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5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위험하다.. 겨울날 춥지 않은 사람도 위험하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위험하다."
자신의 생각없이 무리 속에 섞여 따라가며 사는 일상이.. 진정한 삶과는 다른 길이라고 읽어 봅니다. 오늘도 혼자 벽을 오릅니다. 고독이 곧 삶인 것을 알기에.
'추운 날 춥지 않은 사람은 위험합니다.'
세상 모두가 추운 게 정상인 이런 날씨에 추운 줄 모르고 지낸다면 이상하지 않은지 반문할 일입니다. 이런 날 추위를 모른다면..집과 사무실에 난방이 과다하거나, 아이스크림이 생각날 정도로 후덥지근한 실내에만 머무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지 궁금해야 할 터입니다. 이 혹한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능력이 부족하고 게을러서 그럴 것이라는 선입감에 취해 자신의 처지가 당연하다 느낀다면 몹시 위험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직전, 귀족들이 궁 밖에서 들려오는 고난과 궁핍의 아우성을 흘려 들으면서도, 와인잔 부딪히며 여유롭던 바로 그런 자리에 앉아있던 그같은 폭풍 전야는 아닌지 의심해야 정상입니다. 그러기에 추운 날 춥지 않다면 이상한 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추운 날은 모두가 추워야 정상입니다. 비록 따뜻한 실내와 승용차 사이를 잠시 뛰어 이동하며 선선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는 이라 할지라도.. 오늘 같은 날은 추워야 정상입니다. 제아무리 무서운 동장군 앞이라해도 서로 보듬고 함께 느끼는 추위는 무섭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추운 사람들, 청소, 배달, 영선, 경찰, 군인,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거리에서 부대끼고 있는 이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합니다. 어둠 속 새벽이 그러하듯이 이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추운 날은 추워야 사람입니다. 그래야 봄날이 따뜻합니다.
2018-01-04
1987, 박종철, 이한열: 그 날은 꼭 오리라.
날이 간다 잊히랴
세월 간다 잊으랴
그대의 꿈, 민주주의.
1987년 1월, 박종철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물고문 끝에.. 목졸려 죽었습니다. 그 해 7월, 박종철을 살려내라던 이한열은 최루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87년 6월항쟁의 발단과 전개가 되었습니다. 종철은 영남 출신, 한열은 호남 출신으로 어떤 이는 이제 민주주의의 제단 앞에서 지역감정의 망령은 사라졌다고 흐느꼈습니다.
그러나 속이구라 불렸던 노태우의 629 선언을 시작으로 김종필의 흑심에 김영삼의 야심이 더해지고, 김대중의 자만이 가세하면서 이 나라의 민주화는 멀어졌고 다시 젊은이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야합의 결실로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급기야 1997년 IMF 사태를 불러왔고, 또 다시 우리는 나라꼴이 막장이란 것을 깨닫고 금반지를 모으며 수습에 나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김대중, 노무현정권에서도 민주주의는 공허한 구호 수준 에서 난무했을 뿐입니다. 결국, 이명박, 박근혜정권의 국정 농단, 그리고 지난 겨울 저 춥고도 막막했던 촛불시위를 거치고 나서야 실종된 민주주의를 다시 호명하고 있습 니다.
1987년의 젊은 투사들의 목숨을 토대로 발아한 오늘의 민주주의에 작은 부채의식 이라도 잊지 않았다면, 잠시 관람석에 앉아 그대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앞으로 또 다시 민주주의를 목놓아 부르며, '이게 나라냐'고 외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박종철과 이한열. 민주주의의 불꽃 앞에서 영호남이 무슨 대수냐고 함께 떨쳐 일어났던 그 때의 각오가 지금 영화가 되어 우리 앞에 서있습니다.
누군가는.. 언젠가는 꼭 한번 있게 될 펑펑 울고 싶을 그 때를 미리 생각해 선불로 맘껏 울 수 있는 자리라 했습니다. 돌아온 그 시절 앞에서 그동안 무거웠던 부채, '왜 대단했던 당신은 가고 보잘 것없는 나는 살아 남았는가? ' 이런 의문 속 빚을 이제라도 벗어놓고 일어설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관심하면 정의도 없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도 당연히 없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23563.html
배우 강동원이 받은 선물, 김장김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6102.html?_fr=st1
강동원의 눈물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108500004#csidx3ec35b94bbdacd8b9ebcd20d4748c8f
세월 간다 잊으랴
그대의 꿈, 민주주의.
1987년 1월, 박종철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물고문 끝에.. 목졸려 죽었습니다. 그 해 7월, 박종철을 살려내라던 이한열은 최루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87년 6월항쟁의 발단과 전개가 되었습니다. 종철은 영남 출신, 한열은 호남 출신으로 어떤 이는 이제 민주주의의 제단 앞에서 지역감정의 망령은 사라졌다고 흐느꼈습니다.
그러나 속이구라 불렸던 노태우의 629 선언을 시작으로 김종필의 흑심에 김영삼의 야심이 더해지고, 김대중의 자만이 가세하면서 이 나라의 민주화는 멀어졌고 다시 젊은이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야합의 결실로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급기야 1997년 IMF 사태를 불러왔고, 또 다시 우리는 나라꼴이 막장이란 것을 깨닫고 금반지를 모으며 수습에 나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김대중, 노무현정권에서도 민주주의는 공허한 구호 수준 에서 난무했을 뿐입니다. 결국, 이명박, 박근혜정권의 국정 농단, 그리고 지난 겨울 저 춥고도 막막했던 촛불시위를 거치고 나서야 실종된 민주주의를 다시 호명하고 있습 니다.
1987년의 젊은 투사들의 목숨을 토대로 발아한 오늘의 민주주의에 작은 부채의식 이라도 잊지 않았다면, 잠시 관람석에 앉아 그대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앞으로 또 다시 민주주의를 목놓아 부르며, '이게 나라냐'고 외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박종철과 이한열. 민주주의의 불꽃 앞에서 영호남이 무슨 대수냐고 함께 떨쳐 일어났던 그 때의 각오가 지금 영화가 되어 우리 앞에 서있습니다.
