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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소아에서 노망으로 직행? - 남재희 2007-11-12

아무나 나이 든다고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소아처럼 평생을 살다가 갑자기 노망으로 마무리를 하는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심하지는 않더라도 상당수는 나이 만 든 채 나이값 못하는 중늙은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삼송의 이거니씨, 현다이의 정멍구씨나 투산의 바굥송씨가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이제 정리하고 돌아가서 그동안 했던 일로 심판받을 날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인데도 정신 못차리고 돈 다발 끌어안고, 다 큰 자식 보듬기에 팔려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쪽이라는 찬사 들었던 사람 하나는 늘그막에 변절자가 되어 뭇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듭니다.그만했으면 되었지 대체 무슨 영화를 더 보려고?



그나저나 그마저 챙기지 못한 장삼이사 노인들은 그저 밥이나 먹고 살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태산을 쌓습니다.

이제 자식에 노년을 기대는 사람은 팔불출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정신 차려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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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고독' 깊어지는 고령화 시대



20대 때, 나이 마흔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내가 상상한 어른은 적어도 수영장 물에 은밀히 방뇨를 한다든가, 중국집에서 자장면과 짬뽕을 놓고 고민한다든가, 친구가 화장실 간 사이에 친구의 섹시한 여자친구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준다든가, <뉴스위크> 밑에 <펜트하우스> 펼쳐놓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든가…. 적어도 이런 짓은 안할 줄 알았다. 내 나이도 이제 마흔을 넘어 섰으니 물론 이런 짓은 안 한다. 소년적인 치기를 다 잃어버린 지금은 그보다 더한 짓은 해도 그런 짓은 못한다. 그런 짓 할 체력도, 마음의 공터도 없다.



그러면 나는 어른인가? 자문해 본다. 요상하다. 지금은 여기에 답할 필요를 못 느낀다. 그냥 ‘40대’라고 하면 족할 것 같다. 아무래도 ‘어른’이라는 단어는 순진한 아동들 군기잡기 위해 만든, 애초에 명확한 지시 대상이 없는 허사 같다. 그런데도 왜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아마도 그때 어른은 격정에 휘둘리고 방황에 지친 나 아닌 다른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혼돈과 불안이 말끔히 가신 온전한 이성적 인간의 이미지 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요즘은 온전한 이성적 인간이 되겠다는 싸가지 없는 꿈은 안 꾼다. 공자 같은 성인도 40에야 겨우 방황을 종식하고(不惑), 10년을 바른생활 한 다음에 이게 팔자거니 운명을 받아들이고(知天命), 그렇게 하고도 정년퇴직 연령인 60이 되어서야 ‘화장실 간 사이 누가 씹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놓았다지 않는가? 공자보다 더 속세를 멀리 한 노자 선생도 나이 60이 넘어서야 육체의 휘둘림에서 자유로워졌다고 고백하지 않는가.

물 맑은 산천에서 유기농 식단을 접하면서 평생 학문에 정진했던 사람들이 이럴진대, 아황산가스와 자동차 경적과 상품의 스펙터클에 모든 감각을 점령당한 채 ‘축적’과 ‘승진’을 위한 이종격투기를 벌이고 있는 범인들에게 인간적 성숙은 언감생심이다. 이런 사태라면 65살이 되어 ‘노인’으로 분류되는 그 순간에도 젓갈처럼 곰삭은 노년의 숙성은 기대난망이지 않을까? 숙성은커녕 곰팡이 슬어 상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완숙함’이란 올가미에 노인의 욕구는 감금됐듯, 사회복지 제안하는 뒤편에는 “삶의 패전처리 돈으로 하자”는 미봉책...그러다 보니...복지시설은 격리시설 되기 쉽다...



나이 든다는 것이 보장해 주는 것은 육체가 시든다는 것밖에 없다. 늙음은 생물학적 노화현상일 뿐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삶의 조건에 관한 가장 정직하고 강력한 서사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이 들어가는 것에 사회적 환타지를 투사해 노년을 삶의 완숙기로 설정한다. 이건 희망사항일 뿐이다. 실재로 노인이란 존재는 쇠약한 육체로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연장선에 있을 뿐인 존재다. 젊은 시절의 악덕과 미덕은 좀체 변하지 않으며, 쇠락한 신체는 악덕에만 촉매제로 작용한다.



이런 사실은 누구나 알면서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외면함으로써 노화의 공포를 잊으려는 심산일 게다. 사회가 노인에 부과한 완숙한 삶의 이미지는 이 지점에서 싹튼다. 완숙한 정신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퇴락한 육체를 시야 밖으로 감금시키기 위한 것. 영화 ‘죽어도 좋아’에서 노인의 정사 장면이 그토록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노년의 품위를 손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남루한 육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노화의 물증을 지우고자하는 이 본능적 태도는 이윤추구 동기와 쉽게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1인분의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의 존재는 노동 생산성을 쥐어짜야 하는 경쟁사회에서 장애물이다. 여전히 ‘영점 몇’ 인분의 노동력이 있지만 노동력 제로의 존재로 폐기돼야 하는 운명이다. 경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소비욕구 또한 없는 것으로 전제돼야 한다.(자식들이 안기는 선물에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것이 노인의 배역이지 다이아몬든 반지가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노인의 역할이 아니다. 노인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조준하는 것은 그들의 소비욕구가 아니라 도리를 다 한다는 자식들의 자기만족이다.)



소비욕구가 없다는 것은 감각적 갈망이 없다는 것, 육체의 존재가 아니라 정신의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방식으로 노인은 육체를 거세당한 정신으로 박제돼 우리 삶의 원경으로 배치된다. 거세당한 ‘영점 몇 인분’의 인간적 욕구는 오로지 자식들과의 관계를 통해 부분적으로 해소된다. 그 관계가 단절되면 노인은 절대고독의 늪 속으로 가라앉는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10년 새 세배나 늘었다고 한다. 가난하고, 병들고, 혼자 사는 노인일수록 자살 확률이 높다고 한다. 노인은 자연적 약자이자 사회적 약자로 가족의 정서적 보살핌과 사회의 물질적 혜택을 받아야 하는 존재다. 현세대 노인들은 가족에 의한 부양이 사회복지 제도로 대체되는 초입에서 그 어느 쪽 혜택도 못 받는 사람들이다.



전통적인 노후보험인 자식 양육은 노후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들 노인의 자식은 스스로 노후를 책임지면서 노인을 봉양하고 생활의 전 영역에서 무한경쟁 중인 자식의 ‘전비’까지 부담해야 한다. 이 삼중고를 안은 가장에게 문제는 돈이다. 가족은 아슬아슬 돈으로 봉합돼 있고 사소한 결핍에도 그 실밥은 터진다. 하지만 삼중 비용을 감당할 절대액수를 이미 확보한 사람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현재를 즐긴다. 이들에겐 노인 부양에 직접 적 노동 대신 돈을 투입한다는 것이 소비기회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래서 가족 부양의 문화적 보험보다 정확하게 돈으로 환산되는 보험상품을 선호한다. 현재는 소수의 현실이지만 절대다수의 욕망이기도 한 ‘돈으로 해결되는 삶의 패전처리 비용’. 고령화를 염려하고 사회복지를 제안하는 목소리에는 언제나 이 욕망이 배경음으로 깔려 있다. 이 패러다임 속에서는 ‘완숙함’이 노인의 개인적 욕구를 감금하듯 사회복지 시설이 사회격리 시설로 낙착될 공산이 크다. 절대고독의 늪 속으로 가라앉는 노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남재희 (문학평론가)

인연이란 야생초가 아니라 가꾸어야 되는 것 2007-10-30

인연이란 그냥 내버려 두어도 저절로 자라는 야생초가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공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 포기 난초와 같다고 합니다.



인연이라해서 마구 달리기 만 하다가는

그만 사고 나는 수도 있다 합니다.

갈 때 설 때 구분하는 제 정신이 있어야

인연도 모름지기 올곧은 인연이 되는가 합니다.



좁은 생각에 높은 하늘의 뜻을 다 알 수 없으니

그저 삼가며 살려 합니다.



평화는 사람들 마음 속에서 부터 시작되야 겠지요.

전쟁이 그렇게 시작되었듯이 말입니다.



가을엔 이런 편지를 부치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받아 주시기를...









(작화: 이철수 화백)

한글, 정말 감사한 자랑스런 유산 2007-10-09

컴퓨터 자판을 쓰면서 느끼는 불편에 투덜대다가, 왜 한글은 이렇게 타자하는 데 번거로운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못된 자식이 부모 탓한다고 " 이왕 만드실 거, 세종대왕께서도, 타자하기 편하게 좀 해주셨으면 좋았을 걸"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 돌아서면 그 이유가 어른의 잘못이 아니라, 게으른 후손의 탓임을 곧 알게 됩니다. 남들 부지런히 암호해독하고, 연산 공부해서 컴퓨터 발명할 때, 늑장 부리다가 그 컴퓨터란 기기를 결국 구미의 IBM 같은 회사가 독점적으로 만들게 놔두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타자기 발명에 손을 놓았던 것도 후손의 죄라면 죄지요. 그러고보면 한글이 타자에 불편한 것은 어른의 탓이 아니라, 조상의 지혜를 계승해서 더욱 발전시키지 못한 우리 탓이란 생각에 가슴이 무겁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 손전화기의 문자 입력 방식인 "천지인" 방식에서 한글모음의 우수성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음 "ㅣ"와 'ㅡ" 둘에 다가, 점"."을 이러 저리 가져다 붙쳐 만들어가는 독창성과 편리성 말입니다.

게다가 네비게이션 회사에서는 초성입력이라는 방식을 사용중입니다. 즉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찾기 위해 "홍..."이렇게 입력하는 게 아니라, 그냥 "ㅎㄱㄷ"을 입력하여 검색을 하는 게지요. 물론 아직은 초기 단계라 개선할 점이 있어 보이지만, 어쨌던 한글의 기계화 가능성이 긍정적으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한글 창제 당시부터 심사숙고하신 어른들의 흉중을 이제사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옛 모습 그대로라도 해도...1만 5천자에 가까운 한자를 입력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사는 중국이나, 요상한 글자체에 휘둘리는 일본 만 보아도 그저 간편한 입력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공휴일에서 조차 제외시킨 한글날을 보내며 사뭇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한 줄이라도 글을 쓰고 사는 사람들은 늦게나마 고맙고 귀한 유산을 물려주신 어른들께 존경을 꼭 표하면서, 한글에 대한 관심과 발전을 위한 각오를 새로이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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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문자는?



1998년부터 2002년 말까지 유네스코는 말뿐인 언어 2900여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연구를 했는데, 여기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문자는?



유네스코가 문맹퇴치 기여자에게 주는 상의 이름은 어떤 문자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나?



지구상 100여개의 문자 가운데 제작자 그리고 제작 원리와 이념이 정리되어 있는 유일한 문자는?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문자는?



일본의 오사카시는 엑스포 기념 세계민족박물관을 지어 세계의 문자를 전시했는데, 이 가운데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문자는?



언어학 연구에서 세계 최고라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언어학대학이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실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 결과 1등을 차지한 문자는?



컴퓨터 자판에서 모음은 오른손으로, 자음은 왼손으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문자는?



이동전화의 한정된 자판을 가장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 디지털시대의 총아로 떠오를 문자는?



발음기관의 움직임과 작용, 음성학적 특질을 본떠 만들었으며, 음양오행의 철학적 원리와 하늘·땅·사람의 존재론적 구조를 담고 있는 문자는?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평가했고,

〈알파베타〉의 저자 존 맨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말한 문자는?



언어학자 라이샤워 교수가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제”라고, 시카고대학의 매콜리 교수는 “10월9일이면 꼭 한국 음식을 먹으며 지낸다”며 존경심을 털어놓은 문자는?



영국 리스대학교의 제프리 샘슨 교수가, 기본글자에 획을 더해 동일 계열의 글자(ㄱ, ㄲ, ㅋ)를 만든 독창성은 어떤 문자에서도 볼 수 없다고 칭송한 문자는?



그런데,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은 그 귀함과 고마움을 잘 모르는 문자는?



답: 한글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목사야 있건 없건 교회가 무슨 상관? 2007-09-27

이제는 제사 때에도 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여 일을 치루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추석에도 이런 일로 마음이 싱숭생숭했을 집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별 것도 아닌 사소한 것이건만...그렇습니다. 따지지 않아서 이 문제가 줄곧 우리 곁을 맴도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곰곰히 따져볼 만합니다.





다행히도... 절을 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조상은덕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라 폄하하거나, 반대로 절을 하지 않고 앉아 버티는 사람들은 제사를 우상숭배의 표상이라며 백안시했던 얼마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게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렇게 빙탄불상용처럼 전통적 제의의식을 놓고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것이 후진적 상황이란 것을 절감하고 소위 "전도"에 나선 종교인들도 있습니다.

하기사 2천여년전, 국가정체성 확립의 절박함과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나라의 문화양식이 배어있는 유대 기독교의 교리를 문자 그대로 고집하는 것도 우습고, 국적 불분명하고, 지방마다 제각각으로 변형된 유교적 제사 양식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것도 시대 착오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당분간은 서로의 태도를 존중하고 다만 조상에 대한 경의와 일가 권속의 인연에 감사하는 화합의 자리로 제사가 유지되었으면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른바 근본주의 신앙이란게 상당히 부실하고 왜곡된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도 많아 질 것이고, 이 나라의 제사 의례가 중국식 전통의 답습이나 무지한 조상숭배로 전락해서는 안되는 깊은 연유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아지리라 봅니다. 그 때까지는 서로 입장이 다르더라도 관용과 대화의 연습장으로 제사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이미 집안을 살피면, 외국인 부부 한 두 집 없는 집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묘를 쓰지 않고 화장이 대세인 것도 지금입니다.



사람 모여 나누고 살자는 게 제의라면, 그 자리에서 화목에 걸그적 거리는 것, 바로 그것이 비례입니다. 절, 그것 신경쓰지 않으면 사실 별 것 아닙니다.

목사없는 교회, 스님없는 절이 생겨 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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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없는 새길교회 이야기



새길교회 사람들. 목사없이 교회없이 교단없이, 한국 기독교 ‘새길’ 찾아서



“오늘의 한국 기독교의 상황이 ‘정신 나간 운전사에 조는 승객들로 가득 찬 버스와도 같다’며 혀를 차는 한 권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아직도 분단신학에 젖어 ‘레드 콤플렉스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이 아무개 목사의 설교가 미치게 하지만 그래도 교회를 버리지 않겠다고 한다. 자신 같은 멀쩡한 평신도가 있어야 목사도 언젠가는 구원받을 날이 온다는 것이다.”(구미정 대구대 필휴먼생명학연구소 전임연구원)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 기독교 교리 자체가 갖고 있는 독선과 배타성이 자리잡고 있다.”(류상태 전 대광고 교목실장)



“한국 기독교는 한국의 전통문화·전통종교와 대화하고 협력하고 상호 배움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120년 전까지 우리 조상들이 진실과 사랑을 담아 지켜왔고, 살아왔던 가치들과 사람들을 모두 지옥에 떨어질 것으로 매도하는 집단이기주의로 어떻게 이 땅에서 사랑 받기를 기대한단 말인가.”(김경재 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 교수)



“교회가 세상 가치에 노예화되었고, 교회가 세상 방식에 예속화되었다.”(박정신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성직자·평신도 위계 없애고, 소유욕 없애려 건물 안짓고, 교권 얽매이지 않으려 무소속

한완상 총재 등 말씀 증거. 인권·민주화운동 핍박받는 자에 헌금의 무려 65% ‘선교의 봉사’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강남청소년수련관 강당. 새길교회 창립 18돌 기념으로 마련된 ‘한국 기독교, 어디로 갈 것인가?’란 정기포럼이었다. 새길교회는 예배당이 따로 없고, 주일엔 이곳을 빌려서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주일인 이날 이곳은 교회다. 교회 안 발언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발제자들은 한국 교회의 환부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새길교회 교인을 비롯한 200여 명의 방청객들이 가세한 토론까지 3시간 넘게 팽팽한 긴장감과 열기가 함께했다.



새길교회는 3가지가 없는 교회다. 목사가 없고, 교회 건물이 없고, 교단이 없다. 목사를 두지 않는 것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위계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다. 교회 건물을 가지지 않은 것은 소유와 욕망을 놓겠다는 의지다.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것은 교권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장로나 집사도 없이 사무실에 상근 간사 한 명만이 있는 이 교회에선 운영위원회가 운영을 맡는다. 설교를 하는 ‘말씀 증거자’는 1987년 이 교회 설립을 주도했던 한완상 대한적십자사총재와 길희성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를 비롯해 최만자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권진관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차옥숭 한일장신대 교수다. 한 명 한 명이 기독교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내공을 지닌 인물들이다.



