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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영화가 있습니다.

 졸지에 횡재를 한 사람의 뒤를.. 돈을 노리는 악마가 쫓습니다. 결국 횡재는 횡액이 되어 비명횡사의 잔혹극이 되었고, 그 횡재의 옆에 있던 애먼 사람조차 죽습니다. 애써 정당하게 번 돈이 아니면, 수상하거나 엄청난 돈은 악마의 떡밥이란 이야기. 땀흘려 번 정도를 벗어나는 큰 돈은 결국 지옥문의 열쇠란 교훈. 그리고 이런 세상을 모르쇠하거나 당연시하는 모두에게 비극은 부메랑이 될 것이란 경고.

마지막 장면. 살인극을 마감하고 나서다 충돌사고로 팔이 부러진 악마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아이 둘. 그 중 하나에게 많은 돈을 건네주며 악마가 거래를 제안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가지라던 아이들에게 악마는 피묻은 돈을 건네고, 돈으로 얻은 셔츠로 팔을 동여매고 사라집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당연히 옷 하나 쯤이야 그냥 벗어줄 착한 생각이었던 두 아이였지만 악마가 사라지자 그가 건네 준 피묻은 돈을 손에 쥐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이런 건 둘이 나눠야 한다.. 아니 옷을 벗어준 내 것이다.’
 
돈은 좋은 것이고, 많은 돈은 더 좋은 것이며, 그러므로 엄청난 돈을 갖는 게 바로 인생의 목표라고 가르친 것은 아닌지..영화 속 노인들은 자문합니다. 어떤 경로를 통했건, 자신이 가진 그 돈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든, 그저 돈 만이 최고인 세상,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수롭지 않은 현실 앞에서 노인들은 한 숨을 내 쉽니다.
 
전통이 존중되며, 경륜을 대접받던 예측 가능한 세상은 사라졌고, 돈의 위력 앞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평안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 당연히 늙고 둔한 노인들을 위한 장소 또한 없습니다. 돈이 매개한 우승열패의 경기장. 돈을 잘 챙긴 것이 우수한 것이며, 그러지 못한 것은 저열한 것. 그리고 승리하는 자만이 모든 것의 결정권을 가진다는 이 냉혹한 세상 앞에서 노인들을 위한 세상 - 아니 어느 누구도 노인이 되지 않을 수는 없겠기에 - 사람을 위한 세상은 사라졌습니다. 부자에게는 자식이 없고 상속자만 있듯이, 사람들 눈에는 돈 만 보일 뿐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보통사람 급여의 수십 수백 배를 챙기면서도 그걸 불로소득이 아니라 당연한 댓가라고 외쳐대는 대기업 이사들의 합리화된 위선은 그렇다치고... 그런 횡포를 비웃기라도 하듯 직장인 봉급의 수십만 배의 돈을 챙겨놓은 채, 강남 최대의 삼성병원 최상층을 전세낸 것처럼 차지하고, 의식없이 몇 년째 누워 버티며 자식에게 천문학적 돈을 물려주려는 막장 좀비 드라마에 이르면... 소름끼치는 탐욕 앞에서 입을 다물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라도 엄청난 돈 - 스톡 옵션, 폭등한 부동산, 그리고 보통사람의 수백 수천배가 넘는 보수에 재갈을 물리지 않는다면, 그 같은 횡재와 불로소득이 있는 곳에 또아리를 튼 악마가 출몰하는 세상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그런 세상에 한 발을 들여 놓고 있는지 모릅니다.

 진짜 많은 돈을 받아야될 사람은, 여차하면 컨베이어 벨트에 말려 들어가는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그렇게 많은 돈을 줄 필요가 없는,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을 원한다면, 보통사람의 백배 천배 많은 돈을 챙긴 이들에게 걸맞는 세금을 부과하며, 비리와 편법이 일상인 무리들에게 서릿발같은 법과 원칙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불편한 졸부들에게는 마지막 한 마디가 있습니다.
 
공수레 공수거.
올 때 빈손이었듯, 갈 때 그 돈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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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예이츠는 이렇게 노인들을 안타까워합니다.
 