누군가는.. 언젠가는 꼭 한번 있게 될 펑펑 울고 싶을 그 때를 미리 생각해 선불로 맘껏 울 수 있는 자리라 했습니다. 돌아온 그 시절 앞에서 그동안 무거웠던 부채, '왜 대단했던 당신은 가고 보잘 것없는 나는 살아 남았는가? ' 이런 의문 속 빚을 이제라도 벗어놓고 일어설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관심하면 정의도 없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도 당연히 없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23563.html
배우 강동원이 받은 선물, 김장김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6102.html?_fr=st1
강동원의 눈물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108500004#csidx3ec35b94bbdacd8b9ebcd20d4748c8f
자본주의는, 악마가 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
공산주의는,
천사가 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세상이고
자본주의는,
악마가 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http://www.hani.co.kr/arti/cartoon/thinking/825963.html
<복식부기에 기반한 자본주의 원칙: 가는 정은 있어도 오는 정은 없다?>
돈은 자본주의 거래의 핵심이지만 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효도, 우애, 우정에는 돈이 개입해서는 안되지만, 불가피하게 돈이 오고갈 필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핵심을 피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거래가 더할 수 없이 가까운 사이에 폭탄이 되면 안될 터입니다. 따라서 가는 정은 있어도 오는 정은 없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돈 거래가 이뤄질 때는 차용증같은 계약서와 담보물이 필수입니다. 자본주의의 회계원칙, 복식부기의 근간인 이런 대차거래가 따르지 않으면 돈거래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원칙을 어기고 잠깐 방심한 채 돈을 주고 받았다가 패가 망신하고 부모자식, 절친한 형제자매, 죽마고우, 그리고 이웃을 잃어버린 경우는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친구나 형제끼리 돈을 빌려 주었으면 그건 반환기약도 없고 독촉할 의사도 없는 선물같은 것이 되어야 할 터이고, 자식에게 아무리 큰 돈을 물려주었어도, 부모는 바로 잊어버릴 일입니다. 그러나 선물대신 건넨 돈도 아니고, 물려준 그 돈을 잊을 수도 없다면, 차용증과 담보는 필수입니다.
만약 이도 저도 어렵다면, 가까운 사람, 부모 자식, 형제자매, 친한 벗과의 돈 거래는 절대 안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자본주의사회는 그런 곳입니다. 돈을 잃고 게다가 사람까지 잃기 싫다면, 서류와 담보없이 꿔 준 돈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혹시 새해부터 이 삭막한 자본주의사회가 달리 바뀐다면 또 모를 일이긴 합니다만.
■추신: 삼성의 이재용이 최순실, 박근혜에 준 400억은 뇌물이 아니랍니다. 하긴 300조에 이른다는 삼성을 상속세 16억으로 물려받은 행운아 이재용이고보니 이딴 푼돈은 관심이 없었을 것이라는 나름의 상식을 기반으로 그를 풀어준 판사 정형식의 판결을 존중합니다. 자본주의의 통념을 뛰어 넘는 통큰 사나이 이재용.. 퇴임후 앞길이 탄탄할 판사.. 부러워하면 지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기가 막힌 저들만의 상식을 그대로 놔두면 자본주의, 아니 나라가 무너질 겁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0866.html
2018-01-01
새해 안부와 함께 여전하시기를 빕니다.
SVBEEQV.
Si vales bene est, ego quoque valeo.
본문은 이렇게 줄여서도 사용됩니다.
Si vales bene est, ego valeo.
영어 초역은 이렇습니다.
If you are well, I'm well too; If you are well, I am glad.
(si=if vales=well bene est=It's good ego=I quoque=and valeo=well)
한글 초역:
'건강하시다면 참 좋겠습니다. 저는 별고 없습니다.'
의미를 곁들인 의역:
'여전하시지요, 덕분에 저는 별고없습니다. '
또는 '여전하시기를 빌며, 안부 올립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 유명한 편지 서두는 오히려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의 셋째 편지)
"SVBEEQV"의 시작은 키케로(기원전 106~43)라 합니다. 시저와 동시대의 인물로 예수가 태어나기 한 세기 전에 살았던 정치 웅변가 겸 문장가로 700통이 넘는 편지가 명문으로 남아있는 대가입니다. 그의 문장을 본딴 편지투가 유행하던 로마시대가 무려 2 천년 전 일인 데 요즘와서 이 상투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라틴어를 전공한 한 신부의 수필이 유행하더니, 급기야 시사 평론가 손 아무개가 클로징 멘트로 한번 쓰자 나름 인기가 상승 중입니다.
그러나 이런 지극히 상투적이고 고답적인 편지투는 기원후 90년 경에 사도 요한이 기록한 편지, 요한 삼서에 이르면 결이 달라집니다. 100여전 부터 사용되던, 형식이 앞서던 키케로의 편지투가 매우 실질적인 안부로 이렇게 풍성하게 변화합니다. 그저 안부를 묻고 서로 감사하며 살자던 수준의 문장 차원이 고양되어 일상의 안부를 넘어 이리도 힘든 인생길을 서로 격려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셈입니다.
아니 어쩌면 정복자 로마인의 평안한 일상과 대비되는 식민지 피지배자, 억압받는 이단이었던 기독교도들의 상호부조 정신이 보다 합리적이고 일상적인 편지투로 발전한 것이라 짐작합니다.
물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히브리어는 성경의 정전이 되었고, 그에 빌붙었던 라틴어가 엉뚱하게도 득세하며 추기경들의 편지투 거들먹거림은 중세 암흑시대를 관통하는 암적 존재로 변질됩니다. 500년전 루터의 종교개혁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이런 고색창연한 상투어 사회가 유럽의 중심이었으리라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이 편한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과연 나 아닌 사람의 안부와 안녕을, 사도 요한이 그랬듯이 그토록 절실하게 묻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진정 키케로와 요한을 거쳐 암흑시대를 넘어 발전된 문명의 길을 걸어 왔다지만, 과연 진정한 공동체 정신, 이웃의 안부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공감하는 보다 고상한 인간정신의 승리단계에 도달한 것일까요?
