마지막 왕들이 외세의 침략 속에 독살 당하는 비극으로 문을 닫은 것은 사필귀정, 원형이정의 실현이었을 수도 있다.


정릉: http://www.seongbuk.go.kr/tour/tourism/sights/jeongreung.jsp

흥천사: http://www.seongbuk.go.kr/tour/tourism/temple/heungchunsa.jsp

조선 왕 중에, 속 편히 임종한 사람이 없었다..
http://todayinfo.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08/20160808026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