길 교수는 이사장을, 최만자씨가 원장을 맡고 있다. 길 교수는 올 초 벨지움으로 교환교수로 떠났지만 교회 운영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교회는 한두 사람이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180여명의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새길교회는 헌금의 무려 65%를 선교와 봉사에 사용한다. 이곳의 선교란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는 그런 식이 아니다.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탄압받고 고생하는 이들을 돕는 일의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선교라고 믿고 있다. 한 달에 한번씩은 교인 30~40명이 외국인노동자들을 찾아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매년 봄 여름 신학강좌를 통해 ‘불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등 수준 높은 강좌를 해온 새길교회는 4월 3일부터 10주 동안 일요일마다 ‘현대사회의 예수 찾기’ 강좌를 펼친다. 비록 빌린 강당이지만 교인들의 눈엔 드디어 길을 찾았다는 자족감이 감돌고 있다.



조연현 기자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20/2005/03/0091000202005030918270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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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광성교회 정성진목사



목사 한사람 자기포기 선언 민주적 목회철학 몸소 개척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일산4동 밤가시마을. 국립 암센터에서 1㎞ 정도 떨어진 큰 길가에 일산 광성교회가 있다. 그곳에서 다시 주택가로 200미터쯤 들어가면 정성진 목사(50)의 사무실이 있다.



‘我死敎會生’(아사교회생)



‘교회가 살려면 목사가 죽어야 한다’는 편액이 눈에 띈다. 1997년 이 교회를 설립할 때부터 작정한 자기포기선언이다.



그는 대형교회인 광성교회 출신이다. 봉천제일교회에서 부목사를 하다가 92년 광성교회로 옮긴 그는 4년 동안 김창인 담임목사의 개인비서를 했다. 광성교회는 서울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중 하나이고, 김 목사는 그런 교회를 설립해 키워낼 만큼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였다. 그러나 많은 대형교회들처럼 담임 목사 1인 중심의 리더십의 그늘 또한 짙었다.



목사·장로 65살 정년제, 대소사는 모든신도가 모여 결정

50여개 강좌 비신도에게 개방, 3분내 발언등 민주적 회의 방식

무료병원 대안학교등 갖춘 새 보금자리위해 매일 기도



속담에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정 목사는 ‘모시던’ 김 목사의 본받을 점과 극복해야 할 점을 분명히했다. 김 목사의 역동적인 설교와 일에 대한 열정, 의리는 본받으러 애썼다. 하지만 독재적 리더십은 단절하리라 다짐했다.

그는 김 목사의 도움으로 일산 광성교회를 개척했지만 서울 광성교회와는 다른 목회철학으로 내세웠다.

△평신도 중심의 교회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조화 △민주의식의 완성 등이다.

그는 목사 정년도 교단 정년보다도 5년 앞당겨 65살이 되면 목사는 교회를 완전히 떠나도록 했다. 장로의 65살 은퇴 규정도 만들었다. 권한 집중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교회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재직회도 장로, 권사, 집사만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참석하도록 예배 중에 한다.



특히 그는 아예 재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한 달에 280만원의 월급과 60만원의 활동비만을 받는다. 그 외엔 상여금도 차량 유지비도 없다. 반면 정 목사 부부는 매달 200여만 원씩을 교회에 헌금한다. 그는 세미나와 강의료 수입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일산광성교회는 파주노인복지관을 잘 운영하고, 무려 50여개의 강좌를 비신자들도 들을 수 있도록 개방하고, 신자들이 등산, 농구, 탁구, 바둑 등 11개의 동아리별로 모여 즐기는 것도 독특하지만 이 교회만의 특징은 민주적인 방식이다.

회의 때 이 교회만의 금지규정이 있다.

△3분 이상 발언 △인신공격성 발언 △거듭 발언 △3회 이상의 찬반 토론(다음은 표결하든지 폐기) △안건을 상정자의 발언이다.



이 교회는 신자들이 급격히 늘어나 지금 새 교회를 신축중이다. 일산 외곽의 무려 3500여 평에 짓고 있다. 이곳엔 무료 병원과 무료 약국뿐 아니라 미용실, 양재실, 제과제빵실, 헬스시설, 대안학교까지 갖춘다. 건축비는 250억원. 100억원의 빚이 남을 예정이지만 그는 걱정이 없다고 한다. “내 것이면 걱정에 잠이 안 오겠지만, 내 것이 아니니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집을 판 돈 1억5천만 원을 교회 헌금으로 내놓았다. 그는 ‘무소유’는 법정 스님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좀 더 행복하고 평안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1인의 자기 포기로 교회는 풍성해지고, 목사는 더욱 자유스럽다.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 박홍규 2007-09-08

천년 만년 살 것 같아도,

이 비 그치고 나면 가을 한 걸음 다가설 것입니다.

그렇게 막은 가까워 집니다.

참, 인생 뭐 그리 대단한 것 없습니다.



삼순이가 되었던,

이거니가 되었던

똑같이 오늘도 먹고, 싸고,

그리고 피곤한 몸을 눕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냉소가 반성으로

반성이 성찰로 바뀌고

그런 우스운 삶에서 비로소 의미를 찾게 되면

이풍진 세상 한번 살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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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박홍규(영남대 교수),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비판과 성찰에서 자유의 웃음을 보다.



절대진리 부정한 회의주의자, 몽테뉴의 '에세' 40년 함께하며

마음에 닿은 '내 이야기' 에 새롭게 겹쳐쓴 또다른 '에세'.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문고본 시리즈 이름은 ‘크세주’다. ‘크세주’ 문고는 1941년 첫 출간 이래 지금까지 3600종이 나온 이 나라 최대의 문고본이다. 간결한 3형식의 프랑스어 의문문인 이 문고본 이름은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뜻인데, 이 질문의 지성사적 뿌리는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에게 닿아 있다. 근대 프랑스의 문학과 사상의 비조로 꼽히는 몽테뉴는 평생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반성적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 몽테뉴가 남긴 대표작이 우리에게 ‘수상록’이란 번역어로 알려진 <에세>다. 1572년 공적 생활에서 스스로 은퇴해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집필한 방대한 저작이 이 책이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외진 마을 몽테뉴 성의 좁다란 3층 서재에서 정치·사회·문화·종교 따위 세상의 온갖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찬찬히 음미할 때 그가 사유의 원칙으로 삼은 것이 “나는 무엇을 아는가?”였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쓴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는 이 르네상스 지식인의 삶이 통째로 스며 있는 저작을 마치 산책하듯 읽으며 쓴 책이다.



중학교 시절 처음 이 책을 접한 뒤 40년 동안 여러 번 통독했다는 지은이는 <에세>의 수많은 문단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을 살펴 읽고 거기에 자기의 생각을 포개 놓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에세>에 대한 또 하나의 ‘에세’이며, <에세>위에 겹쳐쓴 ‘에세’라고 해도 좋을 책이다. ‘에세’라는 말은 ‘가벼운 수필’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말의 본디 뜻은 ‘시도’ 또는 ‘시론’으로 옮겨진다. 이 세계와 자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론의 형식으로 풀어놓은 것인 셈이다.



지은이는 몽테뉴의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웃음’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몽테뉴는 웃는다. 세상에 대해 웃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웃는다. 그 웃음에는 약간의 쓴 맛이 감돈다.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며 그는 ‘크세주’의 정신에 따라 회의주의자의 자세로 이 세상과 마주본다.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모든 기성의 권위와 제도를 비판적으로 들춰보는 것이다. 그 비판성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면 성찰성이 된다. 그는 자신이 독단에 빠지지 않는지 끊임없이 돌아본다. 그런 자기비판의 자세로 들여다본 그 자신은 모순으로 가득찬 존재다. “수줍음이 많으면서 건방지고, 정숙하면서 음탕하고, 박식하면서 무식하고, 거짓말쟁이이면서 정직하고, 관대하면서 인색하고, 구두쇠이면서 낭비가”인 것이 그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 자신의 모습이다. 지은이는 몽테뉴의 이 고백을 읽으며, “바로 내 이야기다”라고 덧붙인다.



<에세> 속에서 몽테뉴는 그 비판성과 성찰성으로 “당대의 모든 지적 권위를 부정한 자유로운 지성”으로 나타난다. 그 ‘자유로운 지성’이 어느 정도 선구적이었는지는 그가 유럽인의 식민지 침략을 비판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을 그 자체로 긍정한 데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그는 근대 유럽 최초로 서양중심주의에 반대한 문화상대주의자였다. 일본의 작가 홋타 요시에는 몽테뉴 전기에서 이런 모습을 높이 사 그를 ‘위대한 교양인’이라고 불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3/2004/10/009100003200410151759408.html

노블레스 오블리제: 누가 진정 나를 위해 애쓰고 있는가? 2007-05-08

어디 누구에게든 전화를 받을 수 있고, 걸 수 있습니다. 손에 작은 요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든 맘 만 먹으면 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집집마다 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책상 앞에서 수십가지 신문을 읽고 스크랩해 둘 수 있습니다. 하늘에 대고 궁금한 것을 물어 볼 수도 있습니다. 대답도 걸지게 돌아 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이라 추운 걱정, 여름이라 더운 걱정하지 않고 저녁 무렵 느긋히 밥상을 치우고 여유있게 앉아 텔레비젼을 봅니다. 걱정은 늘어가는 뱃살 뿐인가 합니다.





이런 사정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 요즘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800만의 사람들이 정부가 정한 생계비에 미치지 못해 하루 하루를 죽지 못해 삽니다. 그보다 조금 낫다해서 차상위 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별반 사정은 나을 것이 없지만 그들은 알량한 생계비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합니다. 이 두 계층의 사람들의 숫자가 1,500만 명에 달합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주택보급율이 100%가 넘어 가구당 한 집 이상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나라에는 자기 집이 없어 세사는 사람이 전 국민의 45%입니다. 몇억 씩 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셋집에 사는 사람을 포함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돈이 없어 셋집에 사는 사람들이 나라 전체 가구의 절반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앞서 손전화, 자동차, 인터넷이 모두가 누리는 안락함이 아니란 게지요...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십억 넘는 집에서 또 다른 집 한 채를 꿈꾸며, 뱃살을 원망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정말로 안락할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왜나햐면, 갈곳 없어진 이들은 당연히 어딘가 양지를 찾아 주의를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테러를 막는 것은 무기와 위협이 아니라 진정한 나눔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설쳐대는 대 테러리스트 부시나 블레어는 이미 테러와의 전쟁에서 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다짐했던 평안한 세계는 결코 군대의 총구로는 다다를 수 없다는 것, 불만과 위화감에 찌들린 다른 한 쪽의 사람들이 춥고 배고프게 살고 있는 한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란 없다는 깨달음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건너편에 구룡마을이 존재 하는 한, 아무리 경비업체가 안전을 과장한다 한들 타워 팰리스 부자들로서는 평안한 밤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게지요. 몇겹의 경비 초소를 거치는 동안 배달시킨 짜장면이 불어터져 불만이라며, 한편으로 그래서 안심하고 산다던 그들이 언제인가 날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번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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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가졌으면 이제 가난한 사람들을 그만 깔아 뭉개라.



사망자가 천여명에 부상자가 오백여명을 육박하는 이라크의 대 참사 현장사진이 실린 신문기사를 보고 참으로 기막히고 가슴 아리지 않을 수 없다. 누구였을까, 그는. 자살공격 테러범이 있다고 외친 그는. 그리고 그는 알았을까. 그의 말 한마디가 그리도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줄을. 아마 몰랐으니까 외쳤겠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알고도 그랬다면 그는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죄를 지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긍극적으로 죄는 그에게 있는게 아님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다. 결국 죄는 전쟁에 있음을.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공포. 전쟁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무기뿐 아니라 공포가 될 수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말하기도 끔찍한 ‘압살’에 얽힌 이야기를 나는 최초로 아버지한테 들었다. 서울로 돈 벌러간 아버지는 명절에 집에 오면 언제나, 그 이야기를 했다. 고향에 오기 위해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서울 기차역에서 압사당할 뻔한 이야기. 나도 언젠가 우리 아버지처럼 광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추석을 맞아 시골집에 가려다가 터미널에서 압사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명절만큼은 고향의 부모 형제 처자식 곁에서 쇠리라, 하는 굳은 각오로 드디어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 얼마나 가슴 졸이고 그리고 슬펐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처럼 가족 곁에서 명절을 쇠야만 한다는 굳은 각오가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압사당할뻔한 터미널을 엉엉 울면서 빠져 나와 다시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때 내가 울었던 이유는 단순히 고향에 못가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에의 공포 때문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악착같은 삶의 의지는 때로 또다른 가난한 사람들을 압사에의 공포로 몰아 넣을 수도 있는 거였다. 가난해서 오는 무질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한쪽으로 우르르 달려나간다. 살기 위해 달려간 그 길 위에서 그러나 누군가는 밟혀 죽는다. 대부분 힘없는 사람들이다. 안전지대에서의 삶을 살지 못하는 민중들은 죽음에의 공포로 인해서 무질서할 수밖에 없으며 그 무질서가 또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로 인해, 가난한 그들을 위하지 않는 제도로 인해,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자우대의 관습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위태한 삶이 언제든지 ‘압사’당할 수도 있다는 명명백백한 사실 앞에 그래도 어떡하든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람을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가느다란 희망 하나 붙잡고 사는 가난한 작가인 나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통곡할 수밖 없다. 터미널에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며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주인 잃은 신발들만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이라크의 참사 앞에서 또다시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압사당할 수도 있는 현실은 그러나 이라크에만 있는게 아니다. 한 시대 전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시대에 ‘누군가’가 외치는 한마디에 또 ‘누군가들’은 순식간에 그 삶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몰릴 수도 있음을 그 ‘누군가’는 아는가.



누군가는 누구인가. 그리고 누군가들은 또 누구들인가. 내게 누군가는 다름 아닌 정부의 종합부동산세에 시비거는 사람들이다. 또 당연히 누군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상의 방(집) 한칸’을 구하지 못해 그 삶이 때로는 죽음의 공포까지를 늘 동반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집없는 사람들이다. 집없는 사람들은, 혹은 은행에서 돈 빌려 겨우겨우 내집이라고 장만해놓고 하루하루 그 은행빚 갚느라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때로는 물어뜯고 때로는 조롱하고 때로는 위협도 서슴지 않는 언론, 입으로는 서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부자들을 위한, 부자신문들이 외치는 소리에 겁먹는 자신들의 정부에 또다시 공포를 느낀다. 희망이 꺼져가는 공포, 이윽고 닥쳐올 불안한 삶이 필시 가져다 줄 혼란에의 공포.



그러나 언제나, 입으로는 서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그리고 또 언제나 부자들 편을 들고 있는 부자신문들은 집이 없거나 빚으로 산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게 해주고자 하는 정책이 발표되면 혹은 발표될 낌새가 보이기라도 하면 ‘국민적 혼란’을 들먹인다. 나는 그들이 국민적 혼란 운운하면 그 말속에서 ‘숨겨진 회심의 미소’을 본다. 국민적 혼란이라는 명백히 실체가 없는 혼란을 혼란이라고 기정사실화 시켜놓고 돌아서는 그들의 뒤에서 결국 그 생이 압사당하는 것은 언제나 집이 없거나 집이 있어도 그 집 때문에 인고의 세월을 살아내야하는 슬픈 사람들이다.



이라크 정부는 자살테러범이 있다고 외친 범인에 대한 추적에 착수했다고 한다. 지금 이땅에서 우리들 삶이 왜 이다지도 힘들어야 하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 힘들게 한 ‘범인’은 누구인가. 이라크에서의 범인은 다름아닌 전쟁과 테러에 대한 공포라고 한다면, 지금 이땅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범인은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





먹고 입는 것 넘쳐 나는 요즘같은 세상에서 대부분의 도시서민들이 가장 고통받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는 명백히 집문제다. 누구에게는 집이 휴식과 안락과 풍요와 부를 주지만 누구에게는 모든 고통의 근원이 되고 있다. 그러니, 정부의 그나마도 ‘잔뜩 주눅든 정책 발표’에 대해 ‘선의의 피해자’니 하는 말따위 그렇게 함부로 할 것이 못된다. 선의의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의의 피해자 너머에는 당신들의 그 한마디에 집 문제로 생 자체가 압사당할 것 같은 공포에 짓눌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1.6%에 왕따를 가했다’란 말 따위 그렇게 함부로 외치는 게 아니다. 알고도 그런다면 당신들은 1.6%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땅에서 가난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더욱더 가난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범인은 누구인가. 공선옥/소설가

다시 읽는 접시꽃 당신...도종환 2004-08-18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마음을 못잊는 분을 위해 시 몇 편을 되새깁니다.