새해 벽두에 다시한번 모두의 안녕과 건안을 빌며, 아직 연하장에 답장없는 지인과 이웃들에게 안부를 한번 더 전해 봅니다. 눈코가 서로 볼 새없이 바쁘고 몸이 목화솜처럼 고단해도, 짧은 소식 한 줄이 서로를 묶어 준다는 말 잊지 않으셨기를 빌며, 해를 넘겨서 안부없는 분들께서도 다들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SVBEEQV.
2017-12-29
공감하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일까?
공감의 법칙…배우고 투쟁하고 노력하라 / 최정규
타인의 고통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1주기였던 지난 5월28일 오후 사고 현장인 서울 광진구 구의역 9-4 승강장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케이크와 추모의 꽃 등이 놓여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구상 가장 부자 중 한 사람인 빌 게이츠가 십수년 전 미국 공영방송의 "지금은"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사재를 털어 ‘빌과 멀린다 게이츠’라는 이름의 재단을 만들었고, 국제적 보건 의료와 빈곤 퇴치에 막 나섰을 때의 일이다. 프로그램 진행자인 빌 모이어스는 빌 게이츠에게 “부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권력과 특권의 상징과도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난한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빌 게이츠는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처지에 자신을 놓고 그들의 어려움을 내 것으로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매일매일 전쟁 같은 삶의 모습을 전해들으면서, 그들의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답했다.
누군가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나를 놓아본 후, 내가 그러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그 고통이 어떨 것인가를 상상하며, 그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감의 원리이다.
나에게 십만원이 있다고 하자.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먼저 그 돈을 나를 위해 쓴다고 해보자. 친구와 함께 멋진 저녁을(간단한 술 한잔을 하면서) 먹을 수도 있고, 전부터 사고 싶었던 티셔츠와 반바지 한 벌을 살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읽고 싶었던 책 몇 권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십만원을 나를 위해 쓸 때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나열해보고, 이 중 가장 가치롭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나 골라보자. 그리고 그렇게 돈을 씀으로써 얼마나 내게 만족을 줄지를 생각해보자.
이번에는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들을 생각해보자. 이번 선택지들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십만원을 쓰는 경우들만을 포함시켜보자. 예를 들어, 부모님 생신 선물을 살 수도 있고, 갑작스레 집안 사정으로 등록금을 마련하는 데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나중에 갚아라”라는 말을 하겠지만) 쓸 수도 있을 것이며, 시리아 난민들을 돕기 위해 혹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돕는 곳에 그 돈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지들 하나하나에 대해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만족을 줄지를 생각해보자.
약간의 계산으로 둘 사이에 만족도를
비교해보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돈을 써서 그의 고통을 경감시켜주거나 혹은 그의 행복을 증진시켜줄 때 그로부터 나 스스로가 얼마나 만족하는지의
정도를 Y라고 하자. 그리고 그 돈을 오로지 나를 위해 썼을 때 내가 얻게 되는 만족감의 크기를 M이라고 하자.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계산했다면 남을 위해 십만원을 썼을 때 내가 얻는 만족감 Y가 나를 위해 써서 얻은 만족감 M보다 큰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남보다 나 자신이 더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행복이 내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경우 Y값은 0일 것이다.
어떤 선택지에 대해서는
타인의 행복으로부터 내가 얻는 만족감 Y가 그 돈을 나를 위해서만 썼을 때의 만족감 M보다 클 수 있는데(적어도 한두 개는 그런 경우가 나올 것이다), 그런 경우 우리는 헌혈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며, 혹은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를 위해 기부를 하게 된다. 내가 한번도 보지 않았던 생면부지의 누군가의 행복을 놓고 위의 계산을 했는데, Y가 M보다 크다면 무조건적인 이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 희생의 크기에 비해 타인이 얻게 되는 이득의 크기가 더 크다면, 타인의 고통을 보고 연민을 느끼는 것을 넘어, 내게 (조금) 손해가 되더라도 그를 돕기 위해 나선다는 말이다.
이 두 수치의 크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많다. 우선, 같은 십만원이라도 그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그 돈은 다른 가치를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꽤나 넉넉한 반면 내가 고려하고 있는 상대는 비참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고
해보자. 그런 경우라면 십만원이 나보다는 그에게 더 가치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극단적으로 비교하자면, 그 돈은 때로는 죽어가는 상대방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금액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 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 액수가 작게 느껴지는 경우를 가리켜 소득의 한계효용이 체감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소득재분배를 옹호하는 강력한 논거가 되기도 한다. (즉, 경제적 형편이 없는 사람의 한 푼이 형편있는 사람이 가진 두 푼보다 훨씬 값있게 쓰일 수 있으니,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더 많이 벌게 해주는 정책이 사회 전체의 복지 향상에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흔히 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 액수가 작게 느껴지는 경우를 가리켜 소득의 한계효용이 체감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소득재분배를 옹호하는 강력한 논거가 되기도 한다. (즉, 경제적 형편이 없는 사람의 한 푼이 형편있는 사람이 가진 두 푼보다 훨씬 값있게 쓰일 수 있으니,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더 많이 벌게 해주는 정책이 사회 전체의 복지 향상에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내가 고려하고 있는 상대방의 행복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도 중요할 것이다.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서, 상대가 같은 처지에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 상대가 내 가족 누군가인 경우로부터, 친한 친구인 경우, 그리고 먼 친구인 경우 그리고 생면부지의 상대인 경우까지를 각각 비교해보자.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혹은 고통을 경감해주기 위해서 내가 들인 조그만 희생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인지를
보면, 타인과 나와의 거리가 꽤나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를 돕는 것은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일로 다가오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어린아이가 말라리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직접적으로 체감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처지라면 상대보다는 나를 더 생각하기
마련이고, 그리고 같은 처지라면 상대방이 나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의 고통도 멀게 느껴지기 마련일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느끼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은 “공감”(혹은 “동감”)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들은 이 공감의 메커니즘이 가까운 사람들을 향해서는 잘 작동하지만, 거리가 멀어지면서 점점 약해질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가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내 것으로 느끼는 확장된 동감 메커니즘을 어떻게 갖게 되는지를
