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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새만금 방조제: 환경 파괴 역사의 신기원. 2006-04-28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가 완료되었습니다.

저간의 사정에서 거의 밝혀졌듯이 이 방조제 공사는 대국민 사기극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농사지을 땅이 모자라서 바다를 막아 농토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 상식인 요즈음에, 농토를 만들겠다고 멀쩡한 바다를 세계 최대 규모로 막고 나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을 갯벌로 보고 있는 학자들도 있고, 땅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땅을 강하구의 갯벌로 보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발간되는 <네이춰 리포트>지에서는 1헥타아르 당 논의 가치를 92달러, 갯벌(estuary)를 2만 2382달러로 계산한 바 있습니다. 갯벌이 논에 비해 무려 250배의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런데...어쩌다 이런 사기극이 국가 차원에서 무사히 성공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제법 복잡한 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전북 지역의 민심에 무언가를 선물로 주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수 없어진 정부를 포함한 정치인, 그리고 기득권층이 전형적인 지방색에 굴복한 것입니다. 이런 결과로 자축하는 전북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새만금 땅이 농토로 쓰일 것이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그런데도 여전히 겉으로는 이구동성 새 농토 타령입니다. 물론 슬금 슬금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변명도 - 눈치를 보며 - 흘러 나옵니다. 백보를 양보하여 농토가 아닌 용도로 사용된다 합시다. 과연 이곳에 들어설 공단과 위락시설이 전북 지역에 황금알을 가져다 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이미 상당한 단지와 위락시설이 다른 지역에서 충분히 가동 중이고 모두가 원하는 수도권 지역에서도 대지는 여유가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누가 전북까지 가겠습니까? 그렇다면 최후의 대안은, 전용된 이 땅을 그야말로 헐값에 누구도 유치하기 원하지 않는 시설이나 단지로 나눠주게 허용하는 안이 남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골프장 50개, 카지노장 등 막가는 시설들의 유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허투루 쓰기에는 이 지역은 참 아깝고, 아니 앞으로의 전북의 미래가 숨어있는 젖줄이라 할 장소입니다. 개펄의 정화작용에 힘입어 전북이 친환경적 지역으로 우뚝서고, 때묻지 않은 관광자원으로 거듭나는 데 새만금은 든든한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는 울산이나, 온산, 안산, 여천 공단에서 이미 보았듯이 최악 환경의 복제판이 됩니다. 아니 이전의 기 조성된 단지에 비교해서 새만금 지역은 상대적으로 유인이 적기 때문에 이전 보다 훨씬 파격적인 환경파괴적 조치들이 허용되어야 만 기업과 투자가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러다보면 이 지역의 미래는 최악의 환경 상태로 귀착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화호, 화옹호 등 그동안 만들었던 대형 호수가 다 썩어 나가지만 정작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썩어가던 간척지 호수들은 결국 본래 용도를 포기하여, 둑을 열고, 투자비용의 몇배를 들여가며 복원에 나선 결과, 조금씩 옛모습을 향해 힘겹게 나아가는 중입니다. 그러나 본디 모습이야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선례에서 배우지 못한 것인지, 대충 넘겼던 중국의 황사 바람을 이제는 중국 아닌 한반도에서 최악의 예상으로 견뎌야 하는 국제적 환경재앙의 교훈이 눈 앞에 벌어지는 판에도, 사람들은 눈앞에 이익에 현혹되어 그야말로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새만금 갯벌의 정화 능력 상실은 그동안 낙후된 지역 상황은 안타까웠다지만,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더 아름다웠던 전북의 환경에 재앙이 될 것이 자명한 데도 말입니다. 물론 당장은 전북 지역 사람들 상당수와 관련된 기업 여럿이 흐믓해지고, 그들의 주머니를 두둑히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후에...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랄 다음 세대는 과연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저 아름다운 서해안, 그리고 이 나라가 썩어가며 내는 냄새가 진동해도 좋다는 것인지. 참으로 아깝고 몹씨도 억울하며 무기력한 자신이 안타깝고 그래서 축하가 아니라 애도할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으려 합니다.

새만금 오욕의 역사의 한편은 온나라 양심이 흔들리는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노태우 정권이 사기성으로 공약하고, 김영삼 정권이 낙후지역 발전이라며 에워싸고, 김대중 정권은 호남 발전이라는 명분에 발목을 잡혀 있던 차, 유일하게 반대했던 노무현 정권 마저도 결국에 변심한 결과입니다. 간척에 열심이던 네덜란드를 비롯한 나라들 대부분이 막았던 둑도 허물어 환경을 되살리는 추세인 데, 세계 5대 갯벌 중 으뜸이라 믿는 서해안에 세계 최대의 둑을 막는 그런 무지를 강행한 사람들 이름을 꼭 기억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양심이 살아 있는 한 말입니다.

아래 기사들을 - 그런 사실의 전말을 잊지 않기 위해 - 기록 목적 상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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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방조제와 ‘새만금 묵시록’







공사 시작 14년5개월 만에 어제 새만금 방조제 33km가 완공됐다. 수억년에 걸쳐 자연이 빚어낸 새만금 개펄은, 방조제 안에 갇힌 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죽어가게 됐다. 지난달 대법원 판결 이후 환경단체와 주민, 전문가들은 최소한의 해수 유통을 요구하며 개발과 보존의 타협을 요청했지만, 이제 그 가능성은 사라졌다. 시화호처럼 물과 개펄이 썩어야 정신을 차리겠지만, 애꿎은 국민이 물어야 할 대가는 너무나 크다.

이렇게 해놓고도 정부와 정치권, 전북도는 입만 열면 ‘자연친화’ 또는 ‘친환경’ 개발을 외치니, 가소롭기만 하다. 방조제 안에 조성될 토지의 용도 전환이 불가피함을 뻔히 알면서도 농림부는 지금도 대규모 우량농지 조성이라는 점을 강변한다. 전북도는 대규모 복합도시를 추진하면서도 친환경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새만금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은 그 속내를 알면서도 전북도의 이런 사이비 친환경 개발을 지원할 태세다.



지난달 대법원은 ‘농지 전용’을 전제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가 한사코 용도 변경을 하지 않겠다고 한 상황에서, 법률로 정책 결정의 잘잘못을 따지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 전북도는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본색을 드러냈다. 전북도는 지상 최대의 골프장과 대규모 놀이시설, 카지노와 요트장 등의 개발 청사진을 그려놓고 있다. 나아가 정치권까지 동원해, 농지 전용이라는 명분을 포기하기 힘든 농림부와 개발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 전리품을 둘러싸고 흔히 벌어지는 충돌을 연상시킨다.



국민과 사법부를 천치로 여기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태다. 세계 최대의 방조제를 바라보며,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극을 예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176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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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막이공사 끝나던 날, 새만금 바다는... 15년만에 33km 방조제 공사 마무리













ⓒ 전북도청







▲ 가력도 부근, 마지막으로 남은 500m 구간 공사를 마무리하는 모습. 공사 현장을 찾은 강현욱 전북지사, 박흥수 농림부장관 등은 완공 순간을 지켜봤다.



ⓒ 전북도청







▲ 21일 착공 15년만에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됐다. 이날 오후 제1공구(가력도 부근) 개방돼 있던 1.6km 구간의 끝 물막이공사가 마무리 됨에 따라 방조제 공사를 모두 마쳤다.



ⓒ 전북도청

법정 공방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새만금 간척사업 공사가 21일 오후 완공됐다. 이날 오후 1시경 가력도 부근(1공구) 60m의 끝막이 공사를 마지막으로, 공사를 시작한 지 15년만에 33km로 이르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됐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지난 1991년 착공됐다. 새만금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갯벌을 살려야 한다"며 공사의 부당성을 주장해 한때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또 기나긴 법정 공방도 이어졌다.



이날 물막이 공사가 끝남에 따라 전북 군산-김제-부안 서해안의 4만100㏊에 이르는 바다가 내해가 되고 2011년까지 여의도보다 140배 가량 넓은 2만8300㏊의 간척지가 조성되고 담수호 1만1800ha가 생길 예정이다. 배수갑문 2개소를 통해 당분간 해수가 유통된다.



농림부에 따르면, 1991년 11월 시작된 새만금 사업에는 지난해까지 1조 9천여억원이 투입됐으며 마지막 2.7㎞의 연결 공사에는 2200억원이 투입됐다.



농림부는 "방조제는 2007년까지 보강공사를 계속 시행하면서 조경공사와 보강공사 등을 거쳐 완공할 예정"이라며 "내부 토지(간척지)는 국토연구원의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공청회 등 공론화와 정부관계기관 및 전북도 등과 협의를 거쳐 국익과 지역발전을 고려한 계획으로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방조제 외측 해역(보상구역) 중에서 공사추진 및 배수갑문 개폐(호소관리) 등에 지장없는 범위 내에서 한정 어업면허를 허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간척농지는 조성후 피해어민을 포함한 분양 대상자에 공개매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공사 현장을 찾은 박흥수 농림부장관과 안종운 한국농촌공사 사장은 군산 방향에서, 강현욱 전북도지사와 현대건설 이종수 사장이 부안 방향에서 완공을 기다리다 마지막 연결 지점에서 만나 서로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또 전북도청 직원·주민·새만금 사업단 관계자 등 100여명도 손에 태극기를 들고, '새만금방조제 최종연결 성공'이라고 적힌 어깨 띠를 두르고 환호했다. '새만금완공 전북도민총연대'등은 이날 성명을 내고 완공을 환영했다.



한편 전북도는 오는 24일 오후 2시부터 새만금 방조제 가운데에 위치한 군산시 야미도 광장에서 '새만금 방조제 끝막이 성공 범도민 축하행사'를 열 예정이다.



새만금완공전북도민총연대(상임대표 신삼석 외 2인)이 주관하는 이날 행사에는 강현욱 지사, 김원기 국회의장, 전북지역 국회의원 등 1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 전북도청







▲ 마지막 개방 구간이 연결되자 공사 현장을 찾은 도청 직원 등 100여명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방조제 공사 완공을 축하했다.



ⓒ 전북도청





환경단체 "슬픈 새만금"... 사무실 29일까지 폐쇄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완공돼 전북도 등은 축하행사를 여는 등 환영하고 있는 가운데 환경단체는 24일부터 29일까지 사무실을 잠정 폐쇄하기로 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21일 "새만금 비극에 항의하며 사무실을 24일부터 29일까지 폐쇄할 것"이라며 "오늘은(21일) 새만금 갯벌 뭇 생명의 숨통이 막히는 날"이라고 비판했다.



전북환경련은 논평을 통해 "새만금 갯벌의 뭇 생명과 생존권을 잃은 어민에게 머리숙인다"며 "정부와 전북도는 새만금 사업이 전북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면 환호성을 지르기 전에 생존권을 잃어버린 채 절망에 빠진 어민들에게 관심과 아쉬움을 언급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전북환경련은 "24일부터 일주일 간 새만금 사업 애도주간으로 정하고 사무실을 폐쇄한다"며 "우리는 새만금 갯벌 복원 운동의 새로운 첫걸음을 새만금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북환경련 등 '새만금 화해와 상생을 위한 국민회의'는 오는 23일을 '새만금생명평화의 날'로 선포하고 이날 낮 12시 30분부터 부안 해창 등지에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환경운동연합도 논평을 내고 "방조제 완공은 제2의 시화호 탄생으로 깊은 슬픔을 표한다"며 "시화호, 화옹호, 석문호, 홍보호에 이어 새만금은 돌이킬 수 없는 환경재앙과 막대한 경제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단군 이래 최대의 생명파괴, 최악의 국고 낭비 사업 앞에 깊은 슬픔을 표한다"며 "개발독재 세력들이 펼치는 죽음의 굿판에 참담한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힐난했다.



강성관(anti-20) 기자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25689

진정으로 사랑을 원한다면, 바람난 남편인들 어떠랴... 2006-04-27

주변과 조건, 환경을 바꿔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니 그 반대로 모든 문제의 실마리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가끔은 온 세상이 차갑고 비정하게 때로는 나 만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 때가 그런 자신을, 세상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즈음인가 합니다. 견딜 수 있는 일상의 어려움 앞에서 그것조차 힘들다며 투정하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넘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이런 마음이 드는 순간, 그 사람은 바로 그 감사의 마음 하나로 지루하고, 힘들고, 가끔은 두렵기 까지한 이 세상에 디딤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달리 생각하게 되면, 모두가 손가락질 하던 이 세상에서 바로 그 자신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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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편이 30년 전의 애인을 만나 다시 연애를 시작하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자,

배신감과 절망감에 젖어서 눈물을 글썽이며 한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십니까?” 하고 제가 물었습니다.