사람 사랑에 서툴렀던 못난 이들 대신 고개를 조아리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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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을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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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편지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니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이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없이 흔들리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 자리로 바람이 가득가

득 몰려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 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다녀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 와 머물다 소리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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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이 오면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 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정녕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림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

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도 혼자 보고 있으면

사위는 저녁 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것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

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쪽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빗줄기를 보내 감자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닦아내는

그리운 당신 눈물의 몫입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내 삶은 완성되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꼭 다시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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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떠난 뒤로는



당신이 떠난 뒤로는

빗줄기도 당신으로 인해 내게 내리고

밤별도 당신으로 인해 머리 위를 떠 흐르고

풀벌레도 당신으로 인해 내게 와 울었다



당신 때문에 여름꽃이 한없이 발끝에 지고

당신 때문에 산맥들도 강물 곁에 쓰러져 눕고

당신 때문에 가을 빗발이 눈자위에 젖고

당신 때문에 눈발이 치고 겨울이 왔다



살아 있는 사람은 모두 남은 자의 편이 되어

떠나는 것이다 떠나야 한다 속살대지만

나 하나는 당신 편에 오래오래 있고 싶었다



이 세상 많은 이를 남기고 당신 홀로 떠난 뒤론

새 한 마리 내게는 예사로이 날지 않고

구름 한 덩이 예사로이 하늘 질러 가지 않고

바람 한 줄기 내게는 그냥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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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의 하나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서둘러 고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채워간다는 것입니다

비어 있어야 비로소 가득해지는 사랑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몸 한쪽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아

골짝을 빠지는 산울음소리로

평생을 떠돌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흙에 묻고

돌아보는 이 땅 위에

그림자 하나 남지 않고 말았을 때

바람 한 줄기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모두 크고 작은 사랑의 아픔으로

절망하고 뉘우치고 원망하고 돌아서지만

사랑은 다시 믿음 다시 참음 다시 기다림

다시 비워두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찢긴 가슴은

사랑이 아니고는 아물지 않지만

사랑으로 잃은 것들은

사랑이 아니고는 찾아지지 않지만

사랑으로 떠나간 것들은

사랑이 아니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비우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큰 사랑의 그 속에 들 수 있습니까

한 개의 희고 깨끗한 그릇으로 비어 있지 않고야

어떻게 거듭거듭 가득 채울 수 있습니까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다시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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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우리 비록 개울처럼 어우러져 흐르다 뿔뿔이 흩어졌어도

우리 비록 돌처럼 여기저기 버려져 말없이 살고 있어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으나 어딘가 꼭 살아 있을

당신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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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거두며



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

슬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잎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

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

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

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

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

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

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

니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고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

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사랑임을 압니다.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임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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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앞에서... 눈을 뜨고 기도하라 (문한별) 2005-11-03

일요일이면 이 땅의 곳곳에서는 찬양과 기도가 넘칩니다.

눈을 감은 채...



그러나 세상 곳곳에는 오늘도 전투가 계속 중이고

피가 튑니다.



그 중에 한 곳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의 기도 제목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할

우리의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라크.



죽음이 어떤 것인지 아직 모르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뽑았던 지도자는 신이 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갈 수 없어 들렀다고도 했습니다.



철모르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과연 어떤 곳에

무엇을 하러 와 있는지도 잊은 채

박수를 쳐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쾡한 눈자위에 번져났습니다.



누가 저들에게 총을 쥐어 주는가?



저녁 마련 들어서는

내 아이의 어깨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정말 못된 부모가 되었습니다.



아, 나는 이라크에 내 자식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밥은 어쩐지 돌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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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기도하라



당신은 기도하는가?

이라크 땅 팔루자에서 무고한 주검들이 나뒹구는데

눈감고 기도할 마음이 나는가?



당신은 찬양하는가?

이라크 땅 팔루자에서 비명소리 하늘을 찌르는데

화음맞춰 찬양할 마음이 나는가?



야만의 시대에

눈 감고 기도하는 건 비겁이다. 기만이다.



불의한 시대에

화음으로 찬양하는 건 동조다. 묵인이다.



그대여, 기도하려거든

차라리 눈을 떠라.

죽어가는 형제 자매가 저기 있지 않은가.



그대여 찬양하려거든

차라리 외론 목소리로 진혼가를 불러라.

저기 당신의 파트너가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문한별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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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똑바로 보라



악의 평범성.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내뱉은 말이다. “아이히만의 과거 행적들은 소름끼쳤다. 그러나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실존 인물로서의 그는 일상적이며 평범할 뿐 악마 같지도 않고 기이하지도 않다.” 재판관들은 악행의 근본 동기들을 찾으려 했지만, 아이히만에게는 악의적 동기도, 이데올로기적 확신도 없어 보였다. 그는 그냥 보통사람이었다.



“여기 하나가 죽은 척하고 있네.” 팔루자의 한 건물을 뒤지던 미 해병대 병사는 총을 쏴 그를 죽이기 전에 그렇게 태연하게 말했다. ‘세상에서 인간이 목격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장면.’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 사살된 사람이 그 직전까지 군인이었는지, 테러리스트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죽은 척하던 순간 그는 살고 싶은 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그러나 총을 쏜 병사도 그렇게 특별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가 법정에 섰을 때 우리는 그의 선한 품성과 어려운 생계에 대해 듣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번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세계를 경악게 했던 포즈의 주인공 린다 잉글랜드 이병. 그는 시골 마을의 가난한 철도 노동자의 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우등 졸업자였고, 월마트에서는 모범직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미군에 입대한 것은 오로지 대학 진학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악마성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악행은 ‘생각하지 않음’에서 나온다. 악한 생각이나 악한 판단을 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없고 판단이 없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장면들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쟁터의 병사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가장 추악한 범죄자는 또한 가장 불쌍한 범죄자인 것을.



“불태워버려, 불태워버려, ××놈, 불태워버려.” 무어의 〈화씨 9/11〉에서 보듯, 병사들은 온갖 저주를 담은 메탈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거기에 몰입하며 진격한다. 그 병사들 뒤에는 누가 있는가. 팔루자로 진격하던 해병대의 한 중령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다섯 달 동안 우리를 공격한 적은 악마들이며 그들은 팔루자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또 누가 있는가. 신앙과 이권을 접목시킨 대통령. 그는 세계에 자신들이 박멸해야 할 악이 존재한다고 외쳐댄다.



나는 눈감고 기도하는 자들을 경계한다. 그들은 현실을 보지 않고 헛것을 보기 때문이다. 팔루자부터 백악관, 아니 한반도를 포함해서 세계 곳곳의 전쟁광들은 사람들의 생각을 빼앗는 동시에 시선을 빼앗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싸우려는 자가 악마로 보일 때까지 눈감고 기도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전쟁을 비디오게임이나 컴퓨터 오락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만큼이나 헛것을 보게 된다.



이라크전이 터졌을 때 13살의 소녀 샬럿 앨더브론은 눈을 뜨고 자신의 얼굴을 보라는 말로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이건 액션영화도, 공상영화도, 비디오게임도 아닙니다.”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우리를 놀라게 한 악마성이란 바로 그런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전쟁광들은 겁쟁이들이 전쟁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없는 겁쟁이들만이 전쟁으로 이권을 챙기는 사기꾼들에게 놀아난다. 테러에 대한 공포, 악에 대한 공포로 주눅 들었을 때 사람들은 전쟁에 빠져드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공포로 한없이 웅크러들 때 내 안에서 악마가 자라난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의 모든 파시스트들은 겁쟁이들이며, 겁쟁이들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공동대표)

땀내는 몰라도 악취는 없기를... (이철수) 2005-02-07


살아보면...

욕심줄이고 사는 동안 만 사람입니다.

딴 생각하고 계산 많아지면 사람 아니더라고 합니다...











솔개를 매로 알았다... 한 소식

▶ ③ Clipping........옮겨온 글,그림 모음:솔개 이야기 2006-06-01



40년 쓴 헌 부리 바위에 깨고 새 부리 얻어 30년 더 살아………..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다. 솔개는 최고 약 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세가 되었을 때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 한다. 솔개는 약 40세가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 감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된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겁게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날로 힘들게 된다. 이즈음이 되면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던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과정을 수행하는 것 이다.   갱생과정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정상 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곳에서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 먼저 부리를 바위에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는 것이다. 그런 후에 새로 돋아난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리고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이리하여 약 반 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때로 묵은 습관과 전통을 포기할 필요도 있다.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미래가 비로소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우화경영, 정광호 ...>

초능력 기적의 실체를 <폭로> 한다. 2005-10-14

세상 거저 없다는 진리를 잊고 사는 이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지도 않은 로또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메일을 믿고 수천만원을 송금한 사람도 있습니다.

웃고 지나면 그만이지만...



어쩌면 내 자신도 그런 허황된 꿈을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어린 백성들이 틈 만 나면 기대보는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에도 그런 허망이 스며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겠지요.



그러기에 오늘도 튼실히 묵묵히 제 갈길을 가는 이들에게 작은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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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 ‘기적’ 장사꾼 실체를 알립니다



“입증되면 100만불 제공” 마술사 랜디의 폭로

“믿음이 당신을 살립니다, 찬미 예수!” 2000년 전 예수가 병자를 치유했던 기적을 오늘날에는 부흥사, 신앙치유사를 자처하는 일부 성직자들이 대신하고 있다. 시공간이 다르다는 것만 빼면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인다.



과연 그럴까...

〈폭로〉는 수많은 실제 사례들을 통해 “치유 기적을 선보이는 신앙치유사들이 사실은 모두 사기꾼”이라고 ‘폭로’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1960년대 ‘어메이징 랜디’라는 별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미국의 마술사다. 지은이의 과감한 ‘폭로’는 마술에 대한 상세한 지식에 더해, 심령술·수맥탐사·점성술 등 모든 종류의 속임수 연기에 대한 40여 년 동안의 치밀한 조사가 있어 가능했다.



일례로, 대규모 부흥회에서 신앙치유사는 청중 가운데 한 명(지은이는 ‘희생자’라고 표현한다)을 지목해 그의 이름과 병세, 경력까지 알아맞혀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이것도 실은 수행원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사전에 알아낸 정보들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무대 뒤에서 그 관객의 아픈 부위를 손짓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일부 신앙치유사들은 신빙성을 의심하는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치유받은 환자가 실제로 심각한 병세를 앓고 있었다는 신뢰할 만한 의학적 정보가 청중들에게 공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지은이는 결론적으로, 신앙치유사들은 ...



△치료 실패의 원인을 환자의 믿음 부족에서 찾고

△과학적 치료방법을 무시하며

△단순히 돈을 벌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게 목적이라고 요약한다.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서문에 쓴 것처럼, “(랜디가) 구태의연한 신비주의와 미신이 지금까지 이어져온다는 사실보다, 이런 미신과 신비주의가 사람들을 기만하고 모욕하며 때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에 더욱 분개”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지은이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오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책의 마지막 문장을 마침으로써 자신의 진짜 관심이 ‘폭로’가 아니라 ‘진실’임을 웅변하고 있다.



조일준iljun@hani.co.kr

부모 노릇, 신에게 물었습니다... 2004-12-08

"神과의 인터뷰"라는 글 중 일부입니다.

부모 노릇하기가 항상 조마조마합니다.







Question : "As a parent,

what are some of life's lessons you want your children to learn?"



신에게 물었습니다.

제대로된 부모 노릇을 하고는 싶은 데...

아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To learn they cannot make anyone love them.

All they can do is let themselves be loved."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사랑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그들을 사랑할 수는 있으며,





"To learn that it is not good to compare themselves to others."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고,





"To learn to forgive by praticing forgiveness."



진정한 용서는 몸소 용서를 실천할 때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To learn that it only takes a few seconds to open profound wounds in those they love.

and it can take many years to heal them."



사랑하는 사람의 깊은 상처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치료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것.





"To learn that a rich person is not one who has the most,

but is one who needs the least."



부자란 가장 많이 가진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To learn that there are people who love them dearly,

but simply do not yet know how to express or show their feelings."



아웅다웅하는 세상 사람들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며

단지 그들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모르고 있을 뿐이며,





"To learn that two people can look at the same thing

and see it differently."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고 있을지라도

하는 생각은 다 다를 수 있다는 것.





"To learn that it is not enough that they forgive one another,

but they must also forgive themselves."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더 나아가서 항상 부족하기만 한 자신까지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Thank you for your time," I said humbly.



나이 생각만 하며 무지했던 부모로서 초라한 모습이 열적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그저 당신의 자식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청결이라는 이름의 차별...(김동광) 2005-08-26

땀 냄새는 이제 죄가 되었습니다.

땀이란 정직한 노동의 댓가라던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내음이란 구호는

교양있는 현대인이 되라는 새 이데올로기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찜통 더위 속에서도 양복 정장을 갖춰 입는 남성들 앞에서

여성은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분명치 않은 채 한없이 드러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땀이 머물 곳, 터럭이 쉴 곳은 없습니다.

가슴과 등은 끝간 데 없이 보여주지만,

정작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털과 몸냄새는 어디로 갔는지...

그러기에 사람은 없어지고, 동화 속 공주들 만이 여름철 길에 넘쳐 납니다.



이 여름 한철 등멱과 얼음 화채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여인들,

젖은 베 잠뱅이 사이로 젖 풀어내고 아이 먹이던 누이, 어머니들은 사라지고

그림자가 되어 뒷골목에서 서성일 뿐입니다.



설날, 추석이 되어서야 목욕탕를 찾았던 우리 이웃들, 아버지, 형들은

또 다 어디로 갔을까?



물론 필자라고 해서 예전처럼 지금도 한 해에 두 세번,

설날과 추석 때나 되야 목간을 하고, 여름은 등멱으로 때우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다만 이리도 자주 씻고 닦고 ㅡ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발암물질 잔뜩 들어있는 데오도란트를 겨드랑이, 가슴팍에 뿌려대는 사회가

과연 "누구를 위하여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인지 묻고 싶습니다.



추천서: 마가렛 미드 자서전, (강신표 역) '누구를 위하여 그리고 무엇때문에' , 문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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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이라는 이름의 차별...



왜 여성에게만 청결이 강요되는가… 화장실 비데 등의 기술에 숨어 있는 차별의 이데올로기



더운 날씨, 본격적인 노출의 계절.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여성은 계절 특수를 노리는 온갖 업체들의 표적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노출은 주로 여성에게 해당하는 행사이며, 거리와 해변 모두에서 노출을 둘러싼 뜨거운 경쟁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출의 증가가 성과 연관된 숱한 범죄의 증가를 수반한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여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여성에게 차별적인 계절인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광고들은 계절 특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여성을 집중 공략의 대상으로 삼는다. “체중 감량, 당신도 비키니를 입을 수 있다” “노출을 대비해서 체형을 관리하세요” “겨드랑이 땀냄새를 없앤다” “체모 영구 제거” “뜨거운 햇빛을 피하는 선블록” “예쁘게 태우세요, 선탠”. 이런 문구들로 뒤덮인 거리를 볼라치면 마치 사회 전체가 여성이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노출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온통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과학기술 역시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충실히 복무한다. 식이요법에는 항상 “과학적”이라는 보증이 따라붙고, 햇빛을 차단하는 화장품들은 저마다 나노? ?같은 최첨단기술이 사용되었음을 강조한다.



땀냄새를 기피하는 사회



사실 이런 일들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정도가 날로 높아가고 있고, 그처럼 높은 규정력 때문에 상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어떻게든 첨단기술을 자사 제품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홍보하는 과정에서도 과학의 권위를 동원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한 업체가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다”라는 문구로 큰 성공을 거두었듯이, 오늘날 과학을 어떻게 동원하느냐는 성공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과학기술의 동원, 즉 적용 방식이 모두 고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남성과 여성에 대해서 과학기술이 적용되고 발전하는 방식이 같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려 한다.



우리는 흔히 “여자에게 청결은 기본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고정관념이며, 여성은 자라는 과정에서 중요한 ‘성 역할’(sex role)의 하나로 청결을 몸에 익히고 스스로 행한다. 어머니들은 지저분한 아들의 방에는 관대하면서도 딸에게는 높은 기준을 적용한다. 그러다 보니 청결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강조되는 허위의식, 즉 청결 이데올로기로 발전했다. 오래 전 어떤 광고에서 “여성은 청결한 것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불결한 여성은 추하다”이다.



