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당사자인 프레디에게 죽은 그 아버지가 누구냐고, 무슨 의미냐고 물었지만,
각자 알아서 생각하란 애매한 답이 있었을 뿐.
하기야 부모 중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은 사람은 수도 없다. 뭐 어머니라고 예외는 아니겠지만, .오죽하면 이런 노래가 다 있을고.
태어날 때부터 아비인 사람은 없을 터이니, 아비 노릇하기도 연습이 필요할 터인데 대가족 제도에서야 어찌 어찌 어설픈 롤 모델이라도 있었다지만, 이제는 그마저 없으니 제멋대로 아이를 기르는 애비 애미가 점점 늘어나고...
좋은 의미로야 아버지를 넘어서는 아들, 바로 그 승어부 (勝於父). 그리고 그런 아비가 사라져야 진정한 파라다임의 전환이 일어나 이 팍팍하고 답답한 세상이 변화하는 법.
그래서 그런지 퀸의 부친 살해 노래는 상식과 예상을 뛰어넘어 가히 진경에 이른 곡이라는 평가가 있다.
태생, 성장, 집안 내력, 학창시절, 양성애, 에이즈 등 어디 하나 만만치 않은 이력을 지니며, 온갖 편견과 저항을 견디거나 만들어 내었던 프레디다운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보헤미아 사람의
광시곡.
그래 이 곡은 미친 노래, 미친 체코의 방랑객, 집시의 외마디다. 세상을 이대로는 묵과 할 수 없어 목놓아 부르는 탈출의
노래.
어쩌면...
봉불살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던 승가의 죽비소리가 프레디를 흔들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시인 신동엽의 말처럼 껍데기는 가야할 운명이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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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 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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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엽이 외친 이 시 제목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였다. 오독된 4월 혁명 앞에서 좌절하며, 군사 독재에게 민주주의를 빼앗긴 서러운 민중의 외침.
그래 하늘을 제대로 본 사람은 여태까지 없을 터이다. 암흑으로 조용하고 무섭기까지 한 저 우주.
저 광막한 하늘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나아갈 운명이다.
어쩌면..
한 알의 밀이 썩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며 의로운 죽음을 찬미했던 저 2천년전 선지자의 운명.아버지를 부르며 울부짖다 마흔 다섯에 세상을 등진... 기구한 재산가 프레디는...
역시 아버지의 뜻을 외치며 서른 남짓 나이에 하늘로 돌아간... 헐벗은 십자가 위의 선지자를 반갑게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관련:
노래: 현장 녹화본
부모를 사랑하지 않을 권리 정여울
등록 :2018-10-11
마틸다
로알드 달 지음,
김난령 옮김/시공주니어(2018)
아주 어린 시절,
우리에게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더라면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에게 어떤 폭언도 하지
않고,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너는 나처럼 살면 안 된다’는 가슴 아픈 조언도 하지 않는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거침없고,
원한 없고,
후회 또한 덜하지 않았을까.
로알드 달의 천재적인 캐릭터 마틸다는
정말 그런 선택을 한다.
‘사랑하지 않는 부모를 버릴
권리’를 이 천재 소녀 마틸다는 거침없이 실현한다.
마틸다는 학대받는 어린이들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부모에 대한 증오를 대변하는 살아 있는 증인이다.
마틸다는 정말로 자신을 괴롭히는 부모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양육권자로
선택한다.
우리가 내심 표현하지 못하고 숨기는 부모에 대한
원망,
부모가 나에게 잘못을 해도 ‘나를 키워주셨으니까’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두려움과
분노까지,
마틸다는 거침없이 표현한다.
마틸다는 다섯 살 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과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읽었으며,
가난하지만 지혜롭고 총명한 하니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따스한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다.
“엄마는 제가 뭘 하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요”라는 마틸다의 고백은 읽을 때마다 눈물겹다.
마틸다는 책을 읽음으로써 세상 모든 슬픔을
잊고,
책을 친구로 삼음으로써 외로움을
달래며,
책 속의 지혜를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를 이겨낸다.
트런치불 교장선생님의 독재로 얼룩진 학교에서
마틸다는 자신의 또다른 재능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손을 대지 않고도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초능력이다.
마침내 이 초능력은 마틸다보다 더 심하게 학대받으며
자라난 또 하나의 피해자,
하니 선생님을 교장선생님의 폭력과 압제로부터 구해낼
수 있게 만든다.