“남편을 사랑합니다. 참으로 사랑합니다” 하며 부인이 고개 숙이며 울먹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누군가가 시켜서 연애를 하고 있습니까?

연애 안 하면 혼내겠다고 해서 마지못해 지금 연애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남편이 스스로 좋아서 연애를 하고 있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인 당신이 슬프고 화가 납니까?”

이 말을 듣고 그 부인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듯 화를 내기도 하며 안절부절못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부처님 법을 공부하며 마음공부를 해 왔던 부인은 30분 정도 지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인데,

아내인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안 맞겠군요. 남편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임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30분 동안 그 부인은 찬찬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여태껏 시집와서 고생한 것만 생각하고 남편이 나에게 잘못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자신이 남편에게 숙이거나 남편을 받들지 않았음을, 진정 아끼고 보살피지 못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부족한데도 평생을 함께해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까지도 건강한 남편이 고맙게까지 여겨졌습니다. 남편이 지금 연애하는 것이 내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한 몸부림의 흔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에 대한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연애를 해도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니까 남편에게 무조건 숙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우리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합니까? 문제의 잘못을 상대에게서 찾습니다. 상대 때문에 문제가 생겼고, 상대 때문에 내가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을 돌아보기보다는 잘못된 상대를 고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은 상대를 바꾸고, 돈을 벌고, 학벌을 좋게 하는 등 조건을 바꾸어서 행복을 추구하려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자신이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욕망에 사로잡히면 참지 못하는데, 하물며 남의 인생을 내 마음대로 고칠 수 있겠습니까? 자기는 늘 정당하고 상대는 잘못되었고, 자신은 고칠 것이 없고 상대는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물을 보고 판단하며, 이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다만 연애를 할 뿐입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행위입니다. 그러나 30년 만에 만난 애인으로선 외로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참으로 고마운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조건을 변화시켜서, 상대를 변화시켜서 나의 요구가 충족될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행복은 불가능한 것이며, 가능하다고 하여도 순간적인 쾌락입니다. 자신이 사물을 볼 때 요구를 줄이거나 욕구가 없으면 행복은 구하지 않아도 그냥 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습니다.’ 유수 스님/정토회 대표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8/2004/12/005100038200412081658111.html

득권이...기득권이 2006-04-05

득권이...기득권이 2006-04-05






귀 멀고 눈 어두어지면...

자리를 비켜줄 때입니다.

누구도 그대로 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섧게 생각할 일도 아닙니다.

한편에서는

우리의 아들 딸들이 무럭무럭 크고 있으니 말입니다.



"봄은 봄이되 봄이 아니로다."(춘래 불사춘)



그렇습니다.

봄은 해마다 다르게 우리에게 옵니다.



세월따라 가는 나이에 연연해 하지 말고

봄 나들이 한번 나가보렵니다.



봄이면 생각나는 시 2006-03-31

사랑                                         <김 용 택 >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허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 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하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은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수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진달래 아직 몽우리 진 그 해 봄, 화왕산에서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넘으며 '사랑'을 처음 알았고 그 이후 봄이면 생각나는 시...다. 그 때 이 시를 처음 들려준 그 친구가 시낭송 모임을 만들었단다. 나도 듣고 싶은데...

일체유심조, 좋고 나쁨의 구별. 2006-03-08

일체 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깨달음이자 자유이고, 좋고 나쁨도 단지 자기 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기에 모든 것의 중심에 마음이 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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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남편을 옆에 태우고 운전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초보라서 운전이 서툴렀습니다.



“오른쪽으로 천천히!”,

“왼쪽으로!”



“핸들을 가볍게 돌려야지.”

“브레이크는 천천히 밟으라니까.”

“아이쿠, 서두르지 말라니까.”



남편은 옆에서 온갖 간섭을 다했습니다.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초보운전 시절이 없었어요? 초보니까 당연히 잘 못하지. 왜 화를 내요?’ 하며 막 퍼붓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만약 옆에 스님이 타고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브레이크를 살살 밟아라’ 하며 이야기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하나하나 참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는 감사한 마음이 들겠지요.”

남편에게는 왜 시비심이 생기고, 스님에게는 감사한 마음이 들까요? 이것은 그때 그 순간 남편은 간섭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스님은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여기 한 자루의 칼이 있습니다. 이 칼로 사람을 위협하면 무기가 되지만, 같은 부위를 찌르더라도 병원 수술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도구로 쓰면 좋은 수술칼이 되는 것입니다. 수술했던 칼이라도 그 칼로 남을 찌르면 무기가 됩니다. 칼 자체는 좋은 칼, 나쁜 칼이 없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화장실도 배설물도 그 자체가 더럽고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방에 있으면 더러운 오물이 되고, 밭에 있으면 훌륭한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힘센 사람이 센 힘으로 남을 때리면 나쁜 사람이 되고, 그 힘으로 밭을 갈면 좋은 농부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 가면 빨래를 직접 물에 때려서 빨래를 합니다. 우리는 빨랫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려서 합니다. 빨래하는 법이 본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된장찌개는 한국 사람에게는 맛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그냥 한 음식에 지나지 않거나 냄새나는 음식일 뿐입니다.



존재의 본질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지(無知) 역무득(亦無得)(깨달음도 없고, 다시 얻을 것도 없다)입니다. 어리석음에 빠져 있고, 자기 관념의 세계에 빠져 있으므로 괴로워합니다. 또한 괴로우므로 괴로움을 소멸한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한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깨달음을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결심할 필요도, 노력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사실 깨달음은 구할 바가 없습니다. 한 생각 일으켜서 스스로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고 생각하여 괴로워합니다. 존재의 본질이 정해져 있음이 없음을 알면 괴로울 수가 없습니다. 깨달음을 특별히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래 존재 그 자체가 깨달음,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유수 스님/정토회 대표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8/2004/12/005100038200412151741123.html

젊은이들에게 주는 아포리즘 2006-01-27

젊은이에게 주는 아포리즘...세배돈 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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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을 주되 기쁜 맘으로 하라.

ONE. Give people more than they expect and do it cheerfully.



둘. 함께 대화하면 즐거운 사람과 결혼하라.

나이가 들면, 대화 능력이 다른 어떤 것만큼이나 중요해질 테니까.

TWO. Marry a man/woman you love to talk to. As you get older, their conversational skills will be as Important as any other.



셋. 듣는 말을 전부 믿지 말고, 가진 것을 전부 쓰지도 말며, 내쳐 자지도 말라.

THREE. Don't believe all you hear, spend all you have or sleep all you want.



넷.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때는, 진심으로 하라.

FOUR. When you say, "I love you," mean it.



다섯. "미안해요" 라고 말할 때는 눈을 바라보며 하라.

FIVE. When you say, "I'm sorry," look the person in the eye.



여섯. 결혼하려면 적어도 6개월 동안 약혼기간을 가져라.

SIX. Be engaged at least six months before you get married.



일곱.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있음을 믿어라.

SEVEN. Believe in love at first sight.



여덟. 타인의 꿈을 절대로 비웃지 말라. 별것 없는 꿈을 꾸지는 않는 법이다.

EIGHT. Never laugh at anyone's dreams. People who don't have dreams don't have much.



아홉. 깊이, 열정적으로 사랑하라.

상처를 받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온전히 삶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NINE. Love deeply and passionately. You might get hurt but it's the only way to live life completely.



열. 의견이 맞지 않으면, 공정하게 싸워라. 그러나 욕은 안된다.

TEN.. In disagreements, fight fairly. No name calling.



열 하나. 가족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ELEVEN. Don't judge people by their relatives



열 둘. 천천히 말하되 빨리 생각하라.

TWELVE. Talk slowly but think quickly.



열 셋.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누군가 물어보면,

웃으면서 물어보라. '뭐가 궁금하죠?'

THIRTEEN. When someone asks you a question you don't want to answer, smile and ask, "Why do you want to know?"



열 넷. 큰 사랑과 큰 업적에는 큰 위험도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라.

FOURTEEN. Remember that great love and great achievements involve great risk



열 다섯. 재채기같은 사소한 일에도 "저런" 하며 관심을 표하라.

FIFTEEN. Say "bless you" when you hear someone sneeze.



열 여섯. 지더라도, 교훈까지 잃지는 말라.

SIXTEEN. When you lose, don't lose the lesson



열 일곱. 세 가지 R을 항상 기억하라.

자신에 대한 존경심. 타인에 대한 존경심.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감.

SEVENTEEN. Remember the three R's:

Respect for self; Respect for others; and Responsibility for all your actions.



열 여덟. 사소한 논쟁으로 큰 우정에 흠이 가게 하지 말라.

EIGHTEEN. Don't let a little dispute injure a great friendship.



열 아홉. 실수했음을 깨달으면, 곧바로 바로잡도록 하라.

NINETEEN When you realize you've made a mistake, take immediate steps to correct it.



스물. 전화를 받을 때는 웃어라. 듣는 사람이 당신 목소리에서 웃음을 느낄 것이다.

TWENTY. Smile when picking up the phone. The caller will hear it in your voice.



스물 하나.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라.

TWENTY-ONE. Spend some time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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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슬며시 넘어섰습니다.



세배돈 한닢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까 고심하며 살고 싶습니다.





토지는 사유재산일 수 있는가? (남기업) 2005-12-03

강남 12억 아파트의 보유세금은 연간 52만 9천원입니다.

미국의 경우 12억(100만 달러)짜리 집이라면 11,121 달러(1,334만원) 정도가 됩니다.

대충잡아 미국이 20배 정도 비쌉니다. 그런 미국을 사회주의국가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을 선망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이 나라에서 그동안 보유세를 1/20 로 유지해 놓고 버틴 결과 대다수의 국민이 입은 손해는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할까요? 그리고 그로 인한 혜택은 누가 즐겼을까요...그 손해를 이제라도 갚아야 한다는 주장이 사회주의적 주장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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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유재산과 달리 토지는 노동의 산물이 아니며, 따라서 토지를 공적 재산으로 보는 토지 공개념이 결코 사유재산의 원칙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래 글은 논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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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자동차 등 대부분의 동산은 공개념의 대상으로는 무리가 따릅니다. 그래서 땀흘려 일한 댓가로 구입하여 영구히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 특히 토지는 논리적으로 사회 공공의 목적을 위한 공동 소유 자산으로 분류하는 것이 오히려 사유재산 원칙에 부합된다는 뜻입니다. 돈으로 토지를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인 바 이는 토지가 변형과 증식이 불가능한 자연자원이기에 원천적으로 구입 대상이 될 수 없고 구성원 간에 교환 역시 가능하지 않다는 자연법의 대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오히려 토지를 점유한 자는 이에 따른 사용료를 국가에 내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요약하면 토지는 나라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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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계약설이 불가양의 권리인 자신의 생명을 국가에 양도할 수 없어 사형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토지는 그 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공동자산으로써 사고 팔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단지 필요한 자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도 그만한 사용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요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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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더 나아가 지평을 통세대적으로 확대한다면 미래의 어떤 세대도 자신의 지분인 토지를 현세대에게 양도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약 토지 사유화가 극단적으로 가는 경우 미래 세대는 당연한 권리인 자신의 토지의 사용을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소청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국가는 개인의 하위 개념이 되어 사회계약적 존재 의의를 상실하고 소멸해야 됩니다.