물론 청결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기준은 소득이 증가하면서 꾸준히 상승해왔다. 가령 얼마 전부턴가 여름철에 공공장소에서 땀냄새를 풍기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간주되고 있다. 이것은 에어컨디셔너가 보편화되어 도시 생활에서 땀을 많이 흘리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서 생겨난 또 하나의 청결 기준이다. 심훈의 소설에서는 땀냄새를 풍기는 남자 주인공에게서 건강미를 느끼는 여성 주인공의 독백이 등장하고, 60~7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에 땀을 흘리고 땀냄새를 풍기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지만 90년대 이후 땀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것은 죄악은 아니더라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간주된다. 이것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이유는 화이트칼라가 아닌 육체 노동자의 경우 여름에 땀냄새를 풍기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임에도, 특정 계층의 청결 수준이 일방적으로 강요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방영된 땀냄새가 나지 않은 속내의 광고는 땀냄새 풍기는 사람을 기피하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묘사했다. 더구나 여성에게는 남성보다 높은 청결 기준이 강요된다. 가령 여성이 겨드랑이 냄새를 풍기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요즈음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잘생긴 남성 앞에서 자랑스럽게 겨드랑이를 노출시키는 여성의 광고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데 앞장선다. 따라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청결 이데올로기는 두 겹의 짐을 지우는 셈이 된다.



노출과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크게 유행한 화장실의 비데 역시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비데는 사회적인 청결의 기준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청결기술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굳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도 뒷물은 오랜 전통이었다. 뒷물은 목욕탕이 없던 시절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바가지의 물만 있으면 혼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 뒤 집안에 목욕탕이 생겨 계절을 가리지 않고 몸을 씻을 수 있게 되면서 그 용어조차 잊혀졌다.



청결 기준에 맞추려 허둥대며…



그런데 화장실이 고급화되는 과정에서 뒷물이 비데로 모습을 바꾸어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성적 편향(bias)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것은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전통적인 뒷물에는 없었는데, 뒷물이 청결기술인 비데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성적 편향이 덧붙여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겠지만, 국내 대표적인 업체의 텔레비전 광고는 이 편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비데를 하지 않은 한 ‘여성’이 의자에 앉으려 하자 의자들이 도망친다. 그리고 비데를 하고 다시 온 여성의 엉덩이에는 의자들이 다투어 몰려든다. 앞에서 소개한 내의 광고에서 남자가 겨드랑이 냄새를 풍기는 여성을 피하는 모습과 동일하다. 왜 이런 광고들은 여성을 표적으로 삼는 것일까?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문제일 뿐 이런 기술 자체는 여성에 대해서 어떤 편향도 갖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조금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얼마 전 내가 하는 ‘과학기술과 사회’라는 교양수업을 듣는 한 학생이 ‘화장실 기술의 성적 편향’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보도된 가짜로 물 내려가는 소리를 내는 장치에 대한 내용이었다. 유독 여자 화장실을 위해 이런 장치가 개발된 것은 여성들이 소변 보는 소리를 감추어야 한다는 편견을 강화하고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편견이 기계장치 속에 기입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청결은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이 고정되어 있다. 물론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의 감염을 막는다는 점에서 청결의 수준은 그 사회의 공중보건의 중요한 지표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준과 그 부과 대상이다. 요즈음 우리는 누가 세웠는지도 모르는 높은 청결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많은 비용을 치르고 허둥대며 살아간다. 땀냄새를 풍기지 않기 위해 바쁜 아침 시간에도 샤워를 하거나 최소한 매일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깨끗한 셔츠를 입기 위해 세탁과 다림질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세탁과 다림질은 대개 여성들의 몫이거나 아니면 비싼 비용으로 세탁소를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여성에게 청결은 기본입니다”라는 고정관념이 더해진다. 비데는 청결에 대한 요구를 여성의 몸 깊은 곳까지 확장하는 장치인 셈이다.



과연 청결 이데올로기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기준의 끝은 어디인가?





(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 강사)



http://h21.hani.co.kr/section-021021000/2004/06/0210210002004062405150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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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냄새 제거제 데오드란트서 환경호르몬 검출"

[연합뉴스 2005.08.25 09:13:20]



국.외産 제품 6종서 DBP 등 독성물질 나와(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여름철 여성이 많이 쓰는 데오드란트(deodorant촵땀냄새 제거제)에서 환경호르몬 지정물질로 생식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프탈레이트가 검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5일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지난달 시중에 판매되는 유명회사의 데오드란트 제품 6종(국내기업 3종,외국기업 3종)에 대해 성분분석을 한 결과 모든 제품에서 프탈레이트 1가지 이상이 검출됐다.

이번 조사에서 검출된 프탈레이트는 DBP(디부틸 프탈레이트), DEHP(디에틸헥실 프탈레이트), DEP(디에틸 프탈레이트) 등 모두 3종이었다.



분석결과 `레세나 안티퍼스피런트 데오드란트 스틱''(유니레버코리아)에서는 DBP의 농도가 1.67㎎/㎏, DEHP가 1.41㎎/㎏, DEP가 730.34㎎/㎏으로 나타나 조사대상 6개 제품 가운데 유일하게 프탈레이트 3종이 모두 포함됐다.



`에스쁘아 퍼퓸드 데오드란트 스프레이''(태평양)는 DBP 6.98㎎/㎏과 DEHP 0.42㎎/㎏ 등 2종이 검출됐고 `리프레시 데오드란트''(비봉파인)는 DBP 5.79㎎/㎏과 DEP 0.05㎎/㎏, `니베아 데오드란트 파우데 스프레이 프레시''(니베아 서울)는 DBP 2.96㎎/㎏, DEHP 0.34㎎/㎏이 나왔다.



특히 유럽연합(EU)에서 올해부터 독성물질로 금지하고 있는 DBP와 DEHP가 모든 제품에서 검출돼 사용자의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여성환경연대는 밝혔다.

이 단체는 프탈레이트가 검출된 제품을 생산한 회사 가운데 유니레버코리아와 태평양은 2년전 자사 제품에 이들 물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는 데도 약속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프탈레이트가 화장품에 쓰이면 기름으로 이뤄진 수분막을 형성하고 여러 성분이 잘 섞이도록 용해되는 것을 촉진해 유연성을 더하는 성질이 있는데 체내로 들어가면 생식능력을 감퇴시키고 신생아의 기형을 초래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이다.



여성환경연대 측은 "프탈레이트는 미량이라도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며 "데오드란트는 매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도포하는 부위가 땀샘이 많고 습한 곳이기 때문에 다른 피부조직에 비해 유해물질 흡수도가 높다"고 우려했다.

환경호르몬이란 사람, 동물의 호르몬 움직임을 어지럽히는 유해화학물질을 일컫는 용어로 정식 명칭은 외인성 내분비 교란물질이다.





보왕삼매론: 병있는 곳에 복이 있다. 2005-05-25

병이 있는 곳에 복이 있다.

자신이 병에 걸려 안타깝거나, 또는 남의 병간호를 하는 등 보통 우리가 피하려고 만 하는 병이 옆에 와 머물 때 바로 그 때가 복을 받을 수 있는 때일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병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통해 삶의 의욕을 보강시킨 저서가 '보왕삼매론'이다.
역경을 역경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순경으로 승화하라는 교훈이다.
역경 속에서 자기를 지키고 찾는 사람에게 복은 저절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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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몸에 병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따라서 병고는 양약이 된다.

2. 살아감에 있어 고난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고난이 없으면 방자해 지고 사치스러워진다. 따라서 근심과 고난을 낙으로 생각하고 세상을 살아가라.

3. 공부하면서 마음의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쳐서 오히려 해가 된다. 그러니 장애 속에서 해탈을 구하라.

4. 수행하면서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가 없으면 결심이 굳어지지 못한다. 마는 수행을 도와 준다고 보아라.

5. 일이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쉽게 성취하면 경솔해 진다.

6. 나의 이익을 전제로 친구를 사귀지 말라.
    그러면 의리를 상한다. 오직 순결로 친구를 사귀어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지 말라.
    그렇게 된다면 교만심이 높아진다. 나를 거역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8. 공덕을 베풀고 그 과보를 바라지 말라. 돌아올 것을 바라면 엉뚱한 뜻이 생긴다.
    오직 베푼 것은 헌신짝 처럼 버려라.

9. 분에 넘치는 이익을 바라지 말라. 지나친 이익은 어리석은 인간을 만든다.
    돈과 지위에 집착하면 인간은 추해지기 마련이다.

10. 억울함을 당했다고 변명하려 하지 말라.
     억울함을 따져 봐야 원망하는 마음 밖에 더 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억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을 수행의 기회라고 받아 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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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기운 조금 있어도 흔들리는 이 사람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일체유심조를 되뇌지만 여전히 마음은 멀고 가슴 만 간절합니다.

낙천적으로 살아갑시다 2006-04-09

화나고 힘들 때 이렇게 해보세요.





1, "참자" - 하고 생각해라...



감정 관리는 최초의 단계에서 성패가 좌우된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화는 일단 참아야 한다.



2, "원래 그런 거"- 라고 생각하라.



예를 들어 고객이 속을 상하게 할 때는

고객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라.



3, "웃긴다" - 고 생각하라.



세상은 생각할수록 희극적 요소가 많다.

괴로울 때는 심각하게 생각할 수록

고뇌의 수렁에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간다.

웃긴다고 생각하며 문제를 단순화 시켜보라



4 "좋다. 까짓 것" - 이라고 생각하라.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는

"좋다. 까짓 것" 이라고 통 크게 생각하라.

크게 마음 먹으려 들면 바다보다

더 커질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5,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 라고 생각하라.



억지로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라.

내가 저 사람이라도 저럴 수 밖에 없을 거야~

뭔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저럴 거야~ 라고 생각하라.



6, "내가 왜 너 때문에" - 라고 생각하라.



당신의 신경을 건드린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고 있는데,

그 사람 때문에 당신이 속을

바글바글 끓인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내가 왜 당신 때문에 속을 썩어야 하지? 그렇게 생각하라.



7, "시간이 약" - 임을 확신하라.



지금의 속상한 일도 며칠 지나면,

아니 몇 시간만 지나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라.

너무 속이 상할 때는

"시간이 약" 이라는 생각으로

배짱 두둑히 생각하라



8, "새옹지마" - 라고 생각하라.



세상 만사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

속상한 자극에 연연하지 말고

세상 만사 "새옹지마" 라고 생각하며

심적 자극에서 탈출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하라.



9, "즐거웠던 순간" - 을 회상하라.



괴로운 일에 매달리다 보면

한없이 속을 끓이게 된다.

즐거웠던 지난 일을 회상해 보라.

기분이 전환 될 수 있다



10, "눈을 감고 심호흡" - 을 하라.



괴로울 때는 조용히 눈을 감고

위에서 언급한 아홉 가지 방법을 활용하면서

심호흡을 해 보라.

그리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침을 삼키듯 "꿀꺽" 삼켜 보라.





I just can't stop loving you, (마이클 잭슨) 2005-03-14

I pray in you I'll find a love so true

When morning awakes me

Will you come and take me

I'll wait for you



내 기도속에서 사랑은 진실한 것이라고 알게 해주십시오.

아침 자리에서 눈 뜰 때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You know how I feel

I won't stop until I hear

your voice saying I do.

This thing can't go wrong

This feeling's so strong

Well, my life ain't worth living

If I can't be with you



어떤 마음으로 사람이 살아가는지 당신은 아시겠지요

사랑한다는 당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귀머거리일 뿐입니다.

그 어떤 것도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렇게 신실하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없다면 내 삶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I just can't stop loving you

I just can't stop loving you

And if I stop

Then tell me just what will I do

I just can't stop loving you



당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없이 제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그러기에 당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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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Just Can't Stop Loving You by Michael Jackson



마이클 잭슨의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란 노래입니다.



빌보드 차트가 아닌 Gossip란과 코미디 소재로 오르내리기에 바쁜 그를 보고 있자면,

언뜻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수야 어찌 되었건

사랑 노래는 메아리가 되어 모두에게 사랑을 불러옵니다.



하긴...

환갑 가수가 갓 서른 여인을 맞아 들여도 사랑입니다.



수백대 매로 아이를 두드려도

애비의 사랑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휘둘려도 어디 그리 사랑이 쉽게 변하던가요





신은 숨어 있는 걸까요?

50여년 전 그렇게 수 많은 사람이 절망 속에서 불렀던 때처럼 기다려 봅니다.

요즘 핏발 선 눈으로 온 세상을 몸서리치게 만들고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사랑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참회는 뒷전이고,

언감생심 땅타령까지 하고 나서는 낯 두꺼움.

주뢰를 틀던 이들에게 칼을 씌우지는 않으렵니다.



그러게 다짐합니다.

사랑없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렵니다.



사랑을 믿습니다.





sgs

일어나기 싫은 날 (Garfield) 2004-11-09

정말 일어나기 싫은 날이 있지요...



그냥 그대로이고 싶은 날 말입니다.



사람은 다 같은 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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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흐...또 일어나야 할 시간이야...

== 뭐해?

-- 일어날려고...그럴려고...그러는 중이야...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였던가요...

"그래도 해는 또 다시 뜬다."

(The sun also rises.)



언젠가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날이 꼭 올텐데...

오늘 하루 감사로 시작하십시오.

인과응보의 끝 ( 토끼풀 다섯 ) 2005-11-11

♣ 동갑인 70세 노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았을 때

천사가 나타나 소원을 한가지씩 말하라고 했다.



할머니가 말했다. "세계일주를 하고 싶습니다."

천사가 날개를 흔들자

세계일주 패키지 상품권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천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서른 살 어린 여자와 살고 싶습니다,"

천사가 날개를 흔들자

70세 할아버지가 100세 할아버지로 변했다.



♣ 한토마 양심 논객과

한토마 수구 논객이 나란히 걷고 잇었다.

이때 천사가 나타나 소원을 한 가지씩 말하라고 했다.



한토마 양심 논객이 말했다.

"민주. 정의. 양심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천사가 날개를 흔들자

아름다운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증이 나왔다.



한토마 수구 논객이 말했다.

"박정희 정권 시대로 되돌아가서 살고 싶습니다."

천사가 날개를 흔들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살 수 있는 권리증이 나왔다.



그러자 천사는 비디오를 켜서

수구 논객이 살아가야 할 장면을 한 번에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독립투사였던 할아버지가 빨갱이로 처형 당하는 장면,

보안법 위반으로 아버지가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

교련복 입고 각반찬 채 총 메고 고교생들이 소풍가는 장면,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을 피해 대학생들이 도망다니는 장면,



하루18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하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장면.

노조집회에 참석했다가 구사대에게 죽지 않을 만큼 얻어 맞고,

정보부에 눈 가리고 끌려가 혹독하게 고문당하는 장면.

고문의 휴우증으로 말년을 비참하게 살아가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http://bbs3.hani.co.kr/board/ns_hantoma200506/Contents.asp?Stable=ns_hantoma200506&Idx=45525&Rno=25309&rp=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에...As long as u love me... 2005-12-24

뒷골목 아이들로부터 사랑을 배웁니다.

=====





As Long As You Love Me sung by Backstreet Boys



Although loneliness has always been a friend of mine.

I'm leavin' my life in your hands.



외로움이 친구처럼 늘 함께 있는 이 세상에서

이제 당신 손에 나를 맡깁니다.



People say I'm crazy and that I am blind

Risking it all in a glance.

And how you got me blind is still a mystery.



사람들이 나를 첫눈에 반해 눈멀었다 놀려대지만

그런 신비를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I can't get you out of my head.

Don't care what is written in your history

As long as you're here with me.



당신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지난 일이 뭐 어떻단 말입니까

당신이 나와 함께 있는 데.



I don't care who you are

Where you're from what you did

As long as you love me.



진정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며 어디서 사는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데 무슨 상관인가요.



===



오병이어든 만다라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는...



그동안 적지 않았던 실망은

내 탓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랑을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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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런 세상...

지금이 바로 사랑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두 아이같이 첫마음으로 살 수는 없는 걸까요.



구유의 예수는 해마다 새롭게 우리를 일깨웁니다.

전생에 부모의 빚쟁이가 자식이라는 데. 2005-07-16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만든 피노키오.

참 속깨나 썩이던 녀석.

거짓말을 하면 자꾸만 코가 길어나던 그 나무토막.