늙은이는 다만 하나의 하찮은 물건,
막대기에 걸린 다 헐어진 옷,
만일 영혼이 손뼉치며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하지만 에이츠가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말했던, 욕망으로 병들어 죽어가는 동물의 심장을 태워 없애고, 영원한 예술품 같은 미래가 펼쳐지는 모두가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 노인이 진정으로 행복한 나라는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던 이단의 신앙, 기독교까지 끌어들이며 어떻게든 버티려 몸부림쳤지만,  결국 난장판이 되며 망해버린 대 제국 로마. 그 절망 앞에서  여전히 굳건한 동방의 비잔틴 제국을 바라보던 로마인들의 실낱같은 꿈.  지금이라도 실현될 수도 있다는 희망.  못내 이루지 못한  그  꿈이 이제라도 현실이 되면 얼마나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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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예이츠(Yeats)  / 파인 편역 
 
1
내가 떠나온 저 땅은  늙은이들이 살 나라가 못 된다.

서로 껴안고 있는 젊은이들, 나무 속의 새들
- 저 죽어 가는 세대들 - 은 노래를 부른다.
 
연어의 폭포, 고등어 우글대는 바다,
물고기, 짐승, 온갖 새들 만을 온 여름 내내 찬미한다.
그래보았자 그저 배고 태어나고 결국 죽을 운명이건만.

하지만 이 따위 관능의 음악에 흘리다보니,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에는 누구도 눈조차 주지않는다.
 
2
그 땅에서  늙은이는 다만 하나의 하찮은 물건,
막대기에 걸린 다 헐어진 옷,

만일 영혼이 손뼉치며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죽어야 할 옷의 조각조각을 위해
더욱 더 소리 높이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고작했자 거기엔 영혼의 장려한 기념비나 공부하는
노래의 학교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건너
성스러운 이 도시, 비잔티움으로 왔다.
 
3
저 벽의 황금빛 모자이크 속에 있는 것처럼
신의 성스런 불 속에 서 있는 성인들이여,
성화(聖火)로부터 나오라, 감돌며 내려오라,
 
그래서 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라.
 나의 심장을 태워 없애라.

욕망으로 병들고
죽어가는 동물에 얽매여
심장은 스스로가 뭔지도 알지 못하니,
억지로라도 나를 영원한 예술품 속에 넣어 다오.
 
4
언제고 생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나는 결코 이전과 같은 몸을 탐하지 않으리,
 
오직 희랍 금세공이
졸음 오는 황제를 깨워 놓기 위해,
 
혹은 비잔티움의 귀족과 귀부인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 노래하기 위해

황금가지 위에 앉혀 놓은 금박,
아니 황금 에나멜로 만든
그런 불멸의 형상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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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ling to Byzantium

1.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Those dying generationsat their song,
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
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
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
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
Monuments of unageing intellect.
 
2.
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
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
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
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
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
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
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
To the holy city of Byzantium.
 
3.
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
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
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
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
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
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
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
Into the artifice of eternity.
 
4.
Once out Of nature I shall never take
My bodily form from any natural thing,
But such a form as Grecian goldsmiths make
Of hammered gold and gold enamelling
To keep a drowsy Emperor awake;
Or set upon a golden bough to sing
To lords and ladies of Byzantium
Of what is past, or passing, or to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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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식민지인 아일랜드 땅에서 "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는 비잔티움으로 항해를 꿈꾸며 독립운동에 열심이었던 예이츠.
 천신만고 끝에 해방된 조국에서 독립의 기쁨을 맛보고 고위직 공무원까지 되어 우리에게 정의가 승리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2018-12-12

또 하나 갔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by Queen, Freddie Mercury.


또 하나 갔다. Another one bites the dust. 퀸의 노래가 귀를 때린다.