고민했다. 그래야 우리의 공감이 도덕감정이 되어 공평무사한 제도와 관습의 토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득의 한계 효용이 체감하는 경향.. 소득재분배 옹호하는 논거
되기도
나와의 거리 멀수록 고통 덜 느껴 .. 확장된 동감 메커니즘 과제 등장
나와의 거리 멀수록 고통 덜 느껴 .. 확장된 동감 메커니즘 과제 등장
진화생물학, ‘이타성이 진화에 유리’.. 인류사회 이타적 행위의 독특함은
생면부지에도 공감 확장한다는 점.. 의식적 노력과 투쟁의 산물일 수도
생면부지에도 공감 확장한다는 점.. 의식적 노력과 투쟁의 산물일 수도
내 유전자가 후대에
전달될 확률
한 단계씩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쩌다가 타인의 행복을 내 행복의 일부로 느끼고,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의 일부로 느끼면서 타인을 위한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지난 수십년간, 아니 더 길게는 찰스 다윈 때부터 진화생물학자들은 우리가 나 자신을 넘어서 타자의 행복을 고려하는 이유를 규명하고자
했다. 이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혈연관계에 있거나, 혹은 우리와 빈번한 교류를 하는 상대를 향한 이타성이 진화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움 주는 사람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에 비해 수혜자가 얻는 이득이 충분히 크다면, 혈연관계에 있는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내 유전자가 후대에 전달될 확률을 높일 수 있고, 빈번한 교류가 예측되는 사람을 도움으로써
내가 나중에 도움받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욘 엘스테르가 만들어 낸 예를 약간만 변형하여 적용해보자. 십만원을 어디에 쓸지를 고민하는데, 누군가가 와서 5만원짜리 약을 한 알 사라고 하면서 이 약을 먹으면 타인의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고
하자. 만일 십만원 중 오만원을 그 약을 사는 데 쓰면, 나머지 오만원은 내가 필요한 것을 사서 즐기면 그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약을 사서 먹을 것인가? 앞선 설명에 따르면 고통받는 타인이 나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나와 교류가 빈번한 사람이라면 그 약을 안 사먹는 게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으로 남는 게 더 나은 선택일 것이란 얘기다. 혈연관계에 있는 누군가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야 그를 도움으로써 내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고, 나와 빈번한 교류를 하는 상대방이 도움에 응답할 수 있어야 상대와 오래도록 교류하면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큼 내가 고려하는 타인이 가족의 일원인 경우, 혹은 나와 빈번히 교류하는 사람인 경우,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인 경우 공감의 존재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이타적 행위의 독특함은 그것이 방금 말한 좁은 범위를 훨씬 뛰어넘어 생면부지의 사람들한테까지
널리 행해진다는 것이다. 앞의 예와는 달리 그렇게 해서 이득일 게 없는데도 말이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까지 공감이 확대되는 과정은
그리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은 그렇게 되기까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혹은 부단한 노력과 투쟁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와 생면부지의 누군가가 느끼게 되는 고통이 나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은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고 같이 울기 시작하는 아이나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괜히 즐거워지는 식의 감정의
전이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전이를 넘어 공감에 이르기
위해서는...
①상대방도 나와 동일한 인격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고,
②나를 상대방의 처지에 놓으려는 상상력이
필요하며, 마지막으로
③상대방이 그 상황에서 느끼게 될 고통이 내가 그 처지에 있을 때 느끼게 될
고통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④나 역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그가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우연의 결과일 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역지사지가 가능해야 우리의
공감은 편협한 치우침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 처지에 놓였더라면 이런 어려움을 겪겠구나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면, 공감은 확장된 범위에서 이루어질 뿐 아니라 불편부당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1776년 7월4일 대륙의회에서 채택된 미국 독립선언문. “사람이라면 모두가 평등하며,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는 것이 자명하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여전히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위키피디아
공감의 제도적 토대가
가능하려면
공감의 범위가 확장되고 불편부당함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의 결과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래전이지만 사람들은 누군가가 사자에 물려 죽는 모습을 보고 환호하기도 했고, 요한 하위징아가 "중세의 가을"에서 말했던 것처럼 마을 축제 때 누군가를
잔인하게 처형시키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자백을 얻어내겠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고문이 금지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평등하며,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는 것이 자명하다고 선언했던 미국 독립선언문의 저자들은 그 평등한
“모두”의 범주에 노예를 넣지 않았다. 그리고 평등이라는 진리를 확인한 후에도, 끊임없이 재산이 있는지 없는지를 문제 삼았다. 배제된 이들도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인격이라고 전제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다. 타인을 나와 동일한 인격으로 보고 그의 처지에
나를 투영해보려는 노력이 계급을 넘어, 인종을 넘어, 그리고 성 차이를 넘어 인정되기까지는 그 자명한 진리를 선언한 이후에도 2백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야 했으며, 계급과 인종, 그리고 성별을 넘어 공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여전히 진행중인 셈이다.
2년 전 터키 해안에서 엎드린 채 죽어 있는 세 살짜리 시리아 어린이 사진 한 장이 전 세계 사람들을
울렸다. 쿠르디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는 내전을 피해 부모와 함께 터키에서 그리스로 향하던 중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물에 빠져 죽은 채
해안가로 떠밀려왔다. 우리는 쿠르디의 죽음을 애도했고, 많은 뉴스 매체는 쿠르디가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과 원인을 생생히 알려주었다.
미디어 덕분에 타인의
고통은 더욱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공감이 발동되고, 연민에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단계는 우리를 그들의 처지에 놓고,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들이 단지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하는 고통을 상상해내는
일이다. 나는 우연히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아남은 자임을 자각하고, 우연히 그곳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을 공감할 때 우리는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편부당성을 갖출 때 우리의 공감은 제도적 토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자리에 쿠르디를 놓든, 강남역에서 살해당한 20대 여성을 놓든, 아니면 구의역에서 생을 마감한 청년을 놓든 마찬가지다.