아직 덜 익은 이 논쟁에 이 논술은 굳은 근거를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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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공개념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최근에 재신임 정국과 맞물려 토지 공개념이 다시 부활하였다. 아무리 정부에서 처방을 내놓아도 아파트와 집값이 떨어지지 않자, 정부가 ‘공개념’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것이 잘 시행되어 주택가격이 안정되길 바라지만, 혹시 과거처럼 공(공공) 개념이 공(빈) 개념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또 한편에서는 토지 공개념이 사유 재산권 침해의 요소가 있고, 반시장적 혹은 사회주의적 정책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후자의 견해는 기득권 세력의 단골메뉴로서 정부가 토지에 관한 정책을 낼 때마다 제기돼온 것이기에, 정말 그러한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아래에서 토지 공개념의 본질적 정신인 토지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사유 재산권을 논할 때 일반적으로 들추는 학자는 17세기 영국의 사회 계약론자인 존 로크와 자유 지상주의자로 불리는 로버트 노직이다. 그러면 이 두 학자를 통해 토지 사유권이 과연 정당한지 살펴보자. 로크의 사유 재산권의 정당화는 일종의 자연권적 개념인 ‘자기 소유권’에서 출발한다. 나의 몸은 내 것이고, 나의 노동도 내 것이기 때문에 노동의 산물도 당연히 나의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 보면 노동의 산물을 빼앗는 것은 자기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노직은 로크의 연장선에서 재분배를 실현하려는 국가의 의지는 재산 소유권자들의 몸을 나누자고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토지에 대해서 로크는 토지의 사적 소유권이 “다른 사람을 위한 좋은 토지가 충분히 많이 남아 있을 때” 인정된다고 하는 단서를 달았다가 나중에는 “토지 소유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면 된다”는 말로 바꾸었다. 노직도 대체적으로 이에 동의한다. 로크와 노직의 소유권론을 요약하면 소유권 발생의 일차적 원인은 인간의 노동이고, 이 중 토지의 사적 소유 여부는 그것이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가 기준이 된다. 그럼 먼저 노동 소유권론을 통해서 토지 소유권을 평가해 보자. 노동이 소유권을 결정하는 일차적 기준이라면 토지는 사유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면 토지는 노동에 따라 창조된 인공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토지의 지대 상승을 검토해 보면 토지 사유제는 노동 소유권과 정반대에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현대사회에서 지대의 증가는 토지 소유주와 거의 관계가 없다. 지대의 상승은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면서 사회적 분업이 발달하고, 경찰서, 도로 등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증가하는데,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공동체의 노력이다. 그러므로 상승된 지대를 토지 소유자가 전유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노동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오히려 공동체가 제공하는 이런 서비스를 토지 이용자가 사용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시장의 원리에 더 충실한 것이다.



두번째로 토지 소유권이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했는지를 검토해 보자.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했다는 것은 세계와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15~18세기에 진행된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이다. 이 과정이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한 문학가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표현했다. 토지에서 쫓겨난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산업노동자로 편입되어 저임금에 시달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이 바로 토지 사유화의 과정인 인클로저 운동이었다. 토지 사유화의 부작용은 우리의 역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왕조의 흥망성쇠와 백성들의 삶의 변화를 살펴보면 토지 소유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토지 집중도가 심해지면, 곧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인 토지 공개념이 한 사회에 적용되지 않으면 백성들은 언제나 궁핍했고, 토지 없는 농민은 다른 사람의 종으로 팔려가거나 거지로 방랑하였고, 이것은 민란의 주요 원인이었다.



결국 토지의 사적 소유권은 로크와 노직이 제시한 소유권의 원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토지 공개념을 사유 재산권 보호라는 미명 아래 반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토지의 가치를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는 토지 공개념의 근본정신은 사유 재산권과 시장원리에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남기업

설거지 수양 - 아귀다툼을 생각하며 2005-11-25

정성껏하는 설거지는 수양의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는 공양 후 바리때를 김치로 깨끗이 닦는 등의 방식으로 이런 설거지 수행의 원형을 2천년이 넘게 보존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평생 설거지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았다면 그 사람은 깨달음의 길에서 많이 멀어져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게걸스레 먹기 만 하고 남줄 줄 몰랐던 사람이 죽어 아귀가 되었다 합니다. 그것도 부엌의 개숫물 빠지는 곳, 요즘 같으면 씽크대 물 빠지는 곳에 입이 되어 살고 있다 합니다.



뭇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아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 깊은 속내는 전혀 모르고 자신 만 왜 이리 외로운가 물으며, 투정하면서

작은 사랑을 베풀기도 아까워하는 소심함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닌가 돌아 봅니다.



돌이켜 보면 아귀다툼은 먼 곳 아닌 바로 내 자신의 부엌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 지기도 합니다. 조금만 크거나 헛 것이 들어와도 곧 막히고 말지만 씽크대의 개수구는 언제나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먹어대던 그는 결국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 아귀를 매일 매 끼니 때마다 보면서 우리는 몸을 다잡습니다. 단 한톨도 그의 입에 넣어 아귀를 놀리지 않겠다고.

어쩌면 그 아귀는... 지금도 이렇게 가지기 만 좋아하는 바로 나 자신의 미래 모습이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적게 먹고, 남기지 않으며, 깨끗이 치우고 나면 아귀에게도 좀 미안한 마음이 가실런지요...

지천으로 배고픈 그늘진 곳에 보잘 것없는 사랑이라도 나누려하면 아귀는 배고픔을 잊지 않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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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감각’ 깨워야 자아일치. '행동-존재’ 분리는 ‘생각’서 비롯



설거지를 하던 한 주부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니 통곡을 합니다. ‘내가 왜 이걸 모르고 살았지? 그럼 그동안 내가 산 것은 뭐야?’ 수련 중에 설거지를 하면서 물소리, 그릇 소리를 처음(?)으로 듣고, 자기 손의 움직임, 서 있는 모습이 처음으로 보인 것입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처음으로 설거지만을 한 것이지요. 자기가 하는 행동과 자기 존재가 하나가 되는 경험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내가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라는 그 발견의 순간, 그 순간에 일어나는 빛. 최고질의 삶인 영생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설거지와 나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설거지 중에 만나는 물, 그릇, 수세미, 손가락 움직임, 들리는 소리 …. 사실은 하나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데 모두 거의 따로따로 떨어진 채로 삽니다.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떨어지게 하고 분리시켜 놓았을까요. 바로 생각이 그러했습니다. 매일 나는 이 하찮은 설거지나 하다 인생 가는 것이 아닐까? 이놈의 설거지를 안 하고는 못 사나? 여자로 태어나지 말아야 했는데, 빨리 설거지를 하고 외출해야 하는데 등의 생각들이 몸과 일의 사이에 끼어 서로 하나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 간격이 굳어지고 멀어지면 사람은 생각의 종이 되고 맙니다. 이런 기계 인간들을 어떻게 깨어나게 할까, 깨어나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주변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할까가 영적 안내자들의 기술이지요. 이때 제가 쓰는 안내 기술은 감각 깨우기입니다. 듣고, 보고, 맡고, 만지고, 말하는 감각을 느끼도록 하는 ‘오감열기’입니다.



눈을 감고 숨을 느슨하고 편안하게 한 뒤 들리는 것들을 다 듣습니다. 소리에 이름을 붙이거나 시끄럽다, 이쁘다 판단하지 말고 처음 듣듯이, 두 번 다시 못 들을 듯이 듣습니다. 이때 찾아오는 고요가 있습니다. 놀라움이 있습니다. 신비롭습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보이는 것들을 두 번 다시 못 볼 듯이 정성스럽게 봅니다. 웃음을 머금고, 모양, 색깔, 크기, 어울림을 봅니다. 공중에 나는 새나 들에 핀 꽃을 보라는 말씀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보면... 근심·걱정이 없는 삶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수련 중에 청소를 한 뒤 한 장로님이 말씀을 합니다.

2층 예배당 바닥을 닦는데 오르간 밑에서 “닦아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오르간을 치우고서 밑에 있는 먼지를 닦아주었더니, ‘정말 고맙다’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니 이제 자기는 하산해도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음 하나를 던졌습니다.

“장로님께서는 걸레질을 하셨다고 하셨지요? 걸레와 방바닥이 만나는 소리는 들으셨나요?”

“못 들었는데요.”

“걸레와 방바닥이 만나는 이 소리는 사실이지요? 오르간 밑에서 닦아 달라는 소리는요?

우리의 가청주파수 안에 있는 사실의 소리는 못 들으시고, 가청주파수 밖에 있는 소리는 들으시는군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는 그런 경험들을 신령하다, 신비롭다 하고 통할지 모르지만

과학에서는 그런 것들은 환청 또는 착각이라고 합니다.”



장길섭/삶의예술-하비람영성수련원 대표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8/2004/10/005100038200410201656158.html

낙이 없다? 장난해 보세요. (조남준) 2005-10-11

살다보면...

참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대체 무엇하러 사는 지,

어차피 늙고 병들어

아무도 모르는 길을 혼자 가야 할테고...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만 하는지...



초발심으로 돌아갑니다.

구르는 말똥에도 즐거웠던 그 시절.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가 그리도 곱던 시절.



첫 마음을 찾는 것은

역시 어린 마음입니다.



아이처럼

장난 하나 시작해 봅니다.

세상을 향해 웃어 봅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뭐 본디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단지 아는 체 하느라

뭐 좀 있는 체 하느라

목에 힘이 좀 들어가 있을 뿐.

여전히 밥먹고 걸죽하게 내어 놓는 기구임에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 말입니다.



살아 있으십시오.

가을은 모두에게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으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여전히 살아있음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십시오.







4월이 가기 전에... 사랑하십시오. 2005-04-21








Aphrodite,



기도 하나...

4월, 사랑의 신께.



===



There once was a king

who called for the spring,

For his world was still

covered with snow,





자신이 사는 세상이 항상 눈으로 덮여 있기에

애타게 봄을 그리던 왕이 있었습니다.





But the spring had not been,

for he was wicked and mean,





하지만 심술궂고 속 좁은 사람에게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In his winter fields

nothing would grow;





그처럼 언 땅에 무엇이 자랄 수 있을런지요.





And when a traveller called

seeking help at the door

only food and a bed for a night,

he ordered his slave

to turn her away.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어느 날 지나던 이 하나 있어

하룻밤 묵어 갈 것을 원했지만

그는 들은 채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던 그이는...

큰 눈 가득 사랑을 품은 봄이었다 전합니다.





Chris De Burgh , The girl with April in her eyes...



===



혹시 봄을 문 밖에 두고

이리 춥게 지내지는 않는지 한번 돌아 보아야겠습니다.



크리스 디 버의 눈으로 문을 열 수는 없을까요...



목련이 한창입니다.

옷걸이로서의 삶 (정채봉) 2005-04-15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동화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 정채봉의《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중에서







내일은 해가 뜬다. Hope the prince... 2005-04-09

때로는 자신이 하찮은 개구리처럼 느껴지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그리던 공주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사십시오.

마음먹기 따라 잡초 무성한 세상도 꽃밭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노라면 궂은 날도 있겠지요...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공주는 개구리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는 멋진 왕자가 되었습니다.

아, 정말 좋은 이야기야...  그래, 우리는 희망 덕에 살지...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누군가를 위해 공주 한 번 되어 보고 싶습니다...

꽃이 먼저 핀다. (정호승) 2005-03-23

며칠 날씨 불순하더니, 오늘도 하늘은 회색입니다.

겨울이 우리 곁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 하는 듯 합니다.



혹시 마음 한켠이 우울하시거든

봄 기다리는 꽃처럼 함초롬히 채워보십시오.



가끔씩 보잘 것없고

대단치 않은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라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



하지만

그런 자신을 추스리고 이 나이 된 것은

사람 사는 것에 작은 이유 하나 씩은 있지 않을런지요.



sgs.







꽃이 먼저 핀다





매화나무나 벚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목련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꽃이 먼저 핀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보여준다.



참으로 순수한 열정이다.

나뭇가지의 어디에 그런 꽃이

숨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겨울에 그들은 한낱 불품없는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색깔도 거무튀튀하다. 먼지가 쌓여있고, 가끔

새똥도 묻어 있고, 어떤 것은 검은 비닐

봉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어딜 보아도

아무데도 쓰일 데가 없는 무가치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놀랍게도 꽃을 피워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나를 아름답게 한다.







- 정호승의《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중에서 -







진정 내 몫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있을지... 2005-03-19





이제 조금씩 이나마 눈이 밝아지는 듯 합니다.

과연 내가 지금 가진 것 중

내 진정한 소유인 것이 어느 것인지를 헤아리게 되니 말입니다.



죽더라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라는 일갈을 새깁니다.



무엇 하나 가져갈 수도 없으면서

잘못하면 지저분한 것 만 남기고 갈 수 있겠다는

두려움도 앞섭니다.



그러나 무엇합니까?

오늘도 앞에 보이는 새 것 하나 갖고 싶으니 말입니다.

중생 사람되어 출세간하기는 참 쉽지 않은 일인가 합니다.









<이철수 그림>

문득 살아온 것 돌아 보건대... (고은) 2005-03-17

새 날

사람 하나,

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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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살아온 것 돌아 보건대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 하나둘이면

어디 이처럼 기쁜 일이랴



그 다음으로 내가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이 하나가 되어

내 빈 가슴 속 손 흔들어 준다

이제 돌아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기다리는 곳으로

속절없이 갈 수 있다면

어디 이처럼 기쁜 일이랴



신새벽 기적소리같이

이제까지는 세상이 어린이였다.