 본디 내용이야 갱들의 싸움, 아니 깽판을 치는 악당들의 노래라했다. 그런데 '서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게 다르다'는 말처럼 애꿎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생각하자니 세상 모두가 깽판처럼 보일 지경이다. 사람값 못하는 사람으로 버티다
 그냥 그렇게 흙바탕에 쳐박혀 죽어가는 사람들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은.. 어둠 속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발전소 근무자, 비정규직 그 젊은이의 처지가 자꾸 맴돌기 때문이다. 언제가 되야 사람으로 태어나면 당연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 살 수 있을까.. 이리 살다간 사람을 향해 총알 날아가는 소리가 오히려 즐겁게 들리는 그런 잔혹무비한 세상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않으리라고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견디다 못한 민초들의 혁명과 반란이 또 시작되기 전에..더 늦기 전에, 그리 험한 꼴 또 보기 전에 조금씩 양보하고 아쉽지만 합심해서 이 팍팍한 세상을 제대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그래서 프레디의 외침, 사람 죽는 게 신이 난다는 그 절규가 그저 즐거운 노래 가락으로만 머물 수는 없을까?

퀸의 노래("Another one bites the dust" 자막):
https://youtu.be/VYZ5n5FM9dg

노래 소개 및 가사 번역:
https://namu.wiki/w/Another%20One%20Bites%20the%20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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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one bites the dust 누가 먼지를 물었다.
 우리 말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된다 등에 쓰이듯이... '죽었다'는 의미의 매우 저급한 표현. 먼지를 입에 무는 것이나 눈에 흙이 들어가는 것이나 편안히 죽는 상황은 아닐 터이니, 명대로 살다 죽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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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에 끼어 사망한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4시간 방치
 
등록 :2018-12-1-12
 
 
 
사진: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자회견 참가 신청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 고용으로’,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인증샷을 찍은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9·10호기 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24)씨의 생전 모습.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 제공.)
 
24살 청년은 방탄소년단 노래를 즐겨 불렀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뭐든지 잘 먹었는데, 특히 치킨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청년을 두고 밝으면서도 조용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며, 열정이 넘쳤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 917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현장설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생애 첫 직장이었는데, 1년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조건이었다. 청년은 얼마 전 가족에게 힘들기는 한데 배우는 단계이니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청년 김용균(24)씨는 그러나, 밤샘 일을 하다 기계에 끼여 숨졌다. 11일 오전 320분께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 트랜스포머 타워 04(C) 구역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현장 점검을 위한 순찰 업무를 하던 도중이었다.
김씨를 발견한 동료 이아무개(62)씨는 경찰에서 전날 밤 근무에 투입된 김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 찾다 보니 기계에 끼여 숨져있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10일 오후 6시에 현장에 투입돼 11일 아침 730분까지 발전소 내부 4~5정도 거리를 혼자 걸어서 순찰하는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김씨는 밤 1021분 이씨와 한차례 통화했고 14분 뒤 사고 현장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걸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기계에 끼여 숨진 지 4시간여 만에 발견됐다.
 
365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화력발전소에서 김씨는 동료 11명과 함께 142교대로 일했다. 주간-야간-휴무-휴무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주간일 때는 아침 730분에 출근해 저녁 630분까지 11시간, 야간일 때는 저녁 630분에 출근해 13시간이 지난 다음 날 아침 730분에 퇴근한다. 근무 시간에는 휴식이 없다.
김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알려졌다. 비정규직들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을 연 비정규직 그만 쓰개!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지난달 12일부터 나흘간 문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청와대와 대검찰청, 국회 앞 등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했다.
 
