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신 묵념으로 부탁?
절을 대신하여 라는 뜻이라면, '대신'은 의존명사로 앞 단어와 띄워써야 합니다.
'절 대신' 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대신'을 앞 단어와 붙여쓴 ‘절대신 묵념’이란 글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는 신을 위해서 조문객에게 묵념을 강요하는 압박의 뜻이 됩니다.
말 장난 같이 보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장난이 아니라, 인간적 존재를 위협하는 심각한 폭력일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글을 빈소 앞 뒤에 붙인 사람 역시, 장난이 아니라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으리라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절은 예의로써 중요하지만, 종교적 신념이나 개인적인 이유로 절을 안 해도 무례는 아니기에, 절은 순수한 개인적 결정 영역으로 남습니다. 그런데도 고인을 위해 절을 하겠다고 들어선 조문객 앞에 이런 문구가 떠억 걸려 있다면 무례를 넘어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경고를 보고도 굳세게 엎드려 절을 하던 조문객이,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지가 궁금합니다.
그 반대로 어느 상가에 갔더니 '묵념 대신 절을 부탁드린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면, 이를 무시해 버리고 절을 하지 않고 그냥 목례만 하고 돌아서 나오려면 뒷골이 뜨뜻해지지 않을까요?
헌법에 명시된 종교와 신앙의 자유는 어떤 종교를 믿는 것 뿐 아니라, 그런 종교를 믿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합니다.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던 예수의 황금률은, 누구든 동의하는 만고의 진리입니다. 2천년전 예수가 그런 깨달음을 성경에 문자로 명토박아 놓은 이유가 혹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셈은 아니었을까요?
진정한 신앙과 믿음은 강요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보여져야 되는 것이며, 아무리 그래도 그런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믿음에서 확실히 배제되는 자유가 인정되야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논리가 문명국가의 헌법에 명시된 종교와 신앙의 자유의 근본 취지 일 터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존중받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믿음도 존중해야 도리이고 그것이 사람사는 세상의 바탕입니다. 서로 다른 믿음을 가졌더라도 기본적인 예의를 공유하며 평화롭게 살면 참 좋겠습니다.
"교회는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만 진정한 교회다." (디트리히 본회퍼)
아멘, 인시알라, 나무아미타불.
주.
디트리히 본 회퍼:
“미친 운전자가 행인들을 치고 질주할 때,
목사는 사상자의 장례를 돌보는 것보다는 핸들을 뺏어야 한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던 사기꾼 전광훈이 오용하면서 유명해진 이 말은, 디트리히 본 회퍼의 외침입니다. 회퍼는 반나치 운동을 펼치다가 히틀러 암살사건 (발키리 작전)이 발각되 사형당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진심으로 헌신했던 목사였습니다.
나치의 바이에른 플로센뷔르크(Flossenbürg) 강제수용소에서 사형 당한 그의 묘비에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