훔친 자동차의 번호판을 몰래 바꾸어 버젓이 중고차시장에 내놓아 떼돈을 번
아버지의 사기극이 들통 날 위기에 처하자 부모는 국외 도피를 결심하고,
마틸다는 겨우 다섯 살에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마틸다는 하니 선생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저는 여기서 선생님과 살고
싶어요.
제발 여기서 선생님과 살게
해주세요!”
마틸다가 친부모가 아닌 하니를 보호자로
선택하는 것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마틸다의 부모가 딸이 자신들이 아닌
타인을 선택하는 것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마틸다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책 읽는 소녀 영웅 마틸다의 유쾌한
복수극,
그것은 여전히 아동학대가 버젓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현대사회를 향해 던지는 촌철살인의
독립선언이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부모님일지라도,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사탕발림으로 당신을 향한 모든 억지와 강요와 폭력을
정당화한다면,
분명히 저항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바로 그런 부모들의 무시무시한 정신적 통제 때문에
진정한 영혼의 독립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틸다,
그 이름은 ‘나를 키워준 부모이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희망과 용기의
시한폭탄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를 향해 꾸역꾸역
‘그래도 훌륭한 자식’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간힘을 벗어던지자.
그러면 비로소 나 자신의 삶을
위해 거침없이 나아갈 용기가 샘솟기 시작할 터이니.
정여울 작가
“모든 정신분석가는 자신의 내담자를 가장 훌륭한 부모로 만들려고
한다.
왜냐하면 분석가 자신이 훌륭한 부모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필자가 분석을 받을 때 나의 분석가가 세션 중에 한
말이다.
반박할 도리가 없는 말이었다.
나 또한 훌륭한 부모를 가져본 적이
없다.
나 같은 그저 그런 분석가뿐 아니라,
카운슬링(Counseling)이라는 단어를 창안해낸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 칼 로저스도 그랬던 것
같다.
심리학자로서 큰 업적을 이룬 그가 말년의 한
인터뷰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지금 당신의 이론과 업적을 알게 된다면 뭐라고
하실까요?’라고 물은 기자에게 “그 사람은 들으려 하지도 않을걸요”라고 답했다 한다.(그래서 로저스가 경청을 그리도 중요하게 강조했나 보다)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고향을 지나다가 그의 집에 들러 어머니에게 인사드리고
당신의 아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써서 크게 성공했다고 하자,
마르크스의 어머니는 “제 자본이나 잘 돌보지”라고 비아냥댔다는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내담자를 모두 훌륭한 부모로 만들려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상담자들과 마찬가지로 내담자들 역시 훌륭한
부모를 가져본 적이 없다.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자식들이 그런
동일한 부모로 위치 이동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는
가족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그 연쇄를 깨트려 훌륭한 부모로 성숙할 수 있도록
함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이것은 상담자와 내담자로만 국한할 일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논의에서 자유로운 부모와 자식은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 같다.
훌륭은 고사하고 부모의 어떤 행위와 태도
때문에 평생의 고통을 적어도 하나씩 감당하며 사는 자식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신분석가,
상담사들만큼 이런 부모의 독선과
폭력,
만행과 무지함에 대한 이야기를 직업으로 듣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라는 의문을 수도 없이 자문하고 또 질문받기도 했다.
질문의 장대함에 견줘 대답은 옹색해 보일지 모르지만
필자는 이에 대한 몇가지 답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이것이다.
신경질(짜증,
화)
내지 않는
부모다.
자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기고 온갖 악감정을
쏟아내는 어머니,
자신의 좌절과 열등감을 자녀를 폭행함으로 푸는
아버지의 얘기는 인류의 고전이다.
아버지를 고발한 글로 유명한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보면 그는 아버지의 무지와 무례함,
무식과 우악스러움에 진절머리를
쳤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아버지에게 가장 상처받고 평생
‘변신’의 환상으로 숨어든 이유는 아버지의 화와 신경질에 영혼이 화상을 입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에는 대표적인 거짓말이 몇가지
있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라는 말도 그런 거짓말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왜 화와 짜증은 아이들에게 다
부리는가.
밖에 나가서는 좋은 인간인 척은 다
하면서!
사랑한다면,
행여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식들에게
신경질,
짜증,
화는 가급적 내지 말자.
당신의 자식들이 카프카처럼 영혼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아들러가 말했다,
격려하기의 절반은 좌절을 방지하는 데
있다고.
좋은 부모 되기의 절반은 신경질 부리지 않음으로
완성될 수 있다.
모든 신경증은
대물림된다.
자식은 부모의 증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