자신을 “20년째 전기를 만드는 노동자라고 소개한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이태성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오늘 동료를 잃었다. 24살 꽃다운 청년이 석탄 이송하는 기계에 끼여 머리가 절단났다며 울먹였다. 이씨는 또 지난 1018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규직 안 해도 좋다.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 그런데 오늘 또 동료를 잃었다. 이제 더는 내 옆에서 죽는 동료를 보고 싶지 않다하청 노동자이지만 국민이다. 제발 더 죽지 않게 해달라. 그 길은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처참한 죽음과 이후로도 그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오랜 시간 방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자회견장은 금세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 더구나 김씨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 참가 신청을 위해 2달 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 고용으로’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씨에 이어 발언자로 나선 케이티(KT) 외주업체 노동자 김철수씨는 지금 이야기를 듣고 나도 똑같은 상황에서 차에 치여 맨홀에 빠져 죽은 동료가 생각났다. 내 손으로 밧줄 끌어 올려서 119타고 대학병원에 갔다. 응급실에서는 현장 즉사라는 판정을 받았다“(회사는 동료를) 산재처리 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처리해 숨기려다가 변호사 통해 산재처리 한 경험이 있다고 말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 발생한 케이티 아현국사 화재 이후 선로를 복구하는 작업은 모두 김씨와 같은 외주업체 직원이 맡고 있다. 하지만 수당은 수년째 오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통신선로 까는 일만 수십 년 했다. 일당이 14만원이다. 우리 인건비는 왜 안 오르는지 이해가 안 간다집에 돈 150만원 가져다주면 생활이 안 된다. 더이상 빚도 낼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찾았던 노동 현장인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도 무대 위에 올랐다. 그는 “512일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와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다시 상기시키고 싶다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절박한 심정이다. 한낱 꿈, 희망이 아닌 절박한 심정이, 우리의 마음이 전해지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길 바란다 말했다. 이 밖에도 기간제 교사, 화물차 운전 등 비정규직을 대표해 기자회견에 나선 노동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겪고 있는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호소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첫 업무지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였다. 2017512일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던 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희망을 꿈꿨다. 16개월이 지난 오늘, 인천공항에서는 그 어떤 비정규직도 정규직이 되지 않았다 밝혔다.
강릉선 케이티엑스(KTX) 열차가 선로를 이탈했던 8일 오전 735분 가장 당황한 것은 열차에 타고 있던 승무원이었다. 누구도 이들에게 현재 어떤 상황이고, 무슨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승무원들은 철도공사가 아닌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이었기 때문이라며 케이티엑스 선로이탈과 케이티 통신 대란을 비롯한 연이은 사고의 다른 이름은 위험의 외주화다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은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과 사용자 처벌,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파견법·기간제법 폐기 등을 요구하며 문 대통령에게 청와대든 광화문 광장이든 티브이(TV) 토론이든 어디서도 좋으니 한 번 만나달라고 요구했다.
 
김씨의 죽음도 한국의 어느 노동 현장과 마찬가지로 한국서부발전이 단가를 낮게 제시하는 하청업체에 일을 맡기면서 21조 업무를 돌리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동료 노동자들은 입을 모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 지회가 이날 공개한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주요 안전사고/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2010년부터 8년 동안 이 발전소에서는 모두 12명의 하청 노동자가 추락 사고나 매몰 사고, 쇠망치에 맞는 사고나 대형 크레인 전복 사고, 김씨와 같은 협착 사고로 숨졌다. 부상자도 19명이었다. 김씨와 함께 일한 한아무개(26)씨는 컨베이어벨트가 힘이 세니까 기계에 몸이 달려가는 일이 종종 있는데, 21조로 일하면 안전 스위치가 있어서 다른 동료가 줄을 당기면 기계가 멈춘다순찰할 때 한 사람씩만 들어간 게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과 노동당국도 회사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김씨가 1인 근무를 하게 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쪽은 경찰에서 근무 매뉴얼에 21조 근무 원칙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서부발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오버홀(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진행하는 계획 정비) 중에는 21조를 반드시 구성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상 운영 중 순찰은 혼자 하게 되어 있다우리가 그 제도를 만든 건 아니고 이 업무를 책임지고 하는 한국발전기술이 그렇게 운용한다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하루 근무자가 12명이지만, 운전원 등을 제외하면 실제 현장 근무 인원은 6명에 불과해 관례적으로 1인 근무를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 근무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법 위반 여부 등도 가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환봉 선담은 최하얀 기자, 태안/송인걸 기자 bong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3971.html?_fr=st4#csidx1d35caf7e53dc639116643a694400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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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살인자 체제  등록
2018-12-13      박권일  사회비평가

 사람을 갈아 넣을수록이윤이 발생하는데, 기업 입장에선 안 하면 바보. 대한민국의 자본시장 및 노동시장은 투자자-살인자 체제. 이윤을 추구할수록 사람을 죽이게 되고, 살인을 피하려고 하면 거꾸로 기업이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다.