자식은 전생에서 부모에게 꿔준 빚이 있던 빚쟁이였다고도 합니다.

그러기에 아무 때나 이리 졸라대나 봅니다.

디카폰, 해외연수, 카드, 자동차, 심지어는 집도 노래합니다.

화 날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때로는 차라리 자식이 없었더면 생각하는 부모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빚은 갚아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버릇없는 아이가 되도록 내버려 두라는 말은 아닙니다.

제대로 아이 하나 키워내야 부모가 어른 대접 받는다는 믿음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자식 하나 키우는 것은 마을 하나를 만드는 일이라 했던가요...





제페토같은 마음 품은 부모 제법 된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요...

부모도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오늘도 부모들은 그저 자식생각 뿐인 것은 아이들은 알런지.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으니, 부모 마음은 자식 낳아 보아야 안다고 하지요...



그러나 쇳소리 하나.

"튼튼한 다리, 열 효자 안 부럽다."

건강이 제일... 고금의 진리입니다.

당신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2006-06-08

01세 누구나 비슷하게 생겼다.



* 02세 될 놈은 약간 이상한 기색을 보인다.



* 03세 푸이, 중국 황제가 되다.



* 04세 마이클 잭슨, 가수로 데뷔하다.



* 05세 달라이 라마,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다.



* 06세 이소룡, 연기를 시작하다.



* 07세 베토벤, 무대에 서다.



* 08세 편지를 쓸 수 있다.



* 09세 파워 레인저 장난감에 싫증을 낸다.



* 10세 에디슨, 과학실험실을 만들다.



* 11세 할머니보다 키가 커진다.



* 12세 로리타가 험버트를 만나다.



* 13세 안네, 일기를 쓰기 시작, 빌게이츠, 컴퓨터 프로그램을 시작하다.



* 14세 줄리엣, 로미오와 연애를 시작하다.



* 15세 복녀, 홀애비와 결혼하다. 펠레, 프로축구선수로 첫 골을 넣다.



* 16세 이몽룡, 성춘향과 연애를 시작하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 (아카데미)에 입학하다.



* 17세 유행가에 자주 등장한다.



* 18세 테레사 수녀, 인도에 가다. 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타다. 김소월, <창조>에 시를 발표하다.



* 19세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생활을 시작하다. 루소, 바랑 부인과 동거를 시작하다.



* 20세 다이애나, 찰스 황태자와 결혼하다.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하다.



* 21세 스티브 잡스, 애플컴퓨터 사를 설립하다.



* 22세 알리,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다. 정약용, 과거에 급제하다.



* 23세 주말이 갑자기 의미가 있어지기 시작한다.



* 24세 마릴린 몬로, 배우생활을 시작하다.



* 25세 니체, 바젤 대학 교수가 되다.



* 26세 제리 양, 야후를 설립. 월트 디즈니, '미키 마우스' 발표하다. 이태백, 방랑 생활을 시작하다.



* 27세 로빈슨 크루소, 해변에 도착하다.



* 28세 김영삼, 국회의원에 당선.



* 29세 펠레, 1000번째 골을 성공. 칼 마르크스 <공산당선언>을 쓰다.



* 30세 베토벤, '월광 소나타'를 발표하다.



* 31세 아직 29살이라고 우길 수 있다.



* 32세 군대에 지원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 33세 예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다. 숀 코네리 처음으로 007 영화에 출연하다.



* 34세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이 되다.



* 35세 석가모니, 도를 깨치다. 나폴레옹, 황제가 되다. 퀴리 부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다.



* 36세 마가렛 미첼 여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발표하다. 마돈나, 첫 아이의 엄마가 되다.



* 37세 가족을 위해서 캠코더를 산다.



* 38세 병으로 죽으면 엄청 약 오른다.



* 39세 걸리버, 여행을 시작하다.



* 40세 헨리 포드, 포드 사를 설립하다.



* 41세 이주일, 텔레비젼에 첫 출연하다.



* 42세 아인슈타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다.



* 43세 퀴리부인,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다. 유진오,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다.



* 44세 박정희 소장,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다.



* 45세 히틀러, 독일의 지도자가 되다.



* 46세 간통죄에 많이 걸린다.



* 47세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났는지는 계산해야 알 수 있다.



* 48세 통계학적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번다.



* 49세 '9수'라는 말이 절실히 느껴진다.



* 50세 히틀러,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다.



* 51세 태어난 지 반세기를 넘어선다.



* 52세 카드 한 벌과 수가 같다.



* 53세 숀 코네리, 마지막으로 007시리즈에 출연하다. 사담 후세인, 걸프전을 일으키다.



* 54세 라식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 55세 정년이 시작된다.



* 56세 손주가 자식보다 더 사랑스럽다.



* 57세 윌리엄 와일러 감독, 영화 '벤허'를 만들다.



* 58세 캐롤 요셉 워틸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되다.



* 59세 올브라이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국무장관 되다.



* 60세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이 되다.



* 61세 '경험'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 62세 피카소, 21살 프랑수와즈 질로를 만나 첫눈에 반하다.



* 63세 미국에 사는 여인 아셀리 키, 인공 수정으로 출산에 성공하다.



* 64세 자신의 후임자를 찾아야 한다.



* 65세 교수들의 강제 퇴직 파티가 열린다.



* 66세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대통령이 되다.



* 67세 '이제 늙었어'라는 말을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린다.



* 68세 안필준 전 보사부장관, 의학박사 학위 취득하다.



* 69세 테레사 수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다.



* 70세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지막으로 영화 출연하다.



* 71세 짐을 들고 있으면 주변 사람이 욕을 먹는다.



* 72세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스카이 다이빙에 성공하다.



* 73세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 재선되다.



* 74세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다.



* 75세 넬슨 만델라, 남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다. 괴테, 자서전 내다.



* 76세 기저귀를 차고 자야 맘이 편하다.



* 77세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에 재선되다.



* 78세 앞으로의 1년씩이 인생의 보너스로 느껴진다.



* 79세 프랑크 시나트라, 마지막 리사이틀 가지다.



* 80세 어디를 가나 값을 깎아 준다.



* 81세 '장수'라는 말이 어울린다.



* 82세 톨스토이, 가출하여 시골 역에서 사망하다.



* 83세 괴테, <파우스트>완성하다.



* 84세 보청기 없이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 85세 프랑스에 사는 장 칼몽 할머니, 펜싱을 배우기 시작하다.



* 86세 짠 음식도 이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87세 TV 연속극이 본 방송인지 재방송인지 알 수 없다.



* 88세 사진첩에 있는 사람들 중 반은 기억할 수가 없다.



* 89세 파블로 피카소, 자화상을 완성하다.



* 90세 자식들 이름을 가끔씩 잊어버린다.



* 91세 샤갈, 마지막 작품을 발표하다.



* 92세 야생 버섯을 마음대로 먹어도 상관없다.



* 93세 가끔씩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린다.



* 94세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여준다.



* 95세 앞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이 자식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 96세 혼자 화장실에 갔다가는 되돌아 나올 수 없다.



* 97세 큰아들이 정년을 맞는다.



* 98세 알츠하이머에 걸리기에도 너무 늦었다.



* 99세 고지가 바로 저기다.



* 100세 장 칼몽 할머니, 자전거 타기를 즐기다.



* 107세 일본 쌍둥이 할머니 자매 중 킨 할머니 사망하다.



* 120세 장 칼몽 할머니,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다.



* 121세 장 칼몽 할머니, Time's Mistress'라는 노래를 CD로 발표하다.



* 123세 살아 있으면 기네스북에 오른다.



Y r women crying? 여자가 우는 이유 2004-08-18

여자가 우는 이유:

A little boy asked his mother "Why are you crying?"

"Because I'm a woman", she told him.

울고 있는 엄마에게 어린 소년이 이유를 묻습니다.

"그건 여자이기 때문이야" 엄마의 대답입니다.



"I don't understand," he said.

His mum just hugged him and said, "And you never will."

"참 알 수가 없네요"

이 말에 엄마는 소년을 안아주며 이렇게 답합니다.

"어쩌면 너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야"



Later the little boy asked his father,

"Why does mother seem to cry for no reason?"

궁금해진 소년은 아빠에게 묻습니다.

"대개 여자들은 아무 이유없이 울고 그러나요?"



"All women cry for no reason" was all his dad could say.

"음..그래... 여자는 그냥 울곤 하지" 이런 시큰둥한 대답이 있었을 뿐입니다.



The little boy grew up and became a man, still wondering why women cry.

소년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지만 그 때까지도 여자가 우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Finally he put in a call to God; and when God got on the phone, he asked,

"God, why do women cry so easily?"

세상이 좋아졌기에 신에게 전화를 걸어 보기로 합니다.

"신께서는 여자가 왜 그렇게 쉽게 우는 지 알고 계신지요?"



God said:

"When I made the woman she had to be special.

여자가 왜 특별해야 하는지를 신께서는 말씀 하셨습니다.



I made her shoulders strong enough to carry the weight of the world;

yet, gentle enough to give comfort."

나는 여자에게...

세상의 짐을 다 질만큼 튼튼하고

누구라도 편안하게 포근히 품을 수 있는 어깨를 주었다.



"I gave her an inner strength to endure childbirth

and the rejection that many times comes from her children."

출산의 고통을 견뎌내고,

아이가 자라면서 몇번이고

어머니의 기대를 잊더라도 견딜 만한 강한 마음을 주었다.



"I gave her a hardness that allows her to keep going when everyone else gives up,

and take care of her family through sickness and fatigue without complaining."

모든 사람이 포기하더라도 계속할 수 있고,

질병과 고단함을 견디면서 아무 불평도 없이 가족을 보듬고 나아갈 강인함을 주었다.



"I gave her the sensitivity to love her children under any and all

circumstances, even when her child has hurt her very badly."

죽고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보다 더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을 사랑할 정성을 심어 주었다.



"I gave her strength to carry her husband through his faults and

fashioned her from his rib to protect his heart."

온갖 잘못을 저지른 지아비가 있더라도 버리지 않도록

그의 가슴에서 뼈 하나를 골라 그녀를 지었다.



"I gave her wisdom to know that a good husband never hurts his wife,

but sometimes tests her strengths and her resolve to stand beside him unfalteringly."

좋은 남편이라면 결코 아내를 저바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하고,

그렇지만 때때로

그녀의 인내와 단호한 결단력이 시험에 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할 지혜도 주었다.



"And finally, I gave her a tear to shed.

마지막으로 내가 준 것이 눈물이었다.



This is hers exclusively to use whenever it is needed."

언제고 필요할 때면 쓸 수 있게 여자에게 만 준 것이 눈물이구나.



"You see:



The beauty of a woman is not in the clothes she wears,

the figure that she carries, or the way she combs her hair."

"The beauty of a woman must be seen in her eyes,

because that is the doorway to her heart - the place where love resides."

여자의 아름다움은 옷이나 얼굴, 머리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그 어느 곳도 아닌 눈에서 온다.

사랑이 머물고 있는 마음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



여성의 달에 부쳐...



Please send this to all the beautiful women you know today

in celebration of Women's History Month.



If you do, something good will happen.

You will boost another woman's self-esteem!

Every Woman is Beautiful.



미국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가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기념되던 3월 8일을 1980년에 여성의 날로 선포합니다.

뒤 이어 여러 여성단체들이 이 날을 국제 여성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했고, 3월은 여성 역사의 달이 되었습니다.

이 날은 1908년 뉴욕시 여성의원들의 주도 아래 대규모 행진이 있었던 날이고, 그 후 1917년 러시아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한 역사적인 시위의 토대가 되었던 날입니다.



아름다운 이들, 모든 여성에게 힘이 되도록 이 날의 뜻이 알려 졌으면 합니다.

바로 이 글을 힘들어 하는 여성들에게 전하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Viva woman !



==

누군가의 가슴 속... 사람이 있어야 할 곳 2005-10-08

내가 있어야 할 곳



" 사람이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 밖에 없는 것이란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가슴속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누가...있는 것일까.



- 에쿠니 가오리의 < 냉정과 열정 사이 >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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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사랑하는 이가 들어있다면 세상은 '사랑'이 되고,

가슴 속에 미워하는 이가 들어있다면 세상은 '미움'이 됩니다.

가슴 속에 희망이 들어있다면 세상은 '희망'이 되겠지요.



지금 내 안에 누가 들어있는지,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

나는 누구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그대의 마음 쉴 곳 없네"



나이들어 얻는 것이 완고함 만이 아니기 빌며

삼가며 하루를 지낼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자가 남자 복이 없으면... 2004-10-05

우스개 하나...

코드가 어긋나 있는 부부가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남편이 술에 쩔지도 않고 일찍 귀가했습니다.
게다가 손수 양말까지 빨래통에 벗어 넣는 기특함이라니...)

아내: (기분이 좋아서 남편을 보며) 나는 남자 복이 많아...

남편: 무슨 얘기야! 여자가 조신해야지... 외간 남자들 한테 관심이나 갖고...
........

아내: (곧 눈치를 보면서 침울하게) 아, 나는 남자 복이 없어...

남편: 뭐라고? 남자가 이만하면 됐지, 대체 당신 나한테 무슨 불만이 그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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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자는 당하고 삽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여자다운 건지...

코드 만 맞아도 부부는 살 만하지 않을까요...
아니 어쩌면 그게 전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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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장모님: 모두가 싫어하는 이? 2005-03-31







악담...

Mother-in-law 는 시어머니일 수도 있고, 장모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시어머니만 심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여권이 신장된 곳에서는 장모님도 만만치 않은가 봅니다.



그러기에 요즘 아파트 이름이 무슨 메르디앙이니,무슨 에버빌, 무슨 팔리스 레전트니 하는 식으로 복잡해진 것을 놓고... 외출했던 노인네가 집찾기 어려우라고 그리 된 것이란 농담도 있다지요.





===== 공통사항



Adam and Eve were the happiest and the luckiest couple in the world,

because neither of them had a mother-in-law.

아담과 이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행운의 부부였다.

둘다 시어머니와 장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Does it really surprise anyone that Mother-in-law's

Day occurs less than one week before Halloween?

장모와 시어머니를 기리는 날을 할로윈데이 일주 전으로 정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 시어머니 사항



A pharmacist tells a customer:

"In order to buy arsenic you should need a legal prescription.

A picture of your mother-in-law just isn't enough."

비소(맹독성 화학약품)를 사러온 손님에게 주인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구입 하시려면 규정된 처방이 있어야 합니다.

단지 시어머니 사진을 들이미는 것 만으로는 안됩니다."





The lawyer cabled his client overseas:

"Your mother-in-law passed away in her sleep.

Shall we order burial, embalming or cremation?"

Back came the reply,

"Take no chances -- order all three."

변호사가 해외에 있던 고객에게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왔다.

"시어머니 사망. 매장, 방부처리, 화장 여부 회신 요망"

바로 회신이 왔다.

"혹시 모르니, 모든 것을 다할 것."





Two neighbors were having a chat when one said,

"I took my dog to the vet today because it bit my mother-in-law."

The other asked, "Did you put it to sleep?"

"No, of course not," said the first,

"I had its teeth sharpened."

두 사람의 대화.

"개가 시어머니를 물어서 어제 수의과 병원에 갔다왔어."

"그래서... 개를 죽였어?"

"아니. 이빨을 더 뾰죽하게 갈아 달라고 했어"





My mother-in-law was bitten by a mad dog in the street.

"Oh, that's terrible"

"Yes, it was terrible to watch the dog die slowly in convulsions."

미친 개에게 시어머니가 물렸다.

"저런 얼마나 놀랐을고."

"정말 끔찍했어. 경련을 일으키며 개가 죽어가는 꼴이라니..."





===== 장모님 사항





Behind every successful man stands a devoted wife and a surprised mother-in-law.

성공한 남자 뒤에는 헌신적인 아내와 어이가 없는 장모가 있게 마련이다.





Sometimes you cannot tell

if a man is trying so hard to be a success to please his wife

or to spite his mother-in-law.

대개의 남자가 그렇게 성공하려고 애를 쓰는 이유가 과연 아내를 즐겁게 하려는 때문인지 아니면, 장모에게 품은 앙심 때문인지는 누구도 쉽게 알 수가 없을 것이다.





One day a husband was late coming from work and his wife was nervous.

"Oh, I know he has an affair with some woman," she said to her mother.

"Why do you always think the worst?"

her mother replied, "Maybe he is just in some kind of accident."

어느날 남편이 저녁 늦게 까지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조바심을 내며 옆에 있던 친정 어머니에게 투덜거렸다. "어떤 여자와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게 분명해"

장모님의 대답.