최정규 /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이타적 인간의 출현", "게임이론과 진화 다이내믹스" 등의 책을 냈다. 이타성과 상호성의 진화를 연구해왔고, 사람들의 행동 동기를 찾아내고 제도의 영향을 살펴보기 위한 행동실험도 진행하고 있다.이 연재물의 열쇳말은 행동, 제도 그리고 진화이다. 이 열쇳말을 가지고 경제학과 인문학 그리고 자연과학에서 오버랩되는 주제를 찾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등록: 2017-07-28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04764.html
2017-12-26
12월 26일 박싱 데이..잊지 마세요.
12월 26일: 박싱 데이. 잊지 마세요. | 2006-12-21 | |
12월 26일은 박싱데이입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을 위해 박스, 즉 작은 선물을 준비해 드리는 날입니다.
아래 글은 지난 박싱 데이를 보내며 적은 후일담입니다.
=============
게다가 지난 1년 동안 나는 과연 "가정, 지역 사회, 나아가 나라를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했던가"하는 질문이 떠오를 연배가 되면, 이내 성탄은 무거워지기 마련이지요. 해마다 아기 예수는 구유에 누어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을 만져주시곤 합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을 위해 박스, 즉 작은 선물을 준비해 드리는 날입니다.
아래 글은 지난 박싱 데이를 보내며 적은 후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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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야쿠르트에 말을 시킬 수 있다는 것 보다는 덜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야쿠르트에 말을 시킬 수 있다는 것 보다는 덜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참...야쿠르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아침에 야쿠르트가 배달 될 즈음해서, 문 안쪽에서 기다립니다.
그런 다음 야쿠르트가 우유 투입구로 들어오면, "누구세요?"하고 물으면...
"야쿠르튼데요"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지요.
그런 다음 야쿠르트가 우유 투입구로 들어오면, "누구세요?"하고 물으면...
"야쿠르튼데요"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지요.
너무 썰렁한가요?
다음 그림은 신문 배달 아저씨에게 드리려고, 작은 양말 선물을 집주인이 놓아 두면서 적었던 쪽지입니다.
선물 안에는 새벽 배달에 감사드린다는 카드도 한 장 들었었다 합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그 쪽지가 다시 돌아 왔는데...
그 쪽지 아래 여백에, 아 글쎄, 신문이 글씨를 써서 보내왔다지 뭡니까?
선물 안에는 새벽 배달에 감사드린다는 카드도 한 장 들었었다 합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그 쪽지가 다시 돌아 왔는데...
그 쪽지 아래 여백에, 아 글쎄, 신문이 글씨를 써서 보내왔다지 뭡니까?
온 세상이 즐겁게 맞이하기로 작정한 성탄절은 산타 할배께서 선물을 줍니다.
선물 수령 준비라 했자 양말 한짝만 걸어 놓으면 그만이지만, 나이들면서는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받는 입장에서 주는 사람으로 역할이 변하면서 이내 마음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긴 형편 좀 되는 집에서는 바리바리 백화점에서 사들여 안기면 그만이지만, 원래 선물이란 게 그런 물량 공세로 우위를 가리는 게 아니겠기에 더욱 고심하게 됩니다.
게다가 지난 1년 동안 나는 과연 "가정, 지역 사회, 나아가 나라를 위해 어떤 선물을 준비했던가"하는 질문이 떠오를 연배가 되면, 이내 성탄은 무거워지기 마련이지요. 해마다 아기 예수는 구유에 누어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을 만져주시곤 합니다.
"공수래 공수거." '나도 이렇게 왔고, 너도 이렇게 가리니, 아끼지 말고 주거라. 어차피 가지고 갈 것은 없더라'하시는 듯...
세상을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애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물을 받을 계제가 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우리가 얼굴도 기억하지 않고, 또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없이 세상은 돌아갈 리 없는 그런 중요한 이들입니다. 신문, 우유 배달, 관리인 아저씨, 환경미화원...
다행히 서양에서는 박싱데이(boxing day)라는 날을 성탄절 바로 다음날로 목지어 두었습니다. 누구는 고작 100여년 쯤 되었다하기도 하고, 누구는 상업적 발상이라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취지는 소중합니다. 보이지 않는 소중한 도우미들을 위해 작은 상자(box)에 선물을 담자!
다행히 서양에서는 박싱데이(boxing day)라는 날을 성탄절 바로 다음날로 목지어 두었습니다. 누구는 고작 100여년 쯤 되었다하기도 하고, 누구는 상업적 발상이라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취지는 소중합니다. 보이지 않는 소중한 도우미들을 위해 작은 상자(box)에 선물을 담자!
발렌타인 데이나 할로윈 데이처럼 이 날도 이미 미국에서는 백화점 세일 잔치로 자리잡은 듯 한데, 아직 우리는 그런 상황은 아니기에 이런 문화가 본래 뜻대로 정착되기를 빌어 봅니다. 감나무에 감 모두 따지 않고 남겨서 까치밥 챙겨주는 옛 우리네 마음처럼, 성탄에 넘쳤던 선물이 그렇게 남아 소중한 사람들에게 흘러 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혹시 올해 그냥 지나쳐서 서운하시다면, 크리스머스와 박싱데이는 내년에도 어김없이 찾아 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전합니다.
참, 섣달그믐, 까치 설날에 아이들에게 잠을 자지 말라던 것이...
참, 섣달그믐, 까치 설날에 아이들에게 잠을 자지 말라던 것이...
어쩌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잠들지 못하는 배고픈 이들에게 선물을 전하라'는 깊은 뜻이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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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서양만의 풍속이라는 지적에 맹자 말씀을 적어 봅니다.
無惻隱之心 非人也 (무측은지심 비인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無羞惡之心 非人也 (무수오지심 비인야)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無辭讓之心 非人也 (무사양지심 비인야)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無是非之心 非人也 (무시비지심 비인야)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惻隱之心 仁之端也 (측은지심 인지단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고,
羞惡之心 義之端也 (수오지심 의지단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辭讓之心 禮之端也 (사양지심 예지단야)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是非之心 智之端也 (시비지심 지지단야)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 중.