이제부터 내 그리움 하나둘이면

어디 이처럼 기쁜 일이랴.



(고은)

나도 내가 좋다... 2005-03-09

나도 내가 좋다...



그런 나를 누가 바보라 해도

그렇게 철없이 살고 싶습니다.

목 곧지 않게 말입니다.



비록 보잘것 없으되

내가 나를 좋아하듯이

남도 그러하기를 빌며 삽니다.



공황장애,

외상성 장애,

우울증,

편집증,

노이로제,

콤플렉스,

히스테리.



이런 정신장애들은

무지한 제 주제 모르고

제깐에는 철들었다고 착각하기 십상인

우리 사람들에게만 생기는 것 아닌가 합니다.



개나 소나

멧돼지도

이런 걱정없이 사는 것보면 말입니다.



내놓고 보면 모두 거기서 거기인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모두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의 나라. 2005-03-07




삼일절은 휴일치고는 좀 무엇한 날입니다.

요즘도 봄의 문턱에서 싸르르한 날씨에 눈을 퍼부었듯이, 아마 당시에도 생각은 대춘부라 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국경일은 거개가 대단한 성취를 이뤄낸 것을 기념하는 데 반해

삼일절은 그날 이후로 오랫동안 온 겨레가 못당할 꼴을 겪어야 했던 그런 시련의 시작을 기억해야한다는

착잡함이 스며있기 때문인가도 합니다.



그 서러운 기억의 한 가운데 만해 한용운 선생이 우뚝 서 있습니다.

님 가신지 벌써 60성상이 넘었지만

여전히 님은 예전처럼 두 눈 부릅뜨고 그렇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누구는 선생께서 노쇠해서 생을 마치셨다고 얼버무리지만 그것은 정말 생뚱맞은 주장이고,

님은 왜인들의 식량 배급을 결연히 받지 않고 연명하시다가

결국 해방을 한 해 앞둔 그 겨울에 삼청냉돌에서 아사하셨다는 것을

송구스런 후학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찾은 조국에서

여전히 설쳐대는 매국노의 자식들이 추잡한 할애비의 검은 땅을 찾겠다고 나서더니

그에 기세한 탐관오리들까지 땅사재기로 욕을 쌓아가고 있는 이 즈음.



그 뻔뻔스런 얼굴들을 님이 예의 형안으로 뚫어지게 보고 계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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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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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님이 나신 곳, 님 나신 곳에서 이제서야 옷깃 한번 여밉니다.



번듯이 복원하여 검박한 운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누옥을 들어서면,

님은 당시 조선의 민초 거개가 그러했듯이

가난이 일상인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나라 걱정을 잊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립니다.













소를 찾고 싶었던 님의 누옥 마루에는 심우재란 현판이 고즈넉히 걸려 있고...



전대법륜.

바른 길은 멀리 있는 것 같아도

결국은 실현될 것이라는 바램이 님의 마음 속이었다고

후세들이 새긴 각오가 자리 잡았습니다.



님은 가셨어도 우리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님이 짚어 주셨듯...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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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속에서 자라야만 애국이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홍성 땅은 깨우쳐 줍니다.

만해 생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있습니다.



지금 보아도 번듯한 기와집이고, 당시에는 근처 인근이 모두 그 집안에서 부치던 땅이었다하니

상당한 부자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그는 선각자였습니다.



대문을 들어서기 전에 행랑채에는 그의 업적 둘이 보란듯이 잡인들에게 빛을 내고 있습니다.

자랑스레 걸린 장군의 문패와 현액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가노해방 민족춘 (家奴解放 民族春)

청산대첩 광복신 (靑山大捷 光復身)





15세 때 벌써 형안을 떠 데리고 있던 노비를 모두 풀어주어 민족의 봄을 열었던 포부,

청산리 대첩의 후련함으로 겨레의 자존심을 한껏 고양해주어 광복의 토대가 되었던 사실입니다.



어린 나이에 사람을 높낮이로 부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를 과감히 타파한 것도 놀랍고,

부실한 군비와 병력이었지만 중무장 일본군 3,000 여명을 골로 보낸 것이 그렇습니다.

병력과 장비 만 믿고 달겨들던 저 극악한 제국주의 왜병 삼천을 골짜기에 묻은 독립군측 피해는 전사 2인이었다 합니다.

골로 보낸다는 말이 바로 여기서 연원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이 우리 겨레에 행복이었다고 주장하는 대학교 접장에다,

일본군 소위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일본식 유신으로 조국을 바로 세웠다는

육사 출신 전략가의 주장을 보면서



어쩌면 이 땅에는 다시 한번 그 날이 오고

천추의 한이 맺힌 백야 장군이 재림하여

이들을 다시 한번 골로 보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일본의 밀정이 보낸 조선인 자객에게

백야 장군이 암살되었음을 우리가 잊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밀정의 후예들이 이 땅에서 횡행하도록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살아 남은 자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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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 만해선사



'돌집' 등진 북향집 그칠줄 모르고 탄 ‘님의 구국혼’



서울 성북동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다시 달동네를 오른다. 좁디좁은 골목길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유난히 푸른 집이 심우장이다. 심우장은 만해가 54살에 지어 65살에 입적할 때까지 산 집이다.

심우는 ‘소를 찾는다’는 뜻이다. 만해에게 소는 무엇일까. 만해가 심우장에서 한 첫 작업은 〈유마경〉 번역이었다. 붓다 당시 유마는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말을 남긴 재가 거사다. 〈유마경〉에선 붓다의 수제자 사리자를 비롯한 10대 제자들이 유마거사에게 쩔쩔맨다. 유마는 출가자도 아닌 재가자의 몸이었지만, 이미 ‘자타불이’(너와 내가 둘이 아님)의 ‘대승(불교)’을 체화했기에 불도를 이룬 강물조차 한입에 들이마신 큰 바다였다.



금강산 건봉사에서 참선 수행해 1917년 스승 만화 선사로부터 ‘한입으로 온 바다(萬海)를 다 마셨다’고 ‘만해’라는 법호를 받은 ‘선사’였던 그는 다시 중생들의 ‘고해바다’에 뛰어들었다.





일제 앞잡이 잘못 몰려 독립군에 두번 죽을 고비. 훗날 사죄하자 “씩씩해서 맘 놨네” 격려



만해는 나라와 자유를 잃고 핍박 속에 신음하는 이 땅의 중생들의 아픔에 평생 열병을 앓았다.



만해는 조선의 국운이 기울던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혼인했으나 18살에 백담사로 출가했고, 잠시 홍성에 돌아왔다가 24살에 재입산한 이후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않았다.



만해는 젊은 시절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맞이했다. 세계지리책을 읽고서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안 만해는 27살에 세계일주여행을 단행했다. 첫 여행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였다. 그곳에선 일제에 쫓겨 고향을 등진 대한의 청년들이 머리 깎은 사람만 보면 ‘왜놈 앞잡이인 일진회원일 것’이라며 뭇매를 때려 죽이거나 산 채로 바다에 수장했다. 만해는 이곳에서 두 차례나 살해될 위기에 처했다가 격투 끝에 사지를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왔다.



32살 때는 만주에 갔다가 다시 ‘왜놈의 첩자’로 몰려 독립군에게 총을 맞았다. 이때 맞은 여러 발의 총알이 목 부위에 박혀 있어 만해의 목은 평생 한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일제의 앞잡이’로 몰려 죽을 뻔한 두 시기 중간엔 일본의 은혜를 입었다. 1908년 도쿄에 조동종이 세운 대학에서 일본 승려의 도움으로 불교와 서양철학 등을 공부한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많은 종교인들은 이 같은 개인적인 수난과 은혜에 의해 친일 또는 친미, 반공 등의 노선을 오갔다. 그러나 만해는 달랐다.

총을 쏜 독립군 청년이 훗날 만해를 찾아와 사죄하자 그는 “나는 독립군이 그처럼 씩씩한 줄은 미처 몰랐구려. 나는 이제 맘을 놓게 됐다”며 오히려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는 늘 스스로 지옥의 문지기가 되기를 마다지 않았다. 건봉사에서 대중 공양 도중 한-일 병합 조약 소식을 들은 만해는 승려들이 공양을 계속하자 “이 중놈들아, 밥이 넘어가느냐”며 밥상을 걷어차 버렸다. 또 최린 등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했던 그는 감옥에서 일부 민족대표들이 사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자 “목숨이 그토록 아까우냐”며 똥통을 뒤엎기도 했다. 그토록 가까웠던 최린, 최남선, 이광수 등에 대해서도 ‘친일파’라며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한일병합 소식듣고 울분 “밥이 먹어가느냐” 밥상 걷어차

민족대표 죽음 두려워하니 “목숨이 그토록 아까우냐” 똥물



서울 평창동 정토사 조실 설산(87) 스님은 만해의 제자 의산 스님의 제자다. 손상좌로서 심우장과 건봉사를 오가며 심부름을 하곤 했던 그는 혜화전문학교에 다니던 중 일제에 징병되자 작별인사를 드리러 심우장에 갔다. 개인적인 친밀감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만해는 떠나는 손상좌를 보자 두던 바둑판을 집어던지며 “이놈아 죽지 마라”고 세 번을 울부짖었다. 스승의 말이 가슴에 박힌 청년 설산은 서울역에서 달리는 기차 바퀴에 발을 넣어버렸다. 설산 스님이 이렇게 발가락을 잘라 징병을 피하고 다시 만해에게 가서 인사드리자 만해는 “조선 사람이 살아왔다”며 기뻐 외쳤다. 설산 스님은 “할아버지(만해)는 일제에 호적조차 올리지 않아 배급조차 받을 수 없었기에 결국은 영양실조로 돌아가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처지에서도 만해는 그를 회유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성북동 일대 20만평의 국유림을 불하해주겠다는 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총독부와 연계된 한 청년이 돈 보따리를 들고 오자 뺨을 때려 쫓아 보냈다. 벽초 홍명희는 “만해 한 사람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만공 선사는 “이 나라에 사람이 하나 반밖에 없는데 그 하나가 만해”라고 했다.

모두가 희망을 잃은 때에도 “보라 겨울이 가면 봄이 오지 않느냐”며 청년들에게 ‘희망의 햇살’을 비춰주던 만해는 ‘해방의 봄’을 한 해 앞둔 44년 열반에 들어 비쩍 마른 몸마저 꽁꽁 얼어붙은 시대의 불쏘시개로 바쳤다.



3·1운동으로 3년을 감옥에서 지낸 뒤 출옥한 직후 찾아온 한 기자에게 만해는 “지옥에서 쾌락을 즐겼노라”고 말했다. 불교에선 스스로 지옥에 들어간 이가 있다. 모든 중생을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지막으로 지옥문을 나서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이다. 심우장의 앞산과 마을을 바라보니 봄이 성큼 다가온 양지다.

총독부를 향하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어 북풍 눈보라를 자처한 심우장에서 양지녘 중생을 보고 미소짓는 이가 과연 누구였을까.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8/2005/03/0051000382005030217462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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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와 만해를 기리러 갑니다.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을 나서...

토끼굴을 지나며 바로 좌회전하면... 29번 국도 입니다.

1Km 쯤 진행하다 서산 방조제 방향을 향해 좌회전...합니다.

5백여 미터 못가 김좌진 생가 팻말이 나오는 네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몇백미터 상거입니다.

(갈산면 행산리)



백야 기념관을 나서 좌회전하여 (남쪽으로) 결성면을 향합니다.

3Km 쯤 가면 용호초등학교. 우회전... 다시 1.5Km 진행하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2Km 남짓 가면...표지판... 생가입니다.

결성면 용호리 잠방골.