"무슨 일을 그렇게 최악으로만 생각하니, 아마도 교통사고가 난 거겠지." (보험금 탈 준비나 해라.)





Have you heard about this man

who took his mother-in-law to the zoo and threw her into the crocodile pool.

He is now being sued by the RSPCA for being cruel to the crocodiles.

장모님을 동물원에 모시고 가서 악어 웅덩이에 빠뜨린 남자가 있었다.

그는 지금 동물애호가 협회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로 있다.

죄명: 동물 학대죄...





My mother-in-law was bitten by a dog yesterday.

How is she now?

She's fine.

But, the dog died.

어제 장모님이 개에게 물렸다.

장모님은 멀쩡한 데 개 만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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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들어 자식들과 함께 살기는 이제 어려운 듯 합니다.

각자 알아서들 하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이렇게 한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니 들은 안 늙을 줄 아냐"

소식, 몸에 좋습니다. 2004-12-06

적게 먹으면 대사작용의 속도가 줄어 들어 노화가 지연된다는 보고가 많았습니다.

무조건 적게 먹는 것은 속세에서 실천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겠기에 많지 않은 용감한 사람 만 그 길을 가고 있을 뿐 입니다.



어떤 분은 일상의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하루 한끼로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이가 보면 그야말로 연명일텐데, 본인 말로는 아주 좋다고 합니다.

범인으로서야 어디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만은...



지금부터라도 간식을 줄이거나 없애고,

튀기고 볶은 패스트 푸드... 피자, 햄버거, 양념통닭, 라면을 멀리 하며,

멋진 이름과는 반대로 사람을 멍들게 하는

저 쓰잘 데 없는 청량음료를 안 마실 수는 없을까요.



늦은 저녁 식사를 없애고 - 아, 쉽지 않지요, 어쩌면 불가능하기도 하지요.

"무슨 라면이야?"하며 밤늦게 라면 먹기를 부추기더니,

다시 한 쪽에서는 "그래, 이 맛이야"로 사람을 홀리고 있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세상도 살리고 나도 사는....

기름진 밥상이 독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염두에 두고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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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반찬 가짓수를 줄이자.



많은 사람들이 상다리가 휘도록 반찬 수가 많이 나오는 식당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반찬가짓수를 줄여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음식은 상극현상이 있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반찬을 골고루 먹으라는 것은 시간을 달리해서 먹으라는 뜻이지 한꺼번에 여러 가지 반찬을 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음식 간에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이 있어 도리어 몸을 해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토마토에는 비타민A 가 많이 들어있는데 설탕이 들어가면 비타민A가 파괴되고, 미역국에 파가 들어가면 파 속의 인과 유황이 칼슘의 흡수를 방해한다. 따라서 어떤 반찬이 궁합이 맞는지 안맞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음식을 단조롭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유해물질이나 무서운 환경호르몬이 몸에 들어갈 수 있다. 반찬 가짓 수가 많은 식당은 거의 석유화학제품인 가벼운 플라스틱 식기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문제가 많다. 플라스틱 식기에 뜨거운 국물이나 기름기, 식초, 소금, 알콜이 들어가면 무서운 환경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다. 또 오래 사용해 닳은 플라스틱 식기에서도 환경호르몬이 나온다. 플라스틱 식기는 한꺼번에 통 속에 넣고 설겆이하기 편리해서 그릇을 많이 쓰는 식당이 선호하는데, 식기를 세척할 때 쓰는 합성세제는 흐르는 물에 네 번 헹궈도 그릇에 남는다. 따라서 도자기 그릇으로 바꾸면 가볍고 잘 깨지지않는 플라스틱 식기와 달리 불편한 점이 많아 결과적으로 반찬 가짓수를 줄이게 된다.



셋째, 비위생적이어서 병에 걸리기 쉽다. 반찬 가짓수가 많은 식당은 손님의 젓가락이 거의 닿지 않은 반찬은 다시 쓰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반찬 수가 많은 식당에서 밥상을 치울 때 보면 반찬그릇을 포개서 나가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불결한 반찬을 먹게되면 병에 걸릴 수 있다.



넷째, 음식찌꺼기로 엄청난 재정적 낭비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음식찌꺼기로 연간 15조원을 낭비하고 있다. 이 돈이면 월드컵 경기장을 수 십개 만들 수 있고, 북녘 동포들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다. 식당 반찬 가짓수를 줄이면 놀라울 정도로 음식찌꺼기가 줄어들 것이다.



다섯째, 건전한 식생활문화를 해치기 때문이다. 예부터 우리민족 먹을거리의 기본은 밥(잡곡밥이면 더욱 좋다)에다 맛있게 담근 김치, 영양가 풍부한 된장국이다. 여기에 먹고 싶은 것을 한두 가지 더하면 영양학적으로 충분하다.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먹고 싶은 만큼 스스로 덜어먹는 바른 음식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서 한태 (의사, 환경운동가)

기아에서 탈출하자.(월드워치) 2006-06-05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는 사람들, 대개는 입맛에서 시작해 웰빙을 아우르는 생각들입니다.

즉, 실제로 먹을 것이 없어서 하는 고민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세상에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멀리 나라 밖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 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10만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진실로 먹을 것이 부족해서 이렇게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분배체계 만 제대로 가동한다면 넘쳐나는 먹을 것으로 - 버리지 않고 - 이들을 먹일 수는 없는 것인지...

"무엇을 먹지"하고 오늘도 점심 시간에 고민 중인 사람들은 한번쯤 되새겨 보아야 할 듯합니다.



온나라가 월드컵에 혼이 나간 한편에서는 여전히 우리 이웃 중 몇몇은 배곯으며, 가엾게 삽니다. 논지의 핵심은 이것이 결코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유 속에서, 웰빙 생각하는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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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와 폭식에서 벗어나는 길]





통념상 영양부조 문제는 단지 빈국만의 문제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비록 가난은 했더라도 먹을 것 걱정은 없었던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양부조의 문제는 지구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복합적인 문제이다.





오늘날 에티오피아는 계속되는 기근의 손아귀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무려 1,600만이 아사상태에서 신음하고 있다. 1980년대에 있었던 대규모 국제적 원조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 지역(Horn of Africa)은 기근과 영양실조의 동의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서양 건너편의 또 다른 나라에서는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과다영양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들 중의 1/4은 병적인 상태로 보고되고 있다. 영양실조 문제는 공중 보건 차원에서는 거의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이와 관련된 당국자들은 영양실조가 재앙의 수준에 달하고 있으며,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병들고, 출산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전국민의 55%가 과다체중이며, 23%는 비만 상태이다. (과다체중과 비만은 모호한 개념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규정된 기준이 있다. '구석구석 스며든 영양문제' 이하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비만으로 인한 의료비용과 임금 감소는 미국에서 한 해 1,180억 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이는 연간 보건예산의 12%에 달하는 것이다. 과체중과 비만은 관상동맥 질환과 암, 심근경색, 당뇨병 발생의 주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병들을 합산하면 미국 사망자 수의 거의 절반을 점하게 된다.

기아와 폭식에 대해서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배고픔의 문제는 가난한 나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식량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아가 심각한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식량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수가 많다. 어이없게도 충분한 곡물을 가진 나라에서도 배고픔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이렇게 영양부조(malnutrition) 문제에는 부족과 과다의 개념이 공생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선진국들은 영양부조의 문제를 후진국만의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높혀가고있다. 기아 율이 높은 곳 뿐만 아니라 심각한 식량난에 처한 나라에서도 과영양의 문제는 늘어나고 있다. 기아가 만연한 콜롬비아의 경우 성인의 41%가 과영양인데 이는 유럽국가의 비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비록 기아가 영양 측면에서 훨씬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과영양 역시 보건 측면에서 점점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세계 보건기구는 발표하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과대체중인 사람 수가 과소체중인 사람 수를 초과했으며, 이 둘이 각각 11억을 넘고 있는 것이다.

통념과 오해가 이런 과대 과소 영양의 문제를 감싸고 있는 현재, 정책적 대응 역시 문제의 핵심을 잡아내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기아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초점이 기아의 사회학적 요소나 빈약한 소득, 불공평한 토지분배, 여성의 사회적 참여 제한 등이 아니라, 주로 곡물 증산 등의 기술적 측면에서 목표를 찾고 있는 것이 그런 잘못된 예이다. 과영양을 줄이기 위한 방법도 쓸데없는 음식들로 부풀려진 소비시장 위주의 식품 환경에 건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예방적 교육 등이 아니라 다이어트나 이와 관련되는 약품 등을 복용하는 개인적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결과는 오늘날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에서처럼 빈부 격차를 불문하고 세계 인구의 절반이 영양상 문제에 처해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 다시 최근 십여년 동안의 지구적 식량 과잉 문제가 가세하게 된다.

영양부조는 이제 빈국 부국을 막론하고 다같이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개인적 차원에서 기아와 비만은 똑같이 육체적 건강을 위협하고, 질병에 관한 저항력을 감소시키며, 수명단축의 원인이 된다. 이와 함께 발달과정에서 부적절한 영양 상태에 있었던 어린이들은 두뇌발달이 저해되어 일생동안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열악한 식사는 교육적 성취를 저해하고, 경제적 생산성을 감소시키며, 의료비용을 증가시키면서 전반적인 후생복지를 끌어내린다. 따라서 이런 고질적인 영양부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광범위한 혜택을 가져올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통념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궁핍에 관한 통념

1980대 초 세계는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의 기아와 죽음의 소식에 휩싸였다. 1985년까지 30만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런 기근 중에 이들 나라들이 목화, 사탕수수를 포함한 갖가지 현금작물을 거의 최고조로 생산하여 수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단지 30% 정도의 경작지가 가뭄에 피해를 입었을 뿐이지만 (과장된)보도에 나타난 타들어 가는 경작지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의 모습은 - 전국적 규모로 식량이 부족하여 겪는 - 영양실조의 신화를 세계의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실상은 지난 40년 동안 세계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때로는 풍족하다고 할 만한 식량을 생산해 내고 있었으며, 주요 곡물 생산국인 미국의 경우는 농민들에게 경작지를 놀리도록 보조금을 지불하기까지 하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추계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기아에 처한 어린이의 80%는 식량잉여 상태의 나라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국제 식량정책 연구소(IFPRI)에 따르면 1970년부터 1995년 사이 기아의 감소분 중 25%는 주로 일인당 식량 가용성 증가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것은 '희소성이 인구증가나 경작지와 물 공급의 부족 등에 의한 식량 부족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식량 부족이 생긴다'는 통념에 반하는 것이다. 물론 나이지리아나 파키스탄 등은 앞으로 50년 동안 인구가 두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미 1990년대에 식량 여유 분의 감소가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인도의 경우 지하수를 과다하게 펌프질하면서 한 때는 관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하수 층이 마르게 되어 자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배고픔을 호소하고 있는 10억 이상의 사람들은 비난의 손가락을 다른 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대물림되고 있는 기아의 근본원인은 물론 가난이다. 즉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인 재화와 용역에 대한 접근능력의 부족 때문이다. 배고픔이 있는 곳에는 틀림없이 빚에 찌들고 적절한 땅을 갖지 못하게 하는 빈약한 소득으로 생활하며 의료 전달체계에 접근하기 어렵고, 교육체계와 동떨어진 사람들이 있다. 1998년말 세계적으로 1억 5천만 명의 사람들이 실직 상태에 있으며, 9억 이상의 사람들이 생계비에 미달하는 품값을 받고 있다. 이렇게 10억이 넘는 사람의 숫자는 저 체중과 배고픔이 일상사가 된 11억 인구와 겹쳐지게 된다. 한편 또 다른 20억에 가까운 사람들은 기아나 다름없는 경계선에서 하루 2 달러도 되지 않는 소득의 대부분을 음식 구입에 쓰고 있다.



굶주림과 가난은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더욱 가공할 영향력을 끼친다. 인도의 경우 소녀들은 소년들과 비교할 때 거의 4배 정도 영양부족 상태에 있다. 개발도상국 남자의 25% 정도가 철분 부족으로 인한 빈혈임에 반해 여성의 숫자는 45%나 되고 이들 중 60%는 임신중이다. 여성편기는 문화적 선입견에서 주로 비롯된다.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부족한 음식물로 생활하는 가정에서 음식은 먼저 아버지와 아들의 차지이며 그러고 나서 어머니와 딸의 차례가 오게 마련이다. 물론 대개의 후진국에서 여성의 노동시간은 남성의 것보다 훨씬 길다. 교육 역시 성차별이 당연시 되고 있다. 부적절한 교육은 자연스럽게 경제적 불안정을 가져온다. 세계 문맹 인구의 2/3가 여성이며, 가난한 사람들의 3/5이 여성이다. 이렇게 교육과 경제적 기회가 남성에 비해 줄어들면서 여성들은 보다 더 굶주리고 훨씬 더 심각한 영양 문제를 안게 된다.

따라서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은 어떤 것이건 간에 가난을 해결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여성에 특별한 주안점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영양부조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국제식량정책 연구소가 행한 연구에서 1970년부터 1995년 사이에 영양부조의 감소분의 절반 이상은 여성의 교육과 지위향상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고된 바 있다. 이런 지렛대 효과는 여성이 가정 내에서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임신중이거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을 때 여성은 '두사람을 위해 먹는다.' 따라서 그녀를 가난에서 구출하고 영양상태를 호전시키는 것은 자녀들에게 전이되기 마련이고 더 이상의 효과까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의 수입의 거의 전부를 가족의 필요, 특히 음식물에 지출한다. 같은 자금이 남성의 손에 들어가면 부분적으로 - 25% 까지 이른다는 보고도 있는 데 - 가족 이외의 대상인 담배나 알코올 따위에 소비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같은 기관이 추진 중인 소규모 대출지원(microcredit) 정책은 기아와 대항하는 데 좋은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이 기관은 바구니를 짜거나 닭을 기르는 등의 작은 사업으로 소득을 얻고 있는 매우 가난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몇 백 달러 내외의 소규모 대출을 해주고 있다. 이 대출이 여성을 가난에서 구하게 되면 당연히 영양 측면도 향상되게 된다. 연구에 의하면 그라민 은행에서 여성의 대출금이 10% 증가하게 되면 - 영양상태의 한 기준이 될 수 있는 - 그녀들이 기르고 있는 아이들의 팔뚝 둘레가 6%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여성들의 딸이 취학할 확률도 20%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 데, 이것은 성년이 된 후에 그녀가 영양장해의 위험에 처할 확률을 상당히 감소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업에 국제적인 지원이 가세하게 되면 극적인 성과 향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대안 중 하나는 소규모 대출을 위한 정상회담을 열어 - 1990년에 8백만이 혜택을 받고 있는 데 이를 2005년까지 1억 이상이 수혜자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 220억 달러를 조달하자는 캠페인이다. 이 같은 투자는 빈국들에게 막대한 연관효과를 가져와서 영양상태의 향상, 의료 개선, 인구증가율의 감소 등과 함께 특히 여성과 관계되는 가난을 감소시키는데 큰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회 전반적인 차원에서 가난과 영양부조에 대항하는 투쟁은 토지와 농업 신용에 접근로를 확대함으로써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이런 방법은 역시 여성들에게 특히 유효한 데 그들은 세계 식량의 절반 이상을 생산해 내고 개발도상국 가정에서 가장 큰 소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네팔, 타일랜드 등의 경우 여성이 소유한 땅은 10% 이하이며 그마저도 작고 변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땅이 없는 여성들에게 대출이란 땅 다음으로 가까이 하기 힘든 것이다. 케냐, 말라위, 시에라리온, 잠비아, 짐바붸 등에서는 농부로서 여성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농업에 관해 대출을 받는 것은 불과 1%도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여성들의 신용도가 아주 높아서 남성들보다 훨씬 더 성실하게 대출을 갚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이율배반적이 아닐 수가 없다.

또한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식량의 오용을 막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실질적인 영양정보의 전달이다. 모유 먹이기 캠페인 같은 것이 좋은 예인 데 이것 하나만으로도 유아들의 영양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용 분유는 비위생적 생산 환경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성분 미달 제품으로 자주 등장한다. 모유 먹이기를 권장하고 어린이 분유 제품 판매를 제한함으로써 - 어린이에게 필수적인 비타민과 광물성분을 앗아가는 - 설사와 관련되는 질환을 8%에서 많게는 20%까지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설사로 인한 사망률도 작게는 24%에서 27%까지 줄일 수 있다. 모유를 먹이게 되면 임신 후의 - 생리 개시가 늦어지면서 수태 가능성을 차단하여 - 자연피임이 가능해 지는 데, 이렇게 되면 터울 조절이 훨씬 쉬워지며 결과적으로 가난한 가정에서 여러 자녀를 먹여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게 까지 되는 것이다.