2017-12-25
영광과 평화, 한기와 감기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
밖에는 한기, 안에는 감기.
따뜻한 물이 감기에 좋다하여 보온병이 도열했습니다. 200, 300, 350cc. 한꺼번에 담아 놓고 휴일 하루를 보낼양입니다. 이렇다할 약도 없이 코에 불에 난다하여 고뿔이라는 무서운 이름의 감기. 하지만 제대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감기에 걸릴 이유가 없으며, 조금 시원치 않아 영접했다해도 별일없으면 며칠있다 물러날 계절 손님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어쩌면 하찮은 감기에도 이리 마음이 싱숭생숭하는 데, 졸지에 횡액을 당한 분들의 가슴은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답답합니다.
기뻐해야 할 날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 곳곳이 불안하고 기막힙니다. 2천년전에 선포했던 그 평화는 아직도 우리 곁에 자리잡지 못했고, 동강난 이 땅에선 여전히 원수라도 되는 양 동포끼리 으르렁대는 중입니다. 하늘의 별까지 화답했던 저 베들레헴과 에루살렘에서는 오늘도 사이렌 경보와 화약연기 속에서 하루가 저물 것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은 확실한 데, 부족한 인간으로서는 답도 없고 힘도 없으니 그저 하늘을 바라봅니다. 비록 저희가 지은 죄가 많더라도 이제 2천년이나 지났으니 그만 용서해 주시고, 사람이 사람답게 오손도손 살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당신이 바라시는게 이런 악다구리 끓는 난장판이 아니라면, 이제 그 좋은 천국을 여기에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그 말 그대로 즐거운 성탄절은 왜 이리 어렵습니까?
답없는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낮춥니다. 희망 만이 희망이라는 말 한마디를 붙잡고, 하찮은 감기가 가장 큰 일이 되는 그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기도하고 따뜻한 물 한잔에 감사하며 안부를 적습니다. 한 가닥 희망이라도 놓치 마시고, 오늘 하루 건강과 안녕하시기를 빕니다.
2017-11-13
1년 전, 촛불이 없었다면..
오만한 권력자를 시민의 힘으로 끌어내린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1년이 지난 지금 보면 박근혜가 감옥에 가 있는 것도, 최순실과 이재용 등 국정농단의 공범자들이 재판을 기다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작년 겨울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겨울 촛불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시사IN의 가상 기사로 추측해볼 수 있다.
촛불이 없었다면 국정 교과서가 올해 전국 학교에 보급되었을 것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박정희 동상이 세워졌을 것이며, 각종 ‘애국’ 콘텐츠가 전국 극장가와 안방을 휩쓸었을 지도 모른다.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예술계 인사들은 여전히 지원에서 배제되고, 국정원이 배포한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촛불이 없었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끝까지 파헤치지 못했을 것이다. 정유라는 삼성의 돈을 받아 훈련에 매진하고,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도쿄올림픽을 준비했을 것이다.
최순실은 여전히 청와대를 제 집 드나들듯 들락거리며 청와대 문건을 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박근혜가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최순실은 여전히 청와대를 제 집 드나들듯 들락거리며 청와대 문건을 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박근혜가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촛불이 없었다면] 정유라, 삼성 돈으로 훈련 매진
2017년 11월 06일(월) 제529호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 ‘최순실 국면’이 진정되자, 최씨는 예전처럼 매일 아침 ‘V’라고 쓰인 서류 봉투를 받았다. 정유라씨는 ‘공주 승마’ 논란에도 불구하고 2020년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관련기사
책상 위에 놓였거나 벽에 걸린 달력을 들춰보라. 달력 대부분에 2017년 ‘12월20일’은 빨간 날, 대통령 선거일로 표시되어 있다. 이듬해 달력이 인쇄되던 지난해 하반기까지도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지금과 같은 1년 뒤를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또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지난겨울 촛불이 없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촛불 1주년을 맞이해 ‘촛불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내고 있을 ‘디스토피아’를 그려봤다. 촛불이 없었다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끝까지 파헤치기 힘들었을 터이다.
최순실씨는 여전히 청와대 문건을 받아 빨간 줄을 긋고 청와대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고 있을 것이다.
정유라씨도 이화여대 재학생으로 삼성이 제공한 말을 타고 한창 도쿄 올림픽을 준비했을 것이다.
역사·교육·문화 부문에서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 것이다. 올해 국정 역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보급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박정희 동상이 건립됐을 수도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따라 온통 ‘우편향’ 콘텐츠가 텔레비전·서점·영화관을 점령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부조리와 불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악성 댓글로 고통받다가, 점차 이상한 혐의가 덧씌워지고, 결국에는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파렴치범이나 질서파괴범, 아니면 최소한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어 손가락질 받기 십상일 것이다.
갑질은 더욱 만연하고, 최저임금 인상 따위는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며,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며 학교에서 유신시절의 교련 교육같은 것이 등장했을 수도 있다.
상위 몇 퍼센트, 또는 상류층에 끼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무기력하게 세상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죽지 못해 하루를 살며 그저 자신의 무능력과 불운을 탓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세상이라면 우리는 어떤 기사를 쓰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창간 이래 처음으로 허구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다만 ‘사실 기반’ 허구이다. 실제로 그런 징조가 있었고 자칫하면 일어날 수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삼았다. 디스토피아를 그려보니 ‘촛불’의 위대함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촛불이 있었기에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고 오늘이 변했다. 모두, 입김 서리던 지난 겨울날 꽁꽁 언 손으로 희망을 밝힌 ‘촛불 시민’ 덕분이다.
촛불 1주년을 맞이해 ‘촛불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내고 있을 ‘디스토피아’를 그려봤다. 촛불이 없었다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끝까지 파헤치기 힘들었을 터이다.
최순실씨는 여전히 청와대 문건을 받아 빨간 줄을 긋고 청와대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고 있을 것이다.
정유라씨도 이화여대 재학생으로 삼성이 제공한 말을 타고 한창 도쿄 올림픽을 준비했을 것이다.