결성면에서 정서 방향으로 새조개로 유명한 남당포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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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심우재는 만해 생가를 기려 후세인들이 부친 이름입니다. (충남 홍성. 041) 642-6716)

심우장은 만해가 만년을 보내다 유명을 달리한 곳입니다. (서울 성북 2동 279. (02) 747-8220)

심혈을 기울인 자료가 풍부한 만해 기념관은 남한산성에 있습니다. (경기 성남시. (031) 744-3100)

스님 만해 기념관은 강원도 백담사의 요사채에 있습니다. (강원 인제군 용대리. (033) 462-3224)

백담사 입구에는 만해 마을이 있습니다.(033) 462-2304)

사형? 과연 정의로운가. <극단의 형벌> (스콧 터로) 2005-02-03

살인한 자를 사형시켜야 하는가? 그것은 또 다른 살인이 아닌가?
희대의 살인범 한 사람이 구치소 분위기까지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한편 처음과는 달리 그는 반성하는 빛도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쨌던 살인이라는 생각으로 살펴 봅니다. 서평 하나를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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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조폭 한명 데리고 가겠다"..조폭들 "혼내주겠다" 코웃음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연쇄 살인범 유영철(34)이 최근 "죽기전에 조폭 한명과 경제사범 한명은 데리고 가겠다"고 공언, 구치소측이 유영철 계호에 총력전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입감자들의 `군기반장' 노릇을 했던 유씨는 구치소에 입감된 직후 동료 수감자들을 한번 둘러보고선 이같은 말을 던져 수감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말을 들은 구치소측은 아연 긴장, 유씨 전담 계호요원을 4∼5명으로 늘리며 유씨와 다른 수감자들이 접촉할 기회를 아예 봉쇄하는 등 혹시 있을지 모를 돌발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유씨의 말을 전해들은 조직폭력배 수감자들이 코웃음을 치며 유씨를 한번 혼내주겠다고 벼르고 있어 구치소측은 이들의 유영철 접근도 막느라 이중고를 겪고 있다. 유씨는 검찰의 소환조사에도 불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는 "자꾸 내 자백에만 의존하려 하지 말고 물증을 가져오라"며 큰소리를 치고 있어 검찰 수사팀을 당혹케 하고 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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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 연쇄살인범 유영철(34)에 대한 선처를 호소한 피해자 유족의 탄원서를 읽은 유씨가 피해 유족에게 보낸 답장이 공개됐다.

유씨는 자신의 흉기에 노모와 부인, 아들 등 일가족을 잃고도 "죄는 밉지만 사형만은 말아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경찰에 보냈던 '서울 구기동 사건' 피해유족 고모(65)씨에게 보낸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에서 "염치없는 줄 알지만 어르신께서 제게 보내주신 글을 보고 너무 감동이 돼서 참회하는 심정으로 몇자 적게 됐다"고 썼다.

유씨는 "지금 와서 어떤 말씀으로 사죄를 드려도 어르신의 마음에 위로가 안되실 것이라 믿는다"며 "용서를 구하고자 이렇게 용기를 낸 것이 아니라 다만 저같은 인간을 벌하지 말라 하신 어르신의 간곡함을 읽고 이 인간이 얼마나 못난 짓을 했는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라고 적었다. 유씨는 "제가 어렵게 자라 부유층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과 한 여성의(에 대한) 배신감을 그렇게까지(밖에) 표출하지 못했던 정말 나약하고 못난 인간 이하의 인간이었다는 걸 알았다"며 "소박한 꿈을 향해(이루기 위해) 살려고 발버둥도 쳤지만 내 의지와 다른 수렁의 길에 접어들기를 반복했다"고 썼다. 유씨는 이어 "검거 당시 기회가 여의치 않아 많은 유가족들에게 사죄를 드리지 못한 점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어르신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저의 심정을 전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며 다시 한번 진심으로 머리숙여 깊이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lilygarden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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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이름으로 살인’ 과연 정의로운가



“이 책은 경험에 바탕을 둔 개인적 기록이므로 학술적인 책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극단의 형벌〉(도서출판 교양인) 지은이 스콧 터로는 책 꼬리에 이런 ‘단서’를 달았다. 수많은 ‘학술적 관심’이 이 책에 쏠릴 것을 진작에 예상한 듯하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오해’라 할지라도, 이 책이 사형에 대한 법학·사회학·철학적 논점들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최근 사형폐지특별법안 처리를 준비하고 있는 정치권의 움직임이나, 건국 이래 최악의 연쇄살인범의 등장이 이 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그 학술적 의미를 더한다. 사형은 작금의 한국 사회가 다뤄야 할 ‘극단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사형 폐지론과 존치론 사이의 넓고 깊은 ‘해자’는 아직 좁혀지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필수적인 ‘공론화’의 조짐이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본격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극단의 형벌〉은 사형이라는 화두를 안고 끙끙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 ‘하나의 대안’을 던진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자리잡은 균형감은 미국 연방검사 출신 변호사인 스콧 터로의 독특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공화당 출신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 조지 라이언은 지난 2000년 3월 사형집행의 일시 중지를 선언하고 사형제도 개혁을 위한 ‘사형 위원회’를 설치했다. 당시 2년여에 걸친 위원회 활동의 한 주역이 스콧 터로다.



그는 연방 검사 시절 살인혐의자의 사형선고를 기쁘게 받아들였고, 형사소송 변호사 시절엔 사형 선고 사건의 오류 앞에 경악한 ‘사형 불가지론자’다. “경찰의 살인 무기 사용 등의 국가 폭력은 필요하다”고 믿는 그는 미국 보수주의자의 전형이기도 하다.





검사출신 변호사 스콧 터로, ‘극단의 형벌’경험통해 사형제 폐지·존치론 넘나들다

무고한 사형수 사례등으로 “폐지” 결론.



바로 이 점이 각 학문 분과를 넘나들며 존치론과 폐지론의 경계를 실증적으로 허무는 지은이의 연구에 ‘매혹’당하는 이유다. 그는 사형 존치론의 함의에 대한 기대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고 복잡한 논란의 가닥을 잡아가며 사형제도 폐지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그가 보기에 “사형 논쟁은 한 나라의 정신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궁극적 원천이 시민이라면, 정부가 자신보다 우월한 권력을 가진 시민을 죽이는 것이 허용될 수 있을까”라는 게 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여러 논점 가운데 사형이 범죄억제의 효과가 있다거나 반대로 살인을 부추긴다는 주장을 ‘실증적’으로 논파하는 대목은 이 책이 갖는 미덕을 그대로 웅변한다. 철학적 논쟁을 그대로 보여주고, 이를 정책의 관점에서 대안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



살인과 사형을 ‘온몸으로’ 체득한 그의 탁월함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복수의 도구로서의 사형’에 대한 논증 부분이다. 그는 “일관되게 사형을 지지하는 집단이 피살자의 유족”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살인으로 잃는 것은 이 잔인한 인생에서 우리가 받는 다른 어떤 타격과도 다르며, 이런 상실은 이성과 규칙에 따르는 법치에 대한 ‘특별한 도전’”이라고 말한다. “살인범이 여전히 존재의 작은 기쁨을 누린다는 것의 불합리”에 대한 지은이의 ‘공감’은 그러나 “전체 공동체 역시 피해자의 잠재력을 뺏긴 것이므로 처벌은 ‘유족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이밖에도 무죄가 입증된 사형수, 경찰과 검찰의 직권남용, 사형제도의 사회적 비용, 공동체의 도덕적 균형, 법률시스템의 우연성과 편파성, 사형논란의 역사적 맥락 등이 이 책에 등장한다. 사형제도를 둘러싼 사실상의 모든 논점을 망라한 것이다.



스콧 터로가 속한 ‘사형위원회’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일리노이주는 2003년 1월 167명의 사형수를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또는 40년형으로 감형하고, 제도 전반에 대한 폭넓은 개혁작업에 돌입했다. 사형폐지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사형국가’인 미국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지은이는 “법의 예리한 규칙들은 결코 도덕적 모호성이라는 어둠을 베어내지 못하며, 처벌만으로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 길로 이끌 것인가. 이제 ‘한국적 해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육식이 기호일 수 있는가? (WorldWatch) 2004-08-25

육식이 기호일 수 있는가? (WorldWatch)2004-08-25


고기를 즐기는 것이 개인의 기호에 머물 수 있을까?




논란이 되기 전에 한가지 사실을 환기하고자 합니다.

고기를 먹어야 필수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는 명제는 사실이 아닙니다.

지구 상에서 전혀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2억명 정도 되며,

고기를 기피하는 문화권의 주민은 20억에 가깝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근처의 절에서는 적지 않은 수도승들이 고기없이 평생을 삽니다.

또한 육상의 신기록 발생기였던 인간 총알 칼 존슨 같은 이도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사람입니다.



육식은 원시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사냥꾼으로서 인간의 습관이지

필수적인 식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가둬놓고 잡아서 게걸스레 고기를 먹어대는 것은

활과 칼이 전부였던 사냥꾼의 멋진 모습이 아니기도 합니다.



(월드워치 연구소의 초고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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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에게 '육식 논쟁이 현안 중에서 우선순위가 어느 정도나될까'하고 물었다 치자.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어떻게 그런 것이 논쟁의 대상이 되느냐며 의아해 할 것이다. 고기를 먹고 안먹고는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대답이 주종을 이룰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 자신도 어쩌면 은연 중에 그런 태도에 동의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그 자신이 비만이나 과체중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많다. 그러다 보니 테러리즘, 경제, 환경 등 선거 때만 되면 정치가들이 즐겨 외쳐대는 공약 순위에서도 육식문제는 빠져있기 십상이다.



설사 육식이 환경적으로 중요한 논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 치더라도 그런 생각이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목축 때문에 귀중한 자연림이 사라지고 있다는 다급한 보고가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우리의 현실 인식은 이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아마존워치나 콘저베이션 인터네셔널, 그린피스 등이 앞장서 육식이 다른 환경 과제들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섰다.

최근 환경관련 과학이 발전하면서 고기를 향한 사람의 식욕이 인간의 미래를 위협하는 주요 환경적 문제들과 실질적으로 거의 동격에 놓여 있다는 것이 분명해 지고 있다. 즉, 삼림파괴, 토양 침식, 식수 고갈, 공기의 오염, 기후변화, 생물다양성의 감소, 불안정한 사회, 질병의 만연 등과 같이 육식또한 심각한 환경문제인 것이다.



과연 어떤 이유에서 개인적이었던 육식 문제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지속가능성 논의의 한 복판에 등장하게 된 것일까? 우선 지난 반세기 동안 일인당 고기 소비량이 두배 이상 증가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고, 그 결과 고기에 대한 전체 수요는 다섯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추세가 결국 사육에 필요한 물, 땅, 비료, 연료, 폐기물 처리용량 등 제약 속에 놓여 있는 거의 모든 자원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게 되었다.

이전에 주변적 문제였던 문제가 중심 논제로 급변하게 된 과정을 알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필수적이라 여겨졌던 제반 환경적 요소들을 놓고 분석하는 것처럼 육식 또한 환경적으로 적합성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각각의 분야에서 비중있는 관계자들의 의견을 살피면서 결코 쉬울 리 없겠지만 삼겹살이나 갈비 취향의 사람들이 마지못해 두부 요리를 먹지 않으면서, 큰 마찰없이 슬기롭게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을지 찾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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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에서 빵 한조각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밀가루 생산에는 55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한편 100그램의 쇠고기 생산을 위해서는 무려 7천 리터의 물이 소요된다.

UN 지속가능한 개발 위원회 (Water More Nutrition Per Drop, 2004)



거대한 축산 공장에서 수십만 마리의 돼지, 닭, 소들이 실로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축산공장이 쏟아내는 폐기물의 양은 사람의 것보다 130배 더 많다.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곡물을 식량으로 사용 데에서 곡물을 사료로 먹이는 방식으로 세계 농업이 전환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인간적 죄악이라 해도 좋을 지경이다. 그 결과는 아마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끼쳤던 예전의 어떤 악행보다도 더 오래, 더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 이상이 -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 가축용이고, 그 대부분은 소를 위한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 (Los Angeles Times, 27 May 2002)



미국의 농경지 중 5,600 만 에이커가 가축용 곡물을 생산하고 있음에 반해

사람이 필요로 하는 식량 생산에는 4백만 에이커가 할당되 있을 뿐이다.

미 상무성(U.S. Department of Commerce, Census of Agriculture)



동물의 폐기물에는 질병원인인 살모넬라(식중독균), 이콜리(대장균), 크립토스퍼러디움(은폐 포자류), 분뇨 대장균 등의 병원체가 사람의 배설물보다 10배에서 많게는 100배 이상 농축되 있는 경우가 많은 데 이 때문에 40종이 넘는 질병이 분뇨를 통해 사람에게 전염되기도 한다.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식량생산 체계의 기가 막힌 부조리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부유한 수백만명이 풍요로 인한 기름진 고기 식사를 포식하다가 얻은 심장병, 뇌졸중, 당뇨, 암으로 죽어간다. 한편 제 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족을 부양할 정도의 경작지조차 갖지 못한 결과 가난 때문에 병에 걸려 죽어나가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 (Los Angeles Times)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관상동맥 질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채식을 하게 되면 관상동맥질환 자체를 성공적으로 치유할 수도 있다.

