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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일체유심조, 좋고 나쁨의 구별. 2006-03-08

일체 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깨달음이자 자유이고, 좋고 나쁨도 단지 자기 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기에 모든 것의 중심에 마음이 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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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남편을 옆에 태우고 운전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초보라서 운전이 서툴렀습니다.



“오른쪽으로 천천히!”,

“왼쪽으로!”



“핸들을 가볍게 돌려야지.”

“브레이크는 천천히 밟으라니까.”

“아이쿠, 서두르지 말라니까.”



남편은 옆에서 온갖 간섭을 다했습니다.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초보운전 시절이 없었어요? 초보니까 당연히 잘 못하지. 왜 화를 내요?’ 하며 막 퍼붓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만약 옆에 스님이 타고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브레이크를 살살 밟아라’ 하며 이야기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하나하나 참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는 감사한 마음이 들겠지요.”

남편에게는 왜 시비심이 생기고, 스님에게는 감사한 마음이 들까요? 이것은 그때 그 순간 남편은 간섭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 스님은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여기 한 자루의 칼이 있습니다. 이 칼로 사람을 위협하면 무기가 되지만, 같은 부위를 찌르더라도 병원 수술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도구로 쓰면 좋은 수술칼이 되는 것입니다. 수술했던 칼이라도 그 칼로 남을 찌르면 무기가 됩니다. 칼 자체는 좋은 칼, 나쁜 칼이 없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화장실도 배설물도 그 자체가 더럽고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방에 있으면 더러운 오물이 되고, 밭에 있으면 훌륭한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힘센 사람이 센 힘으로 남을 때리면 나쁜 사람이 되고, 그 힘으로 밭을 갈면 좋은 농부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 가면 빨래를 직접 물에 때려서 빨래를 합니다. 우리는 빨랫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려서 합니다. 빨래하는 법이 본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된장찌개는 한국 사람에게는 맛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그냥 한 음식에 지나지 않거나 냄새나는 음식일 뿐입니다.



존재의 본질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지(無知) 역무득(亦無得)(깨달음도 없고, 다시 얻을 것도 없다)입니다. 어리석음에 빠져 있고, 자기 관념의 세계에 빠져 있으므로 괴로워합니다. 또한 괴로우므로 괴로움을 소멸한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한 생각 일으키지 않으면 깨달음을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결심할 필요도, 노력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사실 깨달음은 구할 바가 없습니다. 한 생각 일으켜서 스스로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고 생각하여 괴로워합니다. 존재의 본질이 정해져 있음이 없음을 알면 괴로울 수가 없습니다. 깨달음을 특별히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래 존재 그 자체가 깨달음,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유수 스님/정토회 대표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8/2004/12/005100038200412151741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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