역사·교육·문화 부문에서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 것이다. 올해 국정 역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보급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박정희 동상이 건립됐을 수도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따라 온통 ‘우편향’ 콘텐츠가 텔레비전·서점·영화관을 점령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부조리와 불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악성 댓글로 고통받다가, 점차 이상한 혐의가 덧씌워지고, 결국에는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파렴치범이나 질서파괴범, 아니면 최소한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어 손가락질 받기 십상일 것이다.
갑질은 더욱 만연하고, 최저임금 인상 따위는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며,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며 학교에서 유신시절의 교련 교육같은 것이 등장했을 수도 있다.
상위 몇 퍼센트, 또는 상류층에 끼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무기력하게 세상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죽지 못해 하루를 살며 그저 자신의 무능력과 불운을 탓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세상이라면 우리는 어떤 기사를 쓰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창간 이래 처음으로 허구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다만 ‘사실 기반’ 허구이다. 실제로 그런 징조가 있었고 자칫하면 일어날 수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삼았다. 디스토피아를 그려보니 ‘촛불’의 위대함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촛불이 있었기에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고 오늘이 변했다. 모두, 입김 서리던 지난 겨울날 꽁꽁 언 손으로 희망을 밝힌 ‘촛불 시민’ 덕분이다.
<편집자 주>
장시호씨는 지난 추석 때도 청와대에서 보낸 선물을 받았다. 이모 최순실씨가 챙겨준 ‘큰댁에서 가져온’ 선물이다. 청와대 봉황 그림이 그려진 포장에 쌀 2㎏·대추·육포 등이 담겨 있었다. 2년 전에는 선물이 너무 무거워 제주도 집으로 택배로 받은 적도 있다. 최순실 일가는 박근혜 대통령을 ‘큰집 엄마’ 또는 ‘큰엄마’라 부른다. 최씨 일가를 제외하고 시민들은 여전히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정확히 모른다.
지난해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수많은 의혹이 쏟아졌다. 심지어 “최순실씨가 제일 좋아하는 건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라는 고영태씨의 폭로가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면’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20일 박 대통령은 “의미 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식공격성 논란이 이어진다”라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다음 날부터 검찰은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였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또한 같은 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연설문 수정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라며 진화에 나섰다.
독일에 머물던 최순실씨는 잠적해 언론의 추적을 따돌렸다. 최씨가 비선 실세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던 여론도 ‘최순실은 박근혜가 영애 시절부터 가까웠던 최태민의 딸’ 정도로 정리됐다. 2013년 정윤회 문건 사건 때와 똑같이 최씨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과 내부 고발자 등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왕’은 이건희, ‘세자’는 이재용
‘최순실 국면’이 진정되자, 최씨는 예전처럼 매일 아침 ‘V’라고 쓰인 서류 봉투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늘 그랬듯, 이영선 청와대 경호관이 최순실씨 집사 구실을 하는 방 아무개씨에게 서류 봉투를 전달했다. 최순실씨는 태블릿 PC를 통해 청와대 문건을 받기도 했지만, 주로 서류를 받아 포스트잇을 붙이고 메모를 남겼다. “대통령이 서류를 너무 많이 보내서 힘들다”라고 최씨가 푸념할 정도였다. 최씨가 맡은 일은 국정 관련 서류 검토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의상·피부·간식·자금 관리까지 다양했다.
방씨가 쉴 때는 장시호씨가 그 일을 대신했다. 최순실씨가 검토한 서류를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장시호씨와 윤 행정관은 서울 한남대교 북쪽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 영화 ‘007’처럼 접선하듯 만났다. 윤 행정관이 검은색 구형 그랜저를 타고 와 장시호씨의 차 창문을 두드리면, 장씨는 창문을 빠끔히 열고 서류를 넘겨주었다. 그렇게 전달된 서류를 통해 이틀 만에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바뀐 적도 있었다. 2013년 10월 취임해 지금까지 차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왕차관’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조차 대단하다고 감탄했던 최순실씨의 힘은, 삼성과의 관계에서 절정을 이뤘다.
삼성은 2018년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2015년부터 최순실·정유라 모녀를 지원했다. 지원금은 220억원에 달했다. 2015년 9월 81만520유로, 2015년 12월 71만6000유로, 2016년 3월 72만3000유로, 2016년 7월 58만 유로 등을 최순실씨 소유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 계좌로 송금했다.
2014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처음 독대하며 승마 지원을 요구한 이후 지원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비슷한 시기인 2014년 7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문건에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세자 자리를 잡아줘야 한다”라고 기록되었다. 이 문건에 나오는 ‘왕’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세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뜻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문건에 왕과 세자라는 은어를 쓰며 삼성과 은밀한 주고받기를 기획한 셈이다.
지난해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수많은 의혹이 쏟아졌다. 심지어 “최순실씨가 제일 좋아하는 건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라는 고영태씨의 폭로가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면’을 돌파했다. 지난해 10월20일 박 대통령은 “의미 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식공격성 논란이 이어진다”라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다음 날부터 검찰은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움직였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또한 같은 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연설문 수정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라며 진화에 나섰다.
독일에 머물던 최순실씨는 잠적해 언론의 추적을 따돌렸다. 최씨가 비선 실세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던 여론도 ‘최순실은 박근혜가 영애 시절부터 가까웠던 최태민의 딸’ 정도로 정리됐다. 2013년 정윤회 문건 사건 때와 똑같이 최씨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과 내부 고발자 등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왕’은 이건희, ‘세자’는 이재용
‘최순실 국면’이 진정되자, 최씨는 예전처럼 매일 아침 ‘V’라고 쓰인 서류 봉투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늘 그랬듯, 이영선 청와대 경호관이 최순실씨 집사 구실을 하는 방 아무개씨에게 서류 봉투를 전달했다. 최순실씨는 태블릿 PC를 통해 청와대 문건을 받기도 했지만, 주로 서류를 받아 포스트잇을 붙이고 메모를 남겼다. “대통령이 서류를 너무 많이 보내서 힘들다”라고 최씨가 푸념할 정도였다. 최씨가 맡은 일은 국정 관련 서류 검토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의상·피부·간식·자금 관리까지 다양했다.