채식은 비만, 관상동맥질환, 고혈압, 당뇨성 질환, 여러 가지 암에 걸릴 위험 감소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American Dietetic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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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a heavy eater of beef. Me thinks it doth harm to his wit.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은 당연히 지능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세익스피어, in Twelfth Night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63세 정도이라는데, 85살이 된 나는 지금도 힘든 일을 너끈히 해내고 있다.

이제 나도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 볼 참이다. 그렇다고해서 자살을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쇠고기 한조각이면 내 삶을 마감 할 수도 있겠지만 맨 정신으로서야 어찌 그런 따위를 삼킬 수 있겠는가.

그러고보니 이러다 혹시 내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울 때도 있다.

바로 이것이 채식주의자가 감수해야 하는 유일한 불이익이 아닐까.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 (그는 이 글을 쓴 후 10년을 더 살고 95살에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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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고기를 먹어대는 육식의 시대는... 매장량의 한계를 염려할 수밖에 없는 석유의 시대가 그러하듯... 머지않아 종말을 맞게 될 것이고... 두 쇠락이 결국은 한 매듭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하 원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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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T

육식 취향은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제 그것은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논의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글: 월드워치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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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에게 '육식 논쟁이 현안 중에서 우선순위가 어느 정도나될까'하고 물었다 치자.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어떻게 그런 것이 논쟁의 대상이 되느냐며 의아해 할 것이다. 고기를 먹고 안먹고는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대답이 주종을 이룰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 자신도 어쩌면 은연 중에 그런 태도에 동의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그 자신이 비만이나 과체중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많다. 그러다 보니 테러리즘, 경제, 환경 등 선거 때만 되면 정치가들이 즐겨 외쳐대는 공약 순위에서도 육식문제는 빠져있기 십상이다.



설사 육식이 환경적으로 중요한 논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 치더라도 그런 생각이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목축 때문에 귀중한 자연림이 사라지고 있다는 다급한 보고가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우리의 현실 인식은 이런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아마존워치나 콘저베이션 인터네셔널, 그린피스 등이 앞장서 육식이 다른 환경 과제들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섰다.

최근 환경관련 과학이 발전하면서 고기를 향한 사람의 식욕이 인간의 미래를 위협하는 주요 환경적 문제들과 실질적으로 거의 동격에 놓여 있다는 것이 분명해 지고 있다. 즉, 삼림파괴, 토양 침식, 식수 고갈, 공기의 오염, 기후변화, 생물다양성의 감소, 불안정한 사회, 질병의 만연 등과 같이 육식또한 심각한 환경문제인 것이다.



과연 어떤 이유에서 개인적이었던 육식 문제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지속가능성 논의의 한 복판에 등장하게 된 것일까? 우선 지난 반세기 동안 일인당 고기 소비량이 두배 이상 증가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고, 그 결과 고기에 대한 전체 수요는 다섯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추세가 결국 사육에 필요한 물, 땅, 비료, 연료, 폐기물 처리용량 등 제약 속에 놓여 있는 거의 모든 자원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게 되었다.

이전에 주변적 문제였던 문제가 중심 논제로 급변하게 된 과정을 알기 위해서 전통적으로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필수적이라 여겨졌던 제반 환경적 요소들을 놓고 분석하는 것처럼 육식 또한 환경적으로 적합성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각각의 분야에서 비중있는 관계자들의 의견을 살피면서 결코 쉬울 리 없겠지만 삼겹살이나 갈비 취향의 사람들이 마지못해 두부 요리를 먹지 않으면서, 큰 마찰없이 슬기롭게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을지 찾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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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림파괴:



문명이 가장 먼저 불러오는 환경적 피해가 삼림파괴다. 사육과 식량, 즉 농사 목적으로 대개의 숲은 풍비박산이 난다. 식량 생산보다 훨씬 넓은 땅이 필요한 축산은 불과 10년전 만 해도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새로 개척할 땅이 항상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운 대학이 추진 했던 세계 기아계획(WHP)은 이미 1990년에 이렇게 추산하고 있었다.

현재(당시)의 세계 곡물 수확량이 가축을 먹이는 데 쓰이지 않는 채식 위주의 식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60억 정도를 부양할 수 있음에 반해 부유한 나라들의 육식 행태를 따르게 된다면 그 인구는 불과 26억으로 줄어들게 된다. 예측대로 라면 현재 인구가 60억을 넘어섰기 때문에 벌써 인류는 사용 토지의 부족 상태에 있으며 이런 부족분을 물고기로 보충하게 되면서 어족자원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셈이다. 인류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고기를 먹는 것이 계속되고 인구 역시 예상 추세대로 증가한다면 결국 숲을 더욱 개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확장이 실제적으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이미 막다른 골목에 서있다.) 이제 우리가 단백질을 동물에서 얻을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택할지 여부는 현재 남아있는 숲을 더욱 개간해야 하는 결단과 직결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중남미의 열대 우림 40%가 사라졌는 데 이들 용도 대부분은 가축을 길러 수출하는 것이었으며 그중 대개가 미국의 쇠고기 햄버거를 위한 것이었다.

쇠고기 수출국에서 고기란 가난한 사람들이 먹기에는 너무 비싼 것이 되었고, 때로는 보다 생산적인 전통 농업이 목축 때문에 쫒겨나고 있다.

존 레빙턴 (in World Rainforest Report)





국제삼림 연구소는 브라질에서 쇠고기 출하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아마존 삼림 파괴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목축업자들이 브라질 열대우림을 갈아서 소고기 육회를 만들고 있다고 이 연구소 사무총장 데이빗 카이보비치는 간단히 요약했다.

(Environmental News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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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의 파괴:



대규모의 목초지에서 단작 형태로 가축을 기르게 되면서 바이슨(미국 들소)이나 영양같은 야생 동물들은 점점 구석에 몰리게 되고 결국 풀밭 파괴도 심화되고 있다. 완전벌목을 할 경우 결국에는 단일 종 나무로 대체되면서 심각한 고통 만 남는다는 것이 많은 사례로 증명되고 있다.

보매는 물결치듯 아름다워 보이는 밀밭의 풍경이 한때는 풍성하고 다양했던 온갖 작물들을 쫒아낸 결과인 것처럼 완전벌목된 초원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메닝은 답답해 한다.





북미의 생태계에서는 결국 초지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다른 어느 생태계도 이보다 더 심각한 (숲과 농지의)박탈을 겪지는 못했을 것이다.

리차드 메닝 (In a review of Richard Mannings 1995 book Grassland (1955), The History, Biology, Politics, and Promise of the American Prairie, Pulitzer Prize-winning writer)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지 고갈에 대한 해답으로써 가축 대신 사냥감 동물들을 방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가축 뿐만 아니라 영양도 건조한 지역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동물들은 물웅덩이를 찾느라 하루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지 않기에 보다 움직임이 줄어들어 토양의 압밀(역주: 동물이 밟아 땅이 다져지는 현상)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영양의 분뇨는 작고 마른 형태면서 질소도 포함되 있기에 썩 괜찮은 비료가 될 수 있다.

반면에 소는 크고 길며 축축한 분뇨를 내놓아 열이 축적되 있게 되므로 더 많은 질소를 상실하게 되고 결국 대기 중 암모니아 배출량도 증가시킨다.





케냐에서 실험적으로 사냥감 동물들을 방목한 결과 토양의 지력이 회복되고 경제적으로도 보탬이 되었다.

폴 엘리치, 앤 엘리치, 그레첸 데일리 (in The Stork & The P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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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



깨끗한 물 또한 땅처럼 지나간 누천년 동안의 문명 역사에서는 무한정으로 여겨졌었다. 그러기에 그런 물을 소가 얼마나 들이키는 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해 전부터 물 관계 전문가들은 지구 상에서 이용 가능한 물의 절반 이상을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나머지 절반을 할당받는 셈이 된 다른 종들과 경쟁관계에 서게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사람 자신이 먹는 식품과 숨쉬는 산소 등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종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게걸스럽게 물을 탐하는 것은 이러지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이런 물의 사용량을 살피면 다름아닌 우리가 고기를 위해 기르고 있는 동물들이 가장 많은 물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물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는 우리가 먹는 고기량을 줄이는 것이다.





일반적인 미국인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물의 양은 4,200갤런인데 이 중에는 가축의 마실 물, 작물의 관개, 처리, 세척, 요리 등이 포함되 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쓰는 물의 하루 필요량은 300 갤런에 지나지 않는다.

리처드 슈바르츠 (in Judaism and Vegetarianism)





국제 물관리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8억 4천만 명 정도가 영양부족 상태에 있는 바 이들에게는 보다 적은 물을 사용하여 식량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권장되고 있다한다.





개발도상국에서 빵 한조각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밀가루 생산에는 55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한편 100그램의 쇠고기 생산을 위해서는 무려 7천 리터의 물이 소요된다.

UN 지속가능한 개발 위원회 (Water More Nutrition Per Drop, 2004)





한 사람이 샤워를 하루에 7분동안 한다고 가정하고, 분당 수도꼭지에서는 2갤론의 물이 흐른다고 하면...샤워하는 사람 혼자서 1년에 5,110 갤론의 물을 쓰고 있는 셈이 된다.

물 교육 재단의 추계의 의하면 1 파운드의 쇠고기 생산에는 물이 2,464 갤론 필요하다. 그렇다면 고기를 한 파운드 만 덜 먹어도 무려 여섯달 동안 샤워하는 데 쓸 물을 절약하는 셈이 된다.

존 로빈스 (in The Food Revolution: How Your Diet Can Help Save Your Life an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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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처리:



폐기물 처리 역시 예전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무제한인 것처럼 보였다. 계속해서 새로 매립할 곳을 찾을 수 있었기에 수 세기 동안 갖다 버리고 묻고 하면서 쓰레기들은 일단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소떼들이 얼마나 물을 먹어대는지를 걱정하지 않고 있던 것처럼 그것들이 내어 놓는 배설물 역시 염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거대한 축산공장에서 나오고 있는 폐기물들은 이미 이 지구의 흡수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가축들의 배설물을 운반하게 되는 강이 질소 과다로 만과 해안의 대부분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해 해양 생태계는 죽어가게 된다. 미시시피를 거쳐 멕시코만으로 흘러드는 엄청난 양의 배설물을 줄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강 상류인 아이오와와 미주리에서 고기를 적게 먹어 가축 사육수를 줄이는 것이다.





거대한 축산 공장에서 수십만 마리의 돼지, 닭, 소들이 실로 엄청난 양의 폐기물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축산공장이 쏟아내는 폐기물의 양은 사람의 것보다 130배 더 많다.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미 환경청에 따르면 가축 폐기물로 오염되고 있는 강이 27,000 마일에 이르며, 10여 곳이 넘는 주에서는 강 유역의 지하수까지 오염되고 있다.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동물 폐기물의 양분은 해조류의 번성을 가져오게 되고, 이렇게 늘어난 해조류가 산소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멕시코 만에서 어패류가 살 수 없는 죽음의 장소인 무산소 해역이 늘어나고 있다. 죽음의 해역은 1999년 여름에만 7,700 평방 마일에 이르렀다.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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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소비:



최근까지 에너지 소비란 말은 냉장고같은 것들과 관련있는 것이지 그 안에 들어있는 고기나 우유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람의 일상생활을 보다 심층분석하게 되면서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 냉장고는 그저 그런 위치에 있게 되었지만 반면에 고기는 새로운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가축을 먼저 먹이기 위해 곡식을 기르게 되면서 석유화학 공정에서 생산하기 마련인 상당량의 농업용 비료가 필요하게 된다. 가축을 도살하고 운반하고 시장에 내어 놓는 데에도 연료가 들어간다. 이제 고기는 수 천 마일의 먼거리를 이동하여 냉장고에 도착하고 비로소 요리 대기 상태에 있게 된 세상이다.





미국의 경우 곡물을 먹여 키우는 고기 생산 1 파운드에는 석유 1 갤론 정도가 소비된다.

이런 석유 일부는 사육장, 수송, 냉장에 사용되지만 대부분은 소를 먹이기 위한 곡식사료에 필요한 비료생산에 들어가고 있다.

이런 결과 미국의 4인 가족의 쇠고기 소비에 충당하기 위해 해마다 화석연료 260 갤런이 필요하다.

고기 문제는 이제 전쟁이다. (web-site of Earth Save, Humboldt, California)





인간이 필요로 하는 동물성 단백질 1칼로리를 생산하려면 화석연료 28 칼로리가 든다. 반면에 식물성 단백질 1칼로리를 얻는 데는 단지 3.3 칼로리의 화석연료가 들어갈 뿐이다.