영양교육 역시 기아 퇴치에 효과적인데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는 주민 모두와 지역 유지까지 협심해야만 한다. 필리핀의 BIDANI 사업을 예로 들자면 마을 사람들 전체를 대상으로 영양적 '개입'에 참여하도록 여러 가지 교육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등록한 어린이들의 82% 이상이 영양적인 향상을 경험하고 있다. 감비아에서도 유사한 사업이 진행 중인데 '카빌로' 부족의 사회지도층 여성들이 수유와 위생, 산모의 건강 등에 대해 지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게 되면서 여성과 아동의 사망률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영양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운동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현장에서 배고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보다 직접적인 기획도 필수적이다. 물론 혁신적인 발상도 여성에 힘을 주고 지역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데 한 몫을 단단히 하게 된다. 아프리카 서부의 '베닌' 공화국의 좋은 예가 있는 데 이곳에서는 원조 식량을 직접 가계에 분배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여학생에게 지급한 후, 그녀로 하여금 집에 식량을 가져가게 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적지 않은 나라에서 지배적인 성 편기가 수정되게 한 결과, 때로는 남자 형제를 학교에 보내고 - 자신은 집안 일을 돕기 위해 - 퇴교까지 당해야 했던 여학생 진학률을 괄목할 만 하게 향상시키게 되었다. 이로써 영양적 측면에서 두 가지 중요한 목표가 달성되었다. 먼저 가족에게 필요한 식량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여학생에게는 미래의 고용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장래의 영양부조 우려를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만 경향이라는 신화

차고 넘칠 만큼의 음식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먹는 습관은 엄청난 변화가 진행 중이다. 백년전 쯤부터 곡식과 채소, 과일 위주였던 식사는 동물성 단백질과 유제품을 포함한 가공식품 등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서 일어난 이런 전환은 전반적인 소득수준의 향상과 함께 개발도상국으로 퍼져나갔으며, 한편으로 전세계적인 과식을 불러오는 데는 공중 보건측면의 오해도 상당한 역할을 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허리치수를 늘리는 것을 선도해 온 미국의 경우 성인의 절반 이상이 과체중이며 이런 현상은 기아만큼이나 질병, 무능력, 생산성 감소, 수명 단축에 기여하고 있다.

광고와 함께 비용도 저렴해 진 고칼로리, 고지방 식품이 범람하면서 - 예일대학의 심리학자 켈리 브론넬이 말하듯이 - '독성 음식 환경'이 만들어 진 것이다. 설탕과 기름 범벅이 된 식품이 오히려 생체에 필수적이며 영양적으로 완전한 식품을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 : 오늘날 미국인이 섭취하는 채소의 1/5는 튀긴 감자류(프렌치 프라이와 포태토 칩)에 의한 것이다 사람들이 달고 기름진 음식에 달려드는 것은 어쩌면 선조들의 시대에 가혹한 자연조건 아래서 살아 남기 위한 방편이었을지 몰라도 현재로서는 중요한 결함요소가 되어 버렸다. 이런 음식 성향이 도시화, 자동화와 함께 장시간 앉아서 생활하게 된 현대인의 체중을 늘어나게 하는 것은 어쩌면 피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부정적 음식 환경을 감안하지 않은 채 과식은 지금까지 주로 개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방향으로 인식되어 왔다. 대다수의 나라에서 현실은 바람직하지 못한 음식을 조장하는 정책과 관행이 힘을 얻고 있는 반면에 시민 건강에 관한 염려는 포기되는 상황이다. 이런 배경에서 의지가 약한 일반인들은 비만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으며, 과식을 막아 보려는 시도는 - 예방이나 영양 교육이 아니라 - 지극히 지엽적인 기술적 방법이나 다이어트 수준에 머물고 말뿐이다.

최종결과 만으로 사태를 해결해 보려는 근시안적 사고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일 예로 지방을 제거하기 위한 흡입수술 같은 경우 미국에서는 연간 40만 건이 시행되고 있다. 인기 있는 다이어트 책자는 항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소위 '디자이너 식품'들은 영양적으로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 걱정 없이 먹으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비만에 관한 유전자를 식별해 내어 이를 퇴치하겠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농무성이 해마다 3억 3천만 달러 정도를 공중을 대상으로 한 영양 교육에 투자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의 다이어트와 체중감량 식품 산업의 연간 매출고는 물경 330억 달러에 달하는 지경이다. 대단한 고수익 사업인 체중감량 산업은 - 전세계적인 식량 수급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 세계적 곡물 기업들을 먹여 살리는 지경이다.

사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음식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를 식품업계로부터 얻게 되는 데 이는 이런 회사들이 해마다 - 미국 한 나라에서 산업체 광고로서는 제일 많은 액수로 - 300억 달러 이상을 광고에 쏟아 붇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광고를 하는 식품의 경우 영양적 가치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또한 식품회사들의 주목표는 어린이들이다. 이들은 현실에 가장 무지한 소비자이며, 일단 형성된 습관이 평생동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에서 평균적인 어린이가 한 해에 보는 텔레비전 광고는 10만 개에 달하고 이는 어떤 분야보다 더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 공중보건 과학센터(CSPI)의 조사에 의하면, 이 광고들의 90% 이상은 설탕이 가미된 곡물이나 캔디, 소다 음료 등의 잡스런 음식들이다.

많은 조사에서 이런 광고들이 실효를 거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광고들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점점 자주 요구하고, 사 먹게 만들며 이런 습관이 어른이 되어서도 소비습관으로 굳어지게 만든다. 결국 이런 칼로리 없는 소다 음료수와 과자 등의 식품으로 어린이들의 몸이 가득 차게 되면서 보다 건강에 도움이 될 식품들은 자리를 비켜줄 수 밖에 없게 된다. 최근에 식품회사들의 목표가 학교 환경으로 바뀌게 되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마케팅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 전체 학교의 13%나 되는 5,000 여 학교가 자판기, 음식 조달 등의 방법으로 즉석식품 판매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 1990년 이래 소다 음료수 회사들은 운영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교들을 대상으로 학교 내 독점 판매권을 얻기 위해 수 백만 달러를 내놓고 있다.

선진국 시장이 점차 포화상태로 가고 있는 기미를 알아차린 식품회사들은 이제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해 개발도상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멕시코는 최근 미국을 젖히고 일인당 세계 최고의 코카콜라 소비국이 되었다. 최근 이 콜라회사의 연차 보고서는 '아프리카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일인당 탄산음료 소비율이 낮다'고 지적하면서 이 대륙을 '우리를 위한 기회의 땅으로 만들자'고 적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즉석식품 식당들의 수 역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 바깥 만 해도 넷에서 다섯 개의 맥도널드 가게가 문을 열고 있다.

과식은 기아와 가난이 만연해 있는 나라들에서도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1980년대의 경제적 급상승기 이후 돼지고기나 튀김기름의 소비가 치솟고 있다. 이는 동시에 부유한 가계가 소비하는 식품으로써 가장 유력한 쌀과 전분 식품의 소비가 감소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시화가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고, 언론에는 매일같이 새로운 음식이 소개되고, 광고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으며,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의 증가와 함께 고도 가공식품과 포장 음식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133개 개발도상국가를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도시로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 소득의 변화가 없더라도 - 일인당 당류식품의 소비를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콰도르의 '과이야킬' 같은 곳에서는 현금에 쪼들리는 가정에서조차도 튀김 음식, 감자 칩, 청량음료 등이 감자나 신선한 과일의 소비를 밀어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영양이 풍부한 음식물이 칼로리 없는 음식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빅 맥'과 청량음료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이미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따라서 이런 '독성 음식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과식을 둘러싸고 있는 잘못된 통념을 혁파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각국 정부가 나서서 과식과 건강에 관한 고질적 오해를 불식시켜야 하고 잘못된 식사습관을 바로 잡는 데 강력한 사회적 압력을 행사해야 할 때가 되었다. 건강한 식사습관과 영양에 관한 교육을 통해 국민 개개인 - 특히 어린이에게 힘을 주는 것도 필수적이다.

과식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정한다면 이미 습관이 형성된 이후 대처할 것이 아니라 학교 환경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전국적 규모의 '트림 앤 피트'사업으로 어린이 비만을 - 일부 대상의 경우 33%에서 가장 효과적일 경우 - 55%까지 줄일 수 있었다. 이는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급식과 영양 및 체육교육을 강화한 결과였다. 이와 유사한 기획들이 여러 나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다만 체육 교육적 접근에서는 점차 규모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다.

대중매체를 통한 교육 캠페인은 고질적인 성인들의 식습관을 변화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핀란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관상동맥 질환을 줄이기 위한 사업을 추진한 바 있는 데 여기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광고, 국민 건강 지침 수립, 식품 내용 표시의 강화 등이 중심이 되었다. 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사업으로 - 여기에는 금연운동도 물론 포함되었다. - 농부로부터 핀란드 심장병 협회까지 다양한 층이 참여하여 채소와 과일의 섭취 증가를 두배로 늘였으며, 1969년부터 1995년 사이에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65%까지 낮출 수 있었다. 사망률을 절반 가까이 낮춘 요인은 건강교육으로 촉발된 저 칼로리 식품의 공이었다.

과식을 공중보건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소비를 제한하기 위해 경고문을 붙이고 세금을 인상함으로써 실효를 거두고 있는 금연운동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핀란드의 경우 정부는 소금이 많이 든 음식에는 '고소금', 반대의 경우 '소금을 줄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저 지방'이라는 문구의 딱지가 붙어 있지 않은 대다수 식품은 자연히 '고지방'이나 '고설탕'의 의미를 갖게 되면서 소비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는 것이다.

재정적 제약을 통해서 저 영양 식품 소비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킬 수도 있다. 예일대의 켈리 브라우넬은 칼로리 당 영양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기름기와 당분이 많고 영양소는 작으며 칼로리가 높은 식품의 경우가 가장 높은 세금이 부과되고, 과일과 채소들은 면세가 가능해 질 수 있다. 이런 발상으로는 영양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식품 소비를 줄일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한 수입으로 보다 건강한 식품을 육성하고 영양교육과 체육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보다 쉽고 비용이 덜 들면서 제대로 된 식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간편식당과 자동판매기에 관한 연구에서는 가격이 얼마나 구매 습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가 보고 된 바 있다. 가격을 낮추게 되면 소비자에 의한 과일이나 샐러드 등의 건강 식품 선택이 무려 세배까지 증가되지만, 한편으로 전체 식품 구입비는 원래대로 유지가 가능해 지기도 한다.

이런 세금제도는 사회적 기여가 크다는 점에서 과식에 대한 비용 차원에서도 정당화 될 수 있다. 하버드대의 그레함 콜디츠는 비만으로 인해 직접 비용(병원 체류비용, 약 값, 처치료, 의사 진찰료)과 간접비용(생산성 감소, 직장 결근, 보험금 지급)을 합쳐서 연간 미국에서 1,180억 달러가 들어간다고 추산한 바 있다. 이 액수는 미국의 연간 보건 예산의 12% 정도이며, 세금 등을 통해 훨씬 강력한 제재 상태에 들어간 흡연의 사회적 비용인 470만 달러의 두배가 넘는 액수이다. 비만에 관한 이런 재정적 접근은 여러 감염성 질환의 근절과 함께 고질적인 질병에도 대처해야 하는 두 가지 짐을 지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훨씬 매력적일 수 있다.





함께 나서는 길

좋지 않은 영양 문제는 학교와 직장의 성취도를 떨어뜨리고, 의료비용을 높이며, 궁극적으로 건강과 복지를 감소시킴으로써 사회 내의 여러 부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반면에 영양의 향상에 의한 파급효과도 대단하다. 게다가 보다 나은 식사는 먹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으리라 생각하던 것까지도 영향을 끼칠 수 도 있다.

이런 일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학교의 교육과정을 위한 자금지원에 이르기까지 사회전반의 통합된 노력이 요구된다. 깨끗한 물 공급이 좋은 예인 데 우리 몸이 미세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을 저해하는 기생충을 감소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능을 하게 되고, 따라서 깨끗한 물을 공급하려는 보건당국의 목표는 영양 향상 캠페인의 당연한 지원군이 되는 것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자전거 통학을 권장하는 교통당국, 텔레비전 시청을 감소시키려는 문화 정책당국, 영양교육에 중점을 두는 교육당국 등 이 모두가 보다 나은 식사 생활을 장려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비만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보다 간접적인 경로로 영양 향상이 생활 가까이 에서 권장될 수 있다. 먼저 건전한 영양 정책이 이미 사회에서 시행 중인 사업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추진될 수 있다. 건강 교육, 농사 체험 교실 등은 이미 구성된 병원, 학교, 지역사회 모임을 통해 영양적으로 취약한 계층으로 부터 손쉽게 호응을 얻어 낼 수 있다. 병원 관계자의 경우는 모유 먹이기에 중점을 둘 수 있을 것이고, 지역사회 모임에서는 집안에 정원 만들기 등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업들은 이미 존재하는 조직을 활용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기반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출산 전에 모유에 관한 교육을 받은 여성에게 그 후에도 설사를 일으키는 유아를 돌봐야 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도 이런 상승효과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소액대출을 통해 취업기회를 만들어서 가난을 몰아내기 위한 사업들도 건강과 영양 교육과 병행하게 되면 영양 수준을 높이는 데 큰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아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Hunger)라는 단체가 가나에서 추진 중인 '교육과 대출'사업은 모유 먹이기 교육, 육영, 설사 방지, 면역, 가족계획 등과 병합해서 시행되었다. 3년에 걸친 조사에서 건강과 영양의 향상이 보고되었고 음식 부족현상의 보고사례는 줄어들고 있었으며, 특히 참여한 어린이들에게는 괄목할 만한 영양 상승이 있었다. 이 사업의 추진 간사인 바바라 맥넬리는 "단순히 가계가 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는 것 만 가지고는 어린이의 영양상태가 나아지고, 식품 구입의 관행, 생활 수준이 향상된다는 보장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브라질의 '쿠리티바'시에서는 영양과 생활 쓰레기가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도시의 폐기물이 증가하고 거주민 중 가난한 층의 영양부조 상태가 늘어가고 있음에 착안한 관계자들은 농부, 도시 빈민층을 포함해서 시 전체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유기물 쓰레기 재활용사업을 기획했다. 시민들은 일반 쓰레기와 유기물 쓰레기를 분리하고, 포장해 중앙에 집결시키고, 교외의 농부들이 가져온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와 교환할 수 있었다. 쿠리티바에서는 쓰레기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농부들은 화학비료 의존도를 줄일 수 있었으며, 도시 빈민들은 영양가 있는 식품들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회, 특히 식품광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건전한 식품 영양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 요소가 된다. 미국의 경우 '버클리 식품체계'사업을 예로 들자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건전한 먹거리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 이외에 원천적으로 이들이 식품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교 안에 채소밭을 만들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런 채마밭을 통해 하교는 자체 급식 중 일부를 조달할 수 있는 데 이는 199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순수 유기농산물을 학생들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일조하게 된다. 이 사업으로 인해 학교는 교육과정을 통해 식품에 관한 포괄적인 개념을 학생들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환경적 각성'을 위한 모임과 함께 이 운동에 선봉을 서고 있는 자넷 브라운에 따르면 아이들이 포장식품과 가공식품을 가까이 하려는 이유 중의 하나는 - 적절한 예비교육이 부족했던 결과 - 과일과 채식에 대하여 두려움과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자신이 지지 목을 세워주며 기른 토마토를 직접 먹어 보게 되면 구내 식당에서는 보다 쉽게 샐러드를 먹을 수 있게 된다."

영양적 각성은 단지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의사, 간호사, 기타 건강관리 전문가들이 다이어트와 건강의 관계를 환자들에게 적절히 교육시킬 수 있다면 식생활 습관의 전환은 비약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의학체계는 영양의 역할을 과소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 1994년 미국의 경우 의과대학의 단지 23%만이 학생들에게 영양관련 과목을 별도로 가르치고 있을 뿐이었다. 영양에 관해 이렇다할 교육을 받지 못한 의사가 당연히 예방적 건강 측면은 소홀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단지 잘못된 식습관에서 기인하는 '결과' 만에 관심을 가지기 쉬울 것이다. 즉 심장병 환자에게 과일이나 채소 식사를 늘이고 운동을 하도록 권장하기보다는,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한 약을 처방하거나 심장 혈관 우회수술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질병관리 센터'에서 행한 조사에 의하면 "비만한 성인 중에서 건강 관련 전문가에 의해 조언을 받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절반도 되지 못했다."