두 개의 뉴스가 머릿속을 헤집는다. 먼저 읽은 뉴스는 ‘45천억 회계사기 삼성바이오 상장 유지결정이었다. 한국거래소는 단 한 번의 회의로 상장 유지를 결정했다고 했다. 거래 정지가 장기화되면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이 강해진다는 점, 유지 결정은 단순히 심사기준에 따른 것이며 분식회계의 면죄부는 아니라는 점 등 친절한 해설도 붙었다.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긴 했다.   상장 폐지가 당연하다는 전문가는 제법 있었지만 실제 그리될 거라고 전망한 이는 드물었다. 2015년 터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는 임원들의 횡령 혐의까지 겹친 최악의 기업 비리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상장 폐지를 피했다. 당시 주식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이들 사건이 언급될 때 단골로 소환되는 사례가 있다. 그 유명한 엔론 사태다. 미국 최고의 에너지 기업으로 꼽히던 엔론의 회계부정이 밝혀지자, 상장 폐지는 물론 회사 자체가 파산했다.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스킬링은 징역 244개월 형을 받아 감옥에 갔고, 주주와 채권자들도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미국 자본시장의 이런 대처를 보면 왜 한국 자본시장이 신뢰는 고사하고 조소의 대상인지 알게 된다.

다른 하나의 뉴스는, 12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젊은 하청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참혹하게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사실은 같은 날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기자회견 자리에서 처음 알려졌다. 정규직이 21조로 하던 야간업무를 하청노동자 혼자 수행하다 일어난 참변이라는 점에서, 2년 전 구의역 19살 노동자 사망사건과 판박이다.

삼성바이오 상장 유지와 젊다 못해 어린 노동자의 죽음. 상관없어 보이는 두 사건은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그리고 이 동전은 체제의 본질을 외설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대기업, 주주의 이익은 어떤 경우에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익은커녕 생명조차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인력 감축과 외주화가 발표되면 주주·투자자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민영화하고, 노동자를 자르고, 하청을 늘려갈수록 기업의 주가는 상승한다. 물론 기술혁신과 윤리경영으로 기업 가치가 올라가고 그것이 주식에 반영되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런 기업은 유니콘처럼 희귀하다. 한국에선 특히 그렇다. 성장과 이윤 확보는 오랫동안 인력 감축과 외주화의 다른 말이었다. 수많은 노동자가 절체절명의 위험 속에서 일하고, 때로 목숨까지 잃었다. 이것이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번드르르한 용어의 실상이다.

사람을 갈아 넣을수록이윤이 발생하는데, 별다른 사회적·법적 규제도 없으니 기업 입장에선 안 하면 바보. 만약 주식시장에서 잘나가는 어떤 상장기업이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화하고 안전관리 비용을 크게 늘리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고 치자.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주주들이 회사로 몰려가 농성할지도 모른다. “왜 쓸데없는 짓 하냐고 말이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자본시장 및 노동시장은 투자자-살인자 체제’(investor-murderer system). 이윤을 추구할수록 사람을 죽이게 되고, 살인을 피하려고 하면 거꾸로 기업이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이 체제가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1981년 제너럴일렉트릭 수장이 된 잭 웰치의 전설적인 연설(‘저성장 경제에서 기업의 성장’) 이후, 경영진이 주가와 배당 같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주주가치경영 원칙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그러나 웰치는 28년 후인 2009, 주주가치는 가장 어리석은 아이디어였다고 공개 반성한다. 엔론 사태와 금융위기 등을 겪으며 미국 사회는 단기실적주의가 기업의 발전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해가 된다는 깨달음을 점차 공유하게 됐다.

둘째, 이 체제가 얼마나 부도덕한지를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입법·사법·행정·언론권력이 모두 썩었지만, 제일 썩은 게 시장권력이다. 시장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소소하되 확실한 행복은 누군가의 목숨 건 노동과 끔찍한 죽음으로 지탱되어온 것이다. 이 사실을 좀 더 엄중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구조적인 부정의에 대한 집단적 책임의식이야말로 사회를 더 낫게 바꾸는 싸움에 필수불가결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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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4346.html#csidx3c54ea88474ac5493402e85711627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