데이빗 피멘텔 (Cornell University)





곡물을 식량으로 사용 데에서 곡물을 사료로 먹이는 방식으로 세계 농업이 전환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인간적 죄악이라 해도 좋을 지경이다. 그 결과는 아마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끼쳤던 예전의 어떤 악행보다도 더 오래, 더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 이상이 -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 가축용이고, 그 대부분은 소를 위한 것이다.

제래미 리프킨 (Los Angeles Times, 27 May 2002)





동물에게 곡물을 먹이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며 극단적 자원 낭비의 전형이기도 하다.

바클라브 스밀(University of Manito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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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지구 온난화는 에너지 소비 때문이다. 중추적인 에너지 자원들의 주성분이 탄소인 데 이런 연료를 태우면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를 내뿜고 있다. 이런 연관 속에서 고기생산과 운반은 결국 이같은 연료 사용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축 자체도 소화의 부산물로 지구온난화 가스를 직접 배출한다. 소는 심각할 정도로 유력한 지구온난화 가스인 메탄가스를 공기 중으로 방출한다.

환경단체 어어쓰 세이브는 현재 13억 두에 이르는 소를 집중적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주요 지구 온난화 가스인 메탄 가스 1톤은 이산화탄소 23톤에 상당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목장의 소는 한 해에 75 킬로그램의 메탄을 내어 놓는 데 이는 이산화탄소 1.5톤에 상응하는 것이다. 물론 그 소는 자연의 섭리로 이런 과정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목축이 - 자연현상이 아니라 - 산업이라는 사실을 깜빡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자신이 나서서 땅을 개간하고, 목초지에 씨를 뿌리고 가축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목축은 사람이 벌이는 사업이지 자연적인 섭리가 아니다. 우리가 이 사업을 번창시키게 되면서 지난 250년 동안 메탄가스가 150%나 농축되었고 이에 따라 이산화탄소 역시 30% 이상 증가했다.

피터 호지슨 (New Zealand Minister for Energy, Science, and Fisheries)





인간의 식생활과 가축의 메탄 방출은 단단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쇠고기 생산의 등락에 따라 당연히 그와 연계된 가축 사육과 메탄 발생도 오르내릴 것이다. 남미는 일인당 가장 많은 메탄가스 배출량을 기록하고 있는 데 이는 거개가 수출용 소를 기르면서 늘어난 가축 때문이다.

유엔 환경계획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Unit on Climate Change)





트림도 하고 가스도 내뿜는 가축이 세계 메탄 방출량의 16%를 방출하고 있고 이는 강력한 온실가스이기도 하다.

엘리사 하몬드(Fight Global Warming With Your Knife and Fork, Article by Elysa Hammond in Sustainablebusin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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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의 식량 생산성: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폴 에리치가 수억 명이 굶주릴 것이란 예상을 내놓은 바 있었는 데 지금 상황으로는 그 예측은 과장이었음이 드러났다. (현실에서는 단지 수천만 명이 기아 상태일 뿐이다.) 녹색 혁명, 비료의 도입, 대량생산 기술, 늘어난 작물 소출 등이 우리에게 여유 시간을 부여한 셈이 된 것이다. 따라서 집약적인 관개와 지력 증가를 통해 경작 가능한 땅을 보다 충실하게 활용한다면 인류는 미래 세대에도 인구 성장과 식량 증산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조작등으로는 얻을 것은 어쩌면 소소할 것이다. 인구증가를 차단하는 것이 어렵다면 우리에게는 단 한가지 대안이 남게 된다. 육류소비를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목축용 땅 대신 식량 생산용 농지를 더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목축용 땅은 농지로는 쓸 수 없는 곳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특정한 곳을 제외한다면 가축들이 밟고 다지고 있는 땅의 대부분은 경작 가능한 곳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 2만 칼로리의 옥수수를 소에게 먹인다고 하자.(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는 그렇게 쓰이고 있다.) 소는 2만 칼로리의 옥수수를 먹고 2,000 칼로리의 사용가능한 에너지를 생산하다. (대략 10% 효율로 계산한 것이다. 실제 효율은 이보다는 조금 높겠지만 계산상 편의를 위해서 이렇게 추정하기로 한다. 실제로 이런 추정은 합리적이기도 하다.)

2,000 칼로리의 쇠고기로는 한 사람이 하루를 지탱할 수 있는 데 이는 미국인에게는 평균적인 수치이다. 만약 2만 칼로리의 옥수수를 - 소에게 먹이지 않고 - 사람이 직접 식량으로 쓰게 된다면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을 부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사람의 에너지 효율이 소와 같지는 않을 것이기에 정확히 10 명의 사람은 아니겠지만 이런 추론에 의하면 소 한 마리에에게 먼저 먹인 곡물 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의 하루 식사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쇠고기 대신 옥수수, 즉 채식을 주로 하게 된다면 이 지구 상에서 현재 주어진 경작지 만으로도 보다 많은 사람을 부양할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 우리가 이런 부양 방식을 택하게 된다면 현재보다 적은 경지 만 필요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토양 악화도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페트리샤 뮈르(Oregon State University)





미국의 농경지 중 5,600 만 에이커가 가축용 곡물을 생산하고 있음에 반해 사람이 필요로 하는 식량 생산에는 4백만 에이커가 할당되 있을 뿐이다.

미 상무성(U.S. Department of Commerce, Census of Agri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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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들:



전염성 질병 자체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법은 없다. 더러운 물, 감염된 설치류의 혈액, 벌레나 곤충, 오염된 고기 등에 편승해야 만 전염은 가능하다. 세계화는 이 모든 매개체들의 이동성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결국 지난 세기 만해도 한 마을, 또는 기껏해야 한 나라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던 역병이 급속도로 퍼져가면서 지구적 재난이 되게 하였다. 2004년 미국에서 발견된 소 한 마리의 광우병은 12개 주에 걸쳐 확산되었다.



지구적 확산 체계는 비용이 많이 드는 청결한 시설보다는 보다 손쉬운 항생제에 의존하게 마련인 대량생산 시설의 사용으로 더욱 악화된다. 항생제 내성은 전세계적으로 증가 일로에 있고, 역병의 이동성은 아무런 제약없이 확대되고 있다. 오지에서 잡은 희귀한 야생동물의 고기(역주: bushmeat은 가축 아닌 동물에서 얻은 고기를 말하는 데 아프리카에서는 주로 영장류 고기를 지칭한다.)를 불법적으로 거래하게 되면서 이전에는 숲속의 영장류에게만 머물렀던 가장 위협적인 질병들 몇가지를 지상으로 불러 낸 꼴이 되고 말았다. 밀림 속에 머무르고 있었던 에이즈 바이러스가 무절제한 세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런 예 중 하나이다.





미국 농무성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분쇄 쇠고기 중 89%가 치명적인 이 콜리 바이러스 계통의 흔적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Reuters News Service)





동물의 폐기물에는 질병원인인 살모넬라(식중독균), 이콜리(대장균), 크립토스퍼러디움(은폐 포자류), 분뇨 대장균 등의 병원체가 사람의 배설물보다 10배에서 많게는 100배 이상 농축되 있는 경우가 많은 데 이 때문에 40종이 넘는 질병이 분뇨를 통해 사람에게 전염되기도 한다.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콩고의 벽지 큐베트-웨스트 지역에서 보고된 질병 에볼라 감염자 95명 중 85명이 사망했다. 추측건대 이 질병의 발생은 그 지역에서 고릴라가 죽어 나가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의 사체를 검안한 결과 폐사의 원인이 에볼라 바이러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당국에서는 이 병이 인간에게 전파 경로가 이미 감염되 있던 침팬지, 원숭이, 고릴라 등의 고기를 사람이 먹으면서 연결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병원체를 보유하고 있던 영장류를 사냥하여 사람들이 나눠 먹었고 그 결과 사람들의 혈액에 까지 감염된 것이다. 한쪽에서는 주민들이 이미 오염된 고기를 직접 먹으면서 이 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에이즈(HIV)의 원천은 서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의 변종에 있던 바이러스로 추정된다. 이 유인원 면역결핍증 바이러스(SIV)가 인간에게 전염된 것은 사냥꾼들이 잡은 침팬지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피가 노출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인 구달 (from a lecture at Harvard Medical School,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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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병(성인병):

생활습관병이라 불러도 좋을 병, 특히 심장병은 한 세대전 만 해도 환경병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제 상당 수의 건강문제와 질병이 유전자나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 분명해 졌다. 더욱이 예방이 가능한 질병들의 대부분은 단일 요인보다는 인간과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다.

심장병 역시 설탕, 지방 특히 육류지방의 과소비, 일상화된 자동차 사용과 도시화로 인한 운동부족에 의한 비만과 연관되어 있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공기오염, 화석연료 소비, 부실한 토지 이용정책 등에 의한 환경적 문제 역시 심장병과 직결되는 요소들이다.





식량생산 체계의 기가 막힌 부조리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부유한 수백만명이 풍요로 인한 기름진 고기 식사를 포식하다가 얻은 심장병, 뇌졸중, 당뇨, 암으로 죽어간다. 한편 제 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족을 부양할 정도의 경작지조차 갖지 못한 결과 가난 때문에 병에 걸려 죽어나가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 (Los Angeles Times)





대체 누가 고기에 포화지방이 많다고 비난하는가? 이제야 말로 우리는 우리의 정상적인 삶을 파괴하려 하는 식품 독재자들과 맞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샘 애브람슨 (CEO, Springfield Meats)





누가 뭐래도 미국인의 포화지방 과다 섭취의 주 원인은 식탁 위의 육식 때문이다.

(역주: 포화지방은 버터, 살코기, 계란 노른자위 등에 들어 있으며 혈중 콜레스테롤치 상승과 직결되는 동식물성 지방)

메리언 네슬 (chair of the Department of Nutrition, Food Studies, and Public Health, New York University)





채식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관상동맥 질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채식을 하게 되면 관상동맥질환 자체를 성공적으로 치유할 수도 있다.

채식은 비만, 관상동맥질환, 고혈압, 당뇨성 질환, 여러 가지 암에 걸릴 위험 감소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American Dietetic Association)





He is a heavy eater of beef. Me thinks it doth harm to his wit.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은 당연히 지능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세익스피어, in Twelfth Night





육식을 하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63세 정도이라는데, 85살이 된 나는 지금도 힘든 일을 너끈히 해내고 있다. 이제 나도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 볼 참이다. 그렇다고해서 자살을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쇠고기 한조각이면 내 삶을 마감 할 수도 있겠지만 맨 정신으로서야 어찌 그런 따위를 삼킬 수 있겠는가.

그러고보니 이러다 혹시 내가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울 때도 있다. 바로 이것이 채식주의자가 감수해야 하는 유일한 불이익이 아닐까.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 (그는 95살 까지 이후 10년을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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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의 상실과 절멸의 위협:



삼림과 초지의 파괴, 분뇨로 범벅된 강물로 인한 죽은 바다의 증가도 심각하지만 야생동물 고기의 밀무역 증가 등으로 인해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던 얼마 안되는 고릴라,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들 역시 절멸의 위협에 처해 있다. (자료로써 제출되었지만 출판에 적합지 않아 싣지 못했던 사진 중에는 바나나 바구니에 함께 담겨 있던 잘려진 고릴라의 머리도 있었다.)

예전보다 매우 큰 폭으로 인구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가난한 이들이 야생보호지역에서 고기를 찾아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생존 때문이 아닐 때가 많다. 이런 지역에서 고기를 적게 먹으라고 목소리 만 높이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장기적으로 벌목용 도로 건설을 저지하여 사냥꾼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여 야생고기의 밀렵과 거래를 강력히 막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또한 구매력의 근간이 되는 소득과 제한된 식량자원을 보다 평등하게 분배해야 할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 특히 유럽의 회사들이 아프리카 숲에 길을 내기 시작한 불과 10년 사이에 이렇게 문제가 심각해 진 것이다.

마을에서 사냥꾼들은 이미 만들어진 길을 운행하는 벌목용 트럭을 쉽게 탈 수 있다. 코끼리에서 고릴라, 침팬지, 원숭이, 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쏘아 잡을 수 있다. 연기로 그을린 고기들을 트럭에 싣고 마을로 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배를 곯고 있는 사람들에게 식량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축보다 훨씬 비싼 값에 이 야생고기들은 장사꾼들에게 팔려 나간다.

수백년 동안 자연과 이웃하며 조화롭게 살았던 피그미족 용사는 이제 총을 들고 사냥하며 벌목회사로부터 급료를 받는 사냥꾼이 되어 있다. 이런 식이라면 지속가능성이란 세상은 말도 되지 않는다.