의학관련 전문가를 교육시키는 이외에도 중요한 것은 건강 관련 사업들의 범위가 의료보험이 질병과 체중 감소를 포함하는 것으로써 비만을 광의로 인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질병과 환자의 고통뿐만 아니라 보험관련 비용 자체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네브래스카의 오마하이다. 이 곳에서는 심장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하여 집중적인 다이어트와 생활 습관 변화를 통해 값비싼 처방과 수술을 줄여 나가고 있다. 당연히 그 다음 단계는 마치 보험회사와 치과에서 하듯이 일상적인 영양상태 점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역사회가 건강한 식품에 대한 결정권을 거의 갖지 못한 상황일 경우, 식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식품 물류체계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교외 농업과 농부들에 의한 직거래 시장을 지원하게 되면 저소득층에게 좋은 먹거리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도 증명된 바 있다. 쿠바의 몇몇 도시는 시내에 있는 채소밭에서 먹거리의 30%를 제공받고 있는 데 정부가 이를 지원하게 되면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영양적으로 이미 불모지가 되버린 선진국의 도시 중심부는 - 그 동안 야채 가게와 대형 식품점들이 보다 부유한 소비자를 따라 교외로 이전해 버리고 즉석 음식점과 편의점 만 들어서 있는 상황에서 - 농부들에 의한 직거래 장터가 어떤 경우에는 싱싱한 농산물의 유일한 공급 경로일 수가 있다.

토론토 식품 정책 위원회는 지역 농가와 - 대부분이 여성가장인 - 도시 저소득층을 연결하기 위해 직거래 시장과 직접 배달 체계를 동시에 시도했다. 이런 방식으로 식품을 구입하고 있는 사람들의 70% 가까이는 1990년 이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과 비교할 때 훨씬 많은 채소를 먹고 있으며, 21%는 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게 되었고, 16%는 식생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루에 채소와 과일을 다섯 가지 이상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성 있는 식생활을 개선하는 것은 정부당국의 사업이 될 수도 있다. 켈리 브라우넬이 주장하는 식품세는 영양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자금원으로 쓰일 수 있다. 공익을 위한 과학 센터(CSPI)의 책임자인 미첼 자콥슨은 "약간의 세금으로도 '텔레비전 광고, 체육교사, 자전거 길, 수영장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비만 방지 방법'에 자금을 댈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청량음료 한 캔에 2/3센트의 세를 붙이고, 텔레비전과 비디오 구입에 5%, 자동차 구입에 65 달러, 주유할 때 몇 센트 정도를 부가한다면 해마다 무려 10억 달러의 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세금 없이도 몇몇 나라에서는 좋은 영양을 위한 보조 수단인 생활방식 개선을 독려하고 있다. 1999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교통부, 보건부, 환경부 등이 함께 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자전거 이용을 장려하는 자전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여러 당국의 연합 사업은 바로 건전한 영양정책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자전거 타기가 늘어나는 것은 더욱 운동량이 늘어나는 것이기에 이는 과체중과 싸우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깨끗한 공기, 보다 여유 있는 도시 교통, 저렴한 교통 기반시설로서의 역할도 달성하게 될 것이다.

먹거리 환경을 바로잡는 데 있어 마지막 부분은 식품을 문화와 영양의 귀중한 재산으로 생각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식품과 관련된 현재의 소비자 문화는 - 영양이나 건강을 희생하는 대가로 - 상표 충성도나 거대한 음식문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천천히 먹는 음식'운동이나 미국의 '전통방식에 의한 음식 보관과 교환'모임 등은 오늘날의 음식 문화를 비판하면서 전통적인 조리방법으로 돌아갈 것과 이를 통한 음식의 사회적 역할을 부활시키자는 운동이다. 이들의 목표는 주방장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변화의 대상인 데 이런 문화적 개입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 마치 미국에서 흡연이 사람들의 각성에 의해 추방되고 있는 것처럼 - 보다 건전한 식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운동을 마케팅과 다른 지원 등으로 돕게 된다면 이는 단지 부유층 뿐 만 아니라 사회 각층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혜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운동들의 성공 사례는 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더 자신들의 식품 선택에 신중해 지고 있으며, 관심 영역도 단순한 영양적 관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건강적으로 의식화된 소비자는 농작물에서 잔류 화학물질을 회피하며, 토양을 황폐화시키고 물을 오염시키는 농법을 멀리하고자 하면서 유기농산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동물성 식품 소비를 줄일 것이고, 이로 인해 지방과 콜레스테롤 섭취가 줄어들고, 나아가서 땅과 물에 끼치는 부담을 줄이고자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이런 소비자들은 신선도와 품질을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을 선호하고, 자연스럽게 농부와 경작방법에 깊이 개입하게 될 것이다.

영양 문제는 개인과 국가적 차원의 발전 중심요소로써 이렇게 멀리까지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부실한 먹거리는 개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 경제활동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역도 또한 성립한다. 소녀들에게도 소년들과 똑같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 식품회사가 어린 소비자를 대상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제멋대로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 등은 발전적 입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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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식품의 등장



1.

한 번에 먹는 양은 최근 수십년 동안 계속 늘어났다. 1950년대에 청량음료 한 병은 6.5 온스였는 데 오늘날 표준병의 용량은 20온스이다. 식품 크기의 대형화는 가공식품의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되었지만 소비자에게는 대단한 부가가치를 주는 것처럼 보이게 되면서 한끼 분 식사량에 대한 왜곡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에서 조사된 바에 의하면 "중형'이라고 표시된 음식은 대개가 권장 식사량의 두 세배에 달하는 크기였다.

2.

과식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만연되고 있는 것은 거개가 엄청난 광고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광고를 하는 기업이 식품회사이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는 세계 10대 광고비 지출회사에 항상 들어 있다. 결과는 훌륭하다. 맥도널드는 매일같이 다섯 개정도의 점포를 추가로 개점하고 있는 데 그 중 네 개는 미국 바깥에 있다.

3.

평균적인 미국인은 1년에 70킬로그램의 당류를 섭취하고 있는 데 이는 1909년과 비교할 때 75%가 증가한 것이다. 하루에 대략 200 그램 또는 53티스푼이 되는 데, 열흘마다 5파운드 설탕 한 봉지씩을 먹는 셈이다. 유럽과 북미의 경우 지방과 당류의 섭취가 섭취 칼로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러다 보니 곡물이나 채소에서 얻는 탄수화물은 전체 칼로리의 1/3정도에도 이르지 못한다.

4.

식품회사들이 기름지고 단 음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이런 음식에 달려든다는 것과, 한편으로는 과일이나 채소 같은 기본적인 식품보다는 가공식품에서 보다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설탕, 소금, 지방, 기름 등을 더욱 많이 섞게 되면 - 우리에게 익숙한 농축 상태의 겨자, 케첩, 오이 등 - 맛있으면서도 수익성 높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참기 어려운 유혹이 될 수밖에 없다.







목표는 여성



1.

굶주린 아이들은 면역체계의 교란, 신경 손상, 성장 지연 등으로 평생동안 멍에를 지고 살게 된다. 임신중 저체중이었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평균적으로 5센티미터 정도 키가 작고 5킬로그램 정도 체중도 적게 된다.

2.

굶주림이 있는 곳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영양부조에 시달리게 된다. 인도의 경우 소년과 비교하면 소녀들은 네배나 더 배고픔과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기아 상태의 여성은 굶주린 아이를 낳고 기를 수밖에 없게 된다. 궁핍한 가정이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필 수는 없을 것이기에 배고픔은 세대를 통해 전수된다.

3.

여성들은 세계식품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만들어 내고, 특히 농촌 지역의 경우 자신의 가족들이 소비하는 식료의 가장 큰 몫을 준비한다. 특기할 것이 바로 이점이다. 남성과 비교하면 여성들은 땅이나 대출, 사회적 정치적 지원을 훨씬 얻기 어려운 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4.

분쟁과 전투는 직접적으로 경제와 식품 생산을 교란하고, 간접적으로는 가난 구제에 쓰일 자금을 군수물자에 전용하게 함으로써 굶주림을 악화시킨다.

5.

고질적인 기아는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감염질환의 손쉬운 희생자로 만든다. 영양부족은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5대 사망 원인 중 하나이자 54%의 경우의 간접 요인이었다.







구석구석 스며든 영양 문제

세계 어느 곳 할 것 없이 기아나 과체중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가난과 함께 풍요도 지구적이다.





1.

기아의 원인이 가난에 있는 것이지 결코 지역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미국에 존재하는 굶주림이다. 1998년 미국 가정의 10%, 즉 어린이를 가진 다섯 가정 중 한 집이 '식품 불안'상태 - 기아선상 가까이 또는 배고픔 때문에 불안한 상황에 있는 것이 보고되었다.

2.

1980년부터 200년까지 남미와 카리브해 연안의 나라들에서 저체중 상태에 있는 어린이 숫자는 14%에서 6%로 감소했다. 그 이유로는 이 지역이 또 다른 영양부조 상태로 전환한 것이 아닌가 싶은 데, 즉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에서 과다체중 인구가 과소체중 인구를 초과하고 있는 통계가 이를 반증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과다체중과 과소체중으로 시달리고 있다.



과다체중과 과소체중은 결코 자의적인 개념이 아니라, 체중과 건강을 계량하기 위한 신체질량 지수(BMI)를 사용하는 것이다. 건강한 BMI는 19 ~ 24 범위이고, 초과하면 '과다체중'이 되어 심장병이나 당뇨, 암 등의 질환율이 높아진다. 30이 넘게 되면 '비만'이며 위험도가 더욱 증가한다. BMI는 사람의 체중(킬로그램)을 키(미터)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1.

유럽의 과식성향도 결코 북미보다 떨어지지는 않는다. 러시아, 독일, 영국의 과체중 인구는 전체의 절반쯤 되고, 다른 유럽국가들의 경우는 조금 낮다.

2.

남미와 같이 동아시아에서도 기아선상의 인구는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과식이 퍼져가고 있는 한편에서도 기아는 아직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국의 과다체중 성인의 숫자는 1989년에 9 ~ 15%이던 것이 1992년에는 성인 인구의 절반 가까이로 늘어났다.

3.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과 남부 아시아에는 기아지대가 몰려있다. 이 지역 어린이의 44%가 저체중이지만, 인도,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는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역에서도 도시 상류층에서는 비만이 점차 문제화되고 있다.

4.

세계 인구 중 저체중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단 사하라 이남은 예외인 데 이곳에서는 36%의 어린이가 가난과 여러 사회적 요소 때문에 저체중에 시달리고 있다.

5.

중동의 대부분 지역은 마치 북미처럼 과체중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수단같이 가난하고 전쟁에 찌든 몇 나라에서는 기아가 남아프리카 지역만큼이나 살인적이다.





영양은 어디에?



1.

식품 광고의 화살은 사물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 어린이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1년에 한 어린이가 10만 개의 상업 광고 앞에 노출되는 데 그 중 90%는 설탕을 바른 곡물, 사탕 또는 이와 비슷한 허섭스레기 음식물이다.

2.

영양적으로 보잘것없는 식품들이 미국 학교들을 침범하고 있다. 5,000개가 넘는 미국 학교가 구내식당이나 자동판매기 회사들과 수백만 달러가 넘는 계약을 하고 있다. 콜로라도의 한 학교에서는 - 사전에 체결한 - 일정한 판매량에 미달할 경우 교실 안에서도 코카콜라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이면 계약을 하기도 했다.

3.

선진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집이나 가정이 식사의 중심이 되지 않는다. 1998년의 경우 음식 중 단지 38%만이 가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고, 세끼 중 한 끼는 집 바깥에서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4.

단지 칼로리만 내고 영양가는 거의 없는 허섭스레기 음식물이 보다 영양이 풍부한 식품을 대체해 가고 있다. 영국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스낵 음식의 일인당 소비량은 25%이상 증가했고 액수로는 36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WorldWatch(월드워치)에서 전재)

블로흐-희망철학: 삶, 희망이 희망이다. 2006-10-30

아직도 왜 사는 지 잘 모르고,

그저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큰 집, 큰 차, 기름진 음식, 멋진 상대...

무엇 하나 쓰잘 데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 지경입니다.

그냥 그렇게 끌려 다니며 삽니다.



그러나...



삶이...

희망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고향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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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인간의 삶 ‘희망’이 희망이다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철학’10년만에 완간.

마르크스 지렛대 삼아 유토피아를 꿈꾸며 정치·사회·문화 가로지른 ‘희망의 필연’역설



희망의 원리 전 5권 (에른스트 블로흐 지음·박설호 옮김, 열린책들 펴냄·각 권 1만8000원)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혀를 단 예언자’로 불린다. 마르크스주의와 메시아주의를 절묘하게 결합한 것이 그의 사상의 요체였다. 그에게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가 예견한 ‘자유의 왕국’은 16세기 독일의 기독교 농민혁명가 토마스 뮌처가 꿈꾼 ‘지상의 천국’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지렛대로 삼아 유토피아를 들어올리려 한 사람이었다.



<희망의 원리>는 그의 방대한 사상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저작이다. 1990년대 초에 일부가 번역된 바 있는 이 대작이 블로흐 연구자 박설호 한신대 교수(독문학)의 노고에 힘입어 전모를 우리말로 드러냈다. 200자 원고지 1만3000장에 이르는 책을 번역하는 데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이로써 게오르크 루카치와 더불어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독일어권 양대 산맥을 이루는 블로흐의 참모습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



<희망의 원리>가 집필된 시기는 1938~1947년이다. 독일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 시기에 블로흐는 ‘희망’을 삶의 ‘원리’로 구축하는 이 기나긴 철학적 에세이를 써나갔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향해 가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이 우리를 맞이할 것인가?” 2차대전이라는 인류사적 참화 속에서 이렇게 묵시론적 색조가 밴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곧이어 단도직입적으로 “문제는 희망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선언한다. “희망의 해위는 체념과 단념을 모르며, 실패보다는 성공을 사랑한다.”



여기서 ‘희망’이란 이 저작의 원제이기도 한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이다. 이 꿈은 머릿속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본질적 모습이다. 여기에 블로흐의 ‘희망 철학’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는 이 저작에서 철학·역사에서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가능한 모든 요소를 검토해 백과사전적으로 희망의 모습을 찾아나간다.



그의 용어대로 표현하면, 희망은 ‘아직 아닌 존재’의 존재론이다. 그가 볼 때 인간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완성되지 않은 존재이며, 자신의 모든 본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존재다. 이렇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를 블로흐는 ‘아직 아닌 존재’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이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성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존재의 바탕에 놓여 있는 것이 ‘희망’이다. 희망이란 말하자면 인간의 ‘기본적 충동’이며 ‘기본적 정서’인 것이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무언가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은 인간 존재의 필연적 특성이다.



그 희망의 가장 친숙한 형태가 ‘낮꿈’(백일몽)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밤꿈에서 인간의 의미심장한 본질을 찾아내고 낮꿈을 의미 없는 몽상으로 치부한 것과 정반대로, 블로흐는 더 많은 행복을 소망하는 낮꿈에서 ‘유토피아의 위대한 사고가 출현하기 전의 사상적 싹’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 낮꿈은 그저 낮꿈일 뿐이다. 낮꿈을 꾸는 자가 일어서서 그 꿈을 실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창조해낼 때 그 행위 속에서 희망은 존재한다고 블로흐는 말한다.



블로흐는 2차대전 종결 뒤 동독의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맞게 조국을 선택한 셈인데, 결국 그는 이 교조화한 관료적 사회주의 체제에 맞서다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서독으로 ‘망명’한다. 희망은 언제나 ‘환멸’을 동반한다고 그는 믿었는데, 그러나 동시에 그 환멸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믿었다.



이 장대한 철학에세이는 이렇게 끝이 난다.



“역사의 뿌리는 바로 인간이다. 그는 노동하고 창조하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이를 뛰어넘지 않던가. 만약 인간이 자신을 파악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안에서 소외 없는 자기 자신을 증명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유년기에 갈구했으며, 아무도 아직 실현하지 못한 어떤 것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고향이다." 인간과 세계가 이상적인 상태에서 행복하게 결합한 유토피아적 상태를 ‘고향’이라고 표현한 것인데, 그 고향에 다다를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창세기’가 시작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3/2004/10/009100003200410221444446.html