방씨가 쉴 때는 장시호씨가 그 일을 대신했다. 최순실씨가 검토한 서류를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했다. 장시호씨와 윤 행정관은 서울 한남대교 북쪽에 있는 한 주유소에서 영화 ‘007’처럼 접선하듯 만났다. 윤 행정관이 검은색 구형 그랜저를 타고 와 장시호씨의 차 창문을 두드리면, 장씨는 창문을 빠끔히 열고 서류를 넘겨주었다. 그렇게 전달된 서류를 통해 이틀 만에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바뀐 적도 있었다. 2013년 10월 취임해 지금까지 차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왕차관’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조차 대단하다고 감탄했던 최순실씨의 힘은, 삼성과의 관계에서 절정을 이뤘다.
삼성은 2018년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2015년부터 최순실·정유라 모녀를 지원했다. 지원금은 220억원에 달했다. 2015년 9월 81만520유로, 2015년 12월 71만6000유로, 2016년 3월 72만3000유로, 2016년 7월 58만 유로 등을 최순실씨 소유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 계좌로 송금했다.
2014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처음 독대하며 승마 지원을 요구한 이후 지원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비슷한 시기인 2014년 7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문건에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세자 자리를 잡아줘야 한다”라고 기록되었다. 이 문건에 나오는 ‘왕’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세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뜻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문건에 왕과 세자라는 은어를 쓰며 삼성과 은밀한 주고받기를 기획한 셈이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관리의 삼성’답게 입단속에 철저했다. 특히 대한승마협회장을 겸임한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은 독일에서 정유라씨를 도운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이건 VIP가 말 사주라고 한 것인데 세상에 알려지면 탄핵감이다. 앞으로 입조심하고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 만일에 대비해 말을 삼성 승마단 소유로 처리해두었다. 이것이 최순실씨를 자극했다. 최씨가 “이재룡이 VIP 만났을 때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냐(최순실은 이재용 부회장을 이재룡이라고 불렀다)”라고 항의를 해, 결국 박상진 사장이 독일에 머물던 최순실씨를 찾아가 해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주 승마’ 논란을 딛고 정유라씨도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최순실씨는 딸 정유라씨를 2020년 도쿄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만들고 싶어 했다. 해외 전지훈련을 이유로 정유라씨는 대학 수업을 자주 빠졌지만 졸업에는 지장이 없다.
“구보는 3절 운동이다. 마음속에 메트로놈 하나 놓고 달그닥, 훅 하면 된다”와 같은 리포트를 내고도 평균 B학점 이상을 받았다. 피치 못할 경우에는, 엄마와 가까운 다른 대학 교수 하정희씨 등이 자기 학생을 시켜 대리시험을 치게 했다. 온라인에는 정유라씨가 페이스북에 썼다는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이 떠돌았지만, 좌파의 음해·조작이라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구보는 3절 운동이다. 마음속에 메트로놈 하나 놓고 달그닥, 훅 하면 된다”와 같은 리포트를 내고도 평균 B학점 이상을 받았다. 피치 못할 경우에는, 엄마와 가까운 다른 대학 교수 하정희씨 등이 자기 학생을 시켜 대리시험을 치게 했다. 온라인에는 정유라씨가 페이스북에 썼다는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이 떠돌았지만, 좌파의 음해·조작이라는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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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2014년 9월20일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최순실씨와 최씨의 딸 정유라씨(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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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지난해 12월9일 234표 찬성으로 가결됐다. 엿새 전 200만명이 넘게 모인 촛불집회 영향이 컸다.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8대0(인용 대 기각)’으로 탄핵소추안 인용을 결정했다. 18가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피고인은 지금까지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최순실씨는 지난해 9월 독일로 출국했다가 같은 해 10월30일 귀국해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 기소되었다.
지난해 11월30일 박영수 특검팀이 출범했다. 장시호씨는 ‘특검 도우미’로 불리며 청와대에서 받은 선물 내역까지 상세하게 진술했다. 장씨는 재판에서도 ‘큰엄마(박근혜 전 대통령)’와 최순실씨 사이 인연을 증언하기도 했다. 지난 2월17일 박영수 특검팀은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했다. 촛불이 켜지기 직전까지도, 삼성은 최순실씨와 말 거래를 했다. ‘말 세탁’을 통해, 의심받던 말을 팔고 더 비싼 말을 사주기도 했다.
최순실씨가 구속된 다음에도 덴마크에 머물던 정유라씨는 지난 5월31일 강제 송환됐다. 정씨는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엄마가 삼성 말을 내 것처럼 타라고 했다” “관련 녹취가 있다”라는 폭탄 증언을 했다. 정씨의 이 같은 증언이 이재용 부회장 1심 유죄 선고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8월25일 1심에서 뇌물공여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 측은 “승마계에서 ‘말을 사준다’는 건 훈련이 가능하도록 ‘말을 임대해준다’는 의미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유라씨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 비리 혐의 또한 1심에서 인정돼,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교수들에게도 모두 유죄가 선고되었다. 그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근혜는 부정선거로 당선된, 그래서 애초부터 대통령이 아니었을 수도 있으며, 그런 선거부정의 배후가 다름아닌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는 증거들이 묻혀 버렸을 수도 있다.
그런 일탈과 범법행위를 꾸미고 실행한 청와대 보좌진과 장관 차관들, 국가정보원과 국군 기무사의 우두머리 국정원장과 국방부장관 등이 여전히 애국심이니 국법질서니 하는, 지금이라면 씨도 안먹힐 거짓뿌렁을 입에 달고 행세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권력의 시녀 검찰은 여전히 애꿎은 사람들을 닦달하며 가증스럽게도 '법과 질서'를 입에 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모리배들을 위해 헌신한 자칭 애국세력과 매국 공무원 등도 선량한 국민들을 비웃으며 어깨를 으슥대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을 터이다.
생각만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2016년 겨울의 촛불이 없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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