제인 구달 (in Benefits Beyond Boundaries, a film by Television Trust for the Environment shown on BBC in 2003)





동물들이 사라진 숲에는 정적이 감돈다. 언젠가 벌목회사마저 떠나고 나면 원주민들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아무것도 거기에는 없다.

제인 구달 (in Benefits Beyond Boundaries)





현실의 물리학과 수학을 한참 넘어서 있었던 선지식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채식을 향한 진화를 배제한다면 그 어떤 것도 지구상의 생명체들의 생존 기회를 증가시키고 인간들의 건강을 증진시킬 것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그가 말한 것이 단순한 영양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 글 역시 심장병 뿐 만 아니라 온갖 문제점이 산재하는 영양적 측면에서 육류의 기능에 대해서 제대로 다 살피지는 못했다. 또한 채식주의 윤리나 동물의 권리 역시 논의할 마당이 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논점들이 결코 흐려져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생태적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더라도 육식이 인간의 미래에 암울한 여러 문제들을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각성이다.

엄청난 고기를 먹어대는 육식의 시대는 매장량의 한계를 염려할 수밖에 없는 석유의 시대가 그러하듯 머지않아 종말을 맞게 될 것이고 두 쇠락이 결국은 한 매듭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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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이 식탁 위의 야생고기가 된 사연 (제인 구달)



1960년 나는 탄자니아 곰베 국립 공원에서 침팬지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44년 간 이 연구를 계속하면서 내내 침팬지가 생물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행태적으로도 얼마나 사람을 많이 닮았는가 놀라면서 나는 지내왔다. 비근한 예로 DNA 측면에서 그들은 우리와 단지 1%의 차이가 있고 인간이 걸리는 거의 모든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 침팬지와 사람의 뇌는 해부학적으로 거의 유사하며 한때는 인간 만이 가진 고유한 것이라 생각했던 지적 능력도 이들은 가지고 있다.



우리가 행복, 슬픔, 두려움, 절망이라 부르는 것과 유사한 감정들을 이들도 나타낸다. 한 예를 들어보자. 어린 침팬지가 에미에 의존하여 시행착오와 관찰, 모방, 연습 등을 통해 사회적 습득이 이뤄지는 기간은 5, 6년 정도이다. 그동안 강력하고 지속적인 감정적 결속이 발달하게 되는 데 에미가 죽게 되면 심한 경우 그 슬픔으로 아이 침팬지조차 죽는 수가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수유가 필요한 상태가 아닌데도 그런 것이다. 이 얼마나 사람을 닮은 행태인지.

동물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상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던 침팬지가 야생에서 사라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아프리카에는 2백만 마리의 침팬지들이 살고 있었다. 오늘날은 기껏해야 15만 마리가 생존해 있다. 이런 몰락은 인구가 늘어나면서 경작, 목축, 주거 때문에 서식지가 파괴된 것도 일부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몰락 이유는 야생동물의 고기가 상업적으로 거래되면서 폭증한 사냥 때문이다. 수백년 동안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숲과 조화를 이루고 살면서 가족과 마을의 생존에 소용닿는 정도로 만 동물들을 죽여왔다.



그러던 세상이 갑자기 바뀌었다. 1980년대에 외국계 벌목회사들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지상 최대의 열대우림 아프리카의 숲에 들이 닥쳤다. 말은 그럴사한 '지속가능한 벌채'를 시작하면서 이들은 숲의 온통 사방으로 길을 내었다.

이렇게 난 길이 결국 문제였다. 길 끝까지 트럭을 타고 다다른 사냥꾼들은 코끼리, 영양, 새, 파충류, 침팬지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쏘아 댔다. 잡은 고기는 잘려서 훈제가 되어 마을로 실려 나왔다. 도시의 부유층들은 닭이나 염소보다 훨씬 비싼 돈을 내고 이 고기를 사주었다. 그것이 그들의 취향과 문화였다. (그러나 이런 거래는 결코 지속가능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원주민들이 벌목회사로부터 몇푼을 받고 직업 사냥꾼으로 변모하여 그 숫자가 2천 명을 헤아리게 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제인구달 연구소는 콩고 분지 삼림연대(CBFP. 미국무부와 유럽연합이 지원한 단체)에 참여하고 있는 7개 민간단체 중 하나로 이런 야생고기 거래를 근절할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다른 NGO, 당국자, 기부기관들 뿐만 아니라 벌목과 채광 회사들과도 연계하려 한다. 또한 지역주민들을 교육하고 참여시켜서 그들이 우리의 협력자가 되고 결국 자신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야생고기 거래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앞으로 15년 안에 콩고 분지에 살던 유인원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의 개체 수 역시 줄어들고, 위협받아 멸종 위협에 처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사업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 멋진 콩고 분지의 거의 모든 동물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놓아둘 수는 없다.



현재 이곳 침풍가 보호지구에는 115 마리가 넘는 고아 침팬지가 우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의 에미들 대부분은 사냥꾼의 밥이 되었다. 지역주민들, 특히 학생들을 중점적으로 이 보호구역으로 불러들여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침팬지들이 껴안고, 입을 맞추고, 손을 마주 잡으며, 도구를 이용해 물건들을 사용하는 것을 곁에서 보고 직접 그들과 눈동자를 맞추면서 이내 방문객들은 이 동물들이 얼마나 사람과 흡사한지를 깨닫게 된다. 많은 방문객들은 이 곳을 떠날 때쯤 되면 '앞으로는 결코 침팬지 고기를 먹지 않고 그런 고기를 내어 놓는 식당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곳에 버려진 아기 원숭이들은 자신들의 야생의 친척들을 위한 외교사절인 셈이다.



지구상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위험을 인식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희망을 잃는다면 싸움에도 질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잃고 무관심해 진다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사라지고 말 때까지 그들을 죽이고 먹는 이런 악행은 계속될 것이다.



(( 원고 끝 ))



2012-10-23

봉하마을: 바보 노무현의 안식처

봉하마을: 바보 노무현의 안식처

2010년 5월 18일 오전 11:25

자칭 타칭 바보라 불렸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맞습니다.

나름대로 진보라 불리기를 원했다지만,
그의 길이 진보였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때는 노동자와 어깨를 함께 곁었던그가 온갖 이유를 대며 노동운동을 억누르고,
겉만번지르르한 신자유주의에 입각해 한미 자유무역협상에 힘을 쏟고,
환경을 갉아먹는다던 새만금 방조제를 농지확장 운운하며 계속 추진하는가 하면,
집값을 잡는다면서도 아파트 선분양제도는 그대로 두고 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며,
부자세 징수에는 뜨뜻미지근 했고

그의 가신들이라고나 할 함량 부족의 사람들을 대거 등용하여 병풍을 두른것이라든지,
이라크 파병으로 명분없는 제국주의 전쟁에 힘을 보태고
새마을 운동이나 자유총연맹같은 관변단체에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는 등,
반례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노무현은 진보에 관심은 있었으나
실제로는 보수를 대변했던 정통 우파라고나할 것이고,
이런 지적이 서운하다면 중도 우파 정도의 평가가 고작일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잃은 것은 파릇한 진보 정치가가 아니라,
이제 갓 자리를 잡으려던 초보 보수주의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권에서 보였던 자유롭고 시끄러운 세상.
우파던 좌파던, 아니면 사람파던
누구라도 정권을 안주삼아 떠들 수 있었던 자유만큼은 그의 치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훌쩍 우리 곁을 떠나지 말고,
좀 더 시끄럽고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함께 걸었더라면 하면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유입니다.

서로 동의 하지는 않지만,
각자가 자기의 논지와 입장을 주장하며
함께 밤을 새며 떠들고, 이마를부딪치며 살아가는 사람사는 세상 말입니다.
그가 그리운 이유는,
목이 잠기는 줄도 모르고 그런 날밤을 새던 추억을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런 밤샘이 그렇게 소중하고 지키기 어려운 것인 줄.

봉하마을은 이제 우리가 잊지 않아야할 반성의 장소입니다.
세상을 바로 보자던, 바보는 가고 없지만,
제 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가 되어
모두의 마음 속에 남았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어떻습니까?
봉하 한번 다녀오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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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부엉이 바위가 보이는 봉화산 중턱.
정면 산 아래에 보이는 것이 자택. (널판지 형상의 지붕을 한 건물군)
새 집은 지은지 1년도 안돼 주인을 잃을 운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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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 바로 아래.
그의 유언장으로 알려진 문구가 걸려있다.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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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 입구에서 본 부엉이 바위.
그날 아침, 그는 이른 새벽 이렇게 저 바위를 쳐다 본 후 이내 먼 길을 나섰을 것이다.

오늘도 산 중턱에는
그가 갔던길을 더듬으며, 사람들이 다시 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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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초가집이 복원된 생가,
그 뒤가 신축하여 퇴임후 머물렀던 자택,
바로 그 뒤에 부엉이 바위가 보인다.
오른쪽에 솟아 보이는 것이 봉화산 정상인 사자바위.

참된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제행무상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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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 아래 만장처럼 드리워진 노랑색 추모 리본.
한켠에는 '죽은 제갈량이 살아있는 중달을 달아나게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진국 제갈량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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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
그가 마지막으로 서서 세상을 보았을 그 바위.
그물이 쳐져 출입금지 상태로 되어 있다.
언제까지 그는 우리와 다른 세상으로 남아 있을까?

그러고 보니 막힌 세상이다.
통하지 않는 세상이 다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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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신룡리, 또는 "봉하마을"로 바로 검색이 가능할 수도 있음.

승용차:
1. 부산 쪽에서... 남해 고속도, 진례 나들목에서 나간다.
우회전, 3Km 쯤 직진하여, 14번 국도를 만나면 좌회전,
3Km 쯤 직진하다, 우회전...
 1Km 진행 후 우회전...
(이렇게 대충기록하는 이유는, 곳곳의 "노무현 대통령 생가" 이정표를 믿기 때문이다.)


2. 마산, 대구, 광주, 전주, 서울 등에서... 남해 고속도, 동창원 나들목에서 나간다.
우회전...14번 국도를 따라 진영읍까지 진입 (약 5Km 내외)
좌회전...1Km 진행...
우회전...(이 역시 이정표를 따라 가는 쉬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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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학자들이 답한 ‘노무현 세상’      〈 노무현이 꿈꾼 나라 〉

2009년 5월23일.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깊은 회한이었을까? 참담함이었을까? 당시 그의 마음속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마음 한구석엔 그가 꿈꿨던 ‘진보의 재구성’을 완성하지 못한 안타까움 또한 깊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유고이자 미완성의 책 <진보의 미래>(동녘)에 담긴 절절한 문제제기들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를 앞두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보학자 39명이 그가 남긴 문제제기에 답하는 글을 모은 것이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이 작업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노 대통령이 남긴 장과 절의 구분, 그리고 여러 메모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더 나은 진보’를 향한 그의 바람과 희망이 너무나 절절하고 생생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묻는다. “진보 세력의 한계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와 진보는 어떤 관계인가?” “한때 진보진영이 퇴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 집필에 참여한 이들은 그의 재임 때 국정을 함께 고민한 이도 있지만, 그의 ‘한계’를 비판했던 이 또한 적지 않다. 이들은 적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록 스스로가 뛰어넘지 못했지만 그러나 스스로가 굴복하지 않았던 인물”(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이었음에 동의한다.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헌사되는 책이지만, 또한 국민에게 바쳐지는 책이다. ‘노무현이 꿈꾼 진보’를 옳게 평가할 이도, 그것을 실현할 이도 이제는 ‘국민’밖에 없기 때문이다.(동녘·2만5000원. 김보근)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175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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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에서 '아녜스의 노래'... (권범철 화)

http://kr.news.yahoo.com/service/cartoon/shellview2.htm?linkid=sisa_cartoon&articleid=2010060410343133970&cp_code=all&newssetid=4001&seq=10&page=1&hits=20

원로배우 윤정희가 주연한 영화 "시"는, 칸 영화제에서 시나리오 상을 받았다.
감독 이창동은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부 장관으로 잠시 있다가 '온전하게' 영화계로 돌아왔다.
여기서 '온전하게'란 말은,
영화판에서 걸진 입으로 알려진그가 -욕으로 유명해진 후임 유 아무개와는달리 -
국민 앞에서는 쌍소리 한번하지 않고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누구는 가장 시끄러웠던 때라고 하지만,
어느 때보다 가장 사람답게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아녜스의 노래...(전문)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